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將登庸이러니 盜起서하西夏하야 四方騷然하니 帝用不赦라
入贊兵政하고 出殿大邦하니 恩威竝行하야 春雨秋霜이라
我有黎民을 誰與敎之하고 我有子孫을 誰與保之며 巍巍堂堂을 寧復有之리오
施及不肖하야 待以國士하니 非我自知요 公實見謂라
有肉在俎하고 有酒在樽하니 公歸在天에 寧聞我言이리오
06. 위국 한령공魏國 韓令公에게 올린 제문祭文
한공韓公에 대한 제문祭文이 당시에 으뜸이었다.
하늘이 큰 성인을 낼 때에는 반드시 배필을 만드시니, 신神이 이것을 맡아서 약속하지 않아도 만나게 됩니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나오시자 우禹와 후직后稷이 스스로 오고, 인종仁宗께서 용龍처럼 날아서 등극하시자 공公이 진사進士로 급제하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재주가 빼어나서 붓을 잡고 들어가 모시니, 이때에 공公은 비유하면 동중서董仲舒와 가의賈誼였습니다.
공公을 장차 등용하려 하였는데, 도둑이 서하西夏에서 일어나서 사방四方이 소란하니 황제께서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공公에게 부월鈇鉞을 주어 가서 서쪽 군대를 감독하게 하시니, 이때에 공公은 방숙方叔이요 소호召虎였습니다.
〈적을 평정한 뒤에〉 들어와서는 병정兵政을 돕고 나가서는 큰 고을을 진무하니, 은혜와 위엄이 함께 행해져서 은혜는 봄비와 같고 위엄은 추상과 같았습니다.
군사들이 훈련되고 백성들이 편안하며 사방 오랑캐들이 항복하니, 이때에 공公은 임회왕臨淮王과 분양왕汾陽王이었습니다.
황제께서 명당明堂에 계시면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행하고자 하시니, 여러 재상들이 공功을 아뢰었으나 성공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공公을 북방에서 불러와서 추형樞衡을 맡기시니, 이때에 공公은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이요 위상魏相과 병길邴吉이었습니다.
두 황제(인종仁宗과 영종英宗)의 산릉山陵을 만듦에 천하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호흡하는 사이에 천둥처럼 놀라고 바람처럼 쓰러졌습니다.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고 전쟁이 있으니, 이때에 공公은 이윤伊尹이요 주공周公이었습니다.
공功을 이루고 물러남에 세 진영이 조용하였는데, 천하가 원망하는 소리로 시끄러워서 언제 회복될지 몰랐습니다.
필공畢公은 밖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왕실에 있었고, 방공房公(방현령房玄齡)은 죽으면서도 요동遼東 정벌을 걱정하셨습니다.
6월 갑인일甲寅日에 백성들이 복이 없어서 우리 종신宗臣을 잃었습니다.
우리 백성들을 누가 가르쳐주고, 우리 자손들을 누가 보호해주며, 공公처럼 거룩하고 당당한 분을 어찌 다시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니, 슬퍼한들 어찌 미칠 수 있겠습니까?
옛날 우리 선친(소순蘇洵)께서 동경東京에서 별세하시자, 공公은 만시挽詩 두 수를 지어서 상여 길을 전송하시니, 문장은 전고典誥를 따르고 의논은 삼황三皇․오제五帝를 지극히 하셨습니다.
공公의 말씀이 한 번 나오니, 누가 감히 고치고 평하겠습니까?
공公의 은덕이 뻗쳐 불초에게까지 미쳐서 국사國士로 대우하시니, 이는 제가 스스로 알려진 것이 아니요 공公께서 실로 이렇게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부자와 형제가 모두 공公의 문하門下에서 나왔습니다.
공公이 보답을 바라지 않으시니, 제가 어찌 은혜를 품겠습니까?
오직 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실로 이 인민人民을 불쌍히 여겨서입니다.
고기가 도마 위에 있고 술이 술동이에 담겨 있는데 공公이 하늘로 돌아가셨으니, 어찌 저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