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誌李君에 而獨撮其服泌藥一事하야 以爲世誡하니 亦變調也라
太學博士頓丘李于는 余兄孫女婿也라 年四十八에 長慶三年正月五日卒하니라
其月二十六日에 穿其妻墓而合葬之하니 在某縣某地하니라 子三人은 皆幼하니라
初
爲
에 遇
하야 從受藥法
하야 服之
하고 往往下血
하니라
四年
하니 病益急
하야 乃死
하니라 其法
은 以鉛滿一
하고 按中爲空
하야 實以水銀
하고 蓋封四際
하야 燒爲
云
이라
余不知
自何世起
나 殺人不可計
로되 而世
之益至
하니 此其惑也
라
在文書所記
와 及耳聞相傳者不說
하고 今直取目見親與之遊而以
者六七公
하야 以爲世誡
하노라
工部尙書歸登과 殿中御史李虛中과 刑部尙書李遜과 遜弟刑部侍郞建과 襄陽節度使工部尙書孟簡과
東川節度御史大夫盧坦과 金吾將軍李道古는 此其人皆有名位하야 世所共識이라
工部旣食水銀得病
에 自說
호되 若有燒鐵杖自顚貫其下者
하야 하야 하야 狂痛號呼乞絶
이라하니라
其茵席常得水銀하니 發且止하야 唾血十數年以斃하니라 殿中疽發其背死하니라
刑部且死에 謂余曰 我爲藥誤라하니라 其季建一旦無病死하니라
襄陽
에 余
러니 襄陽乘舸邀我於
하야 屛人曰 我得
藥
한대
不可獨不
라 今遺子一器
하노니 可用棗肉爲丸服之
하라 別一年而病
하니라
其家人至커늘 訊之하니 曰 前所服藥誤하야 方且下之하노니 下則平矣리라 病二歲竟卒하니라
盧大夫死時
에 溺出血肉
하야 痛不可忍
하야 乞死乃死
하니라 金吾
코도 食泌藥
이라가 五十死海上
하니라
此可以爲誡者也라 蘄不死라가 乃速得死하니 謂之智可不可也아
五穀三牲
과 鹽醯果蔬
는 人所
라 이면 必曰
이어늘
今惑者皆曰 五穀令人夭라 不能無食이니 當務減節이라하나니라
鹽醯以濟百味하고 豚魚鷄三者는 古以養老러니 反曰 是皆殺人이니 不可食이라하니라
一筵之饌에 禁忌十常不食二三이라 不信常道하고 而務鬼怪라가 臨死乃悔하니라
後之好者는 又曰 彼死者皆不得其道也라 我則不然이라 始病에 曰 藥動故病하니 病去藥行이면 乃不死矣리라
及且死에 又悔하니라 嗚呼라 可哀也已로다 可哀也已로다
韓文公이 李君의 墓誌를 지으면서 유독 李君이 柳泌이 준 丹藥을 복용한 한 가지 일만을 뽑아 기록하여 세상의 경계로 삼았으니, 이 또한 變體이다.
太學博士 頓丘 사람 李于는 내 형님의 손녀사위이다. 나이 48세인 長慶 3년(823) 정월 5일에 卒하였다.
그달 26일에 그 아내의 무덤을 열고서 합장하였는데, 墓地는 아무 縣 아무 땅에 있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모두 어리다.
당초에 李于가 進士로서 鄂岳觀察使의 從事(幕僚)가 되었는데, 그때 方士 柳泌을 만나 그와 從遊(交遊)하면서 丹藥 만드는 법을 배운 뒤에 〈단약을 제조해〉 복용하고는 가끔 피를 쏟았다.
그런데도 4년 동안 계속 복용하니 병이 더욱 위급해져서 마침내 죽고 말았다. 단약을 제조하는 방법은 鉛(납)을 도가니에 가득 채운 다음 손으로 꾹꾹 눌러 중앙에 공간을 만들어 水銀을 가득 채우고서, 뚜껑을 닫고 사면을 密封하여 불로 달구면 丹砂(丹藥)가 된다고 한다.
나는 服食說이 어느 시대부터 생겼는지 알 수 없으나, 〈丹藥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은데도 세상 사람들의 羨慕와 推崇은 더욱 지극하니, 이는 그 說에 홀려서이다.
文書에 기록된 것과 전해들은 이야기는 말하지 않겠고, 지금 단지 친하게 교유했던 벗 6, 7인이 丹藥을 복용하다가 죽은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일만을 취하여 세상 사람들의 경계로 삼는다.
工部尙書 歸登, 殿中御史 李虛中, 刑部尙書 李遜, 이손의 아우 刑部侍郞 李建, 襄陽節度使 工部尙書 孟簡,
東川節度 御史大夫 盧坦, 金吾將軍 李道古 등은 모두 명망도 있고 지위도 있어서 세상 사람이 모두 아는 바이다.
工部尙書(歸登)는 水銀(丹藥)을 먹고 병을 얻은 뒤에 스스로 말하기를 “마치 정수리에서부터 내리꽂은 불에 달군 鐵杖이 몸을 부러뜨리고 불덩어리가 되어 七竅와 關節로 빠져 나오는 것 같아, 몹시 아파 크게 부르짖으며 빨리 죽기를 빌었다.”고 하였다.
그가 누웠던 자리에는 항상 水銀이 있었으므로 병이 발작했다 멈췄다 하여 수십 년 동안 피를 토하다가 죽었다. 殿中御史(李虛中)는 등에 종기가 나서 죽었다.
刑部尙書(李遜)는 죽을 적에 나에게 말하기를 “丹藥이 나를 망쳤네.”라고 하였다. 李遜의 아우 李建은 병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襄陽節度使(孟簡)가 貶職되어 吉州司馬로 左遷되었을 때에 나는 袁州에서 京師로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襄陽(孟簡)이 배를 타고 와서 나를 인적이 드문 한적한 섬으로 초청하여 사람을 물리치고서 나에게 말하기를 “내가 신비한 丹藥을 얻었는데,
혼자만 長生不死할 수 없어서 오늘 자네에게 한 그릇 주는 바이니, 대추 살[棗肉]과 섞어 丸을 만들어 복용하게나.”라고 하였는데, 서로 헤어진 지 1년 뒤에 孟簡이 병을 얻었다.
그 집안 사람이 왔기에 그의 동정을 물었더니, “전에 복용한 丹藥이 잘못되어 지금 쏟아내는 중이니, 다 쏟아내고 나면 화평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병을 앓은 지 두 해 만에 끝내 죽었다.
盧大夫(盧坦)는 죽을 때에 오줌에 피와 살점이 섞여 나와 통증을 참을 수 없어서 죽여주기를 애걸하다가 마침내 죽었다. 金吾將軍(李道古)은 柳泌로 인해 죄를 얻고도 柳泌의 丹藥을 복용하다가 50세에 海上(海邊)에서 죽었다.
이들은 사람들이 경계로 삼을 만한 자들이다. 장생불사를 祈求하다가 도리어 빨리 죽었으니 이들을 지혜롭다 해야 하겠는가? 아니라고 해야 하겠는가?
五穀과 三牲(牛‧羊‧豕), 소금과 식초, 과일과 채소는 사람들이 항상 食用하는 것이어서 서로 친후한 사람끼리 권면할 때면 반드시 “억지로라도 많이 드시오.”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柳祕의 說에〉 현혹된 자들은 모두 “五穀은 사람을 夭折하게 한다. 그러나 먹지 않을 수 없으니 마땅히 줄이기를 힘써야 한다.”라고 한다.
소금과 식초로써 모든 음식에 맛을 내고, 돼지고기‧생선‧닭고기 등 세 가지는 옛날에 노인을 供養하던 食物이었는데, 〈지금 현혹된 자들은〉 도리어 “이것은 모두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니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한 床의 음식 중에도 禁忌하는 것이 있어, 열에 항상 두세 가지는 먹지 않는다. 저들은 通常的인 도리를 믿지 않고 귀신과 도깨비 같은 짓에 힘쓰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후회한다.
뒤에 丹藥 먹기를 좋아한 자들은 또 “저 죽은 자들은 모두 그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한다. 처음에 병이 생기면 “丹藥이 옛 병을 건드렸기 때문이니, 병이 없어지고 약기운이 돌면 끝내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다가 죽을 때가 되면 또 후회한다. 아! 딱하고 불쌍하다. 딱하고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