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時
에 慕
爲人
하야 閭里之俠
이 皆宗之
러니 稍壯
에 하야 欲以此馳騁當世
나 然終不遇
라
晩乃遯(遁)於光, 黃間曰
하니 庵居蔬食
하야 不與世相聞
이라
棄車馬하고 毁冠服하고 徒步往來山中하니 人莫識也라
見其所著帽
하고 曰
인저하고 因謂之方山子
라하니라
余謫居于黃할새 過岐亭이라가 適見焉하고 曰 嗚呼라
此吾故人陳慥季常也니 何爲而在此오하니 方山子亦矍然問余所以至此者라
余告之故한대 俯而不答하고 仰而笑하고 呼余宿其家하니 環堵蕭然이로되 而妻子奴婢 皆有自得之意하니 余旣聳然異之로라
前十有九年에 余在岐山하야 見方山子하니 從兩騎하고 挾二矢하야 游西山할새 鵲起于前이어늘 使騎逐而射之호되 不獲이라
方山子怒馬獨出하야 一發得之하고 因與余馬上論用兵及古今成敗하고 自爲一世豪士러니
然이나 方山子는 世有勳閥하야 當得官하리니 使從事於其間이면 今已顯聞이요 而其家在洛陽하야 園宅壯麗하야 與公侯等하고 河北有田하야 歲得帛千匹하니 亦足以富樂이어늘
余聞光, 黃間에 多異人이로되 往往陽狂垢汚하야 不可得而見이라하니 方山子儻見之歟아
此篇
은 에 不載
로되 余特愛其煙波生色處 往往能令人涕洟
라 故
로 錄入之
하노라
기이함이 자못 질탕하여 사마자장司馬子長(사마천司馬遷)과 유사하다.
방산자方山子는 광주光州와 황주黃州 사이에 은둔한 사람이다.
젊었을 적에 주가朱家와 곽해郭解의 인품을 흠모하여 마을의 협객들이 모두 그를 종주로 삼았었는데, 차츰 장성하자 평소의 뜻을 굽히고 책을 읽어서 이것을 가지고 당세에 재능을 발휘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하였다.
만년에 마침내 광주光州와 황주黃州 사이에 있는 기정岐亭이라는 곳에 은둔하니, 암자에서 거처하고 채소를 먹으면서 세상 사람들과 서로 소식을 주고받지 않았다.
수레와 말을 버리며 선비의 관冠과 의복을 찢어버리고 평상복을 입고는 도보로 산중을 왕래하니, 아무도 그를 아는 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쓰고 있는 모자가 네모진 지붕처럼 높이 솟은 것을 보고는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옛날 방산관方山冠의 남은 모습이 아니겠는가?”라고 하고, 인하여 그를 ‘방산자方山子’라고 불렀다.
내가 황주黃州에 좌천되어 있을 적에 기정岐亭을 지나다가 우연히 그를 보고 말하기를 “아!
이 사람은 나의 친구 진조 계상陳慥 季常인데, 무슨 일로 여기에 있는가?”라고 하니, 방산자方山子도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내가 여기에 온 까닭을 물었다.
내가 그 이유를 말해주자, 방산자方山子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다가 고개를 들어 웃고는 나를 불러 자기 집에서 유숙하게 하였는데, 오막살이가 쓸쓸하였으나 처자와 노비들이 모두 스스로 만족한 뜻이 있었으니, 내 이미 크게 기이하게 여겼다.
내 홀로 생각해보니, 방산자方山子는 젊었을 적에 술주정하고 검술을 좋아하며 재물을 거름처럼 함부로 사용하였다.
19년 전에 내가 기산岐山에 있으면서 보니, 방산자方山子가 말을 탄 사람 두 명을 대동하고, 자신은 두 개의 화살만 가지고서 서산西山에서 놀았는데, 까치가 앞에서 날자 말을 탄 사람들로 하여금 쫓아가 활을 쏘아 잡게 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방산자方山子가 노기怒氣를 띠고 말을 치달려 홀로 나가서 한 발에 쏘아 잡고는, 나와 함께 말을 타고 용병用兵과 고금古今의 성패成敗를 논하고 스스로 당대의 호걸스런 선비라고 하였다.
그런데 날쌔고 용맹한 기색이 아직도 미간眉間에 나타나니, 어찌 그가 산중山中의 사람이겠는가?
그러나 방산자方山子는 대대로 공훈이 있는 가문이어서 마땅히 벼슬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니, 만일 그가 벼슬하는 데에 종사했더라면 지금 이미 현달하여 소문이 났을 것이요, 또 그의 집이 낙양洛陽에 있어서 전원과 주택이 웅장하고 화려하여 공후公侯들과 대등하고, 하북河北에 수많은 전지田地가 있어서 해마다 비단 천 필을 얻을 수 있으니, 또한 충분히 부유하고 즐겁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방산자方山子는 이것을 모두 버리고 취하지 않고는 홀로 궁벽한 산중에 왔으니, 이 어찌 도道에 얻음이 없이 그러하겠는가?
내가 들으니, 광주光州와 황주黃州 사이에는 이인異人이 많은데, 왕왕 거짓 미친 체하며 비루한 짓을 행하여 만나볼 수 없다고 하니, 방산자方山子는 혹 그들을 보았는가?
이 글은 《삼소문수三蘇文粹》에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내 특별히 변화무쌍하여 생동감이 넘치는 부분이 왕왕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함을 좋아하므로 여기에 기록해 넣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