設行人屬國之官은 專按越之范蠡, 吳之伍員上立見이니라
以天子之仁聖으로 其欲有所立以爲子孫萬世之計가 至切也로되 特以爲發而不中節이면 則天下或受其病이라
蓋自近歲
로 始
하시니 而天下皆洗心滌慮
하야 以聽朝廷之所爲
니이다
然而數年之間에 卒未有以大慰天下之望하니 此其故何也오
之大憂未去
하야 而天下之治
를 終不可爲也
일새니이다
聞之師호니 曰 應敵不暇면 不可以自完이요 自完不暇면 不可以有所立이라하니이다
自古創業之君은 皆有敵國相持之憂하야 命將出師하야 兵交於外로되 而中不失其所以爲國者라
故로 其兵可敗나 而其國不可動이요 其力可屈이나 而其氣不可奪하니이다
今天下一家
요 二虜且未動也
어늘 而吾君吾相
이 終日皇皇焉
하야 應接之不暇
하니 亦竊爲
也
하노이다
此其旣往之咎라 不可追之悔也어늘 而議者方將深罪當時之失하고 而不求後日之計하니 亦無益矣라
蓋古之爲國者는 不患有所費하고 而患費之無名하며 不患費之無名하고 而患事之不立하니이다
今一歲而費千萬하니 是千萬而已어니와 事之不立이면 四海且不可保어든 而奚千萬之足云哉잇가
今者
에 二虜不折一矢
하고 不遺一鏃
하야 走一介之使
하고 馳
하면 所過騷然
하야 居人爲之不寧
이니이다
大抵皆有非常之辭와 無厭之求와 難塞之請하야 以觀吾之所答이라
於是에 朝廷洶然하야 大臣會議하나니 旣而요 去未數月에 邊陲且復告至矣니이다
由此觀之하면 二虜之使未絶이면 則中國未知息肩之所어든 而況能有所立哉잇가
臣은 故로 曰 二虜之大憂未去면 則天下之治를 終不可爲也라하노이다
非至逸이면 無以待天下之勞요 非至靜이면 無以制天下之動이라
是故로 古之聖人이 雖有大兵役, 大興作하야 百官奔走하야 各執其職이로되 而中書之務는 不至於紛紜이러니
今者엔 曾不得歲月之暇하니 則夫禮樂刑政敎化之源으로 所以使天下回心而嚮道者를 何時而議也리잇가
千金之家 久而不治하면 使販夫竪子로 皆得執券以誅其所負하나니
苟一朝發憤하야 傾囷倒廩以償之하고 然後에 更爲之計하면 則一簪之資도 亦足以富하나니 何遽至於皇皇哉잇가
嘗竊怪其以蠻夷之國으로 承敗亡之後하야 救死扶傷之餘에 而賂遺費耗를 則不可勝計如此라
然이나 卒以滅吳하니 則爲國之患이 果不在費也니이다
彼其內外不相擾
라 是以
로 能有所立
하야 使
二人
으로 分國而制之
하니이다
范蠡曰
之外
는 種不如蠡
하니 使蠡主之
라하야 凡四封之外
에 所以待吳者
를 種不知也
하고
四封之內는 蠡不如種하니 使種主之라하야 凡四封之內에 所以彊國富民者를 蠡不知也하야
其所以賂遺於吳者 甚厚而有節也라 是以로 財不匱하고 其所以聽役於吳者 甚勞而有時也라 是以로 本不搖하니 然後에 句踐이 得以安意肆志焉하야 而吳國固在其指掌中矣니이다
今以天下之(人)[大]로 而中書常有蠻夷之憂하니 宜其內治有不辦者라
故로 臣以爲治天下는 不若淸中書之務니 中書之務淸이면 則天下之事를 不足辦也라하노이다
今夫天下之財
를 擧歸之
하고 天下之獄
을 擧歸之
하고 天下之兵
을 擧歸之
하야 而宰相
은 特持其大綱
하고 聽其治要
하야 而責成焉耳
니 夫此三者 豈少於蠻夷哉
리오마는 誠以爲不足以累中書也
일새니이다
古者
에 有行人之官
하야 掌四方賓客之政
하니 當周之盛時
하야 하고 蠻夷戎狄
이 莫不來享
이라
故로 行人之官은 治其登降揖讓之節과 牲芻委積之數而已러니 至於周衰하야는 諸侯爭彊하야 而行人之職이 爲難且重하니이다
子朱曰 朱也當御라하니 叔向曰 秦, 晉不和久矣라
今日之事 幸而集이면 秦, 晉賴之요 不集이면 三軍暴骨이라하니이다
其後
에 楚
이 奔吳
하야 爲吳行人以謀楚
하야 而卒以入郢
하니이다
故
로 賈誼曰 陛下試以臣爲屬國
하시면 請必繫單于之頸而制其命
하고 伏
而笞其背
하야 擧匈奴之衆
을 惟上所令
이라하니이다
今若依倣行人屬國
하야 特建一官
하야 重任而厚責之
호되 使宰相
으로 於
之中
에 擧其可用者
하고 而勿奪其權
하며 使大司農
으로 以每歲所以餽於二虜者
로 限其常數
하야 而豫爲之備
하고 其餘者
는 朝廷不與知也
니이다
凡吾所以遣使於虜와 與吾所以館其使者를 皆得以自擇하고 而其非常之辭와 無厭之求와 難塞之請을 亦得以自答하야 使其議不及於朝廷하고
而其閒暇엔 則收羅天下之俊才하야 治其戰攻守禦之策하고 兼聽博採하야 以周知敵國之虛實하야 凡事之關於境外者를 皆以付之니이다
如此면 則天子與宰相은 特因其能否하야 而定其黜陟이니 其實不亦甚簡歟잇가
今自宰相以下百官이 汎汎焉하야 莫任其責하나니 今擧一人而授之하야 使日夜思所以待二虜하면 宜無不濟者하리니
然後에 得以安居靜慮하야 求天下之大計하면 唯所欲爲하야 將無不可者하리이다
爲今日計컨대 只消於兵部中에 另立一協部尙書或侍郞하야 專掌北虜之事호되 用邊將하고 理兵餉하고 繕虜墻하며 幷探牒虜情하고 儲養邊材가 皆其所掌이며
歲一春則巡邊하고 夏四五月間엔 則歸復于朝하야 與兵戶二部로 相爲筦(管)榷이면 計之善者也니라
외교를 담당한 행인行人과 속국屬國을 다스리는 관원을 설치할 것을 주장한 것은 오로지 월越나라의 범려范蠡와 오吳나라의 오원伍員을 살펴보고 견해를 세운 것이다.
어질고 성스러운 천자天子께서 자손만대의 계책을 세우고자 하신 것이 지극히 간절하셨으나, 다만 일을 시작하면서 절도에 맞지 않으면 천하天下가 혹 그 해를 입을까 염려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천자께서 크게 한숨 쉬신 것이 지금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근년에 처음으로 두서너 명의 대신大臣을 등용하시자, 천하天下 사람들은 모두 마음을 깨끗이 씻고 생각을 바꾸어서 조정朝廷의 하는 바를 따랐습니다.
그런데도 수년 동안 끝내 천하天下 사람들의 바람을 크게 위로하지 못하였으니,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큰 걱정거리인 두 오랑캐가 제거되지 못해서 끝내 천하天下를 잘 다스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승에게 들으니, 말씀하기를 “적에게 대응할 겨를이 없으면 스스로 완전할 수가 없고, 스스로 완전할 겨를이 없으면 확립하는 바가 있지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창업한 군주들은 모두 적국과 서로 대치하는 우환이 있어서 장수를 임명하고 군대를 출동시켜 군대가 밖에서 교전하였으나 국중國中에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군대는 패할 수 있으나 나라는 동요시킬 수 없었고, 힘은 굽힐 수 있으나 기운은 빼앗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천하天下가 통일되어 한 집안이 되었고 두 오랑캐가 동요하지 않는데도 우리 군주와 정승이 종일토록 경황이 없어서 일을 처리하기에 겨를이 없으시니, 또한 삼가 집사자執事者들을 위하여 취하지 않습니다.
옛날 대신大臣들의 의논은 장구長久한 계책을 세우지 않고 최하의 계책을 따랐습니다.
이 때문에 해마다 금은金銀과 비단 수십 백만을 내어 강성한 오랑캐에게 밑천을 대주었습니다.
이는 이미 지나간 잘못이라서 후회한들 소용이 없는 일인데, 의논하는 자들은 당시의 잘못을 크게 나무라기만 하고 후일의 계책을 강구하지 않으니, 또한 아무 유익함이 없습니다.
신臣이 비록 불초不肖하나 당금當今의 병폐를 논하겠습니다.
옛날에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은 재물을 허비하는 것을 염려하지 않고 재물을 허비하는데 명분이 없음을 걱정하였으며, 재물을 허비하는데 명분이 없음을 걱정하지 않고 일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함을 걱정하였습니다.
지금 한 해에 천만 금을 허비하니 이것은 단지 천만 금을 허비할 뿐이지만, 만일 일이 확립되지 못한다면 사해四海도 보전할 수가 없는데 그까짓 천만 금을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 두 오랑캐들은 화살 하나 허비하지 않고 화살촉 하나 버리지 않고서 사신使臣 한 명을 보내고 역마 몇 대를 달리면, 우리 중국中國은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소란하여 거주하는 백성들이 이 때문에 편안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대체로 모두 포악하고 무례한 비상非常한 말과 끝없는 요구와 부응하기 어려운 요청을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대답하는 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에 조정朝廷이 흉흉하여 대신大臣들이 회의를 하지만, 오랑캐 사신이 떠난 지 몇 개월이 안 되어 변방에서는 또다시 오랑캐 사신이 왔다고 보고합니다.
이로써 살펴보면 두 오랑캐의 사신이 끊이지 않는다면 우리 중국中國이 편안히 어깨를 쉴 곳을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확립하는 바가 있겠습니까?
신臣은 이 때문에 큰 근심거리인 두 오랑캐를 제거하지 못하면 끝내 천하天下를 잘 다스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중서성中書省은 왕정王政이 말미암아 나오는 곳이니, 천자天子가 재상宰相과 함께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기관으로서 그 밖의 것은 알지 못합니다.
지극한 편안함이 아니면 천하天下의 수고로움을 대비할 수가 없고, 지극한 고요함이 아니면 천하天下의 동動함을 제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옛날 성인聖人들은 비록 큰 전쟁과 큰 공사가 있어서 백관百官들이 분주하게 각각 직책을 수행하더라도 중서성中書省의 임무는 간략하여 어지러운 데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단 한 해와 한 달의 여가도 얻지 못하니, 그렇다면 교화敎化의 근원인 예악禮樂과 형정刑政으로서 천하天下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돌려 도道를 향하게 하는 것을 어느 때에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천금千金을 소유한 부잣집이 오랫동안 재산을 다스리지 못하면 물건을 파는 지아비와 형편없는 자들이 모두 문권文券을 가지고 와서 빚 독촉을 할 것입니다.
이때 만일 부잣집에서 하루아침에 분발하여 창고를 기울이고 곳간을 털어서 빚을 갚고 그런 뒤에 다시 계책을 세운다면, 비녀 하나의 적은 밑천으로도 충분히 다시 집안을 부유하게 할 수 있으니, 어찌 대번에 어쩔 줄 몰라 갈팡질팡하는 데에 이르겠습니까?
신臣이 일찍이 《사기史記》의 〈오월세가吳越世家〉를 읽어보니, 월왕 구천越王 句踐이 회계산會稽山에서 곤궁하여 오吳나라와 화친을 맺을 적에 뇌물로 바친 금金․옥玉과 여자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고, 월越나라로 돌아와서는 오吳나라의 온갖 부역을 따르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대부大夫의 딸을 오吳나라의 대부大夫에게 시집보내고 사士의 딸을 오吳나라의 사士에게 시집보냈으며, 봄과 가을의 공물貢物을 오吳나라 창고에 바치는 것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신臣은 일찍이 월越나라가 오랑캐 나라로서 패전한 뒤를 이어서 죽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부상한 자들을 부축한 끝에 뇌물로 소비한 것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음이 이와 같음을 괴이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월越나라는 끝내 오吳나라를 멸망시켰으니, 나라의 병폐가 되는 것은 과연 재물을 소비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저 월越나라는 국내와 국외가 소요騷擾하지 않았기 때문에 능히 확립한 바가 있어서 범려范蠡와 대부 문종大夫 文種 두 사람으로 하여금 나라를 나누어 통치하게 하였습니다.
범려范蠡는 말하기를 “사방 국경의 밖을 다스리는 일은 문종文種이 나만 못하니, 나로 하여금 주관하게 해야 한다.” 하고는 국경의 밖에서 오吳나라에 대응하는 일을 자신이 도맡아 문종文種은 알지 못하였고,
“사방 국경의 안을 다스리는 일은 내가 문종文種만 못하니, 문종文種으로 하여금 주관하게 해야 한다.” 하고는 국경의 안에서 나라를 강성하게 하고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일을 문종文種이 도맡아 범려范蠡는 모두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 두 사람이 각각 자신의 재능을 오로지 쓰고 힘을 다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도 오吳나라를 멸망시켰던 것입니다.
그들이 오吳나라에 뇌물로 바친 것이 매우 많았으나 절도가 있었기 때문에 재물이 고갈되지 않았고, 오吳나라에게 사역을 당한 것이 매우 수고로웠으나 적당한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근본(백성)이 흔들리지 않았으니, 그런 뒤에야 구천句踐이 마음을 편안히 하고 뜻을 펴서 오吳나라가 진실로 그의 손바닥 안에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천하天下의 큰일을 맡고 있는 중서성中書省으로서 항상 오랑캐를 걱정하고 있으니, 내치內治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신臣은 생각하건대 ‘천하天下를 잘 다스리려면 중서성中書省의 임무를 줄여서 깨끗이 하는 것만 못하니, 중서성中書省의 임무가 줄어서 깨끗해지면 천하天下의 일을 굳이 다스릴 것이 없다.’라고 여겨집니다.
지금 천하天下의 재정財政을 모두 사농司農에게 돌리고 천하天下의 옥사獄事를 모두 정위廷尉에게 돌리고 천하天下의 병사兵事를 모두 추밀원樞密院에 돌려서, 재상宰相은 다만 큰 강령綱領만 잡고 정치의 요체만을 다스려서 성공을 책임지울 뿐이니, 이 세 가지가 어찌 만이蠻夷를 대응하는 것보다 하찮은 일이 되겠습니까마는 진실로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중서성中書省을 옭아매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 두 오랑캐를 대응하는 방법은 중서성中書省의 임무가 지나치게 편중됨에 그 잘못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행인行人이라는 관직이 있어서 사방 빈객賓客(외교 사신)의 정사를 관장하였으니, 주周나라의 전성기에는 제후諸侯들이 사방에서 조회朝會 오고 만이蠻夷와 융적戎狄이 와서 공물을 바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행인行人이라는 관직은 그저 계단을 오르내리고 읍하고 사양하는 예절과 이들에게 공급하는 희생犧牲과 꼴과 위적委積(곡식 등의 물자)의 숫자만을 다스렸을 뿐이었는데, 주周나라가 쇠함에 이르러는 제후諸侯들이 강성함을 다투어서 행인行人의 직책이 수행하기 어렵고 또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춘추시대에 진秦나라가 진晉나라에 빙문 오자, 숙향叔向이 행인 자원行人 子員을 부르라고 명하였습니다.
자주子朱가 말하기를 “제가 담당할 차례입니다.”라고 하자,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진秦나라와 우리 진晉나라가 불화한 지 오래되었다.
오늘의 빙문하는 일이 다행히 잘되면 진秦나라와 우리 진晉나라가 모두 유익할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삼군三軍이 싸워 군사들의 해골이 들판에 나뒹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초楚나라의 오원伍員이 오吳나라로 도망가서 오吳나라의 행인行人이 되어 초楚나라를 도모한 결과, 끝내 오吳나라의 군대는 초楚나라의 수도인 영郢 땅으로 쳐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한西漢이 일어날 적에 속국을 다스리는 관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의賈誼가 말하기를 “폐하陛下께서 한 번 신臣을 속국을 다스리는 관원으로 임명하신다면, 청컨대 반드시 선우單于의 목에 올가미를 매어서 그의 목숨을 제재하고 중항열中行說을 엎드리게 하여 그 등을 매질하며 온 흉노匈奴의 무리를 들어 오직 황상께서 명령하는 대로 따르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만약 옛날 행인行人과 속국을 다스리던 제도를 따라 특별히 한 관직을 두어서 임무를 중하게 하고 책임을 무겁게 하되, 재상宰相으로 하여금 양제兩制 가운데에서 등용할 만한 자를 가려 등용하고 그 권한을 빼앗지 말게 하며, 대사농大司農으로 하여금 매년 두 오랑캐에게 주는 재물을 일정한 액수로 제한하여 미리 대비하게 하고, 그 나머지는 조정朝廷에서 관여하여 따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쪽에서 오랑캐에게 보내는 사신과 우리쪽에서 오랑캐 사신을 접대하는 자들을 모두 이들이 스스로 가려서 쓰게 하고, 오랑캐의 포악하고 무례한 비상非常한 말과 끝없는 요구와 부응하기 어려운 요청을 또한 이들이 스스로 대응하게 하여, 하여금 그 의논이 조정朝廷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로운 때에는 천하天下의 준걸俊傑스러운 인재들을 거두어 망라해서 싸우고 공격하고 수비하고 방어하는 대책을 세우게 하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듣고 널리 채택해서 적국의 허실을 두루 알게 해서 국경 밖에 관계되는 모든 일들을 다 이들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천자天子와 재상宰相은 다만 그들의 능함과 능하지 못함을 따라서 내칠 것인가 승진시킬 것인가만 정할 뿐이니, 그 실제는 매우 간략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재상宰相으로부터 이하 백관百官들이 무관심하여 그 책임을 맡는 사람이 없으니, 지금 한 사람을 들어서 그에게 오랑캐를 대비하는 일을 전담시켜 밤낮으로 두 오랑캐를 대비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면 마땅히 이루지 못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 뒤에 편안히 거처하고 고요히 생각해서 천하天下의 큰 계책을 강구한다면 오직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되어서 장차 불가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을 위해 계책을 세우건대, 다만 모름지기 병부兵部 안에 별도로 한 협부상서協部尙書나 협부시랑協部侍郞을 세워서 오로지 북쪽 오랑캐의 일을 관장하게 하되, 변방의 장수를 등용하고 군량을 다스리고, 오랑캐를 막는 장벽을 수리하고 아울러 오랑캐의 실정을 정탐해서 문서로 보고하며 변방의 인재를 모아 기르는 것을 모두 이들이 관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해마다 한 번 봄에 변경을 순행하고 여름 4, 5월 사이에는 다시 조정朝廷으로 돌아와서 병부兵部와 호부戶部와 서로 상의하게 한다면, 아마 계책 중에 좋은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