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老蘇論御才將以智하여 而引漢高祖待韓彭一着한대 似痛切矣라
將有二니 有賢將이요 有才將이나 而御才將尤難이라
御相以禮하고 御將以術하며 御賢將之術은 以信하고 御才將之術은 以智하니라
彼虎豹能搏能噬하고 而馬亦能蹄하고 牛亦能觸하니라
如曰 是能蹄하고 是能觸이라하여 當與虎豹竝殺而同驅면 則是天下에 無騏驥하여 終無以服乘耶아
先王之選才也에 自非大奸劇惡이 如虎豹之不可以變其搏噬者면 未有不欲制之以術하여 而全其才하여 以適于用이온
漢之
과 唐之
은 賢將也
요 漢之韓信黥布彭越
과 唐之
는 才將也
라
結以重恩하여 示以赤心하고 美田宅과 豐飲饌과 歌童舞女로 以極其口腹耳目之欲하되 而折之以威하니 此는 先王之所以御才將者也라
近之論者에 或曰 將之所以畢智竭力하여 犯霜露하며 蹈白刃而不辭者는 冀賞耳라
或曰 賞所以使人이니 不先賞이면 人不爲我用이라하니라
將之才는 固有小大하니 傑然於庸將之中者는 才小者也요 傑然於才將之中者는 才大者也라
才小면 志亦小요 才大면 志亦大니 人君은 當觀其才之小大하여 而爲制御之術以稱其志라
夫養騏驥者
는 豐其芻粒
하고 潔其羈絡
하며 居之新
하여 浴之淸泉而後
에 責之千里
라
彼騏驥者는 其志常在千里也니 夫豈以一飽而廢其志哉아
至於養鷹하여는 則不然하니 獲一雉면 飼以一雀하고 獲一兔면 飼以一鼠라
彼知不盡力於擊搏이면 則其勢無所得食하니 故로 然後에 爲我用이라
才大者는 騏驥也니 不先賞之면 是養騏驥者가 饑之하여 而責其千里니 不可得也요
才小者는 鷹也니 先賞之면 是養鷹者가 飽之하여 而求其擊搏이니 亦不可得也라
是故로 先賞之說은 可施之才大者요 不先賞之說은 可施之才小者니 兼而用之 可也라
厥後에 追項籍垓下에 與信越期而不至어늘 損數千里之地하여 以畀之를 如棄敝屣라
項氏未滅하고 天下未定호되 而三人者는 已極富貴矣하니 何則고
高帝는 知三人者之志大하여 不極於富貴면 則不爲我用이요 雖極於富貴라도 而不滅項氏하고 不定天下면 則其志不已也라
至於樊噲滕公灌嬰之徒則不然하니 拔一城陷一陣而後에 增數級之爵하고 否則終歲不遷也라
項氏已滅
하고 天下已定
하여 樊噲滕公灌嬰之徒
는 計百戰之功而後
에 爵之
하니 夫豈高帝至此而嗇哉
아
知其才小而志小하여 雖不先賞이라도 不怨이요 而先賞之면 則彼將泰然自滿하여 而不復以立功爲事故也라
夫人豈不欲三分天下하여 而自立者리오하거늘 而彼則曰 漢王不奪我齊也라하니라
故로 齊不捐이면 則韓信不懷하고 韓信不懷면 則天下非漢之有리라
注
소순蘇洵이 재장才將을 기지機智로써 부려야 한다는 것을 논하면서, 한 고조漢 高祖가 한신韓信‧팽월彭越을 우대한 것을 우선적으로 인용하였는데, 참으로 적절한 것 같다.
다만 송 태조宋 太祖가 여러 장수를 부리는 데에 더욱 처분이 있었던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지智’ 한 자로는 결코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임금이 신하를 부림에, 재상宰相은 부리기 쉽고 장군將軍은 부리기 어렵다.
장군에도 두 부류가 있으니, 현장賢將이 있고 재장才將이 있지만, 재장才將을 부리기가 더 어렵다.
재상宰相을 부리는 데에는 예禮로써 하고, 장군將軍을 부리는 데에는 수단手段으로써 하며, 현장賢將을 부리는 수단은 신의信義로써 하고, 재장才將을 부리는 수단은 기지機智로써 한다.
예禮로써 하지 않고 신의信義로써 하지 않으면, 이것은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다.
수단으로써 하지 않고 기지機智로써 하지 않으면, 이것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군을 부리는 것이 어렵지만, 재장才將을 부리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섯 종의 가축은 그 처음에는 모두가 야생동물이었다.
저 호랑이와 표범은 덮치고 물어뜯는 데 능하고, 말은 또 말굽으로 뒷발질하는 데 능하며, 소는 또 뿔로 들이박는 데 능하다.
선왕先王들은 덮치고 물어뜯는 데 능한 짐승들은 인력人力으로 제압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놈들을 죽였던 것이고, 죽일 수가 없으면 몰아낸 뒤에야 멈췄다.
말굽으로 뒷발질하는 짐승은 굴레와 고삐로 부릴 수 있고, 뿔로 들이박는 데 능한 짐승은 뿔막이로 구속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선왕先王들은 차마 그 재주를 포기하여 천하에 유용함을 내버릴 수가 없었다.
만약 이 짐승은 뒷발질에 능하고 이 짐승은 들이박는 데 능하다 하여 호랑이나 표범처럼 죽이거나 몰아내었다면, 이 천하에는 준마駿馬가 없어져 끝내 아무것도 타고 다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선왕先王이 인재를 선발할 때에, 그 간사奸邪하고 극악極惡함이 호랑이와 표범처럼 덮쳐서 물어뜯는 습성을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적절한 수단으로 통제하여 그 재능을 온전하게 함으로써 쓰임에 적절하도록 하려 하지 않음이 없었다.
더구나 장군이라면 언행言行이 단정하고 세심하며 신중하기를 요구하지 않고, 오직 그 재능才能이 어떠한지만 보았을 따름이다.
한漢나라 위청衛靑‧곽거병霍去病‧조충국趙充國과 당唐나라 이정李靖‧이적李勣은 현장賢將들이요, 한漢나라 한신韓信‧경포黥布‧팽월彭越과 당唐나라 설만철薛萬徹‧후군집侯君集‧성언사盛彥師는 재장才將들이다.
현장賢將이 많지 않으니, 재능 있는 자를 얻기만 하면 그를 임용하는 것이 옳다.
또 이런 사람은 부리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이는 불초不肖한 자라고 생각한 다음에 〈등용해 쓰면〉 될 것이다.
두터운 은혜로 맺어서 진심을 보이고, 좋은 토지와 주택‧풍성한 술과 음식‧가동歌童‧무녀舞女로써 그 입과 배와 귀와 눈의 욕망을 극도로 만족시켜 주되, 위엄으로써 그를 굴복시켰으니, 이것이 선왕先王들이 재장才將을 부리는 방법이었다.
근래의 논자論者 가운데 어떤 사람은 “장군將軍들이 지혜智慧와 힘을 다하여 서리와 이슬을 맞아가며 시퍼런 칼날을 밟아도 피하지 않는 까닭은 상賞을 바라서일 뿐이다.
국가를 위하는 자라면 상賞을 앞세우지 말고 그의 성공成功을 추구하는 것이 더 낳을 것이다.”라 한다.
어떤 사람은 “상은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수단이니, 상을 앞세우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위해 쓰이지 않을 것이다.”라 한다.
이러한 말들은 다 자신들의 일방적인 말이요, 사리事理에 통하는 말은 아니다.
장군의 재능에는 분명 크고 작은 것이 있으니, 용장庸將의 중간보다 뛰어난 자는 재능이 작은 자이고, 재장才將의 중간보다 뛰어난 자는 재능이 큰 자이다.
재능이 작으면 뜻 또한 작고, 재능이 크면 뜻 또한 크니, 임금이라면 당연히 그 재능의 크고 작음을 살펴서, 부릴 수단을 만들어 그들의 뜻에 부응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저 천리마千里馬를 기르는 사람은 알곡의 사료를 배불리 먹이고, 그 굴레를 깨끗하게 해주며, 새 마구간에 머물게 하면서, 맑은 샘물로 목욕시킨 후에 천 리를 달리도록 요구해야 한다.
저 천리마는 그 뜻이 늘 천 리를 달리는 데 있으니, 어찌 한 번의 배부름 때문에 그 뜻을 버리겠는가?
매를 기르는 데에는 그렇지 않으니, 꿩 한 마리를 잡으면 참새 한 마리를 먹이로 주고, 토끼 한 마리를 잡으면 쥐 한 마리를 먹이로 준다.
저 매는 사냥하는 데 힘을 다하지 않으면, 그 형편상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뒤에야 나에게 쓰이게 되는 것이다.
재능이 큰 것은 천리마와 같은 경우이니, 먼저 상을 주지 않으면, 이것은 천리마를 기르는 자가 굶주려놓고 천 리를 달리도록 요구하는 것이니 천 리를 달릴 수가 없다.
재주가 작은 것은 매와 같은 경우이니, 먼저 상을 주면, 이것은 매를 먹이는 사람이 매를 배불리 먹인 뒤에 사냥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니 또한 사냥을 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먼저 상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큰 재주를 가진 자에게 시행할 수 있는 것이고, 먼저 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작은 재주를 가진 자에게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니, 두 가지를 겸하여 사용하는 것이 옳다.
옛날 한 고조漢 高祖는 한신韓信을 보자마자 상장군上將軍의 지위를 주고 자신의 옷을 벗어 그에게 입히고 자신이 먹는 음식을 그에게 먹였으며, 경포黥布를 만나자마자 그를 회남왕淮南王으로 삼아 그에게 제공한 용품과 음식은 왕의 것과 같았으며, 팽월彭越을 보자마자 상국相國으로 삼았다.
이때에 이 세 사람은 아직 한漢나라에 공功이 없었다.
그 후 항우項羽를 쫓아 해하垓下에 이르렀을 때에, 한신韓信과 팽월彭越은 약속한 기일에 이르지도 않았으나, 수천 리의 땅을 포기하여 그들에게 주기를 마치 헌신 버리듯이 하였다.
항우項羽는 아직 멸망되지 않았고 천하도 아직 평정되지 않았지만, 이 세 사람은 이미 극도로 부귀하였다. 어째서일까?
한 고조漢 高祖는 이 세 사람은 뜻이 커서 극도로 부귀하게 해주지 않으면 자신을 위해서 쓰이지 않을 것이며, 비록 극도의 부귀를 누리더라도 항우項羽가 멸망하지 않고 천하가 평정되지 않으면 그들의 뜻이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번쾌樊噲‧등공滕公‧관영灌嬰의 무리는 그렇지 않았으니, 성城 하나를 뺏고 진陣 하나를 무너뜨린 뒤에야 몇 등급의 작위爵位를 더해주었고, 그렇지 않으면 한 해가 다 가도록 승진시키지 않았다.
항우項羽가 이미 멸망하고 천하가 이미 평정되자, 번쾌樊噲‧등공滕公‧관영灌嬰의 무리에게는 백전百戰의 공을 계산한 뒤에 통후通侯의 작위를 주었으니, 어찌 고조高祖가 이토록 인색하였을까?
그들의 재주가 작고 뜻이 작아서 먼저 상을 주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며, 먼저 그들에게 상을 주면 그들은 곧 태연자약하며 스스로 만족하면서 더 이상 공을 세우는 것을 일로 삼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 한신韓信이 제齊나라 땅에서 막 자립하였을 때에는 괴통蒯通‧무섭武涉이 아직 설득하러 가지 않았을 때였다.
바로 이때에 그에게 왕의 작위를 뺏었다면, 한漢나라는 아마 위험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어찌하여 천하를 삼분三分하여 자립하지 않느냐 하거늘, 한신韓信은 곧 “한왕漢王이 나의 제齊 땅을 빼앗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고조高祖가〉 제齊나라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한신韓信은 〈한漢나라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한신韓信이 〈한漢나라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천하는 한漢나라의 소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아!고조高祖는 대계大計를 알았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