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日蒙訪
에 及以
一通
하고 且欲責某之一言
하야 以信之天下
하니 大非某智力之所能任也
라
故로 雖悅足下志意之高와 辭說之明이나 而不敢斷其義之是非하니 則何能推其義以信之天下리오
故로 學則求之하고 敎則應之하야 有餘則應하고 不足則求하나니 蓋有餘而求之者는 有矣어니와 未有不足而能應者也며 蓋見求而不應者는 有矣어니와 未有不求而應之者也라
爲足下計컨대 亦志於學而已니 學足乎己인댄 則不有知於上이면 必有知於下요 不有傳於今이면 必有傳於後며
不幸而不見知於上下
하고 而不傳於今
하고 又不傳於後
라도 古之人
이 蓋猶不憾也
하야 知我者 其天乎
인저하니 此乃
라
命者
는 非獨貴賤死生爾
요 萬物之廢興
이 皆命也
니 라하시니라
求人而誨之면 則喪道요 喪道以求傳道면 則孰取以爲道리오
사풍史諷이 지은 《역설易說》은 반드시 《주역周易》의 도道에 깊은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장공長公이 이와 같이 거절한 것이다.
지난날 방문했을 적에 《역설易說》 한 편을 주고 또 저에게 한마디 말을 요구하여 이로써 천하의 사람들이 믿게 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결코 저의 지력智力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주역周易》에 대하여 일찍이 배우긴 하였으나 그 진리를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족하足下의 의지가 높고 사설辭說이 분명함을 좋아하나 감히 그 뜻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니, 어찌 그 뜻을 미루어 부연해서 천하 사람들이 믿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족하足下께서 나에게 부탁하신 것이 진실로 정중하니,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없습니다.
배움이란 군자가 근본을 힘쓰는 것이요, 가르침이란 성인聖人이 여가에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배움은 남에게 구하고 가르침은 남에게 응하여, 학문이 유여有餘하면 응하고 부족하면 구하는 것이니, 유여有餘하면서 남에게 구하는 자는 있어도 부족하면서 응하는 자는 있지 않으며, 또 남의 구함에 응하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남이 구하지 않는데도 응하는 경우는 있지 않습니다.
족하足下를 위하여 생각해보건대 또한 학문에 뜻을 두실 뿐이니, 학문이 자기 몸에 충족될 경우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반드시 아랫사람이 알아줄 것이요, 지금에 널리 전해지지 못하면 반드시 후세에 전해질 것입니다.
불행히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알아주지 않고 또 지금에 널리 전해지지 못하고 또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더라도,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서운해하지 않고서 “나를 알아주는 자는 아마도 하늘일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주역周易》에서 말한 “천명天命을 안다.”는 것입니다.
천명天命이란 비단 사死와 생生, 귀貴와 천賤뿐이 아니요, 만물이 흥하고 폐하는 것이 모두 천명天命이니,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군자君子는 법을 행하고서 천명을 기다릴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족하足下는 구하여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자이니, 도道는 구하여 가르쳐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남에게 구하여 가르치려고 하면 자기의 도道를 상실하게 되니, 도道를 상실하고 도道를 전하기를 바란다면 누가 취하여 도道라고 여기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