志特謹書官爵及死葬月日하고 而行誼는 則蘊藉銘中이라
李觀은 字元賓이니 其先은 隴西人也라 始來自江之東하야 年二十四에 擧進士하니라
三年登上第하고 又擧博學宏辭하야 得太子校書一年하고 年二十九에 客死于京師하니라
旣斂之三日에 友人博陵崔弘禮葬之于國東門之外七里하니 鄕曰慶義요 原曰嵩原이라 友人韓愈書石以誌之하노라 辭曰
已虖元賓이여
壽也者를
吾不知其所慕요
夭也者를
吾不知其所惡라
生而不淑이면
誰謂其壽며
死而不朽면
誰謂之夭오
已虖元賓이여
才高乎當世하고
而行出乎古人이로다
已虖元賓이여
竟何爲哉오
竟何爲哉오
唐荊川曰 此亦變體라 李觀은 本文士요 而又爲韓公之友어늘 不知發之何以如此其略也로다
墓誌에는 다만
官爵 및 사망한
月日과 장사 지낸 월일만을 삼가 기록하였고,
行誼는
銘文 가운데에
含蓄하였다.
唐故太子校書前進士李觀墓誌銘(拓本)
李觀은 字가 元賓이니 그 先祖는 隴西 사람이다. 처음에 江東으로부터 京師로 와서 나이 24세에 進士試에 응시하였다.
3년 뒤에 上等으로 登第하고, 또 博學宏辭科에 응시해 〈등제하여〉 1년 동안 太子校書郞으로 있었고, 나이 29세에 경사에서 客死하였다.
入棺[斂]한 지 3일 뒤에 그의 벗 博陵 崔弘禮가 그를 경사 東門 밖 7리 되는 곳에 묻었으니, 鄕名은 慶義이고 原名은 嵩原이다. 벗 韓愈가 碑石에 새겨 그의 평생을 기록하였다. 銘辭는 다음과 같다.
아! 元賓이여
長壽란 것을
나는 왜 부러워하는지 모르겠고
夭折이란 것을
나는 왜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살아서 착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를 장수했다 할 것이며
죽어서도 그 명성 썩지 않는다면
누가 그를 요절했다 하겠는가
아! 원빈이여
재주는 당세에 드높았고
행실은 古人보다 뛰어났도다
아! 원빈이여
끝내 어찌하리
끝내 어찌하리
唐荊川이 말하였다. “이 篇도 變體이다. 李觀은 본래 文士이고, 또 韓公의 벗인데, 어째서 그 行誼를 이처럼 간략하게 서술[發]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