看此等書하면 長公據几하야 隨手寫出者로되 却自疎宕而深眇하니라
軾聞足下名이 久矣요 又於相識處에 往往見所作詩文하니 雖不多나 亦足以髣髴其爲人矣라
尋常不通書問하니 怠慢之罪는 猶可闊略이어니와 及足下斬然在疚에도 亦不能以一字奉慰하고 舍弟子由至하야 先蒙惠書로되 又復懶不卽答이라
頑鈍廢禮 一至於此어늘 而足下終不棄絶하고 遞中再辱手書하야 待遇益隆하니 覽之에 面熱汗下也로라
足下才高識明하야 不應輕許與人이리니 得非用黃魯直, 秦太虛輩語하야 眞以爲然耶아
不肖
는 爲人所憎
이어늘 而二子獨喜見譽
하야 하니 未易詰其所以然者
라
以二子爲妄이면 則不可요 遂欲以移之衆口면 又大不可也라
旣及進士第에 貪得不已하야 又擧制策하니 其實何所有리오마는 而其科號爲直言極諫이라 故로 每紛然誦說古今하고 考論是非하야 以應其名耳라
軾은 每怪時人待軾過重이어늘 而足下又復稱說如此하니 愈非其實이라
得罪以來로 深自閉塞하야 扁舟草屨로 放浪山水間하야 與樵漁雜處하야 往往爲醉人所推罵로되 輒自喜漸不爲人識이라
平生親友 無一字見及하고 有書與之라도 亦不答하야 自幸庶幾免矣러니
讁居無事에 黙自觀省하야 回視三十年以來所爲하니 多其病者라
足下所見은 皆故我요 非今我也니 無乃聞其聲하고 不考其情하야 取其華而遺其實乎아
自得罪後로 不敢作文字하니 此書雖非文이나 然信筆書意하야 不覺累幅하니 亦不須示人이니
이러한 편지를 보면 장공長公이 책상에 앉아서 손 가는 대로 써낸 것인데도, 진실로 소탕疎宕하고 매우 묘하다.
내가 족하足下의 명성을 들은 지가 오래되었고, 또 서로 잘 아는 곳에서 왕왕 당신이 지은 시문詩文을 보았으니, 비록 많이 보지는 않았으나 또한 사람됨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편지를 통해 문안하지 않았으니 나의 태만한 죄는 그래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족하足下가 상중에서 매우 애통해할 적에도 한 글자를 받들어 위로하지 못하였고, 사제 자유舍弟 子由(철轍)가 왔을 적에 먼저 그대의 편지를 받았으면서도 또다시 게을러서 즉시 답하지 못했습니다.
미련하고 우둔하여 예禮를 폐한 것이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족하足下는 나를 끝내 버리고 않고 체중遞中(우편郵便)으로 다시 손수 쓴 편지를 보내주어서 나를 더욱 융숭하게 대우해주시니, 편지를 봄에 얼굴이 뜨거워지고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족하足下는 재주가 높고 식견이 밝아서 응당 남을 가볍게 허여하지 않을 터인데, 저를 이토록 융숭히 대우함은 황로직黃魯直(황정견黃庭堅)과 진태허秦太虛(진관秦觀) 등이 칭찬하는 말을 따라서 참으로 그렇다고 여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불초한 저는 남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데, 저 두 사람은 유독 나를 좋아하고 칭찬하여 마치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창촉昌歜과 양조羊棗를 기호하듯이 하니, 그 이유를 쉽게 따질 수가 없습니다.
두 사람을 망령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침내 이것을 세상 사람의 입에 옮기고자 한다면 이는 더더욱 불가합니다.
내가 소년시절에 책을 읽고 문장을 지은 것은 오로지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이미 진사에 급제한 뒤에도 끊임없이 얻기를 탐하여 또다시 제책制策에 급제하였으니, 그 실제가 무엇이 있겠습니까마는, 이 과거科擧를 직언극간直言極諫이라고 칭하므로 매양 분분히 고금古今의 일을 외워 말하며 옳고 그른 것을 상고하고 논해서, 직언극간直言極諫이라는 이름에 부응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괴롭게도 자신을 알지 못해서 이미 이런 명목으로 급제하였으니, 인하여 실제로 능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시끄럽게 떠들어서 이 때문에 죄를 얻어 거의 죽을 뻔하였습니다.
이른바 “제齊나라 포로가 구설로 벼슬을 얻었다.”는 것이니,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소식蘇軾이 다른 뜻을 세우고자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내가 함부로 이해를 논하고 득실을 이것저것 말하는 것은 바로 제과制科에 급제한 사람들의 습관입니다.
비유하면 철따라 우는 벌레와 철따라 우는 새가 스스로 울다가 스스로 그치는 것과 같으니, 어찌 해롭고 유익할 것이 있겠습니까?
나는 항상 세상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게 중하게 대하는 것을 괴이하게 여겼는데 족하足下께서 또다시 나를 이와 같이 칭찬하니, 이는 더더욱 그 실제가 아닙니다.
나는 죄를 얻은 이래로 깊이 스스로 세상과의 소통을 막고 끊어서 일엽편주를 타거나 짚신을 신고 산수山水 사이에 방랑하여 나무꾼과 어부들과 뒤섞여 거처하면서 왕왕 취객들에게 떠밀리고 욕을 먹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남들이 점차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기뻐하였습니다.
평소 친구들이 한 글자도 나에게 소식을 전한 적이 없고, 또한 편지를 보내더라도 답장을 하지 않아서 거의 화禍를 면하게 된 것을 스스로 다행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족하足下께서 또다시 앞장서서 나를 추대하고 허여하니, 이것은 제가 결코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나무에 혹이 있고 돌에 해달무리의 무늬가 있고 서각犀角에 통문通紋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다 물건의 병통입니다.
나는 귀양살이하면서 일이 없을 적에 묵묵히 자신을 살펴보고 반성하여 30년 이래에 한 짓을 회고해보니, 병통인 것이 많습니다.
족하足下께서 본 것은 다 예전의 나이고 지금의 내가 아니니, 이것은 명성만 믿고 실정을 상고하지 않아서 화려함만 취하고 실제를 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장차 또 이 병통을 취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 일은 서로 만나보지 않으면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죄를 얻은 이후로 감히 문자를 짓지 않았는데, 이 편지가 비록 문장은 아니지만 붓 가는 대로 내 의견을 써서 나도 모르게 여러 폭이 되었으니, 또한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