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새 一日
에 夢至其處
하야 見
장도사張道士하니 如平昔
하야 汛治庭宇
하야 若有所待者
하고 曰
노선생老先生且至
라하니라
予曰 妙는 一而已니 容有衆乎아 道士笑曰 一已陋矣니 何妙之有리오
若審妙也면 雖衆이라도 可也라하고 因指灑水薙草者하고 曰 是各一妙也라하니라
予復視之하니 則二人者 手若風雨하고 而步中規矩하니 蓋煥然霧除하고 霍然雲消라
是技與道相半하고 習與空相會하니 非無挾而徑造者也라
夫蜩登木而號에 不知止也하고 夫鷄俯首而啄에 不知仰也하니 其固也如此라
然이나 至蛻與伏也하야는 則無視無聽하고 無饑無渴하야
黙化於荒忽之中하고 候伺於毫髮之間하야 雖聖知(智)라도 不及也니
二人者出커늘 道士曰 少安하고 須노선생老先生 至而問焉하라 二人者顧曰 노선생老先生未必知也시리니
子往見蜩與鷄而問之하면 可以養生이요 可以長年이리라
이 作
중묘당堂하야 榜曰
중묘당衆妙라하고 以書來海南
하야 求文以記之
하니 予不暇作也
일새 獨書夢中語以示之
하노라
공公이 남해南海로 귀양 간 뒤가 아니면 이런 글을 짓지 못했을 것이다.
미산眉山의 도사 장이간道士 張易簡이 가르치는 소학생小學生들이 항상 백 명이 되었는데, 나도 어릴 적에 여기에 참여하였다.
장도사張道士는 천경관 북극원天慶觀 北極院에 거처하였는데, 그때 나는 그에게서 3년을 배웠다.
그 후 내가 해남도에 귀양 와서 있을 적에 하루는 꿈에 그곳에 가서 보니, 장도사張道士가 평소처럼 정원을 쓸고 청소하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하며, 말하기를 “노선생老先生(노자老子)이 장차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문도 중에 《노자老子》를 외는 자가 말하기를 “현묘玄妙하고 또 현묘玄妙하니, 여러 묘함의 문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묘妙는 하나일 뿐이니, 어찌 많겠는가?”라고 하자, 도사道士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하나도 이미 누추하니, 어찌 묘함이 있겠는가?
만약 참으로 묘하다면 아무리 많아도 괜찮다.”라 하고, 인하여 물을 뿌리고 풀을 베는 자들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들도 각각 한 묘함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다시 살펴보니, 두 사람은 손놀림이 비바람처럼 빠르고 걸음걸이가 법도에 맞으니, 안개가 환하게 걷히고 구름이 갑자기 사라지는 듯하였다.
내가 놀라 감탄하기를 “묘함이 여기에 이른단 말인가?
포정庖丁이 결에 따라 소를 해체하고, 영인郢人이 코에 백토를 칠하고 깎은 것이 사실이구나!”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하던 기예技藝를 놓고 올라와서 말하기를 “그대는 아직 참으로 묘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포정庖丁과 영인郢人은 인력으로 미칠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이들은 기예와 도道가 서로 반반씩이고 익힘과 공간이 서로 만났으니, 가진 것이 없이 곧바로 나아간 자가 아닙니다.
매미가 나무에 올라가 울 적에 그칠 줄을 모르고, 닭이 고개를 숙이고 쪼아먹을 적에 우러를 줄을 모르니, 융통성이 없이 하나밖에 모르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매미가 껍질을 벗고 닭이 알을 품게 되면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으며 굶주림도 없고 목마름도 없어서,
황홀한 가운데에 묵묵히 변화하고 털끝만 한 사이를 자세히 살펴서, 비록 훌륭한 성인聖人과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미치지 못하니,
이 어찌 기예와 익힘의 도움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나가자, 도사道士가 말하기를 “그대는 조금 앉아 있다가 노선생老先生이 이르시기를 기다려 물으시오.”라고 하였는데, 두 사람이 돌아보며 말하기를 “노선생老先生도 반드시 알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는 가서 매미와 닭을 보고 물어보면 양생養生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요,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광주廣州의 도사道士인 숭도대사 하덕순崇道大師 何德順이 당堂을 짓고 ‘중묘당衆妙堂’이라 써서 붙이고, 해남도에 있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서 글을 지어 기록해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내가 지을 겨를이 없으므로 다만 꿈속의 말을 써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