再上書는 不出前書所言이요 特於前書所未及盡者에 更爲曲鬯之耳니라
自古聰明豪傑之主 如漢高帝, 唐太宗
이 皆以受諫如流
하고 改過不憚
으로 號爲秦漢以來
하니이다
所用之人은 有邪有正하고 所作之事는 有是有非하니
是非邪正을 兩言而定이니 正則用之하고 邪則去之하며 是則行之하고 非則改之니이다
此理甚明하야 猶饑之必食하고 渴之必飮하니 豈有別生義理하고 曲加粉飾하야 而能欺天下哉잇가
이라하니 陛下自去歲以來
로 所行新法
은 皆不與治同道
니이다
하야 四海騷動
하고 行路怨咨
하니 自宰相以下
로 皆知其非
로되 而不敢爭
이니이다
臣愚蠢
하야 不識忌諱
하야 로되 而學識淺陋
하야 不足以感動聖明
하니이다
近者
에 하고 로되 然卒不免一言其非者
는 豈非物議沸騰
하고 事勢迫切
하야 而不可止歟
잇가
自非見利忘義하야 居之不疑者면 孰肯終始膠固하야 不自湔洗이릿가
하야 如逃垢穢
하야 惟恐不脫
하니 人情畏
가 一至於此
하니이다
近者
에 호되 陛下已有悔悟意
라하야 道路相慶
하야 如蒙大賚
라하니이다
實望陛下於旬日之間
에 하고 洗蕩乖僻
하야 追還使者
하고 而罷條例司
러니
今者側聽所爲컨대 蓋不過使監司로 體量抑配而已라하니 比之未悟하면 所較幾何잇고
臣以爲此法은 譬之컨대 醫者之用毒藥하야 以人之死生으로 而試其未效之方이니 三路之民이 豈非陛下赤子완대 而可試以毒藥乎잇가
今日之政은 小用則小敗하고 大用則大敗하니 若力行而不已면 則亂亡隨之하리니 臣非敢過爲危論하야 以聳動陛下也니이다
自古存亡之所寄者 四人而已니 一曰民이요 二曰軍이요 三曰吏요 四曰士니
靑苗, 助役之法이 成이면 則農不安하고 均輸之令이 出이면 則商賈不行하야 而民始憂矣요
內則不取謀於元臣侍從
하고 而專用新進小生
하며 外則不責成於守令監司
하고 而專用靑苗使者
하며 하야 而
니이다
하시니 所削者
는 一人而已
나 然士莫不悵恨者
는 以陛下有厭薄其徒之意也
니이다
今
又欲漸消進士
하고 純取
하니 雖未有成法
이나 而小人招權
하야 自以爲功
하야 更相扇搖
하야 以謂必行
이라하야 而士始失望矣
니이다
今進士半天下
하니 하리니 若法令一更
이면 則士各懷廢棄之憂
요
昔秦禁挾書에 而諸生皆抱其業하야 以歸勝, 廣하야 相與出力而亡秦者는 豈有他哉잇가
民憂而軍怨하고 吏解體而士失望이면 禍亂之源이 有大於此者乎잇가
今未
也
나 一旦有急
이면 則致命之士 必寡矣
리니 方是之時
하야 잇가
去年諸軍之始倂也에 左右之人이 皆以士心樂倂으로 告陛下하니이다
近者
이 告
吏率錢行賂
하야 以求不倂
하니 則士卒不樂
을 可知矣
니이다
夫諂諛之人이 苟務合意하야 不憚欺罔者 類皆如此라
故로 凡言百姓樂請靑苗錢하고 樂出助役錢者를 皆不可信이니이다
何以言之
오 하리니 前有抑配之禁
하고 後有失陷之罰
이면 爲陛下官吏 不亦難乎
잇가
故로 臣以爲旣行靑苗使면 則不當禁抑配라하노니 其勢然也일새니이다
人皆謂陛下聖明神武하야 必能徙義修慝하야 以致太平이어늘
而近日之事
는 乃有
之風
하니 此臣所以憤懣太息而不能已也
니이다
昔賈充用事에 天下憂恐한대 而庾純, 任愷 戮力排之러니
及充出鎭秦涼에 忠臣義士 莫不相慶하야 屈指數日하야 以望維新之化하니이다
而馮紞之徒 更相告曰 賈公遠放이면 吾等失勢矣라하야
自古로 惟小人爲難去하니 何則고 去一人이면 而其黨破壞라
今天下賢者 亦將以此觀陛下하야 爲進退之決하리니 或再失望이면 則知幾之士 相率而逝矣리이다
재차 올린 글은 앞 글에서 말한 내용을 벗어나지 않고 다만 앞 글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다시 곡진하게 말했을 뿐이다.
신臣은 들으니, 백익伯益이 우禹임금을 경계하기를 “어진 이에게 맡기되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사악한 이를 물리치되 의심하지 말라.”라고 하였으며,
중훼仲虺가 탕湯임금의 덕德을 말하기를 “사람을 등용할 때에 자신으로 생각하고, 허물을 고칠 때에 인색하지 않았다.”라고 하였으며,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효산崤山에서 패전하고 잘못을 뉘우쳐 통렬히 스스로 맹세하자, 공자孔子께서 이것을 《춘추春秋》에 기록하였습니다.
예로부터 한漢나라 고제高帝와 당唐나라 태종太宗과 같은 총명聰明하고 호걸豪傑스러운 군주들은 모두 간언을 받아들이기를 흐르는 물과 같이 하여 거스르지 않고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지 않음으로써 진秦‧한漢 이래로 백왕百王의 으뜸이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의 허물은 일식日食‧월식月食과 같아서 잘못이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보고, 허물을 고치면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본다.”라고 하셨으니, 성현聖賢이 거동을 명백明白하고 정직正直하게 하기를 이와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등용하는 인물에는 간사한 사람이 있고 정직한 사람이 있으며, 하는 일에는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과 간사하고 정직함은 두 말로 충분히 결정할 수 있으니, 정직하면 쓰고 간사하면 제거하며, 옳으면 행하고 그르면 중지하는 것입니다.
이 이치가 매우 분명하여 굶주리면 반드시 밥을 먹고 목마르면 반드시 물을 마시는 것과 같으니, 어찌 별도로 다른 의리義理를 내세우고 곡진히 분식粉飾(아름답게 미화함)을 더해서 천하天下 사람들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덕德이 있어 나라를 잘 다스린 자와 도道를 함께하면 나라가 흥하지 않음이 없고, 덕德이 없어 나라를 어지럽힌 자와 일을 함께하면 나라가 망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폐하께서 작년 이래로 시행하신 신법新法들은 모두 옛날 나라를 잘 다스린 자와 도道를 함께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제치삼사조례사制置三司條例司를 세우고 청묘사자靑苗使者를 보내고 조역전助役錢을 거두고 균수법均輸法을 시행해서 천하의 백성들이 소동하고 길 가는 자들이 원망하고 있으니, 재상으로부터 이하가 모두 그 잘못을 알고 있으나 감히 간쟁하지 못합니다.
신臣은 어리석고 미련하여 꺼리고 피할 줄을 몰라서 지난번에 상소하여 이것을 자세히 논하였으나, 학식이 얕고 누추해서 성명聖明하신 군주를 감동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근자近者에 옛 정승과 신하들과 번진藩鎭에 있는 자들과 시종관侍從官들이 너도나도 다투어 그 불편함을 말하고, 두세 명의 대간臺諫에 이르러서는 본래 신법新法을 주장하는 자들과 교분을 맺어서 안팎에서 선창하고 화답하는 사람들이었으나 끝내 한 번 그 잘못을 말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것은 어찌 공론公論이 비등沸騰하고 사세事勢가 절박하여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이익을 보고 의리를 잊어서 이것을 편안히 여기고 의심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면, 누가 기꺼이 시종始終 고집하여 스스로 잘못을 씻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예컨대 오사맹吳師孟은 제거提擧에서 면직될 것을 청원하였고 호종유胡宗愈는 검상檢詳 벼슬을 맡으려고 하지 않아서 벼슬자리를 떠나기를 마치 더러운 오물을 피하듯이 하여 행여 벗어나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인정人情에 신법新法을 미워하고 싫어함이 마침내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근자近者에 중외中外 사람들이 크게 떠들어 말하기를 “폐하께서 이미 뉘우치고 깨달으시는 의향이 있으시다.”라고 하면서 도로에서 서로 경하하여 큰 은혜를 입은 듯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실로 폐하陛下께서 열흘 사이에 크게 덕음德音을 내리시고 잘못된 일을 깨끗이 씻어서 청묘사자靑苗使者를 다시 돌아오게 하고 제치삼사조례사制置三司條例司를 혁파할 것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신 일을 엎드려 들으니, “감사監司로 하여금 억지로 배정하는 것을 잘 헤아려서 처리하게 할 뿐이다.”라고 하니, 폐하께서 깨닫지 못했을 때와 비교하면 차이가 얼마나 됩니까?
이는 《맹자孟子》에 이른바 “형의 팔뚝을 비틀어서는 안 됨을 알면서도 우선 천천히 비틀라고 권하고, 이웃집 닭을 훔쳐서는 안 됨을 알면서도 매달 한 마리만 훔쳐 먹는다.”라는 것이니, 제왕帝王이 허물을 고치는 것을 어찌 이와 같이 형식적으로 할 수 있습니까.
신臣이 또 들으니, “폐하陛下께서 ‘이 청묘법靑苗法을 우선 삼로三路에 시행하라.’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신臣은 생각하건대 이 법法은 비유하면 의원醫員이 독약毒藥을 써서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효험이 입증되지 않은 약방藥方을 시험하는 것과 같으니, 삼로三路의 백성들이 어찌 폐하陛下의 적자赤子가 아니기에 독약毒藥을 가지고 시험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날에 시행하는 정사政事는 작게 시행하면 작게 실패하고 크게 시행하면 크게 실패하니, 만약 강력히 시행하고 그치지 않으신다면 혼란과 멸망이 뒤따를 것이니, 신臣이 감히 지나치게 과장하여 위험한 말씀을 드려서 폐하陛下를 놀라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국가의 존망存亡이 달려 있는 것은 네 종류의 사람일 뿐이니, 첫 번째는 백성(평민)이고 두 번째는 군인이고 세 번째는 관리이고 네 번째는 선비입니다.
이 네 종류의 사람 중에 한 가지라도 그 마음을 잃으면 충분히 변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陛下께서는 일거一擧에 이 네 가지를 범하셨습니다.
청묘전靑苗錢과 조역전助役錢을 거두는 법法이 이루어지면 농민農民들이 불안해 할 것이고, 균수均輸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면 상고商賈들이 물건을 유통하지 않을 것이므로 백성들이 비로소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군대를 합병하여 줄이고 늙고 병든 자를 구박하여 축출하며, 심지어는 수자리 사는 병사들의 아내까지 사졸士卒과 함께 그 사이에 뒤섞여 거처하여 군사들의 신분을 폄하하여 강배降配와 같게 하고, 회전淮甸 지방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서 거의 유방流放하는 신세와 같게 될 것입니다.
나이가 50세에 가까우면 사람마다 추방될까 근심하는 마음을 품어서 군사들이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안으로는 원로대신元老大臣과 시종관侍從官들에게 지모智謀를 취하지 않고 오로지 신진소년新進少年들을 등용하며, 밖으로는 수령守令과 감사監司에게 성공을 책임 지우지 않고 오로지 청묘사자靑苗使者를 등용하며, 쓸데없는 관서를 많이 설치하고 노성老成한 자들을 물리쳐서 관리들이 비로소 해체解體하게 되었습니다.
폐하陛下께서 친히 임석하여 선비들을 뽑으시는 것을 천하天下에서는 ‘용비방龍飛榜’이라 일렀는데, 진사進士 한 사람(장원급제자)이 맨 먼저 옛날의 은전恩典을 박탈당하여 다시는 진사進士 출신을 등용하지 않을 뜻을 보이시니, 박탈당한 것은 한 사람뿐이나 선비들이 서글퍼하고 한恨하지 않는 자가 없는 것은 폐하陛下께서 진사進士의 무리들을 싫어하고 하찮게 여기는 뜻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또다시 점점 진사과進士科를 줄이고 순전히 명경과明經科로 선비들을 취하고자 하니, 아직 완성된 법法이 있지는 않으나 소인小人들이 권력을 잡아서 스스로 이것을 공功이라고 내세우며 번갈아 서로 선동해서 반드시 시행할 것이라고 말하여 선비들이 비로소 실망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사과進士科에 응시하려고 하는 자들이 천하天下에 절반이나 되는데, 20세 이후로는 곧 경서經書의 주의注義를 외거나 기억하지 못하여 명경학明經學을 하지 못할 것이니, 만약 법령法令이 한 번 바뀌면 선비들이 각각 과거공부科擧工夫를 폐지해야 하는 걱정을 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재人材의 장점과 단점이 끝내 여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진秦나라에서 책을 끼고 다니는 것을 금하자 제생諸生들이 모두 공부하던 서책을 안고서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에게 귀의하여 서로 힘을 내어 진秦나라를 망하게 하였으니, 이는 어찌 다른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또한 다만 학업을 잃어 돌아갈 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臣은 폐하陛下께서 다시는 이것(明經科 등용)을 말씀하지 마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근심하고 군사들이 원망하며 관리들이 해체되고 선비들이 실망한다면 화란禍亂의 근원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 아직 화란禍亂이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하루아침에 국가에 위급한 일이 있으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인사들이 반드시 적을 것이니, 이때를 당하여 지금 윗사람에게 영합하기를 바라고 구차히 용납하는 무리들이 폐하陛下를 위해서 판탕板蕩을 수습하고 토붕土崩을 그치게 할 자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여러 군대를 처음 합병할 때에 좌우에 있는 측근들은 모두 군사들이 합병을 좋아한다고 폐하께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근자近者에 방정군인放停軍人 이흥李興이 “호익군虎翼軍의 관리가 돈을 받고 뇌물을 써서 합병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고발하였으니, 사졸士卒들이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첨하는 사람들이 구차히 윗사람의 뜻에 영합하기를 힘써서 기망欺罔을 꺼리지 않는 것이 대체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백성들이 청묘전靑苗錢을 청원하고 조역전助役錢을 내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자들을 모두 믿을 수가 없습니다.
폐하陛下께서는 청묘전靑苗錢을 억지로 배정함을 과연 금지할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이는 단지 금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금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만약 이 돈을 방출하고 회수하지 않는다면 주현州縣의 관리가 책벌責罰을 면치 못할 것이요, 만약 이 돈을 억지로 배정하지 않는다면 청원하는 집안들은 〈대부분 지극히 가난하여〉 뒤에 반드시 징수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앞에는 억지로 배정하지 말라는 금령이 있고 뒤에는 청묘전靑苗錢을 회수하지 못하는 잘못에 대한 벌罰이 있다면, 폐하陛下의 관리官吏 노릇하기가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신臣은 이미 청묘사자靑苗使者를 파견했다면 강제로 배정함을 금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니, 그 형세가 이렇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폐하陛下께서는 성명聖明하고 신무神武하셔서 반드시 의리義理로 옮기고 잘못을 고쳐서 태평성세를 이룰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일은 도리어 문과수비文過遂非하는 유풍이 있으니, 이 때문에 신臣이 답답해하고 크게 한숨 쉬어서 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옛날 가충賈充이 권력을 행사하자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고 두려워하였는데, 유순庾純과 임개任愷가 힘을 다하여 이들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가충賈充이 외직으로 나가 진주秦州와 양주涼州 지방의 진영을 맡게 되자, 충신忠臣과 의사義士들이 서로 경하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손가락을 꼽아 날짜를 세며 새로운 교화가 내려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풍담馮紞의 무리가 번갈아 서로 말하기를 “가공賈公이 멀리 추방되면 우리들이 권세를 잃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에 서로 함께 모의해서 가충賈充이 다시 조정에 남게 되니, 진晉나라의 혼란이 여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로부터 소인小人은 제거하기가 어려우니, 왜냐하면 한 명을 제거하면 그 무리들이 파괴됩니다.
이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계략을 세우고 유세游說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천하天下의 현자賢者들 또한 장차 이것을 가지고 폐하陛下를 관찰하여 진퇴進退를 결정할 것이니, 만일 혹시라도 다시 현자賢者들을 실망시키게 되면 기미를 아는 선비들이 서로 이끌고 떠나갈 것입니다.
어찌 모두 편안함을 탐하고 녹봉祿俸을 생각해서 차마 떠나가지 못하는 신臣들과 같겠습니까?
신臣은 미치고 불손不遜하여 폐하陛下의 뜻을 거스른 것이 많습니다.
감히 다시 너그러운 은혜를 바랄 수가 없으니, 부복俯伏하고 목을 늘이고 죽여주시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