嘗讀孔子世家하야 觀其言語文章호니 循循莫不有規矩하야 不敢放言高論하야 言必稱先王하니 然後에 知聖人憂天下之深也로라
茫乎不知其畔岸而非遠也요 浩乎不知其津涯而非深也라
使後世有能盡吾說者
는 雖爲聖人
이라도 無難
이요 而不能者
라도 니라
夫子以爲後世에 必有不足行其說者矣요 必有竊其說而爲不義者矣라
是故로 其言이 平易正直하야 而不敢爲非常可喜之論하시니 要在於不可易也라
하고 大變古先聖王之法
하야 於其師之道
에 不啻若寇讐
러니
及今觀荀卿之書然後에 知李斯之所以事秦者 皆出於荀卿하야 而不足怪也로라
荀卿者는 喜爲異說而不讓하고 敢爲高論而不顧者也라
天下之人이 如此其衆也하고 仁人義士 如此其多也어늘
由是觀之하면 意其爲人이 必也剛愎不遜하고 而自許太過하니 彼李斯者는 又特甚者耳라
是以로 夏, 商之亡에 桀, 紂之殘暴로도 而先王之法度, 禮樂, 刑政이 猶未至於絶滅而不可考者하니 是桀, 紂猶有所存하야 而不敢盡廢也라
彼李斯者
는 獨能奮而不顧
하야 焚燒夫子之六經
하고 烹滅三代之諸侯
하며 破壞
하니 此亦必有所恃者矣
라
彼見其師歷詆天下之賢人하야 自是其愚하고 以爲古先聖王이 皆無足法者라하니 不知荀卿이 特以快一時之論이요 而荀卿亦不知其禍之至於此也라
荀卿이 明王道하고 述禮樂이어늘 而李斯以其學으로 亂天下하니 其高談異論이 有以激之也라
孔孟之論은 未嘗異也로되 而天下卒無有及者하니 苟天下果無有及者면 則尙安以求異爲哉리오
以異說高論四字로 立案하니 煞是荀卿頂門一鍼이요 而謂李斯焚書破壞先王之法이 皆出於荀卿이라하니 尤是長公深文手段이니라
그가 전수한 바를 가지고 그의 폐단을 공격하였으니, 순경荀卿이 마땅히 그 죄줌에 깊이 복종했을 것이다.
내 일찍이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를 읽어서 그(공자孔子) 언어와 문장을 보았는데, 차근차근하여 법도가 있지 않음이 없어서 감히 흰소리 치고 고상한 의논을 하지 않아 말씀마다 반드시 선왕先王을 칭하셨으니, 그런 뒤에야 성인聖人이 천하를 우려함이 깊음을 알았다.
아득하여 그 언덕(끝)을 알 수 없으나 먼 것이 아니요, 넓어서 그 나루터를 알 수 없으나 깊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 말씀한 것은 필부匹夫와 필부匹婦도 모두 아는 것이지만 그 행하신 것은 성인聖人도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었으니, 아!
만일 후세에 나(공자孔子)의 말씀을 다 따르는 자가 있다면 비록 성인聖人이 되는 것도 무난할 것이요, 능하지 못한 자라도 허물을 적게 함이 되는 것은 잃지 않을 것이다.
자로子路의 용맹과 자공子貢의 변설과 염유冉有의 지혜, 이 세 가지는 모두 천하 사람들이 이른바 능하기 어려워서 귀중히 여길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매번 부자夫子의 기쁨이 되지 못하였고, 안연顔淵은 침묵하여 그 능한 바를 드러내지 않아서 보통 사람과 다름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부자夫子께서는 자주 그를 칭찬하셨다.
또 성인聖人을 배운다는 것이 어찌 반드시 그 말씀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바로 성인聖人의 뜻이 향하는 바를 볼 뿐인 것이다.
부자夫子는 ‘후세에 반드시 자신의 설說을 행할 것이 못 된다고 여기는 자가 있을 것이요, 반드시 자신의 설說을 도둑질하여 불의를 행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셨다.
이 때문에 그 말씀이 평이하고 정직하여 감히 크게 비범하여 기뻐할 만한 의논을 하지 않으셨으니, 요컨대 바꿀 수 없음에 있는 것이다.
옛날 나는 이사李斯가 순경荀卿을 사사하다가 이윽고 그 책을 불태워 없애버리고, 옛날 선성왕先聖王의 법을 크게 변경해서 그 스승의 도道에 대하여 원수처럼 여길 뿐만이 아닌 것을 괴이하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 순경荀卿의 책(《순자荀子》)을 본 뒤에야 이사李斯가 진秦나라를 섬겼던 것이 모두 순경荀卿에게서 나와서 굳이 괴이하게 여길 것이 못 됨을 알았다.
순경荀卿이란 자는 이설異說을 하기 좋아하여 사양하지 않고, 과감히 고론高論을 하고도 돌아보지 않은 자였다.
그의 말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소인小人들이 좋아하는 바였다.
자사子思와 맹자孟子는 세상의 이른바 현인賢人․군자君子인데,
순경荀卿은 홀로 말하기를 “천하를 어지럽힌 자는 자사子思와 맹가孟軻(맹자孟子)이다.”라고 하였으며,
천하 사람이 이와 같이 많고 인인仁人과 의사義士가 이와 같이 많은데도
순경荀卿은 홀로 말하기를 “사람의 성품은 악하니,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은 본성대로 하였고,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은 거짓을 행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관찰해보면, 짐작하건대 그 사람됨이 반드시 고집스럽고 불손하며 또 스스로 자신을 너무 지나치게 평가한 자였을 것이요, 저 이사李斯라는 자는 또 더 심한 자였을 것이다.
지금 소인小人들이 불선不善을 할 적에도 오히려 반드시 돌아보고 꺼려하는 바가 있다.
이 때문에 하夏나라와 상商나라가 멸망할 적에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의 잔인함과 포악함으로도 선왕先王의 법도法度와 예악禮樂과 형정刑政이 아직 완전히 끊어지고 없어져서 상고할 수 없음에 이르지 않았으니, 이는 걸왕桀王과 주왕紂王도 오히려 남겨둔 바가 있어서 감히 다 없애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저 이사李斯란 자는 홀로 분발하여 뒤돌아보지 않고서 부자夫子의 육경六經을 불태우고 삼대三代에 세운 제후諸侯들을 삶아 죽였고 주공周公의 정전제도井田制度를 파괴하였으니, 이 또한 반드시 믿는 바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저 이사李斯는 그 스승이 천하의 현인들을 차례로 비방하여 스스로 자기의 어리석음을 옳게 여김을 보고는 옛 성왕聖王이 모두 본받을 만한 자가 없다고 여겼을 것이니, 이것은 순경荀卿이 다만 한때의 의논을 통쾌하게 한 것임을 알지 못한 것이요, 순경荀卿 또한 그 화禍가 여기에 이를 줄은 알지 못한 것이다.
그 아버지가 사람을 죽여 원수를 갚으면 그 자식도 반드시 장차 겁박하는 짓을 행한다.
순경荀卿이 왕도王道를 밝히고 예악禮樂을 기술하였는데, 이사李斯가 그의 학문을 가지고 천하를 어지럽혔으니, 이것은 순경荀卿의 고상한 말과 이론異論이 이사李斯를 격동시킴이 있었던 것이다.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의논은 일찍이 다르지 않았으나 천하에 끝내 그들에게 미친 자가 없으니, 만일 천하에 과연 미친 자가 없다면 오히려 어찌 이설異說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 ‘이설고론異說高論’의 네 글자를 가지고 죄안罪案을 삼았으니 이것은 순경荀卿의 정문일침頂門一鍼이며, ‘이사李斯가 책을 불태우고 선왕先王의 법을 파괴한 것이 모두 순경荀卿에게서 나왔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장공長公이 더욱 엄하게 비판한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