從事有示愈以荊潭酬和詩者어늘 愈旣受以卒業하고 因仰而言曰 夫和平之音淡薄하고 而愁思之聲要妙하며
讙愉之辭難工하고 而窮苦之言易好也라 是故文章之作이 恒發於羈旅草野하니라
至若王公, 貴人
은 하니 非性能而好之
면 則不暇以爲
니라
德刑之政竝勤
하고 爵祿之報兩崇
이로되 乃能存志乎詩書
하고 하야 往復循環
하야 有唱斯和
하고
兩府之從事與部屬之吏가 屬而和之하니 苟在編者 咸可觀也라 宜乎施諸樂章하고 紀諸冊書로다
從事曰 子之言是也
라하여늘 告於
公
하고 書以爲荊潭唱和詩序
하노라
唐荊川曰 此篇文與盛山詩序本敍事일새 只略用數句議論引起하니라
어떤 僚屬이 나에게 ≪荊潭酬和詩≫를 보여주기에, 나는 그 책을 받아 다 읽고는 이어 우러러 말하였다.
“和平한 이의 聲音(詩歌)은 淡泊하고 憂愁하는 이의 聲音은 미묘하며,
歡樂할 때에 지은 文辭는 공교롭기 어렵고, 곤궁한 때에 지은 문장은 아름답기 쉽다. 그러므로 문장의 傑作은 항상 타향을 떠도는 나그네나 초야에 묻혀 지내는 평민에게서 나왔다.
王公이나 貴人으로 말하면 뜻한 바가 실현되어 마음이 만족하니, 선천적으로 재능이 있어 문장 짓기를 좋아하는 자가 아니면 문장을 지을 겨를이 없다.
지금 僕射 裵公은 荊南(蠻荊)에 절도사가 되어 한 지방을 鎭守하여 아홉 郡을 統轄(관할)하고, 常侍 楊公은 湖南의 2천 리 지역을 통할한다.
이 두 분은 힘써 德政을 베풀고 형벌을 집행한 데 대한 보답으로 얻은 官爵과 俸祿이 모두 높아졌는데도 오히려 ≪詩≫와 ≪書≫에 뜻을 두고 詠歌에 생각을 붙여, 돌려가며 〈詩를〉 주고받아 이쪽에서 詩를 부르면 저쪽에서 화답하고,
奇怪한 辭句를 찾고 文字를 아름답게 꾸며, 베옷 입고 시골에 살면서 문장에 專念하는 憔悴한 선비들과 함께 미세한 부분까지 따졌다.
〈그러므로〉 그 詩歌의 聲音이 金玉(鐘磬) 소리처럼 크고도 맑으며, 幽妙(深奧)하기가 귀신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니, 참으로 이른바 文武를 두루 겸비한 인재로 능력이 거대한 분들이라 하겠다.
두 府의 從事와 下級官吏들도 詩를 지어 화답하였으니, 이 詩集에 수록된 것들은 모두 볼 만하다. 樂章에 싣고 史冊에 기록함이 마땅하다.”
그 僚屬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다.”고 하기에, 裵公께 고하고서 이 말을 기록하여 ≪荊潭唱和詩≫의 序로 삼노라.
唐荊川이 말하였다. “이 篇의 문장은 〈韋侍講盛山十二詩序〉와 함께 敍事를 근본으로 한 것이므로 단지 간략하게 몇 句만으로 의론을 끌어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