執事以高才盛名
으로 作牧於此
하시니 蓋亦嘗有以相馬之說
로 告於
者乎
잇가
夫馬者는 有昂目而豊臆하고 方蹄而密睫하야 捷乎若深山之虎하고 曠乎若秋後之兎하며 遠望에 目若視日하고 而志不存乎芻粟하니 若是者는 飄忽騰踔하야 去而不知所止라
是故로 古之善相者는 立於五達之衢하야 一目而眄之하고 聞其一鳴하고 顧而循其色하면 馬之技盡矣니 何者오
士之賢不肖 見於面顔하고 而發泄於辭氣하야 卓然其有以存乎耳目之間이어늘 而必曰久居而後察이라하면 則亦名相士者之過矣니이다
其足跡이 偶然而至於執事之門하고 其平生之所治以求聞於後世者를 又無所挾持以至於左右하니 蓋亦易疎而難合也니이다
然
히 舟行六十日
에 過郡十一
과 縣三十有六
하야 取所見郡縣之吏數十百人
이어늘 莫不孜孜論執事之賢
하고 而敎之以求通於下吏
하니 且執事何修而得此稱也
잇고
軾은 非敢以求知하야 而望其所以先後於仕進之門者요 亦徒以爲執事立於五達之衢하야 而庶幾乎一目之眄하야 或有以信其平生爾니이다
軾
은 將自楚遊
하고 自魏無所不遊
하리니 恐他日
에 以不見執事爲恨也
라
형주荊州는 남북이 교차하는 지점이고 사대부들이 왕래하는 요충지입니다.
집사께서 높은 재주와 성대한 명성으로 이곳의 목사牧使(지주사知州事)가 되셨는데, 일찍이 말의 상相을 보는 말씀으로 좌우左右에게 아뢴 자가 있었습니까?
제가 들으니, “훌륭한 준마는 하루에 천 리를 가면서도 위태롭지 않아서,
등마루는 움직이지 않는 듯하고 발은 땅에 붙지 않는 듯하며,
높은 데로 올라가면서도 앞으로 기울지 않고 아래로 달리면서도 뒤로 기울지 아니하여,
이와 같은데도 천하에 알아보는 자가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 상相은 알아보지 못하고 그 기예만 바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 중에는 눈이 높이 박혀 있고 가슴이 넓고 발굽이 네모지고 눈썹이 촘촘하여 깊은 산의 호랑이처럼 빠르고 늦가을 토끼처럼 활달하며, 바라보는 눈은 해처럼 광채가 나고 꼴이나 곡식에 마음을 두지 않는 놈이 있으니, 이와 같은 말은 경쾌하게 높이 뛰어오르고 달려가 그칠 줄을 모릅니다.
이 때문에 옛날에 말의 상相을 잘 보는 자들은 사통오달의 거리에 서서 한눈에 잠깐 쳐다보고 울음소리를 한번 듣고서 돌아보며 색깔을 훑어보면 말의 기예를 다 알았으니, 이는 어째서이겠습니까?
그 상相이 외면에 넘쳐서 가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선비의 어짊과 불초함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소리에 드러나 귀와 눈 사이에 확실하게 나타는데, 굳이 말하기를 “함께 오래 있은 뒤에야 선비의 재능을 살필 수 있다.”라고 한다면 이는 선비를 잘 알아보는 자라고 칭하는 자의 잘못일 것입니다.
저는 서천西川(촉蜀 지역)의 비천한 사람이요, 형주荊州의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발걸음이 우연히 집사의 문에 이르렀고 또 평소 잘 다듬어 후세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문장들을 좌우左右에게 가지고 온 적이 없었으니, 아마도 또한 소원疏遠하기 쉽고 합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촉蜀으로부터 초楚(형주荊州)에 이르기까지 60일 동안의 뱃길에서 11개 군郡과 36개 현縣을 지나오면서 만나본 군현의 관리가 수십 명 내지 백 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모두 집사의 어짊을 열심히 말하고 저에게 집사의 하리下吏에게 성명姓名을 통보해 주기를 청하라고 가르쳐주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집사께서는 어떻게 훌륭한 행실을 닦으시어 이런 칭찬을 얻으셨습니까?
저는 감히 집사께서 저를 알아주시어 벼슬하는 길목에서 앞뒤로 주선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요, 오직 집사께서 사통오달의 거리에 서서 행여 한눈에 바라보고 혹 제가 평생 동안 지니고 있는 것을 믿어주실까 여겨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어찌 왕공王公만이 선비를 가리겠습니까?
저는 장차 초楚로부터 위魏에 가고 위魏로부터 두루 유람하고자 하니, 후일에 집사를 뵙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길까 염려됩니다.
이 때문에 감히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