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平生多難하야 常以身試之호니 凡免我於厄者는 皆平日可畏人也요 擠我於嶮(險)者는 皆異時可喜人也라
之初
에 하야 하고 追論平生所見剛者
하니 或不幸死矣
라
始吾弟자유子由 爲條例司屬官이러니 以議不合引去라
이 謂君曰 吾條例司
는 當得開敏如子者
니라 君笑曰 公過矣
니
當求勝我者니 若我輩人은 則亦不肯爲條例司矣라한대
方新法之初
하야 감사監司皆新進少年
이라 馭吏如束濕
하야 不復以禮遇士大夫
로되 而獨敬憚君
하야 曰 是
는 라하니라
할새 계주절도사州태수守왕기王奇 與蠻戰死
하니 君爲
하야 被旨鞠吏士[之]有罪者
라
사린麟이 因收大小使臣十二人하야 付君幷按하고 且盡斬之한대 君持不可라
사린麟以語侵君한대 君曰 獄當論情이요 吏當守法이라
逗撓不進은 諸將罪也어늘 旣伏其辜矣니 餘人을 可盡戮乎아
刑部定如君言하야 十二人이 皆不死하고 或以遷官하니 吾以是로 益知剛者之必仁也로라
方
공자孔子時
하야 可謂多君
공자子로되 而曰
라하사 以明其難得如此
어시늘
士患不剛耳니 長養成就라도 猶恐不足이어늘 當憂其太剛하야 而懼之以折耶아
君平生可紀者甚多
로되 獨書此二事
하야 遺其
공자子하야 明剛者之必仁
하야 以信
공자孔子之說
하노라
공公이 만년晩年에 세상의 변고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씀한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강剛하고 굳세고 질박하고 어눌한 자가 인仁에 가깝다.”라고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는 자는 인仁한 이가 적다.”라고 하셨다.
강剛한 자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의 강剛함을 좋아해서가 아니요 그의 인仁을 좋아해서이며, 말 잘하는 자를 미워하는 까닭은 그의 말 잘하는 것을 미워해서가 아니요 그의 불인不仁함을 미워해서이다.
내 평소 환난을 많이 겪어서 항상 내 몸을 가지고 시험해보니, 무릇 나를 곤액困厄에서 면하게 한 자들은 다 평소에 두려워할 만한 사람들이었고, 나를 험한 길로 떠민 자들은 모두 예전에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 때문에 강剛한 자가 반드시 인仁하고 말 잘하는 자가 반드시 불인不仁함을 알게 되었다.
건중정국建中靖國 초년에 내가 해남도海南島로부터 돌아와서 옛 친구들을 만나 생존 여부를 묻고 평소 내가 보았던 강剛한 자를 추론追論해보니, 혹은 불행히 죽은 자가 있었다.
그중에 손군 개부孫君 介夫 휘 입절諱 立節로 말하면 참으로 강剛한 자라고 이를 만하였다.
처음 내 아우 자유子由(소철蘇轍)가 삼사조례사三司條例司에 소속된 관리가 되었는데, 〈왕안석王安石과〉 의논이 부합하지 않아 벼슬을 그만두었다.
왕형공王荊公(왕안석王安石)이 군君에게 이르기를 “우리 조례사條例司는 마땅히 그대와 같이 개명하고 민첩한 자를 얻어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군君이 웃으며 말하기를 “공公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마땅히 저보다 나은 자를 구해야 하니, 저와 같은 사람들은 조례사條例司의 벼슬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왕형공王荊公이 〈노하여〉 대답하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 문으로 들어가니, 군君도 종종걸음으로 나왔다.
군君이 진강군서기鎭江軍書記가 되었을 적에 나는 마침 전당錢塘의 통판通判이 되어서 상주常州와 윤주潤州 사이를 왕래하다가 경구京口에서 군君을 만났다.
이때 막 신법新法을 시행하는 초기여서, 감사監司들이 모두 신진의 연소年少한 자들이었으므로 부하 관리를 다스리기를 젖은 물건을 쥐어짜듯이 하여 다시는 사대부士大夫들을 예우하지 않았으나, 유독 군君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이분은 승상丞相에게 항거하여 조례사條例司 벼슬을 하려 하지 않은 자이다.”라고 하였다.
사린謝麟이 계동溪洞의 사의事宜를 다스릴 적에 주州의 태수太守인 왕기王奇가 오랑캐와 싸우다가 죽었는데, 이때 군君이 계주절도사桂州節度使의 판관判官이 되어서 성지聖旨를 받고 죄가 있는 관리와 군사들을 심문하게 되었다.
사린謝麟이 인因하여 크고 작은 사신使臣 열두 사람을 체포하여 군君에게 맡겨 함께 조사하고 또 모두 참수하게 하자, 군君은 불가하다고 주장하였다.
사린謝麟이 말로 군君을 침해하자, 군君은 말하기를 “옥사獄事는 마땅히 실정을 논해야 하고, 옥리獄吏는 마땅히 법을 지켜야 합니다.
군사들이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않은 것은 제장諸將들의 죄인데, 이미 제장諸將들이 그 죄罪를 받았으니, 나머지 사람을 다 죽일 수 있겠습니까?
만약 반드시 불법으로 사람을 참수하고자 한다면 경제사經制司 당신이 직접 하시오.
사린謝麟이 군君이 상관에게 항거한다고 아뢰자, 군君 또한 사린謝麟이 옥사獄事를 침탈한다고 아뢰었다.
형부刑部에서 판정하기를 군君의 말과 같이 하여 열두 사람이 모두 죽지 않았고 혹은 벼슬이 승진하였으니, 나는 이로써 강剛한 자가 반드시 인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仁하지 않고서 한마디 말로 열두 사람을 반드시 죽을 자리에서 살릴 수 있겠는가?
공자孔子 당시에는 〈문하門下에〉 군자君子가 많다고 이를 만하였으나,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강剛한 자를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시어 강剛한 자를 얻기 어려움이 이와 같음을 밝히셨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말하기를 “너무 강剛하면 부러진다.”라고 한다.
선비는 강剛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니, 강剛함을 길러 성취시키더라도 오히려 부족할까 두려운데, 더구나 너무 강剛할까 근심하여 꺾인다는 것으로 두렵게 한단 말인가?
꺾이고 꺾이지 않는 것은 천운天運이요 강剛함의 죄罪가 아니니, 이 의논을 하는 자는 벼슬자리를 잃을까 염려하는 비부鄙夫이다.
군君은 평소에 기록할 만한 훌륭한 행실이 매우 많으나, 나는 유독 이 두 가지 일을 써서 그의 아들 협勰과 려勴에게 주어 강剛한 자가 반드시 인仁하다는 것을 밝혀서, 공자孔子의 말씀이 사실임을 입증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