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大家韓文公文抄 卷9 原‧論‧議
歸安 鹿門 茅坤 批評
孫男 闇叔 著 重訂
闢佛老是退之一生命脈이라 故此文是退之集中命根이라
其文源遠流洪하야 最難鑑定이어늘 兼之其筆下變化詭譎하니 足以眩人이라
仁與義爲
이요 道與德爲
라 故道有君子小人
하고 而德有凶有吉
이라
老子之小仁義는 非毁之也라 其見者小也니 坐井而觀天曰天小者는 非天小也라
其所謂道는 道其所道요 非吾所謂道也며 其所謂德은 德其所德이요 非吾所謂德也라
凡吾所謂道德云者는 合仁與義言之也니 天下之公言也요 老子之所謂道德云者는 去仁與義言之也니 一人之私言也라
하고 孔子沒
로 하고 하며 佛于晉魏梁隋之間
하니라
其言道德仁義者가 不入于楊이면 則入于墨하고 不入于老면 則入于佛이라
入于彼면 必出乎此라 入者主之하고 出者奴之하며 入者附之하고 出者汙之하니
噫
라 後之人其欲聞仁義道德之說
인들 孰從而聽之
리오 라하고 라하니라
爲孔子者習聞其說하고 樂其誕而自小也하야 亦曰 吾師亦嘗云爾라하야
不惟擧之於其口라 而又筆之於其書하니 噫라 後之人雖欲聞仁義道德之說인들 其孰從而求之리오
甚矣라 人之好怪也여 不求其端하고 不訊其末이요 惟怪之欲聞이로다
古之爲民者四러니 今之爲民者六이요 古之敎者處其一이러니 今之敎者處其三이로다
農之家一이어늘 而食粟之家六이며 工之家一이어늘 而用器之家六이며
賈之家一이어늘 而資焉之家六이니 奈之何民不窮且盜也리오
古之時
에 人之害多矣
러니 有聖人者立然後
에 敎之以
하니라
爲之君하고 爲之師하야 驅其蟲蛇禽獸하고 而處之中土하며 寒然後爲之衣하고 饑然後爲之食하며
木處而顚하고 土處而病也然後에 爲之宮室하고 爲之工하야 以贍其器用하며
爲之賈하야 以通其有無하며 爲之醫藥하야 以濟其夭死하며 爲之葬埋祭祀하야 以長其恩愛하며
爲之禮하야 以次其先後하며 爲之樂하야 以宣其湮鬱하며 爲之政하야 以率其怠勌하며
爲之刑
하야 以鋤其強梗
하며 相欺也
ㄹ새 爲之
以信之
하며
相奪也ㄹ새 爲之城郭甲兵以守之하며 害至而爲之備하고 患生而爲之防이어늘
嗚呼라 其亦不思而已矣로다 如古之無聖人이면 人之類滅久矣라
何也오 無羽毛鱗介以居寒熱也하고 無爪牙以爭食也ㄹ새니라
是故君者
는 出令者也
요 臣者
는 也
며 民者
는 出粟米痲絲
하고 作器皿通貨財
하야 以事其上者也
라
君不出令이면 則失其所以爲君이요 臣不行君之令而致之民하고
民不出粟米痲絲하고 作器皿通貨財하야 以事其上이면 則誅어늘
今其法曰 必棄而君臣
하고 去而父子
하며 禁而相生養之道
하야 以求其所謂
者
라하니
嗚呼라 其亦幸而出于三代之後하야 不見黜于禹, 湯, 文, 武, 周公, 孔子也요
其亦不幸而不出于三代之前하야 不見正於禹, 湯, 文, 武, 周公, 孔子也로다
이 其號名殊
나 其所以爲聖一也
요 夏葛而冬裘
하며 渴飮而饑食
이 其事殊
나 其所以爲智一也
어늘
今其言曰 曷不爲太古之無事오하니 是亦責冬之裘者曰 曷不爲葛之之易也며 責饑之食者曰 曷不爲飮之之易也로다
傳曰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는 先修其身하고 欲修其身者는 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라하니
然則古之所謂正心而誠意者는 將以有爲也어늘 今也欲治其心而外天下國家하고 滅其天常하야
子焉而不父其父하고 臣焉而不君其君하며 民焉而不事其事로다
孔子之作春秋也에 諸侯用夷禮則夷之하고 進於中國則中國之하시니라
夫所謂先王之敎者는 何也오 博愛之謂仁이요 行而宜之之謂義요 由是而之焉之謂道며 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이라
其文은 詩, 書, 易, 春秋요 其法은 禮, 樂, 刑, 政이요 其民은 士, 農, 工, 賈요
其位는 君臣, 父子, 師友, 賓主, 昆弟, 夫婦요 其服은 痲, 絲요 其居는 宮室이요
其食은 粟, 米, 蔬, 果, 魚, 肉이니 其爲道易明하고 而其爲敎易行也라
是故以之爲己면 則順而祥하고 以之爲人이면 則愛而公하며
以之爲心이면 則和而平하고 以之爲天下國家면 無所處而不當이라
曰 斯道也何道也오 曰 斯吾所謂道也요 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라호리라
堯以是傳之舜하고 舜以是傳之禹하고 禹以是傳之湯하고 湯以是傳之文, 武, 周公하고
文, 武, 周公傳之孔子하고 孔子傳之孟軻러니 軻之死不得其傳焉하니라
荀與楊也는 擇焉而不精하고 語焉而不詳하니라 由周公而上은 上而爲君이라 故其事行하고 由周公而下는 下而爲臣이라 故其說長하니라
然則如之何而可也오 曰 不塞不流하고 不止不行이니 人其人하고 火其書하고
廬其居하며 明先王之道以道之하고 鰥, 寡, 孤, 獨, 廢疾者有養也면 其亦庶乎其可也리라
退之一生闢佛老在此篇이라 然到底是說得老子而已요 一字不入佛氏域하니
盖退之元不知佛氏之學이라 故佛骨表亦只以福田上立說이라
佛敎와 道敎를 배척하는 것이 바로 韓退之 일생의 命脈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이 韓退之 文集 중의 命根이다.
그 문장의 근원이 멀고 흐름이 넓어서 가장 鑑定하기 어려운데, 게다가 붓끝의 變化가 奇怪하기까지 하니 사람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하다.
단번에 때려 부순다면 분명히 時論 중의 一昌, 一承, 六腹, 一尾와 같다.
널리 사랑하는 것을 仁이라 하고, 행실이 〈인정과 사리의〉 당연함에 부합하는 것을 義라 하고, 仁義를 말미암아 가는 것을 道라 하고, 〈仁義가〉 자기 몸에 충족하여 밖에서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을 德이라 한다.
仁과 義는 정해진 이름이고, 道와 德은 빈자리이다. 그러므로 道에는 君子의 道와 小人의 道가 있고, 德에는 凶德과 吉德이 있다.
老子가 仁義를 작게 여긴 것은 인의를 헐뜯은 것이 아니라 그가 본 것이 작았기 때문이다.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고서 하늘이 작다고 하는 것은 하늘이 작은 것이 아니다.
저 노자는 작은 은혜[煦煦]를 仁으로 여기고 淸高[孑孑]한 것을 義로 여겼으니, 그가 仁義를 작게 여긴 것이 당연하다.
그가 말한 道는 그가 道로 여기는 것을 道라 한 것이고 내가 말한 道가 아니며, 그가 말한 德은 그가 德으로 여기는 것을 德이라 한 것이고 내가 말한 德이 아니다.
무릇 내가 말한 道德은 仁과 義를 합쳐서 말한 것이니 천하의 公言이고, 老子가 말한 道德은 仁과 義를 버리고서 말한 것이니 한 개인의 私言이다.
周나라의 道(政敎)가 衰頹하고 孔子께서 세상을 뜨신 뒤로 秦나라 때에 經籍이 불태워졌고, 漢나라 때엔 黃老가 盛行하였으며, 晉나라‧魏(北朝)나라‧梁(南朝)나라‧隋나라 때에는 佛敎가 성행하였다.
그때 道德과 仁義를 말하는 자들이 楊朱의 學派로 들어가지 않으면 墨翟의 학파로 들어갔고, 道家[老]로 들어가지 않으면 佛家로 들어갔다.
저기(佛‧老‧楊‧墨)로 들어간 자는 반드시 여기(儒家)에서 떠나갔는데, 들어간 學派의 학설은 尊崇[主]하고 떠나온 학파의 학설은 賤視하며, 들어간 學派의 학설은 附和하고 떠나온 학파의 학설은 汙衊(헐뜯음)하였으니,
아! 후세 사람들이
仁義와
道德의
學說을 듣고자 한들 누구에게 가서 들을 수 있었겠는가?
道敎를 신봉하는 자들은 “
孔子는 우리
祖師의 제자이다.”라고 하고,
佛敎를 신봉하는 자들은 “
孔子는 우리 조사의 제자이다.”라고 한다.
仇英(明), 〈問禮老聃圖〉(≪孔子聖績圖≫)
孔子를 배우는 자들은 그런 말을 익히 듣고서 저들의 터무니없는 허튼소리를 즐기고 자기를 과소평가하여, 또한 “우리 先師께서도 일찍이 그리 말씀하신 적이 있다.”라고 하여,
이것을 입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또 책에 기록하기까지 하니, 아! 후세 사람들이 仁義와 道德의 學說을 듣고자 한들 누구에게 가서 들려주기를 구하겠는가?
심하구나. 사람들이 괴이함을 좋아함이여! 그 근본[端]을 탐구하지도, 그 末을 묻지도 않고서 오직 괴이함만을 듣고 싶어 하누나.
옛날의 백성은 〈士‧農‧工‧商〉 네 종류였는데, 지금의 백성은 〈士‧農‧工‧商‧僧侶‧道士〉 여섯 종류이고, 옛날의 교육은 담당하는 곳이 한 곳이었는데, 지금의 교육은 담당하는 곳이 세 곳(儒‧彿‧道)이다.
농사짓는 집은 하나인데 곡식을 먹는 집은 여섯이고, 工人의 집은 하나인데 器皿를 사용하는 집은 여섯이며,
장사하는 집은 하나인데 도움을 받는 집은 여섯이니, 어찌 백성들이 빈궁하여 도적질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上古時代에는 사람들이 害를 입는 일이 많았는데, 聖人이 세상에 나온 뒤에 서로 도와서 생존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백성들의 임금이 되기도 하고 스승이 되기도 하여, 벌레와 뱀과 짐승들을 몰아내고서 백성들을 〈생활하기 좋은〉 中原에 살게 하였으며, 추워한 뒤에 옷을 지어 입는 법을 가르쳐주고, 배고파한 뒤에 食物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나무에서 살다가 떨어지고 토굴에서 살다가 병이 생긴 뒤에 집을 지어 거주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工業을 가르쳐 사용하는 器具를 넉넉하게 하고,
商業을 가르쳐 有無를 流通하게 하고, 醫藥의 법을 가르쳐 사람들의 夭死를 구제하게 하고, 埋葬하고 제사 지내는 법을 가르쳐 親屬 사이에 恩愛를 자라게 하고,
禮를 제정하여 先後의 차례가 있게 하고, 樂을 제정하여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게 하고, 政令을 제정하여 게으른 사람을 督勵[率]하게 하고,
刑法을 제정하여
強梗(
強暴)한 자를 제거하게 하고, 서로 속이기 때문에
符‧
璽‧
斗‧
斛‧
權‧
衡을 만들어 믿게 하고,
斗, 斛, 斗와 斛의 크기 비교(≪三才圖會≫)
서로 爭奪하기 때문에 城郭‧甲冑‧兵器를 만들어 지키게 하였으며, 害가 이르면 대비하게 하고, 환란이 생기면 방어하게 하였는데,
지금
老子의 말에 “
聖人이 죽지 않으면 큰 도둑이 그치지 않을 것이니, 말[
斗]을 부수고 저울대를 꺾어야 백성이 다투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權과 衡(≪書經圖≫)
아, 그 또한 생각하지 않아서일 뿐이다.
만약 옛날에 聖人이 없었다면 人類는 오래전에 멸망하였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嚴寒과 酷熱에 대처할 수 있는 羽毛와 鱗介가 없고, 먹이를 다툴 수 있는 발톱과 어금니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금은 政令을 내는 자이고, 신하는 임금의 政令을 집행하여 백성에게 시행하는 자이며, 백성은 粟‧米‧痲‧絲를 생산하고 器皿을 만들고 財貨를 유통하여 윗사람을 섬기는 자이다.
임금이 정령을 내지 않으면 임금이 된 책임을 잃는 것이고, 신하가 임금의 정령을 집행하여 백성에게 시행하지 않고,
백성이 粟‧米‧痲‧絲를 생산하고 器皿을 만들고 財貨를 유통하여 윗사람을 섬기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법(佛法)에 “반드시 너희의 君臣을 버리고, 너희의 父子를 버리고, 너희의 서로 생존을 돕고 서로 養育하는 방법을 버리고서 이른바 ‘淸淨’과 ‘寂滅’을 추구하라.”고 하였으니,
아, 저들의 다행은 三代 이후에 출생해서 禹‧湯‧文‧武‧周公‧孔子의 내침을 받지 않은 것이고,
저들의 불행은 三代 이전에 출생하지 않아 禹‧湯‧文‧武‧周公‧孔子의 바로잡음을 받지 못한 것이다.
帝와 王이 그 名號는 다르지만 그들이 聖人으로 일컬어진 까닭은 같으며, 여름에 갈옷을 입고 겨울에 갖옷을 입으며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것이 일은 다르지만 그것이 지혜로 일컬어지는 까닭은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말에 “어찌하여 太古의 無事(無爲)를 하지 않는가?”라고 하니, 이 또한 겨울에 갖옷 입는 자에게 “어찌하여 수월하게 갈옷을 입지 않느냐?”고 꾸짖고, 배고파 밥을 먹는 자에게 “어찌하여 수월하게 물을 마시지 않느냐?”고 꾸짖는 것과 같은 꼴이로다.
傳(≪大學≫)에 말하기를 “옛날에 밝은 德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 자는 먼저 그 집을 다스렸고,
그 집을 다스리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몸을 닦았고, 그 몸을 닦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였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히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옛날에 이른바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히 한 것은 장차 有爲하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저들은〉 그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면서 천하와 국가를 도외시하고 天常(天倫)을 끊어버려,
자식이면서 그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고, 신하이면서 그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고, 백성이면서 백성의 본분을 일삼지 않는다.
孔子께서 ≪春秋≫를 지으실 적에 中國의 諸侯가 오랑캐의 禮를 사용하면 오랑캐로 여기고, 〈오랑캐가〉 進展하여 中國의 禮를 사용하면 중국으로 여기셨다.
經(≪論語≫)에 “夷狄에 임금이 있는 것이 諸夏(中國)에 없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고, ≪詩經≫ 〈魯頌 閟宮〉에 “戎狄을 토벌하고 荊舒를 懲罰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오랑캐의 법을 들어 先王의 가르침 위에 올려놓으니, 〈우리가〉 모두 오랑캐가 되지 않을 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른바 ‘先王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널리 사랑하는 것을 仁이라 하고, 행실이 합당한 것을 義라 하고, 仁義를 말미암아 가는 것을 道라 하고, 〈仁義가〉 자기 몸에 충족하여 밖에서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을 德이라 한다.
그 文獻은 ≪詩≫‧≪書≫‧≪易≫‧≪春秋≫이고, 그 法은 禮‧樂‧刑‧政이며, 그 백성은 士‧農‧工‧賈이고,
그 지위는 君臣‧父子‧師友‧賓主‧昆弟‧夫婦이고, 그 의복은 痲‧絲이고, 그 거처는 宮室이고,
그 食物은 粟‧米‧蔬‧果‧魚‧肉이니, 그 道를 밝히기 쉽고 그 가르침을 행하기 쉽다.
그러므로 이로써 자신을 수양하면[爲] 和順하고 상서로우며, 이로써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들이〉 仁愛하고 공정하며,
이로써 마음을 다스리면 온화하고 평온하며, 이로써 천하 국가를 다스리면 합당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므로 生存時에는 〈모든 행위가〉 情性의 需要에 부합하고, 死亡時에는 마침내 그 天壽를 누리게 될 것이며, 郊祭를 지내면 天神이 이르고 廟祭를 지내면 人鬼가 흠향한다.
〈만약 어떤 이가〉 “이 道는 어떤 도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도는 우리가 말하는 道이고, 앞에서 말한 老氏와 佛氏의 道가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堯는 이것을 舜에게 전하고, 舜은 이것을 禹에게 전하고, 禹는 이것을 湯에게 전하고, 湯은 이것을 文‧武‧周公에게 전하고,
文‧武‧周公은 이것을 孔子에게 전하고, 孔子는 이것을 孟軻에게 전하였더니, 孟軻가 죽은 뒤에는 전할 곳을 얻지 못하였다.
荀況과 楊雄은 〈道를〉 선택하였으나 精하지 못하고, 〈도를〉 언급하였으나 상세하지 못하였다. 周公 이상은 위에서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그 일이 행해졌고, 周公 이하는 아래에서 신하가 되었기 때문에 그 학설이 길이 전해졌다.
〈또〉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道敎와 佛敎를〉 막지 않으면 〈우리의 道가〉 流傳되지 못하고, 〈道敎와 佛敎를〉 저지하지 않으면 〈우리의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그 사람(道士와 僧侶)들을 〈還俗시켜〉 백성으로 만들고, 그 책(道經과 佛經)들을 불사르고,
그 거처(道觀과 佛寺)를 民家로 만들며, 先王의 道를 밝혀 〈그들을〉 인도하고 홀아비‧과부‧고아‧자식 없는 늙은이‧불치병에 걸린 자들을 부양하게 한다면 거의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韓退之가 일생동안 佛‧老를 배척한 〈정신이〉 이 篇에 담겨 있다. 그러나 끝내 老子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 佛氏의 영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退之는 본래 佛氏의 學說을 몰랐기 때문에 〈論佛骨表〉에도 다만 福田으로 立論하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