朕德不類
하야 託於士民之上
하니 所與待天下之治者
는 惟萬方
之求
일새 詳延於廷
하야 諏以世務
하니 豈特考子大夫之所學
이리오
蓋聖王之御天下也에 百官得其職하고 萬事得其序하야 有所不爲언정 爲之而無不成하고 有所不革이언정 革之而無不服이라
田疇闢하고 溝洫治하고 草木暢茂하고 鳥獸魚鼈이 無不得其性하며 其富足以備禮하고 其和足以廣樂하고 其治足以致刑하니 子大夫以謂何施而可以臻此오
方今之弊 可謂衆矣나 救之之道는 必有本末하고 施之之宜는 必有先後하리니 子大夫之所宜知也라
生民以來
로 所謂至治
는 必曰
之時
라하니 詩書所稱
에 其迹可見
이라
以至後世賢明之君과 忠智之臣이 相與憂勤하야 以營一代之業하야는 雖未盡善이나 要其所以成就하면 亦必有可言者하리니 其詳著之하라
竊見陛下始革舊制하사 以策試多士하야 厭聞詩賦無益之語하고 將求山林朴直之論하시니 聖德廣大하야 中外歡悅이어늘
而所試擧人이 不能推原上意하고 皆以得失爲慮하야 不敢指陳闕政하고 而阿諛順旨者 又卒據上第하니이다
陛下之所以求於人이 至深切矣어시늘 而下之報上者如此하니 臣竊悲之하노이다
夫科場之文은 風俗所繫니 所收者를 天下莫不以爲法하고 所棄者를 天下莫不以爲戒하니이다
昔祖宗之朝 崇尙辭律
하니 則詩賦之士
가 曲盡其巧
러니 하니 則策論盛行於世
하고 而詩賦幾至於熄
하니이다
今始以策取士어늘 而士之在甲科者 多以諂諛得之하니 天下觀望하고 誰敢不然이리오
臣恐自今以往
으로 相師成風
하야 雖
라도 亦無敢以直言進者
하니이다
風俗一變이면 不可復返이요 正人衰微하면 則國隨之하리니 非復詩賦策論迭興迭廢之比也니이다
是以로 不勝憤懣하고 退而擬進士對御試策一道하노이다
學術淺陋
하야 不能盡知當世之切務
하고 直載所聞
하오니 上將以推廣聖言
이면 庶有補於萬一
이요 下將以開示四方
하야 使知陛下本不諱
切直之言
이면 風俗雖壞
나 猶可以少救
하리이다
其所撰策을 謹繕寫投進하오니 干冒天威에 臣無任戰恐待罪之至로소이다
臣伏見陛下發德音하고 下明詔하사 以天下安危之至計로 謀及於布衣之士하시니 其求之 不可謂不切이요 其好之 不可謂不篤矣니이다
故로 臣願陛下先治其心하야 使虛一而靜하오니 然後에 忠言至計 可得而入也리이다
今臣은 竊恐陛下先入之言이 已實其中하고 邪正之黨이 已貳其聽하고 功利之說이 已動其欲이면
則雖有
爲之謀
라도 亦無自入矣
어든 而況於疏遠愚陋者乎
잇가
此臣之所以大懼也니 若乃盡言以招過하고 觸諱以忘軀는 則非臣之所恤也로소이다
聖策曰 聖王之御天下也에 百官得其職하고 萬事得其序라하시니 臣以爲陛下未知此也라
是以로 所爲顚倒하야 失序如此하니 苟誠知之면 曷不尊其所聞而行其所知歟잇가
百官之所以得其職者 豈聖王人人而督責之歟며 萬事之所以得其序者 豈聖王事事而整齊之歟잇가
今陛下使
하고 하며 刑獄舊法
을 不以付有司
하고 而取決於執政之意
하시고 邊鄙大慮
를 不以責帥臣
하고 而聽計於小吏之口
하시니 百官
이 可謂失其職矣
니이다
王者之所宜先者는 德也요 所宜後者는 刑也며 所宜先者는 義也요 所宜後者는 利也어늘
然此는 猶其小者요 其大者는 則中書失其政也니이다
宰相之職
은 古者所以論道經邦
이어늘 今陛下但使奉行
文書而已
니이다
昔
爲丞相
에 爲御史大夫
러니 望之言陰陽不和
는 咎在臣等
이라한대 而宣帝以爲意輕丞相
이라하야 終身薄之
하니이다
今政事堂에 忿爭相詰하야 流傳都邑하야 以爲口實하니 使天下何觀焉이리잇고
故로 臣願陛下首還中書之政이면 則百官之職과 萬事之序 以次得矣리이다
聖策曰 有所不爲언정 爲之而無不成하고 有所不革이언정 革之而無不服이라하시니
今日之患은 正在於未成而爲之하고 未服而革之耳니이다
夫成事는 在理하고 不在勢하며 服人은 以誠이요 不以言이니이다
理之所在엔 以爲則成하고 以禁則止하며 以賞則勸하고 以言則信하나니 古之人이 所以鼓舞天下하야 綏之斯來하고 動之斯和者는 蓋循理而已니이다
今爲政에 不務循理하고 而欲以人主之勢와 賞罰之威로 劫而成之하시니
是以로 不論尊卑하고 不計强弱하고 理之所在則成이요 理所不在則不成을 可必也니이다
今陛下使農民擧息하야 與商賈爭利하시니 豈理也哉리오
陛下苟誠乎爲民이면 則雖或謗之나 而人不信이요 苟誠乎爲利면 則雖自解釋이나 而人不服이니이다
吏受
枉法
이면 人必謂之贓
이요 非其有而取之
면 人必謂之盜
라하나니 苟有其實
이면 不敢辭其名
이니이다
凡人爲善이면 不自譽而人譽之하고 爲惡이면 不自毁而人毁之하나니 如使爲善者 必須自言而後信이면 則堯, 舜, 周, 孔도 亦勞矣시리이다
今天下以爲利어늘 陛下以爲義라하시고 天下以爲貪이어늘 陛下以爲廉이라하사 不勝其紛紜也하시니
則使二三臣者 極其巧辯하야 以解答千萬人之口하며 附會經典하고 造爲文書하야 以曉告四方이라도 四方之人이 豈如嬰兒鳥獸하야 而可以美言小數로 眩惑之哉잇가
且夫未成而爲之면 則其弊必至於不敢爲요 未服而革之면 則其弊必至於不敢革이니이다
蓋世有好走馬者 一爲墜傷이면 則終身徒行하나니 何者오
愼重則必成하고 輕發則多敗하니 此는 理之必然也니이다
陛下若出於愼重이면 則屢作屢成하야 不惟人信之요 陛下亦自信而日以勇矣시리이다 若出於輕發이면 則每擧每敗하야 不惟人不信이요 陛下亦不自信而日以怯矣리이다
하니 其志豈淺也哉
리오마는 而一經大變
하야는 則憂沮喪氣
하야 不能復振
하니 文宗亦非有失德
이요 徒以好作而寡謀也
니이다
愼重者는 始若怯이나 終必勇하고 輕發者는 始若勇이나 終必怯하니이다
迺者
에 之人
이 未嘗一日而忘漢
하니 雖五尺之童子
라도 知其可取
니이다
然
이나 自
以來
로 莫之敢發
은 誠未有以善其後也
니이다
由此觀之하면 則橫山之功은 是邊臣欲速而壞之也니이다
近者靑苗之政
과 과 과 을 卒然輕發
이 又甚於前日矣
니이다
雖陛下不卹人言하고 持之益堅이라도 而勢窮事礙면 終亦必變하시리니 他日雖有良法美政이나 陛下能復自信乎잇가
今陛下春秋鼎盛하시고 天錫勇智하시니 此萬世一時也어늘
譬如乘輕車하고 馭駿馬하야 冒險夜行이어늘 而僕夫又從其後而鞭之하니 豈不殆哉잇가
臣願陛下解轡秣馬
하고 以須東方之明
하야 而徐行於
하오니 甚未晩也
리이다
聖策曰 田疇闢하고 溝洫治하며 草木暢茂하고 鳥獸魚鼈이 莫不各得其性者는 此百工有司之事也니 曾何足以累陛下리잇고
陛下操其要하고 治其本하야 恭己無爲하시면 而物莫不盡其理하야 以生以死하리니 若夫百工有司之事는 自宰相不肯爲之어든 而況於陛下乎잇가
聖策曰 其富足以備禮하고 其和足以廣樂하고 其治足以致刑이니 何施而可以臻此오하시니이다
陛下不反求其本하고 而欲以力勝之하시니 力之不能勝衆也久矣니이다
古者
에 刀鋸在前
하고 鼎
在後
로되 而士猶犯之
하니이다
今陛下躬蹈堯舜
하사 未嘗誅一無罪
하시니 欲
衆言
이나 不過斥逐異議之臣而更用人耳
니 必未忍行亡秦
하고 起東漢
하시리니
臣恐逐者不已로되 而爭者益多하야 煩言交攻이 愈甚於今日矣니이다
古之求治者는 將以措刑也어늘 今陛下求治는 則欲致刑하시니 此又群臣誤陛下也니이다
荀卿者는 喜爲異論하야 至以人性爲惡하니 則其言治世刑重이 亦宜矣니이다
說者又以爲 書稱唐虞之隆
에 하고 而周之盛時
에 이라하니
致之言
은 極也
니 天下
라가 使一日治安
이면 陛下將變今之刑而用其極歟
잇가
徒聞其語而懼者已衆矣리니 臣不意異端邪說惑誤陛下가 至於如此하니이다
宥過無大하고 刑故無小는 此用刑之常理也라 至於今하야도 守之하니 豈獨唐虞之隆而周之盛時哉잇가
所以誅群飮者는 意其非獨群飮而已요 如今之法에 所謂夜聚曉散者니이다
使後世不知其詳하고 而徒聞其語하야 則凡夜相過者를 皆執而殺之면 可乎잇가
夫人相與飮酒而輒殺之는 雖桀紂之暴라도 不至於此어늘 而謂周公行之歟잇가
聖策曰 方今之弊가 可謂衆矣라 救之之道 必有本末하고 施之之宜 必有先後라하시니
方今捄弊之道는 必先立事요 立事之本은 在於知人이니 則所施之宜는 當先觀大臣之知人與否耳니이다
古之欲立非常之功者는 必有知人之明하니 苟無知人之明이면 則循規矩하고 蹈繩墨하야 以求寡過하니
道
는 可以講習而知
요 德
은 可以勉强而能
이어니와 惟知人之明
은 不可學
하야 必出於天資
하니 如
이 此豈有法而可傳者哉
잇가
我
之在位也
에 事無大小
히 一付之於法
하고 人無賢不肖
히 一付之於公議
하야 事已效而後行
하고 人已試而後用
하사 終不求非常之功者
는 誠以當時大臣
이 不足以與於知人之明也
일새니이다
古之爲醫者 聆音察色
하야 洞視
이면 則其治疾也
에 有剖胸決脾
하고 洗濯胃腎之變
이요 苟無其術
이면 不敢行其事
하니이다
今無知人之明
하고 而欲立非常之功
하야 解縱繩墨以慕古人
이면 則是未能察脈
하고 而欲試
之方
이니 其異於操刀而殺人者 幾希矣
리이다
乃者에 擢用衆才는 皆其造室握手之人이라 要結審固而後에 敢用하니 蓋以爲其人이 可與戮力同心하야 共致太平이로되
曾未安席에 而交口攻之者 如蝟毛而起하니 陛下以此驗之하시면 其不知人也亦審矣니이다
幸今天下無事하야 異同之論이 不過瀆亂聖聽而已어니와 若邊隅有警하고 盜賊竊發하야 俯仰成敗하고 呼吸變故어늘 而所用之人이 皆如今日하야 乍合乍散하야 臨事解體하야 不可復知면 則無乃誤社稷歟잇가
華佗不世出이로되 天下未嘗廢醫하고 蕭何不世出이로되 天下未嘗廢治하니 陛下必欲立非常之功인댄 請待知人之佐하시고 若猶未也인댄 則亦詔左右之臣하야 安分守法而已니이다
聖策曰 生民以來로 稱至治者 必曰唐虞成周之世하니 詩書所稱에 其迹可見이라
以至後世하야 賢明之君과 忠智之臣이 相與憂勤하야 以營一代之業하야는 雖未盡善이나
然要其所成就하면 亦必有可言者하리니 其詳著之라하시니이다
其施設之方은 各隨其時하야 而不可知요 其所可知者는 必畏天하고 必從衆하고 必法祖宗이니이다
詩書所稱이 大略如此하니 未嘗言天命不足畏요 衆言不足從이요 祖宗之法不足用也니이다
凡今之人이 欲陛下違衆而自用者는 必以此藉口하니 而陛下所謂賢明忠智者 豈非意在於此等歟잇가
臣願考二人之所行하야 而求之於今하오니 王猛이 豈嘗設官而牟利하고 魏鄭公이 豈嘗貸錢而取息歟잇가
且其不悅者는 不過數人이니 固不害天下之信且服也니이다
今天下有心者怨하고 有口者謗하니 古之君臣이 相與憂勤하야 以營一代之業者는 似不如此하니이다
古語曰 百人之聚에 未有不公이라하니 況天下乎잇가
今天下非之어늘 而陛下不回하시니 臣不知所稅(脫)駕矣니이다
借擬士對하야 以諷諫當時之政이로되 而擘畫處 更勝前首라
故로 特擬策하야 以發其直言敢諫之氣하니 不知當時曾及聞神廟否아
然據愚見
하면 此作
은 亦不過條其事而言之耳
요 未有一段精光意見
이 開悟人君
하야 令其實落做手處
하니 其不逮
이 多矣
니라
02. 진사進士들이 어시책御試策에 대답한 것을 모의模擬하여 지은 한 편 서문을 함께 붙이다
“짐朕의 덕이 선왕만 못하면서 선비와 백성의 위에 군림해 있으니, 함께 천하의 다스림을 대비할 방도는 오직 만방萬方의 여러 어진 이들을 구하는 것이므로, 선비들을 조정朝廷에서 두루 맞이하여 세상의 일을 자세히 자문하는 것이니, 어찌 다만 자대부子大夫들의 배운 바를 참고하려는 것일 뿐이겠는가?
성왕聖王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 백관百官들이 직책을 얻고 만사萬事가 질서를 얻어서, 하지 않는 바가 있을지언정 하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고, 고치지 않는 바가 있을지언정 고치면 복종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리하여 전야田野가 개간되고 도랑이 잘 다스려지며 초목이 무성하고 새와 짐승과 물고기와 자라가 제 본성을 얻지 못함이 없었으며, 그 부유함은 충분히 예禮를 갖출 수 있고 화합함은 충분히 음악音樂을 넓힐 수 있고 다스림은 충분히 형벌刑罰을 폐지하여,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자대부子大夫들은 어떠한 정사政事를 베풀어야 이런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의 병폐病弊는 참으로 많다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을 바로잡는 방법에는 반드시 본本과 말末이 있고 시행함의 마땅함에는 반드시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이 있을 것이니, 이는 자대부子大夫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바이다.
생민生民이 있은 이래로 이른바 지극히 잘 다스려진 정치란 반드시 당唐‧우虞와 성주成周의 때를 말하는데,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에 칭찬한 바에서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후세에 현명한 군주와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신하가 서로 함께 걱정하고 애써서 한 시대의 사업을 경영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극진히 선善하지는 못하였으나 요컨대 그 성취한 바를 찾아보면 또한 반드시 말할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니, 이것을 자세히 밝히도록 하라.
이상은 신臣이 조칙에 명령하신 것을 따라 집영전集英殿에 파견되어 거인擧人들의 시권試券(답안지)을 순서에 따라 정리한 것입니다.
엎드려 보니, 폐하께서 처음으로 옛 제도를 고치셔서 책문策文으로 많은 선비들을 시험하여, 시부詩賦의 무익한 말을 듣기 싫어하시고 산림山林의 정직하고 질박한 의논을 찾으려 하시니, 성덕聖德이 넓고 커서 중외中外의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 보는 거인擧人들이 성상聖上의 뜻을 미루어 생각하지 못하고, 모두 과거科擧의 득실得失을 염려하여 감히 잘못된 정사政事를 지적하지 못하고서 아첨하여 윗사람의 뜻에 순종한 자가 또 마침내 높은 등급을 차지했습니다.
폐하께서 사람들에게 요구하심이 지극히 깊고 간절하신데 아랫사람들이 위에 보답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신臣은 엎드려 깊이 슬퍼합니다.
과장科場의 문장은 풍속風俗이 관계되는 바이니, 거둔 것(급제시킨 것)을 천하 사람들이 법으로 삼지 않음이 없고 버린 것(낙제시킨 것)을 경계로 삼지 않음이 없습니다.
옛날 조종조祖宗朝에서 사율辭律을 숭상하자 시부詩賦를 짓는 선비들이 공교로움을 곡진히 다하였는데, 가우嘉祐 연간 이래로 고문古文을 귀하게 여기자 책策과 논論이 세상에 성행盛行하고 시부詩賦가 거의 없어짐에 이르렀습니다.
이익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교화되지 않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처음 책문策問으로 선비를 뽑았는데, 선비 중에 갑과甲科에 든 자들이 대부분 아첨으로 급제하였으니, 천하 사람들이 바라보고 누가 감히 이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신臣은 지금 이후로는 서로 이것을 본받아 풍속風俗을 이루어서, 비록 직언과直言科 출신이라도 감히 직언直言을 올리는 자가 없게 될까 염려됩니다.
풍속風俗이 한 번 바뀌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고 정직한 사람이 쇠미해지면 나라도 따라 쇠미해질 것이니, 이는 다시 시부詩賦와 책策과 논論이 번갈아 일어나고 번갈아 폐지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신臣은 이 때문에 분하고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물러가서 〈진사대어시책문進士對御試策文〉 한 편을 모의模擬로 지어 올리는 것입니다.
신臣은 학술學術이 천박하고 누추해서 당세의 절실한 일을 다 알지 못하고 다만 들은 바를 기재記載하오니, 위로는 장차 이것을 가지고 성상聖上의 말씀을 미루어 넓힐 수 있으면 거의 만에 하나라도 도움이 있을 것이요, 아래로는 장차 이것을 가지고 사방에 열어 보여서 폐하께서 본래 간절하고 정직한 말을 꺼려하고 싫어하지 않으심을 알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이렇게 하면 풍속風俗이 비록 무너지더라도 다소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은 책문策文을 삼가 정서淨書해서 올리오니, 하늘의 위엄을 범하였으므로 신은 두려워 떨며 죄를 기다리는 지극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신臣이 엎드려 보니, 폐하께서 덕음德音을 내시고 분명한 조칙詔勅을 내리셔서 천하의 안위安危에 대한 지극한 계책을 가지고 도모하여 물으심이 포의布衣의 선비에게까지 미치시니, 구求함이 간절하지 않다고 이를 수 없고 좋아함이 독실篤實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臣이 속으로 우려하는 바가 있으니, 폐하께서 이것을 받아들이실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단맛이 조화調和를 받아들이고 흰색이 채색을 받아들인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臣은 폐하께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서 마음을 비워 한결같고 고요하게 하시기를 바라오니, 그런 뒤에야 충직忠直한 말과 지극한 계책計策이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신臣은 폐하께서 먼저 받아들이신 말이 이미 그 심중에 꽉 차 있고, 간사하고 바른 당론黨論이 이미 성상聖上의 귀를 현혹시키고, 공리功利의 말이 이미 욕심慾心을 동動하게 하였을까 적이 두렵습니다.
이와 같다면 비록 고요皐陶와 익益과 직稷과 같이 훌륭한 신하臣下가 도모함이 있더라도 또한 들어갈 길이 없는데, 하물며 저와 같이 소원疏遠하고 어리석고 누추한 자에게 있어서이겠습니까?
이 때문에 신臣이 크게 두려워하는 것이니, 숨김없이 말씀을 다하여 허물을 부르고 기휘忌諱를 저촉하여 몸을 망치는 것으로 말하면, 신臣이 두려워하는 바가 아닙니다.
성책聖策(성상聖上의 책문策問)에 이르시기를 “성왕聖王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 백관百官들이 그 직책을 얻고 만사萬事가 그 질서를 얻었다.”라고 하셨으니, 신臣은 폐하께서 이것을 모르신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행하시는 바가 전도되어 순서를 잃음이 이와 같은 것이니, 만일 참으로 이것을 아신다면 어찌 그 들은 바를 높이고 그 아는 바를 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백관百官이 그 직책을 얻는 것이 어찌 성왕聖王이 사람마다 감독하고 책망하기 때문이며, 만사가 그 질서를 얻는 것이 어찌 성왕聖王이 일마다 정돈하고 가지런히 하였기 때문이겠습니까?
또한 능력에 따라 직책을 맡기고 직책에 따라 일을 맡겼을 뿐입니다.
관직에 일정하게 맡음이 있는 것을 ‘직職’(직책)이라 이르고, 베풂에 선후가 있는 것을 ‘서序’(질서)라 이릅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양부兩府의 대신大臣으로 하여금 삼사三司의 재리財利의 권한을 침탈하게 하시고, 상평창常平倉의 사자使者로 하여금 직사職司와 수령守令의 다스림을 혼란시키며, 형옥刑獄의 옛 법을 유사有司에게 맡기지 않고 집정대신執政大臣의 뜻으로 결정하게 하시며, 변방의 큰 우려를 수신帥臣에게 책임 지우지 않고 낮은 관리官吏의 계책을 들으시니, 백관百官이 그 직책을 잃었다고 이를 만합니다.
왕자王者가 마땅히 먼저 해야 할 것은 덕德이고 마땅히 뒤에 해야 할 것은 형벌刑罰이며, 마땅히 먼저 해야 할 것은 의義이고 마땅히 뒤에 해야 할 것은 이익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이것을 뒤바꿔 하시니, 만사萬事가 그 질서를 잃었다고 이를 만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작은 일에 해당되고, 더 큰 일은 중서성中書省이 그 정무政務를 잃은 것입니다.
재상의 직책은 옛날에는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경륜經綸하는 것이었는데, 지금 폐하께서는 단지 재상으로 하여금 조례사條例司의 문서를 받들어 행하게 할 뿐입니다.
옛날 병길邴吉이 승상이 되었을 적에 소망지蕭望之가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는데, 소망지蕭望之가 말하기를 “음양陰陽이 조화롭지 못함은 그 책임이 신臣 등에게 있습니다.”라고 하자, 선제宣帝는 그 뜻이 승상을 경시하는 것이라고 여겨 종신토록 소망지蕭望之를 박대하였습니다.
지금 정사당政事堂에서 분노하여 다투고 서로 질책해서 이런 소문이 도읍에까지 전해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보고 따르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신臣은 폐하께서 제일 먼저 중서성中書省의 정무政務를 돌려주시기를 바라오니, 이렇게 하면 백관百官의 직책과 만사萬事의 질서가 차례로 얻어질 것입니다.
성책聖策에 이르시기를 “하지 않는 바가 있을지언정 하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고, 고치지 않는 바가 있을지언정 고치면 복종하지 않음이 없었다.”라고 하셨습니다.
폐하께서 이를 언급言及하시니, 이것은 천하 신민臣民들의 복福입니다.
오늘날의 병통은 바로 이루어질 수 없는데도 그것을 하고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데도 고치는 데에 있습니다.
무릇 일을 이루는 것은 이치에 달려 있고 권세에 달려 있지 않으며,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정성으로써 하고 말로써 하지 않습니다.
이치가 있는 곳에는 하면 이루어지고 금禁하면 그치며 상을 내리면 사람들이 권면되고 말하면 믿게 되니, 옛사람들이 천하 사람들을 고무시켜 편안히 해주면 따라오고 흥동興動시키면 호응하였던 것은 이치를 따랐기 때문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사政事를 행함에 있어 이치를 따르기를 힘쓰지 않고, 군주의 권세와 상벌賞罰의 위엄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협하여 이루려고 하십니다.
도끼를 가지고 장작을 패면 반드시 팰 수 있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뭇결을 따르지 않으면 도끼는 망가질 수 있어도 장작은 팰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신분의 높고 낮음을 논하지 않고 힘의 강하고 약함을 계산하지 않고, 오직 이치가 있는 곳에는 이루어지고 이치가 있지 않은 곳에는 이룰 수 없음을 기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농민으로 하여금 이식利息을 내게 하여 상고商賈와 이익을 다투게 하시니, 이것이 이치이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이루어지지 못함을 어찌 괴이하게 여기시겠습니까?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은미隱微한 것이 드러나니, 성誠(진실, 성실)을 가릴 수 없음이 이와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진실로 백성百姓을 위하는 데 성실하시면 비록 남들이 혹 비방하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요, 만일 이익을 내는 데 성실하시면 비록 스스로 해명解明하시더라도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일은 결코 남을 속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관리官吏가 뇌물을 받고 법法을 어기면 사람들이 반드시 그것을 장물贓物이라 이르고, 자기 소유가 아닌데 취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그것을 도둑질이라 이르니, 만일 그 실제가 있으면 감히 그 이름을 사양하지 못합니다.
지금 청묘법靑苗法에 2분分의 이식利息을 받도록 되어 있는데, 빚을 놓아 이익을 취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되겠습니까?
무릇 사람이 선善을 하면 스스로 기리지 않아도 남들이 칭찬해주고 악惡을 행하면 스스로 비방하지 않아도 남들이 비방하니, 만일 선善을 하는 자가 반드시 스스로 자기가 잘한 것을 말한 뒤에야 남들이 믿는다면 요堯‧순舜과 주공周公‧공자孔子 또한 수고로웠을 것입니다.
지금 천하 사람들은 모두 나라에서 이익을 위한다고 말하는데 폐하께서는 의리를 위한다고 말씀하시고, 천하 사람들은 나라에서 재물을 탐한다고 말하는데 폐하께서는 청렴하다고 말씀하셔서 분분함을 이루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령 두세 명의 신하가 공교로운 변설을 지극히 구사해서 천만 명이 비난하는 말에 해명하여 답변하고, 경전經典을 부회하고 문서(문장)를 만들어 사방의 사람들을 깨우치고 말해준다 하더라도, 사방의 사람들을 어찌 어린아이나 새와 짐승과 같이 아름다운 말과 작은 술수로써 현혹시킬 수 있겠습니까?
또 아직 이룰 수가 없는데 그것을 한다면 그 병폐가 반드시 감히 다시 하지 못함에 이르게 되고, 복종하지 않는데 고치면 그 병폐가 감히 다시 고치지 못함에 이르게 됩니다.
세상에 말달리기를 좋아하는 자가 한 번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하면 종신토록 말을 타지 않고 걸어다니니, 이는 어째서이겠습니까?
신중하면 반드시 성공하고 가볍게 발동하면 실패가 많으니, 이는 이치의 필연입니다.
폐하께서 만일 신중히 하는 쪽에서 나오신다면 일을 할 때마다 매번 이루어져 비단 남들이 믿을 뿐만 아니라 폐하께서도 또한 자신하여 날마다 용감해질 것이요, 만약 가볍게 발동하는 데서 나오시면 일을 거행擧行할 때마다 매번 실패하여 비단 남들이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폐하께서도 또한 자신하지 못하여 날로 겁을 먹게 될 것입니다.
당唐나라 문종文宗이 처음 이훈李訓과 정주鄭注를 등용하였으니, 그 뜻(생각)이 어찌 얕았겠습니까마는, 한 번 큰 변고를 겪고 나서는 근심하고 기운을 잃어서 다시는 떨치지 못하였으니, 문종文宗 또한 실덕失德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다만 일을 하기를 좋아하면서 모계謀計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신중한 자는 처음에는 겁약怯弱한 듯하나 끝내는 반드시 용감하고, 가볍게 발동하는 자는 처음에는 용감한 듯하나 끝내는 반드시 겁약怯弱하게 됩니다.
근자에 횡산橫山 사람들이 일찍이 단 하루도 한漢(중국)을 잊지 못하였으니, 비록 5척尺의 동자라도 횡산橫山을 취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경력慶曆 연간 이래로 감히 이 계책을 내지 못한 것은 진실로 그 뒤를 잘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변방을 지키는 신하가 그 뒤의 일을 계산하지 않고 갑자기 발동하였다가 한 번 발동한 것이 맞지 않자, 내탕고內帑庫의 돈을 수백만 전錢을 허비하였고 관보關輔의 백성들이 군수물자軍需物資를 수송하는 일에 곤궁한 것이 3년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으니, 비록 천하에 용감한 자라도 누가 감히 다시 이 일을 하겠습니까?
하는 것도 진실로 불가한데 누가 감히 다시 이것을 말하겠습니까?
이것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횡산橫山의 일은 변방을 지키는 신하가 너무 급하게 하고자 하여 망친 것입니다.
근자에 청묘靑苗의 정사政事와 조역助役하는 법과 균수책均輸策과 군대를 합병하고 병졸을 찾아 모으는 법령法令들을 갑자기 가볍게 내는 것이 전일前日보다도 심합니다.
비록 폐하께서 남의 말을 돌아보지 않고 이것을 더욱 견고히 지키신다 하더라도 사세事勢가 곤궁하고 일이 막히게 되면 끝내는 또한 반드시 바꾸실 것이니, 이렇게 되면 후일에 비록 좋은 법法과 아름다운 정사政事가 있다 한들 폐하께서 다시 자신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군주의 병통은 옛것을 따르기를 좋아하고 고쳐 만드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데에 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춘추春秋(연세)가 젊으시고 하늘로부터 뛰어난 용맹과 지혜를 타고 나셨으니, 이는 만세萬世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좋은 시기입니다.
그런데 여러 신하들이 신중함으로써 이루고 돈후敦厚함과 질박質朴함으로써 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유하면 가벼운 수레를 타고 준마駿馬를 몰아 위험을 무릅쓰고 밤길을 가는데 게다가 마부가 또 뒤에서 채찍질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신臣
은 원컨대 폐하께서 고삐를 풀고 말에게 꼴을 먹이시고 동방東方이 밝아오기를 기다려 구궤九軌의 길로 천천히 가시기를 바라오니, 이렇게 해도 그리 늦지 않을 것입니다.
성책聖策에 이르시기를 “전야田野가 개간되고 도랑이 잘 다스려지며 초목이 무성하고 새와 짐승과 물고기와 자라가 제 본성을 얻지 못함이 없게 한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백공百工과 유사有司가 할 일이니, 어찌 폐하께 누累를 끼칠 만한 일이 되겠습니까?
폐하께서 요점을 잡고 근본을 다스려서 몸을 공손히 하고 무위無爲를 행하시면 물건들이 이치를 다하여 그대로 살고 그대로 죽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백공百工과 유사有司의 일로 말하면 본래 재상도 하려고 하지 않는데 하물며 폐하께 있어서이겠습니까?
성책聖策에 이르시기를 “부유함은 충분히 예禮를 갖출 수 있고 화합함은 충분히 음악音樂을 넓힐 수 있고 다스림은 충분히 형벌刑罰을 폐지하여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어떠한 정사를 베풀어야 이런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는가?”라고 하셨습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풍족하면 군주가 누구와 더불어 부족하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토끼의 머리와 박의 잎을 가지고도 예禮를 행할 수 있고, 땅을 쓸어 제사하더라도 하늘을 섬길 수 있으니, 예禮가 갖추어지지 못함은 가난의 죄가 아닙니다.
《관자管子》에 이르기를 “창름倉廩이 꽉 차야 예절禮節을 안다.”라고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부富라는 것이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것입니까?
육가陸賈가 말하기를 “장수와 정승이 화합하면 선비들이 기꺼이 따른다.”라고 하였고, 유향劉向이 말하기를 “여러 현인賢人들이 조정에서 서로 화합하면 만물이 들에서 화합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조정은 불화不和하다고 할 만하니, 그 잘못이 어디에 있습니까?
폐하께서는 근본을 돌이켜 찾지 않으시고 힘으로써 이것을 이기고자 하시니, 힘이 사람들을 이기지 못한 것은 오래되었습니다.
옛날에 형벌의 도구인 칼과 톱이 앞에 있고 솥과 가마솥이 뒤에 있어도 선비들은 오히려 군주의 노여움을 범하였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몸소 요堯‧순舜의 도道를 행하셔서 일찍이 한 명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셨으니, 여러 사람들의 말을 막고자 하시더라도 이론異論을 주장하는 신하를 배척하여 축출하고 딴 사람을 바꿔 쓰는 데 불과할 뿐, 반드시 차마 망한 진秦나라의 우어偶語의 금지를 행하고 동한東漢의 당고黨錮의 옥사獄事를 일으키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하니 많은 선비들이 무엇을 두려워하여 말하지 않겠습니까? 신臣
은 쫓겨나는 자가 그치지 않더라도 다투는 자가 더욱 많아져서 장황한 말로 서로 공격하는 것이 금일보다 더욱 심해질까 두렵습니다.
이리하여 화합和合을 이루고 음악音樂을 넓히기를 바라신다면 어찌 소략疏略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훌륭한 다스림을 구하는 자들은 죄인이 없어 형벌刑罰을 버려두고 쓰지 않고자 하였는데, 지금 폐하께서 다스림을 구하심은 형벌刑罰을 지극히 가하고자 하시니, 이는 또 여러 신하들이 폐하를 오도誤導하는 것입니다.
신臣은 그 내용을 아니, 이것은 순경荀卿에게서 나왔습니다.
순경荀卿은 이론異論을 내세우기 좋아해서 심지어는 사람의 성性을 악하다고 했으니, 그가 “치세治世에는 형벌刑罰이 무거웠다.”고 말한 것은 또한 당연합니다.
그런데 말하는 자들이 또 이르기를 “《서경書經》에 ‘요堯‧순舜의 융성한 시대에도 고의범故意犯을 형벌함에 있어 작게 처벌함이 없었고, 또 주周나라가 성할 때에도 여럿이 모여 술 마시는 자들을 죽였다.’는 내용이 있다.”라고 합니다.
하夏나라 우禹임금의 시대에 대벽大辟(死刑)의 죄가 2백 가지였고 주공周公의 시대에 대벽大辟의 죄가 5백 가지였으니, 어찌 이것을 가지고 주周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우禹임금의 시대는 혼란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진秦
나라의 법은 죄가 삼족三族에까지 미쳤고 한漢나라는 육형肉刑을 제거하였으니, 어찌 이것을 가지고 진秦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한漢나라는 어지러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치형致刑의 ‘치致’라는 말은 지극至極하게 한다는 뜻이니, 천하天下가 불행히 다스려지지 않다가 만일 하루 만에 다스려져서 편안하게 된다면 폐하께서는 장차 오늘날의 형벌刑罰을 바꿔서 그 지극함을 쓰시겠습니까?
이렇게 지극한 형벌刑罰을 쓰신다면 천하가 어찌 배반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그 말만 듣고도 두려워하는 자가 이미 많을 것이니, 신臣은 이단異端의 부정한 학설이 폐하를 현혹시키고 오도함이 이와 같음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과실범過失犯을 용서하여 크게 처벌하지 않고 고의범故意犯을 형벌함에 작게 처벌하지 않는 것은 형벌을 적용하는 정상적인 도리로서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이 방법을 지켜오고 있으니, 어찌 다만 당唐‧우虞의 융성한 시대와 주周나라의 전성全盛한 시대뿐이겠습니까?
여럿이 모여 술 마시는 자들을 처벌한 까닭은 제가 생각하건대 다만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실 뿐이 아니요, 지금의 법法에 이른바 ‘밤에 모여 나쁜 짓을 모의하다가 새벽에 흩어지는 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만일 후세에서 그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단지 그 말만 듣고는, 밤에 서로 왕래하는 자들을 모두 잡아서 죽인다면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서로 함께 술을 마셨다고 하여 번번이 죽이는 것은 비록 걸桀‧주紂의 포악함도 여기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인데, 주공周公이 이것을 행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책聖策에 이르시기를 “지금의 병폐病弊가 참으로 많다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을 바로잡는 방법에는 반드시 본本과 말末이 있고 시행함의 마땅함에는 반드시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신은 청컨대 그 근본과 마땅히 먼저 해야 할 것을 논하겠으니, 폐하께서는 선택하소서.
지금의 병폐病弊를 바로잡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일을 확립해야 하고 일을 확립하는 근본은 사람을 아는 데 달려 있으니, 시행하는 바의 마땅함은 반드시 먼저 대신大臣이 인물을 알아보는지 여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옛날 비상한 공功을 세우고자 한 자들은 반드시 사람을 알아보는 밝은 지혜가 있었으니, 만일 사람을 알아보는 밝은 지혜가 없으면 규칙을 따르고 승묵繩墨(法度)을 준수하여 허물을 적게 하기를 구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자신을 분명하게 알아 자신의 재분才分을 편안히 여기는 것들입니다.
도道는 강습하여 알 수 있고 덕德은 억지로 힘써서 능할 수 있지만 오직 사람을 아는 밝은 지혜는 배워서 될 수가 없어 반드시 천품天稟에서 나오니, 예컨대 소하蕭何가 한신韓信을 알아본 것이 어찌 방법이 있어서 전수해줄 수 있는 것이었겠습니까?
제갈공명諸葛孔明(諸葛亮)과 같이 어진 사람도 사람을 아는 밝은 지혜는 부족하였으니 이 때문에 마속馬謖의 일로 실수를 하였으나, 공명孔明 또한 자신을 아는 데에 분명하였으니 이 때문에 종신토록 감히 위연魏延을 등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인조仁祖(仁宗)께서 재위在位하실 적에는 크고 작은 일에 관계없이 한결같이 법法에 맡기고, 어질고 불초不肖한 사람을 막론莫論하고 한결같이 공론公論에 맡겨서, 일은 효험效驗이 입증된 뒤에 시행하고 사람은 시험해본 뒤에 등용하여 끝내 비상非常한 공功을 구하지 않으셨으니, 이는 진실로 당시의 대신大臣이 사람을 알아보는 밝은 지혜에 참여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옛날 의원들은 병자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얼굴빛을 관찰하여 오장육부五臟六腑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병病을 치료할 적에 가슴을 가르고 지라를 자르며 위胃와 신장腎臟을 세척하는 변칙적인 방법을 썼고, 만일 그러한 기술이 없으면 감히 이러한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사람을 알아보는 밝은 지혜가 없으면서 비상한 공功을 세우고자 하여 승묵繩墨(法度)을 다 풀어놓고 옛날의 비상한 사람을 사모한다면, 이것은 비유하건대 의원이 맥脈을 제대로 살피지도 못하면서 화타華佗의 방법을 시험하려는 것이니, 칼날을 잡고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른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옛날 방관房琯이 유질劉秩을 칭찬하고 관파關播가 이원평李元平을 등용한 것이 이 경우이니, 지금까지도 이것을 사람들이 비웃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오늘날의 대신大臣을 살펴보시건대 사람(인물)을 알아본다고 여기십니까?
근자에 발탁한 여러 인재들은 모두 그(王安石)의 집에 찾아가서 그와 악수한 사람들로, 교분을 맺음이 견고한가를 살핀 뒤에 감히 등용하였으니, 이는 이들이 자기(王安石)와 함께 힘을 다하고 마음을 합해서 함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여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벼슬자리에 나아가 편안히 앉기도 전에 서로 다투어 공격하는 자가 마치 고슴도치 털처럼 떼 지어 일어났으니, 폐하께서 이것을 가지고 징험해보신다면 그가 인물을 알아보지 못함이 또한 분명한 것입니다.
다행히 지금 천하에 일이 없어서 단지 같고 다른 의논이 성상聖上의 귀를 번거롭게 하고 어지럽힘에 불과할 뿐이지만, 만약 변경에 급박한 경보가 있고 도적이 몰래 나와서 고개를 들고 숙이는 사이에 성패가 달려 있고 숨 한 번 내쉬는 사이에 변고가 있는데도, 등용한 사람들이 모두 오늘날처럼 별안간 모였다가 별안간 흩어져서 일을 당하여 해체되어 다시 알 수 없다면, 이는 사직社稷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화타華佗와 같은 명의가 세상에 잘 나오지 않는데도 천하 사람들은 일찍이 의원을 폐하지 않았고, 소하蕭何와 같은 훌륭한 재상이 세상에 잘 나오지 않는데도 천하 사람들은 일찍이 다스림을 폐하지 않았으니, 폐하께서 반드시 비상한 공功을 세우고자 하신다면 사람을 알아보는 보좌補佐가 나오기를 기다리시고,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좌우左右의 신하들에게 명해서 분수를 편안히 여기고 법法을 지키게 할 뿐입니다.
성책聖策에 이르시기를 “생민生民이 있은 이래로 지극히 훌륭한 정치를 말하는 자가 반드시 당唐‧우虞와 성주成周의 때를 말하는데,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에 칭찬한 바에서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후세에 현명한 군주와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신하가 서로 함께 걱정하고 애써서 한 시대의 사업을 경영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극진히 선善하지는 못하였으나
요컨대 그 성취한 바를 찾아보면 또한 반드시 말할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니, 이것을 자세히 밝히도록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신臣은 생각하건대 이것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 시행한 방법은 각각 그 시대를 따르기 때문에 알 수 없고, 알 수 있는 것은 반드시 하늘을 두려워하고 반드시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고 반드시 조종祖宗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경계하고 경계하라.
하늘이 밝게 보고 계시니, 천명天命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여러 사람에게 상고해서 자기 의견을 버리고 남을 따르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크게 찬란하다.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에서 말한 바가 대략 이와 같으니, 일찍이 “천명天命을 굳이 두려워할 것이 없고 사람들의 말을 굳이 따를 것이 없고 조종祖宗의 법을 굳이 본받을 것이 없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옛날 전진前秦 부견苻堅이 왕맹王猛을 등용하자 번세樊世와 구등仇滕과 석보席寶가 좋아하지 않았고, 위정공魏鄭公(魏徵)이 당唐 태종太宗에게 인의仁義를 행할 것을 권하자 봉륜封倫이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 사람들 중에 폐하께서 사람들의 말을 어기고 자기 의견을 따를 것을 바라는 자들은 반드시 이것을 가지고 구실 삼을 것이니, 폐하께서 말씀하신 바 현명하고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자들이란 것이 어찌 그 뜻이 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시겠습니까?
그러나 신臣은 원컨대 왕맹王猛과 위정공魏鄭公이 행한 바를 고찰해서 지금에 찾아보시고자 하오니, 왕맹王猛이 어찌 관직을 설치하여 이익을 도모한 적이 있었으며, 위정공魏鄭公이 어찌 돈을 빌려주고 이식利息을 취한 적이 있었습니까?
또 그들을 좋아하지 않은 자들은 몇 사람에 지나지 않았으니, 진실로 천하 사람들이 믿고 또 복종하는 데 무방하였습니다.
지금 천하에 마음을 가진 자들이 모두 원망하며 입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모두 비방하고 있으니, 옛날 군주와 신하가 서로 함께 걱정하고 애쓰면서 한 시대의 사업을 경영한 자들은 이와 같지 않았을 듯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백 명이 모여 있을 적에는 의논이 공정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하였으니, 하물며 천하 사람이겠습니까?
지금 천하 사람들이 비방하는데도 폐하께서는 생각을 돌리지 않으시니, 신臣은 지금 이 사태가 언제 멈출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저 흘러가는 배에 비유하건대 멈출 곳을 모르겠다.
마음에 근심하여 가매假寐할 겨를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구구區區한 저의 충성을 부디 폐하께서는 살펴주소서.
신臣은 삼가 죽을죄를 무릅쓰고 대책문對策文을 올립니다.
진사시進士試의 대책문對策文을 모의模擬해서 당시의 정사政事를 풍간諷諫하였는데, 분석하여 제시한 부분은 앞의 것보다 더 뛰어나다.
소식蘇軾은 당시에 청묘전靑苗錢 등 제치삼사조례사制置三司條例司의 여러 법法에 안주함과 또 횡산橫山에 용병用兵한 일 등을 병통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특별히 대책문對策文을 모의해서 직언直言하고 과감히 간언諫言하는 기개를 다하였는데, 당시에 일찍이 이 글이 신종神宗에게 알려졌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어리석은 소견所見에는 이 글도 일들을 조목조목 나열해서 말함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일단一段의 정채精采가 나는 의견이 있어 임금을 깨우쳐 확실하게 손을 쓰게 할 만한 부분이 없으니, 가의賈誼의 〈치안책治安策〉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