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周公之所爲는 亦不得已而已矣시니 若得已而不已면 則周公이 安得而爲之시리오
成王幼하야 不能爲政이어늘 周公이 執其權하사 以王命으로 賞罰天下하시니 是周公不得已者 如此而已시니라
又曰
이라하니 則是周公
이 未嘗踐天子之位而稱王也
라
不稱則是廢也요 稱王則是二王也니 而周公이 何以安之시리오
故로 亦有以文王爲稱王者하니 是는 以聖人으로 爲後世之僭君이 急於爲王者耶인저
天下雖亂이나 有王者在어늘 而己自王이면 雖聖人이라도 不能以服天下리라
由此觀之하면 則是武王이 不敢一日妄尊其先君이어시든
故로 凡以文王周公爲稱王者는 皆過也니 是資後世之簒君而爲之藉也니라
夫
은 非逆也
요 是其智不足以深知周公而已矣
며 周公之誅
는 非疾之也
요 其勢不得不誅也
라
故로 管, 蔡는 非所謂大惡也니 兄弟之親에 而非有大惡이면 則其道不得不封이니
管, 蔡之封은 在武王之世也라 武王之世엔 未知有周公成王之事하니 苟無周公成王之事면 則管, 蔡何從而叛이며 周公이 何從而誅之리오
故로 曰 周公은 居禮之變하야 而處聖人之不幸也라하노라
주공周公을 논하는 자들이 이설異說이 많은 것은 어째서인가?
주공周公이 예禮의 변고에 거居하여 성인聖人의 불행에 처했으니, 말하는 자들이 이설異說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무릇 주공周公이 행하신 것은 또한 부득이해서 하였을 뿐이니, 만약 그만둘 수 있는데도 그만두지 않으셨다면, 주공周公과 같은 분이 어찌 이런 짓을 하셨겠는가?
성왕成王이 어려서 정사政事를 다스릴 수 없으므로 주공周公이 그 권한을 집행하여 왕명王命으로써 천하 사람들에게 상賞을 주고 벌罰을 내리셨으니, 이는 주공周公이 부득이해서 한 것이 이와 같았을 뿐이다.
지금 유자儒者들이 말하기를 “주공周公이 천자天子의 지위에 올라서 왕王이라고 칭하고 제후諸侯들에게 조회朝會받았다.”라고 하니, 그렇다면 이것이 어찌 부득이해서 한 일이겠는가?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주공周公이 총재冢宰의 지위를 맡아 백관百官을 바로잡자, 여러 형제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소공召公이 태보太保가 되고 주공周公이 태사太師가 되어 성왕成王을 도와 좌우에서 보필하는 신하가 되었는데 소공召公이 기뻐하지 않았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주공왈周公曰’, ‘왕약왈王若曰’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주공周公이 일찍이 천자天子의 지위에 올라 왕王이라고 칭한 적이 없는 것이다.
주공周公이 왕王이라고 칭했다면 성왕成王을 마땅히 무엇이라고 칭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장차 왕王이라고 칭하지 말아야 하겠는가?
왕王이라고 칭하지 않는다면 이는 폐위된 것이요, 왕王이라고 칭한다면 이것은 왕王이 둘인 것이니, 어찌 주공周公이 이것을 편안히 여기실 수 있었겠는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을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유자儒者의 걱정은 반드시 명名과 실實이 바르지 않음에 있다.
그러므로 또한 문왕文王이 왕王을 칭했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니, 이것은 문왕文王 같은 성인聖人을 후세의 참람한 군주가 왕王이 되기를 급급하게 여긴 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천하天下가 아무리 혼란하더라도 왕자王者가 따로 있는데 문왕文王이 스스로 왕王이라고 칭한다면, 문왕文王이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천하를 복종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옛날에 한 고조漢 高祖가 항적項籍을 쳐서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자, 제후諸侯와 대신大臣들이 서로 모여서 고조高祖를 황제皇帝로 추대하려고 하였으나, 고조高祖는 오히려 덕이 부족하다고 사양했었다.
오직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시끄럽게 스스로 왕王이라고 칭하기에 급하였는데, 문왕文王 또한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한 짓을 했다고 하겠는가?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정벌하여 군대가 맹진孟津을 건너가서 목야牧野에 모였을 적에, 무왕武王이 이번의 정벌은 선군先君인 문고文考의 명령이라고 칭하면서 제후諸侯들을 명령한 내용에 여전히 ‘문고文考’라고 하였을 뿐이었고,
〈무성武成〉에 이르러 이윽고 시망柴望으로 하늘에 고유하여 백관百官들이 분주히 달려와 주周나라의 명을 받은 뒤에야 “우리 문고文考이신 문왕文王이 능히 공을 이루었다.”라고 칭하였으니,
이로써 살펴보건대 무왕武王이 단 하루도 자기 선군先君을 왕王이라고 함부로 높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문왕文王이 스스로 왕王이라고 칭함에 있어서이겠는가!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우虞나라와 예芮나라가 분쟁을 해결하러 오자 문왕文王이 크게 흥성해졌다.”라고 하였으니, 이것 또한 추후에 문왕文王이라고 칭했을 뿐이다.
《사기史記》에 “노파가 상추를 뜯어 전성자田成子에게 귀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전상田常의 때에 어찌 전성자田成子라고 시호할 줄을 알아서 이렇게 칭했겠는가?
그러므로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이 왕王을 칭했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니, 이것은 후세의 찬탈하는 군주를 도와서 구실을 삼게 한 것이다.
진가陳賈가 맹자孟子에게 묻기를 “주공周公이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으로 하여금 상商나라를 감독하게 하셨는데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상商나라를 이끌고 배반했으니, 주공周公이 배반할 줄을 알면서 시켰다면 이것은 인仁하지 못한 것이요, 알지 못하고서 시켰다면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하자,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주공周公은 아우이고 관숙管叔은 형이니, 주공周公의 잘못이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하셨다.
맹자孟子의 말씀을 따른다면 주공周公도 잘못이 있음을 면치 못하신 것이다.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배반한 것은 반역한 것이 아니요 이는 이들의 지혜가 주공周公의 마음을 깊이 알지 못한 것일 뿐이며, 주공周公이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주벌한 것은 이들을 미워한 것이 아니요 형편상 주벌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은 이른바 대악大惡이라는 것이 아니니, 형제간의 친함으로 대악大惡이 아니면 도리상 봉해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봉한 것은 무왕武王의 세대에 있었던 일인데, 무왕武王의 세대에는 주공周公과 성왕成王의 일이 있을 줄을 알지 못했으니, 만일 주공周公과 성왕成王의 일이 없었더라면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무슨 이유로 배반하였을 것이며, 주공周公이 무슨 이유로 이들을 주벌하셨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주공周公은 예禮의 변고에 거居하여 성인聖人의 불행에 처하였다.”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