此等文은 非子瞻之佳者로되 以其是蘇家說理文字故로 錄而存之하노라
論其著者는 鄙滯而不通하고 論其微者는 汗漫而不可考하니 其弊는 始於昔之儒者 求爲聖人之道而無所得이라 於是에 務爲不可知之文하야 庶幾乎後世之以我爲深知之也라
後之儒者 見其難知하고 而不知其空虛無有하야 以爲將有所深造乎道者라하고 而自恥其不能하야 則從而和之曰然이라하야
相欺以爲高하고 相習以爲深하야 而聖人之道 日以遠矣니라
夫中庸者
는 孔氏之遺書而不完者也
니 其要有
而已矣
라
三者는 是周公, 孔子之所從以爲聖人이요 而其虛詞蔓延은 是儒者之所以爲文也라
是故
로 去其虛詞
하고 而取其三
하시니 其始
는 論
하고 其次
는 論聖人之道所從始
하야 推而至於其所終極
하고 而其卒
은 乃始內(納)之於中庸
하니 蓋以爲聖人之道 略見於此矣
니라
夫惟聖人은 知之者未至로되 而樂之者先入하니 先入者爲主하야 而待其餘는 則是樂之者爲主也요 若夫賢人은 樂之者未至하고 而知之者先入하니 先入者爲主하야 而待其餘면 則是知之者爲主也라
是故로 有所不知언정 知之면 未嘗不行하고 知之者爲主라 是故로 雖無所不知라도 而有所不能行이니라
知之者與樂之者는 是聖人, 賢人之辨也니 好之者는 是賢人之所由以求誠者也라
人之好惡莫如好色而惡臭는 (則)[是]人之性也요 好善如好色하고 惡惡如惡臭는 是聖人之誠也라
하니 是二子者 非不知也
로되 其所以樂之者 未至也
니라
且夫子路能死於衛로되 而不能不慍於陳, 蔡하니 是豈其知之罪耶리오
故로 夫弟子之所爲從孔子游者는 非專以求聞其所未聞이요 蓋將以求樂其所有也라
明而不誠이면 雖挾其所有나 倀倀乎不知所以安之니 苟不知所以安之면 則是可與居安이나 而未可與居憂患也라
夫惟憂患之至而後에 誠明之辨을 乃可以見이니 由此觀之컨대 君子安可以不誠哉리오
이러한 글은 자첨子瞻의 아름다운 문장은 아니지만, 소씨蘇氏 집안의 성리학을 논한 문자(문장)이므로 기록하여 남겨두는 것이다.
그 드러난 것을 논하면 매우 비루하고 막혀서 통하지 못하고, 그 은미한 것을 논하면 너무 광활하고 아득해서 상고할 수가 없으니, 이러한 병폐는 옛날 유자儒者들이 성인聖人의 도道를 행하려고 하였으나 얻을 수가 없자, 이에 되도록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지어 행여 후세에서 자신의 글을 보고 도道를 깊이 안다고 여기길 바란 데에서 시작되었다.
후세의 유자儒者들은 이 알기 어려운 글을 보고는 이것이 공허하여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마땅히 도道에 깊이 나아간 바가 있는 자라고 생각하고는 자신이 그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덩달아 화답하기를 “이 말이 옳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서로 속이면서 높음으로 삼고, 서로 익히면서 도道에 심오하다고 여겨서, 성인聖人의 도道가 날로 멀어지게 되었다.
자사子思가 《중용中庸》을 지은 이래로 유자儒者들이 모두 이것을 조종祖宗으로 삼아서 성명性命의 말을 하니, 아!
자사子思란 분이 또한 어찌 이런 부류의 사람이시겠는가?
저 《중용中庸》은 공씨孔氏의 유서遺書로서 완전하지 못한 책이니, 그 요점은 세 가지가 있을 뿐이다.
이 세 가지는 바로 주공周公과 공자孔子가 따라서 성인聖人이 되신 이유이고, 허언虛言으로 견강부회한 것은 유자儒者들이 문장을 지은 것이다.
이 때문에 자사子思가 그 허언虛言을 제거하고 세 가지를 취하셨으니, 그 처음은 성誠과 명明에 들어가는 바를 논하였고, 그 다음은 성인聖人의 도道가 말미암아 시작한 바를 논하고 미루어서 종극終極에 이르렀으며, 마지막에는 마침내 다시 처음 중용中庸으로 귀납하였으니, 이는 성인聖人의 도道를 대략 여기에서 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성誠으로 말미암아 밝아짐을 성性이라 이르고 명明으로 말미암아 성실해짐을 교敎라 이르니, 성실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실해진다.”라고 하였다.
즐거워함을 말하니, 즐거워하면 스스로 진실해지므로 성誠이라 말한 것이다.
앎을 말하니, 알면 통달해지므로 명明이라 한 것이다.
오직 성인聖人만은 아는 것이 지극하지 못하더라도 즐거워하는 것이 먼저 들어가니 먼저 들어가는 것이 주장이 되어서 그 나머지를 기다리면 이것은 즐거워하는 것이 주장이 되는 것이요, 현인賢人으로 말하면 즐거워하는 것은 지극하지 못하고 아는 것이 먼저 들어가니 먼저 들어가는 것이 주장이 되어서 그 나머지를 기다리면 이것은 아는 것이 주장이 되는 것이다.
성인聖人은 즐거워하는 것이 주장이 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바가 있을지언정 알면 일찍이 행하지 않는 적이 없고, 현인賢人은 아는 것이 주장이 되기 때문에 비록 알지 못하는 바가 없더라도 행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가 즐거워하는 자만 못하다.”라고 하셨다.
아는 자와 즐거워하는 자는 바로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의 분변이니, 그 중간에 있는 좋아하는 자는 바로 현인賢人이 말미암아 성실해지기를 구하는 자이다.
군자君子가 학문할 적에 그 처음을 삼가야 하니, 어째서인가?
아는 것이 많으나 능히 즐거워하지 못하면 이는 모르는 것만 못한 것이다.
사람의 좋아하고 미워함은 여색을 좋아하고 악취를 싫어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이는 사람의 본성이요, 선善을 좋아하기를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고, 악惡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는 것처럼 하는 것는 성인聖人의 성실함이다.
그러므로 말씀하기를 “성誠으로 말미암아 밝아짐을 성性이라 한다.”라고 한 것이다.
공자孔子께서는 장성하여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셨다.
그리하여 주周나라에 가서 예禮를 행하는 것을 보시고 노담老聃과 사양師襄의 무리에게 예禮와 락樂을 물은 뒤에야 예禮․락樂에 밝으셨으며, 50세가 된 이후에 《주역周易》을 읽으셨으니, 아마도 또한 말년이 된 뒤에야 아신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성인聖人의 경지를 얻은 까닭은 그 도道를 즐거워하셨기 때문일 뿐이다.
공자孔子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사이에서 곤궁하실 적에 자로子路와 자공子貢에게 묻자, 두 사람은 기뻐하지 않았고 자공子貢은 또 부자夫子의 도道를 조금 낮추기를 바랐으니, 이 두 사람은 알지 못한 것이 아니나 즐거워한 것은 지극하지 못한 것이었다.
또 자로子路는 위衛나라에서 용감히 죽을 수 있었으나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에서 곤궁할 적에 노여움을 참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알기만 한 죄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제자弟子들이 공자孔子를 따라 배운 것은 오로지 아직 듣지 못했던 것을 들으려고 하였을 뿐이 아니요, 장차 공자孔子가 소유하신 바를 즐거워하려고 한 것이었다.
밝기만 하고 성실하지 못하면 비록 그 소유한 바를 가지고 있으나 아득하여 편안히 여길 바를 알지 못하니, 만일 편안히 여길 바를 알지 못한다면 함께 편안함에는 처할 수 있으나 우환에는 함께 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우환이 이른 뒤에야 성실함과 밝음의 분별을 비로소 볼 수 있으니,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군자君子가 어찌 성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