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聞 天下治亂은 出於下情之通塞이니 至治之極엔 至於小民하야도 皆能自通하고 大亂之極엔 至於近臣하야도 不能自達이라하니이다
易曰 天地交泰라한대 其詞曰 上下交而其志同이라하고
又曰 天地不交否라한대 其詞曰 上下不交而天下無邦이라하니
上下不交하면 則雖有朝廷君臣이나 而亡國之形이 已具矣니 可不畏哉잇가
馴致其事하야 至安祿山反하야 兵已過河로되 而明皇猶以爲忠臣하니 此는 無他라
陛下爲政九年에 除執政臺諫外에 未嘗與群臣接하시니이다
然
이나 天下不以爲非者
는 以謂
에 不得不爾也
니이다
今者는 祥除之後요 聽政之初니 當以通下情, 除壅蔽로 爲急務니이다
沿邊重地에 此爲首冠이라 臣當悉心論奏요 陛下亦當垂意聽納이니이다
祖宗之法에 邊帥當上殿面辭어늘 而陛下獨以本任闕官하고 迎接人衆爲詞하사 降旨拒臣하야 不令上殿하시니 此何義也잇고
本任闕官은 自有轉運使權攝하야 無所闕事요 迎接人衆은 不過更支十日糧이니 有何不可완대 而使聽政之初에 將帥不得一面天顔而去니잇고
有識之士皆謂 陛下厭聞人言하고 意輕邊事하야 其兆見於此矣라하니이다
臣備位講讀하야 日侍帷幄이 前後五年이니 可謂親近이어늘 方當戍邊하야 不得一見而行하니 況疎遠小臣이 欲求自通이면 亦難矣리이다
今陛下聽政之初
에 不行乘乾出震見離之道
하시고 廢祖宗
하야 而襲行垂簾不得已之政
하시니 此朝廷有識
이 所以驚疑而憂慮也
니이다
臣不得上殿은 於臣之私에 別無利害로되 而於聽政之始 天下屬目之際에 所損聖德이 不小하니이다
然臣始者本俟上殿하야 欲少效愚忠이러니 今來에 不敢以不得對之故로 便廢此言이니이다
古之聖人이 將有爲也인댄 必先處晦而觀明하고 處靜而觀動하니 則萬物之情이 畢陳於前이라
不過數年이면 自然知利害之眞이요 識邪正之實이니 然後에 應物而作이라
夫操舟者는 常患不見水道之曲折이로되 而水濱之立觀者는 常見之하나니 何則고
操舟者는 身寄於動하고 而立觀者는 常靜故也니이다
奕碁者는 勝負之形이 雖國工이라도 有所不盡이로되 而袖手旁觀者는 常盡之하나니 何則고
漢景帝卽位之初에 首用鼂錯하야更易法令하고 黜削諸侯라가
遂成
이러니 景帝往來
間
에 寒心者數月
하야 終身不敢復言兵
하니이다
兵連禍結三十餘年
하니 然後
에 下哀痛詔
하고 하니이다
臣은 以此로 知古者英睿之君이 勇於立事하면 未有不悔者也니이다
景帝之悔速故로 變而復安하고 武帝之悔遲故로 幾至於亂하니 雖遲速安危小異나 然比之常靜無心하야 終始不悔를 如孝文帝者하면 不可同年而語矣니이다
今陛下聖智絶人하시고 春秋鼎盛하시니 臣願虛心循理하사 一切未有所爲에 黙觀庶事之利害와 與群臣之邪正호되 以三年爲期하사 俟得利害之眞과 邪正之實然後에 應物而作하소서
使旣作之後
에 天下無恨
하고 陛下亦無悔
하야 上下同享太平之利
하면 則雖盡南山之竹
이라도 不足以紀聖功
이요 兼
之壽
라도 不足以報聖德
이니이다
由此觀之컨대 陛下之有爲에 惟憂太早요 不患稍遲가 亦已明矣니이다
古人云 有病不治면 常得中醫라하니 雖未能盡除小疾이나 然賢於誤服惡藥하야 覬萬一之利하야 而得不救之禍者遠矣니이다
故로 輒進此說하오니 敢望陛下 深信古語하고 且守中醫安穩萬全之策하사 勿爲惡藥所誤하시면 實社稷宗廟之利요 天下幸甚이리이다
01. 정주定州에 부임하면서 조사朝辭하는 일을 논한 글
신臣이 들으니 “천하가 다스려지느냐 혼란하냐는 아랫사람의 마음이 통하느냐 막혀 있느냐에서 나오니, 지극한 정치의 궁극에는 하찮은 백성에 이르러도 다 스스로 통할 수가 있고, 크게 혼란한 정치의 궁극에는 측근의 신하에 이르러도 스스로 통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주역周易》 태괘泰卦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사귀는 것이 태괘泰卦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상하上下가 사귀어 그 뜻이 같아지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비괘否卦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사귀지 않는 것이 비괘否卦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상하上下가 사귀지 않아 천하에 나라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나라가 없다는 것은 망국亡國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하가 사귀지 않으면 비록 조정과 군주와 신하가 있더라도 망국亡國의 형상이 이미 갖추어진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臣은 감히 다시 쇠퇴한 세상의 혼우昏愚한 군주의 일을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당唐나라 명황明皇(현종玄宗)과 같은 군주는 당唐나라를 중흥하여 형벌을 거의 쓰지 않은 태평성대를 이룩한 군주였으나, 천보天寶 말년에 소인들이 지위에 있어서 아랫사람들의 마음이 통하지 못하자, 선우중통鮮于仲通이 거느린 20만 대군이 노수瀘水 남쪽에서 전군全軍이 전몰戰歿하였는데도 명황明皇이 이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점점 이러한 일이 이루어져서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킴에 이르러 반란군이 이미 황하黃河를 건너왔으나 명황明皇은 아직도 그를 충신이라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아랫사람들의 마음이 통하지 못하고 군주의 총명이 가려지면 점차로 번져서 여기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신臣은 경연經筵에서 여러 번 이 일을 논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정사政事를 다스린 9년 동안 집정대신執政大臣과 대간臺諫들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여러 신하들을 접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천하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수렴청정垂簾聽政하는 즈음이라서 이와 같이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상大祥이 지나 상복을 벗으시고 직접 정사政事를 다스리시는 초기이니, 마땅히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통하게 하고 막힌 것을 제거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으셔야 할 것입니다.
신臣은 비록 불초하나 폐하께서 발탁하여 하북서로안무사河北西路安撫使로 삼으시는 은택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연변沿邊(변방)의 중요한 지역 가운데 으뜸이 되는 곳이니, 신臣은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논주論奏해야 할 것이요, 폐하께서도 마땅히 유념하여 받아들이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 조종祖宗의 법에는 변방의 장수가 부임할 적에는 마땅히 대궐에 올라가서 황제를 뵙고 하직해야 하는데, 폐하께서는 다만 본관의 자리가 현재 비어 있고 또 영접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구실로 삼으셔서 특지特旨를 내리시어 신臣을 막아 대궐에 오르지 못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무슨 의의입니까?
신臣이 만약 폐하께서 한가하실 때를 기다려 대궐에 오른다 하더라도 열흘을 더 지체함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본관의 자리가 비어 있으나 본래 전운사轉運使가 대리로 맡고 있어서 사무를 폐지하는 일이 없고, 또 영접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나 10일의 양식을 더 지급하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니, 무슨 불가한 일이 있기에 폐하께서 직접 정사政事를 다스리시는 초기에 장수가 한 번 천안天顔을 뵙지 못하고 떠나가게 하신단 말입니까?
식견識見이 있는 선비들이 모두 생각하기를 ‘폐하께서 남의 말을 들으시기를 싫어하고 변방의 일을 마음에 소홀히 여기셔서 그 조짐이 여기에 나타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신臣은 강독講讀하는 지위를 맡고 있어서 날마다 유악帷幄에서 모신 지가 전후 5년이나 되었으니, 친근하다고 이를 만한데도 변방을 지키러 가면서 한 번 천안天顔을 뵙고 가지 못하니, 하물며 폐하와 소원한 낮은 신하가 스스로 통하기를 바란다면 또한 어려울 것입니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君子가 이것을 보고서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또 《주역周易》 〈설괘전說卦傳〉에 이르기를 “상제上帝가 진방震方에서 나와 이방離方에서 서로 만난다.”라고 하였으니, 성인聖人이 나오면 만인이 우러러 보는 법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직접 정사를 다스리는 초기에 건乾을 타고 진방震方에서 나와 이방離方에서 만나보는 도道를 행하지 않으시고, 부임할 적에 군주가 장수를 임견臨遣하는 조종祖宗의 고사故事를 폐지하시어 수렴청정하실 적의 부득이한 정사政事를 답습하시니, 이것이 조정의 식견 있는 자들이 놀라고 의심하여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신臣이 대궐로 올라가서 폐하를 뵙지 못하는 것은 신臣의 일신상에는 별다른 이해가 없으나, 지금은 폐하께서 직접 정사政事를 다스리시는 초기로 천하 사람들이 주목하는 즈음이어서 성덕聖德에는 손상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신臣은 이미 이달 27일에 도성문都城門을 나왔으니, 감히 등대登對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臣이 당초에 본래 기다렸다가 대궐로 올라가서 폐하를 뵙고 어리석은 충성을 조금이라도 바치고자 하였으니, 지금 감히 등대登對하지 못했다 하여 곧바로 이 말씀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신臣의 진실한 마음을 살피셔서 다소나마 받아들여 주소서.
옛날 성인聖人들은 장차 큰 일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어두운 곳에 처하여 밝은 곳을 관찰하고 고요한 곳에 처하여 동動하는 것을 살펴보았으니, 이렇게 하면 만물의 실정이 다 앞에 드러납니다.
이렇게 하여 불과 몇 년이면 자연히 이해利害의 진실을 알게 되고 사정邪正의 실정을 알게 되니, 그런 뒤에야 사물에 대응하여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일을 함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臣이 감히 작은 일을 가지고 비유해보겠습니다.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자는 항상 물길의 굴곡을 보지 못함을 걱정하지만 물가에 서서 구경하는 자는 항상 이것을 볼 수 있으니, 어째서이겠습니까?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자는 몸이 움직이는 배에 맡겨져 있고 서서 구경하는 자는 항상 고요하기 때문입니다.
바둑을 두는 자는 승부의 형세를 비록 국수國手라도 다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나 팔짱을 끼고 옆에서 구경하는 자는 항상 이것을 다 볼 수 있으니, 어째서이겠습니까?
바둑을 두는 자는 항상 다툼에 마음이 있고 옆에서 구경하는 자는 무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군주가 마음이 고요하고 무심하다면 천하에 그 누가 속일 수 있겠습니까?
한漢나라 경제景帝는 즉위 초기에 맨 먼저 조조鼂錯를 등용하여 법령을 바꾸고 제후들의 작위爵位를 낮추고 영지를 줄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吳․초楚 7국國의 변란이 일어나자, 두 궁궐 사이를 왕래하면서 몇 달 동안이나 마음으로 두려워하고는 이후 종신토록 감히 다시는 병사兵事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무제武帝는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침내 군대를 동원하여 사방 오랑캐들을 채찍질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병란이 이어지고 화변禍變이 끊이지 않기를 30여 년이나 했으니, 그런 뒤에야 애통해하는 조서를 내리고 재상으로 봉하여 부민후富民侯로 삼았습니다.
신臣은 이로써 옛날의 영특하고 현명한 군주들이 큰 일을 이루려는 데 용감하면 후회하지 않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제景帝는 후회가 빨랐기 때문에 국세局勢를 변환하여 다시 편안하였고 무제武帝는 후회가 더뎠기 때문에 거의 혼란에 이르렀으니, 비록 빠르고 더디고 편안하고 위태로움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으나 항상 고요하고 무심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후회하지 않은 효문제孝文帝 같은 분에 비한다면 같은 수준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성스럽고 지혜로움이 보통사람보다 뛰어나시고 춘추가 젊으시니, 신臣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마음을 비우고 도리를 따르시어 일체 무슨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여러 가지 일의 이해利害와 신하들의 사정邪正을 묵묵히 관찰하시되 3년을 기한으로 삼아 이해利害의 진실과 사정邪正의 실제를 분명히 아신 뒤에 사물에 대응하여 시작하소서.
그리하여 일이 시작된 뒤에 천하 사람들은 한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없고 폐하께서도 또한 후회하는 마음이 없어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태평성대의 이로움을 함께 누리게 된다면, 비록 남산南山의 대나무를 다 베어 죽간竹簡을 만들더라도 성聖스러운 공적을 충분히 다 기록하지 못할 것이요, 은殷나라 삼종三宗의 수명壽命을 겸하시더라도 성덕聖德을 다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살펴보건대 폐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실 적에 오직 너무 빠를까 우려하셔야 할 것이요, 다소 늦을까 걱정하지 마셔야 함이 또한 이미 분명합니다.
신臣은 또 들으니 “정사政事를 다스림은 병자에게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천하가 비록 크게 다스려지지는 못하였으나 실로 큰 병통은 없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병이 났을 적에 치료하지 않으면 항상 중간 정도의 의원은 얻는 것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하면 비록 작은 병을 다 제거하지는 못하나 나쁜 약을 잘못 먹고 만에 하나의 이익을 바라다가 구제할 수 없는 화禍를 얻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신臣은 급진적으로 이익을 좋아하는 신하들이 번번이 폐하에게 법령을 가볍게 변경하시도록 권할까 염려됩니다.
그러므로 번번이 이러한 말씀을 아뢰는 것이오니, 감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옛말을 깊이 믿으시고, 또 중간의 의원으로 안온하여 만전萬全을 기하는 계책을 쓰시어 나쁜 약으로 잘못되는 바가 없으시다면, 실로 사직과 종묘의 이익이요, 천하에 매우 다행한 일일 것입니다.
신臣은 몸을 잊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죽을죄를 무릅쓰고 말씀을 올립니다.
삼가 기록하여 아뢰고 엎드려 칙지勅旨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