通篇에 次第戰功은 摹倣史漢이나 而其辭旨는 特自出機軸라 其最好處는 在得臣下頌美天子之體라
天以唐克肖其德하야 聖子神孫이 繼繼承承하야 於千萬年에 敬戒不怠라하야
全付所覆
하니 가 罔有內外
히 悉主悉臣
하니라 高祖太宗
이 旣除旣治
하고
高宗中睿
가 하니 至于玄宗
하야 受報收功
하야 極熾而豐
하야 物衆地大
하니 其間
이라
睿聖文武皇帝旣受群臣朝
하고 乃
曰 嗚呼
라 天旣全付予有家
하야
今傳次在予하니 予不能事事면 其何以見于郊廟리오 群臣震懾하야 奔走率職하니라
明年平夏하고 又明年平蜀하고 又明年平江東하고 又明年平澤潞하니라
遂定易, 定
하고 致魏, 博, 貝, 衛, 澶, 相
하니 無不從志
하니라 皇帝曰 不可
니 予其
하리라
九年
에 에 蔡人立其子元濟以請
이어늘 不許
하니 遂燒舞陽
하고 犯葉襄城
하야 以動東都
하고 放兵四劫
하니라
皇帝歷問于朝
하니 外
에 皆曰 蔡帥之不廷授
가 于今五十年
이라
傳
하니 其樹本堅
하고 兵利卒頑
하야 不與他等
하니 因撫而有
라야 順且無事
하리이다
大官臆決唱聲에 萬口和附하야 幷爲一談하니 牢不可破하니라
皇帝曰 惟天惟祖宗所以付任予者가 庶其在此하니 予何敢不力이리오 況一二臣同하니 不爲無助니라
曰 光顔
아 汝爲陳, 許帥
니 維是河東, 魏博, 郃陽三軍之
를 汝皆將之
하라
曰 重胤아 汝故有河陽, 懐하니라 今益以汝하노니 維是朔方, 義成, 陝, 益, 鳳翔, 延, 慶七軍之在行者를 汝皆將之하라
曰 文通아 汝守壽하니 維是宣武, 淮南, 宣歙, 浙西四軍之行于壽者를 汝皆將之하라
曰 道古야 汝其觀察鄂岳하라 曰 愬아 汝帥唐, 鄧, 隨하니 各以其兵進戰하라
曰 度
야 하라 曰 度
야 惟汝予同
니 汝遂相予
하야 以賞罸用命不用命
하라
曰 弘아 汝以其節都統諸軍하라 曰 守謙아 汝出入左右하니 汝惟近臣이라 其往撫師하라
曰 度야 汝其往하야 衣服飮食予士하야 無寒無饑하야 以旣厥事하야 遂生蔡人하라
賜汝
와 와 衛卒三百
하노라 凡玆廷臣
에 汝擇自從
호되
惟其賢能이어든 無憚大吏하라 庚申에 予其臨門送汝하리라
曰 御史야 予閔士大夫戰甚苦하노니 自今以往으로 非郊廟祠祀어든 其無用樂하라
顔, 胤, 武合攻其北
하야 大戰十六
에 得柵, 城, 縣二十
하고 降人卒四萬
하니라
道古는 攻其東南하야 八戰에 降萬三千하고 再入申하야 破其外城하니라 文通은 戰其東하야 十餘遇에 降萬二千하니라
愬
는 入其西
하야 得賊將
이로되 輙釋不殺
하고 用其策
하야 戰
有功
하니라
十二年八月
에 丞相度至師
하니 都統弘責戰益急
하고 顔, 胤, 武合戰益
하니라 元濟
其衆洄曲以備
하니라
十月壬申
에 愬用所得賊將
하야 自文城
으로 因天大雪
하야 疾馳百二十里
하야 用夜半到蔡
하야 破其門
하고 하고
盡得其屬人卒하니라 辛巳에 丞相度入蔡하야 以皇帝命赦其人하니라
凡蔡卒三萬五千에 其不樂爲兵하고 願歸爲農者十九어늘 悉縱之하니라 斬元濟京師하니라
하야 弘加侍中
하고 愬爲左僕射
하야 帥山南東道
하고
顔, 胤皆加司空하고 公武以散騎常侍로 帥鄜坊丹延하고 道古進大夫하고 文通加散騎常侍하니라
丞相度朝京師에 道封晉國公하고 進階金紫光祿大夫하야 以舊官相하니라 而以其副總爲工部尙書하야 領蔡任하니라
旣還奏
에 群臣請紀聖功
하야 하니라 皇帝以命臣愈
하시니 臣愈再拜稽首而獻文曰
不宥
하고 屢興師征
할새 有不能克
이면 益戍以兵
하니
夫耕不食하고
婦織不裳하야
輸之以車하야
爲卒賜糧이라
帝時繼位
하야 顧瞻咨嗟
라 惟汝文武
아 孰恤予家
오 旣斬
하고 이라
魏將首義
하야 이라 不順
하고 自以爲強
하야 提兵呌讙
하야 이라
方戰未利
하야 內驚京師
하니 群公上言
호되 라 帝爲不聞
하고 하야 乃相同德
하야 라
乃勅顔胤
과 愬武古通
하야 咸統於弘
하야 各
汝功
하라 에 五萬其師
러니
하니 厥數倍之
러라 에 이러니 하니 蔡卒大窘
하고
勝之邵陵
하니 이라 自夏入秋
로 하니 하야 告功不時
러니
帝哀征夫하야
命相往釐하시니
士飽而歌하고
馬騰於槽러라
試之新城
하니 賊遇敗逃
하야 盡抽其有
하야 聚以防我
어늘 로다
帝有恩
하야 相度來宣
하니 誅止其魁
하고 釋其下人
이라
蔡之卒夫는
投甲呼舞하고
蔡之婦女는
迎門笑語로다
蔡人告饑어늘
船粟往哺하고
蔡人告寒이어늘
賜以繒布로다
始時蔡人이
禁不往來러니
今相從戲하고
里門夜開러라
蔡人有言호되
始迷不知러니
今乃大覺이라
羞前之爲로다
蔡人有言호되
天子明聖하야
不順族誅하고
順保性命하나니
汝不吾信인대
視此蔡方하라
孰爲不順고
往斧其吭호리라
凡叛有數하야
聲勢相倚러니
吾強不支어니
汝弱奚恃리오
其告而長
而父而兄하야
奔走偕來하야
同我太平하라
淮蔡爲亂이어늘
天子伐之하시고
旣伐而饑어늘
天子活之로다
始議伐蔡에
卿士莫隨하고
旣伐四年에
小大並疑러니
不赦不疑는
由天子明이시니
凡此蔡功은
惟斷乃成이라
旣定淮蔡하고
四夷畢來하니
遂開明堂하고
坐以治之로다
전편에 戰功을 차례로 서술한 것은 ≪史記≫와 ≪漢書≫를 모방하였으나, 그 辭旨는 특별한 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가장 뛰어난 점은 신하가 천자를 찬미하는 文體를 얻은 데 있다.
하늘은, 唐나라의 德이 하늘의 덕과 같아, 聖子神孫이 대대로 계승하여 천만 년토록 공경하고 경계해 태만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하늘이 덮고 있는 광활한 大地를 모두 唐나라에 부여하니 四海와 九州의 인민들이 내외를 막론하고 모두 〈唐나라를〉 君主로 섬기고 자신을 신하로 칭하였다.
高祖와 太宗께서 叛賊을 제거하고 천하를 평정[治]하셨으며,
高宗‧中宗‧睿宗께서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고 생활을 안정시켜 원기를 회복시키시니, 玄宗 때에 이르러 그 보답을 받고 功效를 거두어 〈국가가〉 지극히 번성하고 지극히 풍부하여, 물산이 풍성하고 영토가 광대하니, 그 사이에 災禍의 싹[孽牙]이 자랐다.
肅宗과 代宗, 德宗[德祖]과 順宗[順考]께서 부지런히 노력하고 너그럽게 용서하셨으므로, 大惡[大慝]은 이제 막 제거하였으나 公共을 위해하는 무리[稂莠]는 제거하지 못하셨다.
이에 相臣이나 將臣이나 文官이나 武將이나 안일만을 즐기고 국사는 생각하지 않고, 〈藩鎭의 跋扈가〉 눈에 익고 귀에 익어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睿聖文武皇帝(憲宗)께서 신하들의 朝見을 받으신 뒤에 地圖를 고찰하고 貢賦를 계산해보시고서 말씀하시기를 “아! 하늘이 이미 천하를 모두 우리 王家에 付予하시어,
지금 位를 傳하는 차례가 나에게 이르렀으니,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郊祭나 廟祭 때에 무슨 낯으로 〈天神과 祖先을〉 뵐 수 있겠는가?”라고 하시니, 신하들이 두려워 떨면서 바삐 서둘러 직무를 奉行하였다.
이듬해에 夏州를 평정하고, 또 그 이듬해에 蜀을 평정하고, 또 그 이듬해에 江東을 평정하고, 또 그 이듬해에 澤潞를 평정하였다.
드디어 易州와 定州를 평정하고, 魏州‧博州‧貝州‧衛州‧澶州‧相州를 〈조정에〉 바치게[致] 하니, 뜻을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에 皇帝께서 “武力은 남용해서는 안 되니 내 잠시 휴식시키겠다.”라고 하셨다.
元和 9년에 蔡州刺史 兼彭義軍節度使 吳少陽이 죽자, 蔡州 사람들이 그의 아들 吳元濟를 後任으로 세워줄 것을 조정에 청하였다. 허락하지 않으니, 吳元濟는 드디어 舞陽縣을 불태우고 葉縣과 襄城을 침공하여 東都를 진동시키고, 군대를 사방으로 풀어놓아 노략질을 자행하였다.
皇帝께서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두루 물으시니, 한두 신하를 제외하고는 모두 “蔡州節度使가 조정의 임명을 받지 않은 지가 지금 50년이 되었습니다.
세 姓氏의 네 將帥를 거쳤으니 그 박힌 뿌리가 단단하며, 병기는 예리하고 군졸은 頑強하여 다른 곳과 같지 않으니, 전처럼 저들을 어루만져 〈蔡州를〉 가지게 하여야 저들이 순종하여 일을 벌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大臣이 억측해 결단하여 먼저 의견을 提唱하자, 모든 신하들이 덩달아 같은 말을 해대니 그 주장이 너무 견고하여 깨뜨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황제께서 “하늘과 祖宗께서 나에게 重任을 맡기신 까닭이 아마도 이 일에 있는 듯하니, 내 어찌 힘을 다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한두 신하가 同意하니 돕는 신하가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다.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李光顔아! 너는 陳州‧許州節度使이니, 行營에 있는 河東‧魏博‧郃陽의 3軍을 네가 모두 통솔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烏重胤아! 너는 본디 河陽과 懐州를 소유하였다. 이제 너에게 汝州를 보태주노니, 行營에 있는 朔方‧義成‧陝州‧益州‧鳳翔‧延州‧慶州의 7軍을 네가 모두 통솔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韓弘아! 너는 군졸 1만2천 명을 너의 아들 公武에게 맡겨 거느리고 가서 〈吳元濟를〉 토벌하게 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李文通아! 너는 壽州를 지키고 있으니, 壽州에 行營하고 있는 宣武‧淮南‧宣歙‧浙西의 4軍을 네가 모두 통솔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李道古야! 너는 가서 鄂岳觀察使를 맡으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李愬야! 너는 唐州‧鄧州‧隨州節度使이니, 〈이상의 각 장수들에게〉 각각 그 군대를 거느리고 진격하게 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裵度야! 너는 長御史(御史中丞)이니 가서 군대를 시찰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裵度야! 오직 너만이 나와 뜻이 같으니, 너는 나를 도와 명령을 따르는 자에게는 상을 주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벌을 주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韓弘아! 너는 그곳(宣武軍)의 節度使로 諸軍을 모두 통솔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梁守謙아! 너는 나의 좌우를 출입하니 너만이 오직 近臣이다. 가서 군사를 慰撫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裵度야! 너는 〈淮西로〉 가서 군사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주어 추위에 떨거나 배 고픔에 시달리는 군사가 없게 하여, 그 일을 완수해 蔡州 사람들을 살리도록 하라.
너에게 節斧와 通天御帶와 호위병 300명을 내리노라. 조정의 신하 중에 네가 데리고 갈 사람을 직접 선택하되,
오직 그 사람이 賢能하다면 大吏(高官)라도 꺼리지 말고 〈데려가라.〉 庚申日에 내 通化門으로 가서 너를 전송하겠다.”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御史야! 나는 士大夫들이 전쟁으로 매우 고생하는 것을 가여워하니, 오늘 이후로는 郊祭와 廟祭가 아니거든 음악을 연주하지 말라.”
李光顔‧烏重胤‧韓公武는 兵力을 합쳐 蔡州의 北部를 공격하였는데, 16차례 크게 교전하여 柵과 城과 縣 23개를 얻고, 백성과 군졸 4만 명을 항복받았다.
李道古는 蔡州 동남부를 공격하였는데 8차례 교전하여 군졸 1만3천 명을 항복받고, 다시 申州로 들어가서 그 外城을 쳐부수었다. 李文通은 蔡州 동부에서 전투하였는데, 10여 차례 교전하여 군졸 1만2천 명을 항복받았다.
李愬는 蔡州 서부로 쳐들어가서 賊將을 사로잡았으나, 즉시 풀어주고서 죽이지 않고 그 적장의 계책을 이용하여 출전할 때마다 자주 전공을 세웠다.
元和 12년 8월에 승상 배도가 軍中에 이르니, 都統 韓弘은 더욱 급히 出戰을 독려하고, 李光顔‧烏重胤‧韓公武는 兵力을 합쳐 더욱 목숨 바쳐 싸웠다. 이에 吳元濟는 그 군대를 모두 洄曲에 집결시켜 방비하였다.
10월 壬申日에 李愬가 사로잡은 賊將을 임용하여 文城에서 출발해 크게 눈이 내리는 날씨를 이용해 120리를 급히 달려 한밤중에 蔡州에 당도하여 성문을 쳐부수고 들어가 吳元濟를 사로잡아 바치고,
그에 隷屬된 백성과 군졸을 모두 사로잡았다.
辛巳日에 丞相 裵度가 蔡州로 들어가서 황제의 명령으로 사로잡은 사람들을 사면하였다.
淮西가 평정되자 크게 잔치를 열어 〈酒食을 접대하고,〉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내렸다. 王師가 回軍하던 날에 軍糧을 蔡州 사람들에게 주었다.
蔡州의 군사 3만5천 명 중에 병사가 되기를 좋아하지 않고 돌아가서 농사짓기를 원하는 자가 열에 아홉이었는데, 이들을 모두 석방해 돌려보냈다. 吳元濟를 京師에서 斬首하였다.
冊功하여, 韓弘을 侍中으로 올려주고, 李愬를 左僕射로 삼아 山南東道節度使를 겸임하게 하고,
李光顔과 烏重胤을 모두 司空으로 올려주고, 李公武를 散騎常侍로 鄜州‧坊州‧丹州‧延州節度使를 겸임하게 하고, 李道古를 大夫로 올려주고, 李文通을 散騎常侍로 올려주었다.
〈冊功을 마치고서〉 京師로 올라오는 도중에 있는 丞相 裵度를 晉國公에 封하고 品階를 金紫光祿大夫로 올리고서, 원래의 관직으로 丞相을 맡게 하고, 裵度의 副官 馬總을 工部尙書로 삼아 蔡州의 여러 職任을 맡게 하였다.
裵度가 돌아와 아뢰자, 신하들이 聖上의 功績을 기록하여 金石에 새길 것을 청하였다. 皇帝께서 臣 韓愈에게 명하시기에 臣 韓愈는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碑文을 올리면서 아래와 같이 말씀드린다.
唐나라가 천명을 받아
萬邦을 신하로 삼았으니
누가 가까운 곳에 살면서
도둑질 답습하며 날뛰었는가
지난 玄宗 시대에
융성함이 극에 달해 무너지기 시작하여
河北이 교만하게 전횡하고
河南도 덩달아 일어났네
네 황제 용서치 않으시고
자주 군사 일으켜 정벌할 적에
승리하지 못하면
군대 늘려 방수하게 하셨네
사내는 농사지어도 먹지 못하고
아낙은 길쌈해도 치마 만들지 못하고서
수레에 실어 보내
군졸들의 양식으로 주었네
朝覲하지 못하는 外臣 많아
천자가 巡狩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고
백관들 직무에 태만하여
일에 옛날의 법도 없네
憲宗께서 이때 제위에 오르시어
옛날을 회고하며 탄식하셨네
너희 문무백관들아
누가 우리 王家 구제하였나
吳와 蜀의 반적 목을 베고
이내 다시 山東을 취하였네
魏將이 솔선해 의거하여
여섯 주 가지고 귀순하였네
淮西의 蔡州가 순종하지 않고
스스로 강대하다 하여
군대 이끌고 떠들어대면서
옛 규례 일삼고자 하였네
황제께서 토벌을 명하셨는데
간악한 이웃과 연대하여
은밀하게 자객을 보내어
와서 相臣을 살해하였다
이때 전세가 불리하여
경사가 크게 놀라니
대신들 말씀드리기를
慰撫해 귀순시킴이 좋다고 하였으나
황제께서는 듣지 않으시고
신명과 함께 모의하시어
뜻이 같은 사람 승상으로 삼아
하늘의 주벌 마치셨네
이에 李光顔‧烏重胤
李愬‧韓公武‧李道古‧李文通에 명하시어
모두 韓弘에게 통솔되어
각각 공을 세우게 하셨네
삼면으로 나누어 쳐들어가니
그 군사 5만이었네
대군이 북쪽서 승세를 타고 진격하니
군사의 수가 갑절이었네
전에 時曲에서 공격할 적에
적군들 준동하며 저항하였는데
陵雲柵을 격멸하니
蔡州의 군대가 크게 곤란해졌고
邵陵에서 승리하니
郾城의 수장 와서 항복하였네
여름부터 가을이 될 때까지
촘촘히 세워진 兵營을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네
병기는 무디고 군사는 분발하지 못해
제때에 戰功을 아뢰지 못하였는데
황제께서 출정한 병사들 가엾게 여겨
승상에게 명하여 가서 다스리게 하시니
병사들은 배가 불러 노래 부르고
말들은 힘이 넘쳐 마구에서 뛰었다
新城에서 이 말과 군대 시험해보니
적군들 교전하자마자 패배해 도주했네
적은 소유한 병력 다 뽑아다가
한곳에 집결시켜 우리를 막았네
서쪽의 군대 채주로 뛰어 들어가니
길에 낙오한 자 하나 없었네
높고 굳은 채주성은
그 영역이 천 리인데
들어가서 소유하니
귀순하지 않는 자 없었네
황제께서 내리신 은혜로운 말씀을
승상 裵度가 가져와서 선포하였는데
그 괴수만을 주살하고
아랫사람들은 석방하라 하셨네
채주의 병사들은
갑옷 던지고 환호하며 춤췄고
채주의 부녀들은
문에서 맞이하며 웃고 말하였네
채주 백성들 饑饉을 고하니
배에 곡식 싣고 가서 먹여주었고
채주 백성들 추위를 고하니
비단과 베를 내려주셨네
종전에 채주 백성들은
통행을 금지해 왕래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서로 어울려 즐겁게 놀고
밤에도 里門을 활짝 열어놓았네
종전에는 채주 백성들
나가면 전쟁하고 물러나면 죽임당했는데
지금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좌우에 놓인 밥과 죽을 먹는다네
채주 백성들 위해 인재를 뽑아서
전란에 지친 사람들 거두게 하고
관리를 뽑아 소를 주고서
백성 가르치게 하고 租稅를 면제하였네
채주 백성들 말하네
종전엔 미혹하여 알지 못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크게 깨닫고서
전일의 행위 부끄러워한다고
채주 백성들 말하네
천자께서 밝고 성스러우시어
순종하지 않으면 三族을 멸하고
순종하면 생명을 보전해주시니
너희들 나의 말 믿지 못하겠거든
이 채주 지방을 보라
누가 순종하지 않는가
도끼 가지고 가서 목을 치리라
반역한 몇몇 역적들
멀리서 호응하며 서로 지원하지만
강한 우리도 버티지 못했는데
약한 너희야 무엇을 믿겠느냐
너희 장관과
너희 父兄께 고하여
급히 달려 함께 와서
우리와 함께 태평을 누리자꾸나
淮西의 채주가 반란 일으키자
천자께서 정벌하셨고
정벌한 뒤에 백성들 굶주리자
천자께서 양곡 주어 살리셨네
처음 채주 정벌을 의논할 적에
황제의 의견 따르는 卿士 없었고
4년 동안 정벌이 계속되자
大小 관원 모두 의심했지만
용서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으신 것은
천자의 밝으심에서 연유한 것이네
이번에 채주에서 세운 공은
과감한 결단력이 이룬 것이네
회서의 채주 평정하자
사방의 이민족 모두 귀순하니
드디어 明堂을 열고
앉아서 천하를 다스리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