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不異覺하고 覺不異夢하야 夢卽是覺요 覺卽是夢이니 此其所以爲無夢也歟인저하니라
曰 形神不接而夢하니 此豈想哉리오 對曰 因也라하니라
塵之生滅이 無一念住하니 夢覺之間에 塵塵相授하야 數傳之後에 失其本矣면 則以爲形神不接이라하니 豈非因乎아
人有牧羊而寢者
러니 因羊而念馬
하고 因馬而念車
하고 因車而念蓋
하야 遂夢
하야 身爲王公
이라
夫牧羊之與王公은 亦遠矣니 想之所因을 豈足怪乎아
居士始與지芝로 相識於夢中하고 旦以所夢으로 求而得之하야 今二十四年矣에 而五見之라
每見에 輒相視而笑하고 不知是處之爲何方과 今日之爲何日과 我爾之爲何人也라
我觀世人컨대 生非實中하야 以寤爲正하고 以寐爲夢하야 忽寐所遇하고 執寤所遭라
遨游四方이라도 齋則不遷이니 南北東西가 法身本然이니라
“지인至人은 꿈이 없다.”라고 하자, 혹자가 말하기를 “고종高宗(무정武丁)과 무왕武王과 공자孔子가 모두 꿈을 꾸셨고 부처 또한 꿈을 꾸었으니,
꿈속은 깨어 있을 때와 다르지 않고 깨어 있을 때도 꿈과 다르지 않아서, 꿈을 꾸는 것이 바로 깨어 있음이고, 깨어 있음이 바로 꿈을 꾸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무몽無夢’이라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위개衛玠가 악광樂廣에게 꿈에 대해서 묻자, 악광樂廣이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위개衛玠가 “형체와 정신이 접하지 않았는데 꿈을 꾸니, 이것이 어찌 생각일 수 있습니까?”라고 되묻자, 악광樂廣은 대답하기를 “인因하여 연상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혹자가 인因의 내용을 묻기에 내(동파거사東坡居士)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진세를 따라 생겨나서 독립한 적이 없다.
진세의 생겨남과 소멸에 한 생각도 멈춤이 없는데, 꿈꾸고 깨는 사이에 진세와 진세가 서로 이어져서 몇 번 전한 뒤에 그 근본을 잃게 되면 이것을 가지고 사람들이 ‘형체와 정신이 접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어찌 인因함(연상함)이 아니겠는가?
양羊을 치다가 잠든 사람이 있었는데, 꿈에 양羊으로 인하여 말[마馬]을 생각하고 말을 생각함으로 인하여 수레를 생각하고 수레를 생각함으로 인하여 일산을 생각하여, 마침내 손잡이가 굽은 일산을 쓰고 북을 치고 관악기를 불며 자신이 왕공王公이 된 꿈을 꾸었다.
양치기와 왕공王公은 거리가 멀지만, 생각이 연상하여 일어난 것을 어찌 괴이하게 여길 것이 있겠는가?”
내(거사居士)가 처음 지芝(현수顯秀)를 꿈속에서 보고는 아침에 꿈꾸었던 것을 가지고 찾아내어서 지금 24년이 되었는데, 다섯 번 만났다.
나는 매번 만날 때마다 번번이 서로 바라보며 빙긋이 웃어서, 여기가 어느 곳인지 오늘이 무슨 날인지 나와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그가 우거寓居하는 방에 ‘몽재夢齋’라고 써 붙이고, 자유子由(소철蘇轍)가 명문銘文을 지었다.
법신法身이 충만하여 곳곳마다 모두 하나인데, 환신幻身은 허망하여 이르는 곳마다 실제(진실)가 아니다.
내가 세상 사람들을 관찰해보건대, 사는 것이 실제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어서, 깨어 있는 것을 바르다 하고 잠자는 것을 꿈이라고 하여, 갑자기 자다가 만나는 것을 소홀히 하고 깨었을 때에 만난 것을 집착한다.
법신法身을 만나보면 깨어 있는 것도 잠자는 것도 모두 진실이 아니다.
모두 진실이 아닌 것을 알면 자나 깨나 작위함이 없게 된다.
정신은 사방에 나가 놀더라도 집은 옮기지 않으니, 동․서와 남․북이 본연의 법신法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