某每讀詩
에 至
하고 讀書
에 至
하야는 常竊悲
하니이다
及觀
에 見孔子厄於陳蔡之間
이로되 而絃歌之聲不絶
하고 顔淵仲由之徒 相與問答
하니 夫子曰
라하니 吾道非耶
아
吾何爲於此오 顔淵曰 夫子之道至大라 故로 天下莫能容이니이다
夫子油然而笑曰 回아 使爾多財면 吾爲爾宰라하시니이다
夫天下雖不能容이나 而其徒自足以相樂을 如此하니 乃今知周公之富貴 有不如夫子之貧賤이니이다
夫以(周)[召]公之賢과 以管蔡之親으로도 而不知其心하니 則周公이 誰與樂其富貴시리오
而夫子之所與共貧賤者는 皆天下之賢才니 則亦足與樂乎此矣시리이다
聞今天下에 有歐陽公者하니 其爲人이 如古孟軻, 韓愈之徒요
而又有梅公者하야 從之遊하야 而與之上下其議論이라하니이다
其後益壯하야 始能讀其文詞하고 想見其爲人하니 意其飄然脫去世俗之樂하고 而自樂其樂也니이다
方學爲
하야 求斗升之祿
일새 自度無以進見於諸公之間
이니이다
今年春에 天下之士 群至於禮部어늘 執事與歐陽公으로 實親試之하시니 誠不自意獲在第二하니이다
旣而오 聞之人호니 執事愛其文하야 以爲有孟軻之風이라하시고
而歐陽公亦以其能不爲世俗之文也
라하야 而取焉
이라 是以
로 라하니이다
非左右爲之先容이요 非親舊爲之請屬이로되 而嚮之十餘年間에 聞其名而不得見者 一朝爲知己하니이다
退而思之호니 人不可以苟富貴요 亦不可以徒貧賤이라 有大賢焉而爲其徒면 則亦足恃矣라하니이다
苟其僥一時之幸하야 從車騎數十人하야 使閭巷小民으로 聚觀而贊歎之라도 亦何以易此樂也리오
執事名滿天下나 而位不過五品이로되 其容色이 溫然而不怒하고 其文章이 寬厚敦朴而無怨言하시니
글은 매우 깨끗하나 구상은 긴요함이 부족하다.
저는 매번 《시경詩經》을 읽을 적에 〈치효鴟鴞〉에 이르고, 《서경書經》을 읽을 적에 〈군석君奭〉에 이르러서는 항상 속으로 주공周公의 불우함을 슬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사기史記》를 읽어보니, 공자孔子께서 진陳․채蔡의 사이에서 곤액을 당하셨는데 거문고와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안연顔淵과 중유仲由의 무리가 함께 서로 문답할 적에 부자夫子께서 말씀하시기를 “ ‘외뿔소도 아니고 범도 아닌데 저 광야를 따르게 한단 말인가.’라고 하니, 나의 도道가 잘못되었는가?
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라고 하시자,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부자夫子의 도가 지극히 크기 때문에 천하가 능히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납되지 못함이 어찌 나쁠 것이 있겠습니까?
용납되지 못한 뒤에 군자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자夫子께서는 유유하게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안회顔回야, 만일 네가 재물이 많다면 내가 너의 재宰가 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천하가 용납하지 못하나 문도들이 서로 즐거워하기를 이와 같이 할 수 있었으니, 저는 지금에야 비로소 주공周公의 부귀가 부자夫子(공자孔子)의 빈천만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공召公의 어짊과 관숙管叔과 채숙蔡叔 등 형제들도 주공周公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으니, 주공周公이 누구와 함께 그 부귀를 즐거워하셨겠습니까?
그런데 부자夫子께서는 빈천을 함께한 자들이 모두 천하의 어진 인재들이었으니, 그렇다면 또한 충분히 이것을 즐거워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7, 8세 때에 처음 독서할 줄을 알았는데,
이때부터 “지금 천하에 구양공歐陽公(구양수歐陽脩)이란 분이 계신데 그 사람됨이 옛날 맹가孟軻와 한유韓愈의 무리와 같고,
또 매공梅公이란 분이 계신데 서로 교유하여 구양공歐陽公과 함께 오르내리며 의논한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뒤에 더욱 장성해서 비로소 그 문장을 읽어보고 사람됨을 상상해보니, 짐작컨대 세속의 즐거움을 깨끗이 떨쳐버리고 스스로 자신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막 그때에 대우對偶와 성률聲律의 문장 짓는 방법을 배워서 한 말 한 되의 녹봉을 구하고 있었으므로 스스로 헤아리기에 두 분 사이에 나아가 뵐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경사京師에 온 지 1년이 넘었으나 일찍이 그 문을 엿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금년 봄에 천하의 선비들이 무리 지어 예부禮部의 과장科場에 이르렀을 적에 집사께서 구양공歐陽公과 함께 친히 시험을 보이셨는데, 실로 뜻하지 않게 제가 2등으로 급제하였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에게 들으니, 집사께서는 저의 글을 사랑하여 “맹가孟軻의 유풍이 있다.”고 하셨고,
구양공歐陽公 또한 “능히 세속의 글을 짓지 않는다.”라고 칭찬하여 취하셨기 때문에 제가 여기에 있게 되었다고들 합니다.
저의 좌우 사람들이 저를 위해 주선한 것도 아니요 친구들이 청탁한 것도 아닌데, 지난 10여 년 동안 이름만 듣고 얼굴을 뵐 수 없었던 분들이 하루아침에 저를 인정해주셨습니다.
물러나 생각해보니 ‘사람은 구차히 부귀해서도 안 되고 또한 한갓 빈천해서도 안 되니, 대현大賢이 계시는데 그 문도가 된다면 또한 충분히 믿을 만하다.’라고 여겨졌습니다.
만일 한때의 요행으로 수레와 기마에 수십 명이 따라다녀서 여항閭巷의 백성들로 하여금 모여 구경하면서 칭찬하고 감탄하게 하더라도 어찌 이 즐거움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전傳에 이르기를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한가롭게 유유자적하면서 세월을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집사께서는 명성이 천하에 가득하나 지위는 5품에 지나지 않는데도 얼굴빛이 온화하여 성내지 않고 문장이 관후寬厚하고 돈박敦朴하여 원망하는 말이 없으십니다.
이는 반드시 이 도를 즐기는 바가 있어서일 것이니, 저는 참여하여 듣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