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取於人也엔 必度其人之可以與我也하고 其予人也엔 必度其人之可以受於我也하나니 我可以取之로되 而其人不可以與我면 君子不取하고 我可以予之로되 而其人不可受면 君子不予라
旣爲己慮之하고 又爲人謀之하야 取之면 必可予하고 予之면 必可受하니 若己爲君子하고 而使人爲小人이면 是亦去小人無幾耳니라
其始에 自以爲義而行之라가 其終也에 知其不義而復之하니 以其能復之로 知其始之所行이 非詐也로니
이러니 及後世
하야는 徇其名而昧其致
하니 於是
에 詭激之行
이 興矣
라
若劉愷之徒 讓其弟하야 使弟受非服하고 而己受其名은 不已過乎아
丁鴻之心은 主於忠愛하니 何其終悟而從義也오하니라
范氏之所賢者 固已得之矣어니와 而其未盡者를 請得畢其說호리라
夫先王之制에 立長은 所以明宗이요 明宗은 所以防亂이니 非有意私其長而沮其少也라
天子與諸侯 皆有太祖하니 其有天下一國은 皆受之太祖요 而非己之所得專有也라
天子不敢以其太祖之天下與人이요 諸侯不敢以其太祖之國與人은 天下之通義也라
受之其先祖어늘 而傳之於所不當立之人이면 雖其弟之親이라도 與塗人均耳라
太伯은 將以成周之王業이요 而伯夷는 將以訓天下之讓하야 而爲是詭時特異之行하니 皆非所以爲法也라
今劉愷擧國而讓其弟하니 非獨使弟受非服之爲過也요 將以壞先王防亂之法하고 輕其先祖之國하야 而獨爲是非常之行하니 考之以禮하고 繩之以法하면 而愷之罪大矣니라
然
이나 漢世
에 士大夫多以此爲名者
는 安, 順, 桓, 靈之世
에 士皆反道矯情
하야 以盜一時之名
하니 蓋其弊始於
하야 而爲世主所賢
하야 天下高之
라
故로 漸以成俗하야 履常而蹈易者를 世以爲無能而擯之하니 則丁鴻之復於中道는 尤可以深嘉而屢歎也니라
08. 유개劉愷와 정홍丁鴻이 누가 더 어진가 하는 논論
군자君子가 선행善行을 하는 것은 다만 자신에게 맞고 스스로 편리하게 할 뿐이 아니다.
남에게서 취할 적에는 반드시 그 사람이 나에게 줄 만한가를 헤아려보고, 남에게 줄 적에는 반드시 그 사람이 나에게서 받을 만한가를 살펴보니, 내가 취할 만하더라도 상대방이 나에게 줄 만하지 않으면 군자君子는 취하지 않고, 내가 줄 만하더라도 상대방이 나에게서 받을 만하지 않으면 군자君子는 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신을 위해 염려하고 또 남을 위해 도모하여, 내가 취하면 상대방이 반드시 줄 만하고 내가 주면 상대방이 반드시 받을 만하게 하였으니, 만약 자신은 군자君子가 되고 남으로 하여금 소인小人이 되게 한다면, 이 또한 소인小人과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이다.
동한東漢 때에 유개劉愷가 아우에게 봉후封侯를 사양하자 황제가 조명詔命을 내려서 이것을 허락하였는데, 정홍丁鴻 또한 거짓으로 미친 체하여 아우에게 봉후封侯를 사양하자 친구인 포준鮑駿이 의리義理로써 꾸짖으니, 정홍丁鴻이 마침내 봉지封地로 나아갔다.
정홍丁鴻이 처음에는 아우에게 봉후封侯를 사양하는 것을 스스로 의롭다고 여겨서 행하다가 결국에는 의롭지 않음을 알고서 돌아왔으니, 그가 능히 돌아온 것을 가지고 처음의 행위가 속임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범씨范氏(범엽范曄)가 정홍丁鴻을 어질게 여기고 유개劉愷를 낮게 여긴 것이다.
“태太(태泰)백伯과 백이伯夷는 일찍이 그 사양함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태백太伯을 지덕至德이라고 칭하고 백이伯夷를 현인賢人이라고 칭하셨는데, 후세에 이르러서는 그 이름만 따르고 그 이치에는 어두우니, 이에 궤격詭激한 행실이 일어나게 되었다.
유개劉愷의 무리가 아우에게 봉후封侯의 자리를 사양해서 아우로 하여금 받아야 할 것이 아닌 봉후封侯를 받게 하고 자신은 사양했다는 명예를 받았으니, 이는 너무 잘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정홍丁鴻의 마음은 충애忠愛를 위주로 하였으니, 어쩌면 그리도 끝내 깨달아서 의리를 따랐단 말인가?”
범씨范氏가 어질게 여긴 것은 참으로 도道에 맞지만, 그 미진한 부분에 대해 청컨대 내가 그 말을 다해보겠다.
선왕先王의 제도에 장자長子를 세움은 종통宗統을 밝히는 것이요, 종통宗統을 밝힘은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니, 장자長子에게 사정私情을 두고 작은 아들을 저지하려는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천자天子와 제후諸侯는 모두 건국建國한 태조太祖가 있으니, 소유한 천하天下와 한 나라는 모두 태조太祖에게서 받은 것으로, 자신이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자天子가 감히 태조太祖의 천하天下를 남에게 줄 수 없고, 제후諸侯가 감히 태조太祖의 나라를 남에게 줄 수 없으니, 이것은 천하天下의 공통된 의리義理이다.
내 알지 못하겠다, 저 유개劉愷와 정홍丁鴻의 나라는 두 사람이 스스로 이룬 것인가?
선조에게서 물려받았는데 뒤를 이어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물려주었다면 비록 친동생이라 하더라도 길 가는 사람과 똑같은 것이다.
저 오吳나라 태백太伯과 백이伯夷는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백太伯은 장차 주周나라의 왕업王業을 이루려고 하였고, 백이伯夷는 장차 천하天下 사람들에게 사양함을 가르치려고 해서 세속과 어긋나는 특이한 행동을 하였으니, 태백太伯과 백이伯夷는 모두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유개劉愷가 나라를 들어서 아우에게 봉후封侯를 사양하였으니, 이는 비단 아우로 하여금 받지 않아야 할 봉후封侯를 받게 한 잘못을 저질렀을 뿐만이 아니라, 장차 혼란을 방지하려 한 선왕先王의 법法을 파괴하고 선조先祖의 나라를 경시하여 홀로 이 비상한 행실을 한 것이니, 예禮로써 고찰하고 법法으로써 가늠해보면 유개劉愷의 죄가 큰 것이다.
그러나 한대漢代의 사대부士大夫들 가운데 이러한 방법으로 명성을 구하려는 자가 많았던 것은 안제安帝와 순제順帝, 환제桓帝와 영제靈帝 때에 선비들이 모두 도道를 위반하고 실정을 속여서 한때의 명예를 도둑질했기 때문이니, 이 병폐는 서한시대西漢時代에 위현성韋玄成이 형兄에게 봉후封侯를 사양하자, 세상의 군주가 어질게 여겨서 천하天下 사람들이 그를 높이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점점 이러한 풍속을 이루어서 상도常道를 행하고 평탄한 길을 가는 자들을 세상에서는 무능하다 하여 배척하였으니, 그렇다면 정홍丁鴻이 중도中道로 돌아온 것은 더욱더 깊이 가상해하고 여러 번 감탄할 만한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