昌黎原鬼은 亦揣摩影響之言이라 易曰 精氣爲物이요 遊魂爲變이라 是故知鬼神之情狀이라
有嘯於梁이어늘 從而燭之하니 無見也라 斯鬼乎아 曰 非也라 鬼無聲이니라
有立於堂이어늘 從而視之하니 無見也라 斯鬼乎아 曰 非也라 鬼無形이니라
이어늘 從而執之
하니 無得也
라 斯鬼乎
아 曰 非也
라 鬼無聲與形
이니 安有氣
리오
曰 鬼無聲也요 無形也요 無氣也라하니 果無鬼乎아
曰 有形而無聲者가 物有之矣니 土石是也요 有聲而無形者가 物有之矣니 風霆是也요
有聲與形者가 物有之矣니 人獸是也요 無聲與形者가 物有之矣니 鬼神是也라
曰 然則有怪而與民物接者何也오 曰 是有二하니 有鬼有物이라 漠然無形與聲者가 鬼之常也라
民有忤於天
이어나 有違於
어나 有
이어나 逆於倫而
면
於是乎鬼有
於形
하고 有憑於聲以應之
하야 而下殃禍焉
하니 皆民之爲之也
라
其旣也에 又反乎其常이라 曰 何謂物고 曰 成於形與聲者는 土石風霆人獸是也요 反乎無聲與形者는 鬼神是也요
不能有形與聲하고 不能無形與聲者는 物怪是也라 故其作而接於民也無恒이라
故有動於民而爲禍
하고 亦有動於民而爲福
하고 亦有動於民而莫之爲禍福
이라 하노라
昌黎의 〈原鬼〉 또한 그림자나 메아리 같은 〈실체가 없는 것을〉 짐작해 지은 말이다. ≪周易≫ 〈繫辭傳〉에 “精氣가 物이 되고, 遊魂이 變이 된다. 그러므로 鬼神의 정상을 안다.”고 하였다.
들보 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기에 즉시 불을 붙여 비춰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鬼神인가? 내가 말하기를 “아니다. 귀신은 소리가 없다.”라고 하였다.
堂에 무엇이 서 있는 것 같기에 즉시 가서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귀신인가? 내가 말하기를 “아니다. 귀신은 형체가 없다.”라고 하였다.
무엇이 내 몸에 와 닿는 것 같기에 즉시 손으로 잡았더니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이것이 귀신인가? 내가 말하기를 “아니다. 귀신은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으니 어찌 氣가 있겠는가?”
어떤 이가 나에게 “귀신은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고 氣도 없다고 하였으니, 과연 귀신은 없는 것인가?”라고 묻기에,
내가 말하기를 “물건에는 형체만 있고 소리가 없는 것이 있으니 흙과 돌이 그것이고, 소리만 있고 형체가 없는 것이 있으니 바람과 우레가 그것이고,
소리도 있고 형체도 있는 것이 있으니 사람과 짐승이 그것이고,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것이 있으니 귀신이 그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나에게 “그렇다면 귀신[怪]이 사람이나 동식물[民物]에 붙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묻기에, 내가 “이에는 鬼와 物(妖怪)이라는 두 가지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고요[漠然]하여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는 것이 귀신의 본래 모습이다.
그러나 백성이 하늘을 거스르거나, 時令을 어기거나, 天物을 해치거나, 倫序를 거스르면 二氣가 感應(反應)하여,
이에 귀신이 남의 형체에 의탁하고 남의 소리를 빌려 응대하여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니, 이는 모두 백성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재앙을 내리는 일이〉 끝나면 귀신은 또 본래의 常態로 돌아간다.”고 대답하였다.
또 나에게 “무엇을 일러 物이라 하는가?”라고 묻기에, 내가 “형체와 聲音으로 형성된 것은 흙‧돌‧바람‧우레‧사람‧짐승이 그것이고, 성음과 형체가 없는 데로 돌아가는 것은 귀신이 그것이고,
형체와 소리가 있을 수도 없고 형체와 소리가 없을 수도 없는 것은 物怪(요괴)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物怪가 발작하여 사람의 몸에 붙는 것이 일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발동하여 사람들에게 禍를 주기도 하고, 발동하여 사람에게 福을 주기도 하며, 발동하되 사람들에게 禍‧福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마침 樑上과 堂上에 귀신의 종적이 發現한 때를 당하였기에 이 〈原鬼〉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