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君子之所取者遠이면 則必有所待요 所就者大면 則必有所忍이니 古之賢人이 皆有可致之才로되 而卒不能行其萬一者는 未必皆其時君之罪요 或者는 其自取也니라
愚觀賈生之論컨대 如其所言이면 雖三代라도 何以遠過리오
得君如漢文이로되 猶且以不用死하니 然則是天下無堯舜이면 終不可以有所爲耶아
仲尼는 聖人이사되 歷試於天下하야 苟非大無道之國이면 皆欲勉彊扶持하야 庶幾一日得行其道하시니라
而吾何爲不豫리오하시니 君子之愛其身이 如此其至也라
夫如此而不用然後에 知天下之果不足與有爲하야 而可以無憾矣라
若賈生者는 非漢文之不用生이요 生之不能用漢文也니라
賈生은 洛陽之少年으로 欲使其一朝之間에 盡棄其舊하고 而謀其新하니 亦已難矣라
爲賈生者는 上得其君하고 下得其大臣하야 如絳, 灌之屬을 優游浸漬而深交之하야 使天子不疑하고 大臣不忌니 然後에 擧天下而惟吾之所欲爲런들 不過十年하야 可以得志리니
故로 備論之하야 亦使人君으로 得如賈誼之臣이면 則知其有狷介之操하야 一不見用이면 則憂傷病沮하야 不能復振이요 而爲賈生者는 亦愼其所發哉인저
不能深交絳, 灌과 不知黙黙自待 本是兩柱子로되 而文字渾融하야 不見蹤跡하니라
謂賈生不能用漢文은 直是說得賈生倒로되 而文字翻覆變幻하야 無限煙波하니라
이 글을 자세히 보면 자첨子瞻이 가생賈生(가의賈誼)보다 한 격이 높다.
뛰어난 재주를 간직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재주를 잘 활용하는 것이 실로 어려운 것이다.
가생賈生은 왕자王者를 보좌할 만한 재주를 가졌으나 스스로 그 재주를 잘 활용하지 못하였다.
군자가 취하고자 하는 것이 원대하면 반드시 기다리는 바가 있어야 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크면 반드시 참는 바가 있어야 하니, 옛날 현인들이 모두 이룰 수 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끝내 만에 하나도 실행하지 못한 것은 반드시 모두 그 군주의 책임만은 아니고 혹은 스스로 취한 것이다.
내가 가생賈生의 논論을 살펴보건대, 그가 말한 바와 같이 한다면 비록 삼대三代라도 어찌 이보다 크게 뛰어나겠는가?
가생賈生은 한 문제漢 文帝와 같이 훌륭한 군주를 얻고도 쓰이지 못하고 죽었으니, 그렇다면 천하에 요堯ㆍ순舜이 없다면 끝내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중니仲尼는 성인聖人이신데도 천하를 차례로 시험하시어 만일 크게 무도한 나라가 아니면 모두 힘써 부지해서 행여 단 하루라도 그 도道를 행하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장차 초楚나라에 가려 하실 적에 먼저 자하子夏를 보내고 다시 염유冉有를 보내셨으니, 군자가 그 군주를 얻고자 함이 이와 같이 간곡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제齊나라를 떠나실 적에 3일 밤을 유숙한 뒤에 주晝 땅을 나가시면서도 말씀하시기를
“왕이 행여 나를 부르시기를 바란다.”라고 하였으니,
군자가 그 군주를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이와 같이 후하며, 공손추公孫丑가 묻기를 “선생님은 어찌하여 기뻐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자, 맹자孟子는 말씀하시기를 “지금 천하에 내가 아니면 그 누가 천하를 다스리겠는가?
내 어찌하여 기뻐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으니, 군자가 자기 몸을 아끼는 것이 이와 같이 지극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데도 쓰이지 않은 뒤에야, 천하에 과연 함께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유감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생賈生과 같은 자는 한 문제漢 文帝가 가생賈生을 등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가생賈生이 한 문제漢 文帝를 잘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강후 주발絳侯 周勃은 직접 천자天子의 옥새를 잡아서 문제文帝에게 주었고, 관영灌嬰은 수십 만의 병력을 연합하여 유씨劉氏와 여씨呂氏의 자웅을 결정지었으며, 이들은 또 모두 고제高帝의 옛 장수였으니, 군신간에 서로 의기투합하는 친분이 어찌 다만 부자간의 골육骨肉과 수족手足과 같을 뿐이었겠는가?
그런데 가생賈生은 낙양洛陽의 소년으로, 군주로 하여금 하루아침에 옛 것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게 하였으니, 또한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가생賈生을 위한 좋은 계책으로는, 위로는 군주의 신임을 얻고 아래로는 대신들의 마음을 얻어서, 강후絳侯와 관영灌嬰 같은 무리들을 오랜 세월을 두고 서서히 무젖어들 듯 깊이 사귀어서, 천자天子로 하여금 자신을 의심하지 않게 하고 대신들로 하여금 자기를 꺼리지 않게 해야 하니, 그런 뒤에 온 천하를 들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였다면 10년이 넘지 않아 뜻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 잠시 서서 말하는 사이에 대번에 남을 위하여 통곡한단 말인가?
그가 상강湘江을 지나다가 부賦를 지어서 굴원屈原을 조문한 것을 보면, 비분강개하고 울적해하고 번민해서 아득히 멀리 떠나갈 뜻이 있었는데, 그 뒤에 끝내 스스로 서글퍼하여 통곡하다가 요절하였으니, 이 또한 곤경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자이다.
자신의 계책이 한 번 쓰이지 못했다 하여 끝내 다시 쓰이지 못할 줄을 어찌 알겠는가?
묵묵히 변화를 기다릴 줄을 모르고 스스로 몸을 해쳐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
가생賈生은 뜻이 크나 국량이 적고 재주가 유여하나 지식이 부족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세상에 뛰어난 재주가 있으면 반드시 세속을 버리는 잘못이 있었다.
이 때문에 총명聰明하고 지혜가 밝아서 미혹되지 않는 군주가 아니면 인재를 온전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금에 부견苻堅이 초야에서 왕맹王猛을 얻어서 하루아침에 옛 신하들을 다 배척하여 버리고 왕맹王猛과 함께 천하를 도모했음을 칭송하고 있으니, 부견苻堅이 필부로서 대략 천하의 절반을 소유했던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자세히 논하여 군주로 하여금 가의賈誼와 같은 신하를 얻으면 이런 사람은 꼿꼿한 지조가 있어서 한 번 등용되지 않으면 근심하고 슬퍼하고 저상沮喪되어서 다시 떨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하고, 또 가생賈生이 된 자는 또한 그 발하는 바를 삼갈 줄을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강후絳侯와 관영灌嬰을 깊이 사귀지 못한 것과 묵묵히 스스로 기다리지 못했다는 것이 본래의 두 기둥(갈래)인데, 문자가 혼연히 융해돼서 그 자취를 볼 수 없다.
“가생賈生이 한 문제漢 文帝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은 바로 가생賈生을 나무란 것이나, 문자가 번복飜覆하고 변환變幻하여 무한한 연파煙波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