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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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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挈失著處하니 亦千年隻眼이니라
英雄之士 能因天下之隙하여 而遂成天下之勢니라
天下之勢 未有可以必成者也로되 而英雄之士 常因其隙而入于其間하여 堅忍而不變하니 是以 天下之勢 遂成而不可解니라
以下者 天下何其紛紛也
强者 不能以相幷이요 而弱者 不能以相服이니 其德 不足以相君臣이요 而其兵 不足以相呑滅일새니라
天下大亂하여 離而爲하고 북조又自離而爲동위서위西하며 其君臣 又自相簒取而爲七代라가 至於而後 合而爲一이니라
蓋其間百有餘年之中 其賢君名臣累累而出者 不爲少矣니라
然而南不能渡황하하여 以有北之民하고 而北不能過양자강하여 以侵南之地하니 豈其百年之間 南無間之足乘이요 而北無隙之可入哉
蓋亦其勢之有所不可者也니라
七代之際 天下常有變矣니라
取之하고 取之하고 取之하고 取之하고取之니라
此五釁者 兵交而不解하고 內亂而無救니라
其間非小也로되 而其四隣 拱手遠望하고 而莫敢入하니 니라
嗟夫
北方之人 其力不足以幷南이요 而南方之勢 又固不可以爭衡於中國이니 則七代之際 天下將不可合耶
嘗試論之컨대 무제之際 天下將合之際也니라
旣死후진地大亂이어늘 무제武帝하여以攻후진한대 兵不勞而관중關中하니 此天下之一時也니라
及夫 관중關中未安이라
席不及煖하고 兵不及息하여 而奔走以防강남江南之亂하고하여 以抗四方强悍之하니 則天下之勢 已遂去矣니라
且此惟不能因天下之勢而遂成之也 則夫天下之勢 亦隨去之而已矣니라
且夫손권孫權조조曹操之事 足以見矣리라
조조曹操之不能過江以攻손권孫權 力有所未足也손권孫權終莫肯求逞於중국中國 蓋其志將以僥倖乎北方大亂然後 而非以爲其地之足以抗衡於중국原也리라
嗟夫
使무제武帝旣入관중 因而居之하여 以鎭撫其人民하며 강남강회江淮之資하고 西引파한巴漢之粟하며 而內因관중關中之盛하여 厲兵秣馬하고 以問四方之인댄 當此之時 天下可以指麾而遂定矣어늘 而何강남江南之足以芥蔕夫吾心哉
然而其事 則不可不察也니라
其心將有所取乎하여 而恐夫人之反之於南이라
是以 其心憂懼顚倒하여 而不見天下之勢니라
공자孔子曰 無欲速하며 無見小利
夫有可以取天下之勢而不顧하고 以求하여 而遂失之者 무제之罪也니라
무제후진一著 可謂確論이니라
所惜者 무제志在於이요 而不在於一天下니라
大略조조曹操之不能力獎王室하고 而卒貽조비曹丕하여 以稱帝業하니 病亦在此니라


01. 칠대七代에 대한
유독 무제武帝의 실착한 부분만을 거론하였으니, 또한 천고에 특별한 식견을 보인 것이다.
영웅英雄은 천하의 허술한 틈새를 잘 이용하여 천하의 형세를 이룬다.
천하의 형세가 꼭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닌데도, 영웅은 항상 그 틈새를 이용하여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서 꾹 참고 견디어 변개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천하의 형세가 결국 이루어져서 해체할 수 없게 된다.
나라 이하의 세대는 천하가 어찌 그리도 어지러웠는지?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를 병합하지 못하고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게 복종하지 않았으니, 그 이 〈요순堯舜처럼〉 서로 군신 노릇하기에 부족하고 그 병력이 서로 탄멸呑滅하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운 나머지 갈라져 남조南朝북조北朝가 되고, 북조北朝(北魏)가 또 갈라져서 동위東魏서위西魏가 되었으며, 그 신하가 임금의 자리를 찬탈하여 칠대七代가 되었다가 나라에 이르러서야 일곱 나라가 합하여 한 나라가 되었다.
대략 그 사이 백여 년 동안에 현군賢君명신名臣이 끊임없이 출현한 것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남쪽은 황하黃河를 건너가서 북쪽의 인민을 소유하지 못했고, 북쪽은 양자강揚子江을 지나가서 남쪽의 땅을 침범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백 년 사이에 남쪽에는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북쪽에는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없었던 것이겠는가?
역시 그 형세에 불가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칠대七代의 시대에는 천하에 늘 변란이 있었다.
나라는 나라에서 취하고, 나라는 나라에서 취하고, 나라는 나라에서 취하고, 나라는 나라에서 취하고, 나라와 나라는 후위後魏에서 취하였다.
이과 같은 다섯 차례 허술한 틈이 있던 시대에는 쉴 새 없이 교전이 벌어지고 내란이 일어나 구제할 수 없었다.
그 빈 틈새가 적지 않았으나 사방에 있는 이웃 나라들은 팔짱을 낀 채 멀리서 바라만 보고 감히 그 틈새로 들어가지 못하였으니, 아마 나라를 취득한 것은 원래 나라를 세울 만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고 창졸간에 일어난 비상사변의 기회를 탄 것이 아니리라.
아! 슬프도다.
북방의 사람은 그 힘이 남쪽을 병합하기에 부족하고 남방의 형세는 또 진실로 중국과 겨룰 수 없었으니, 칠대七代의 시대에는 천하가 장차 합할 수 없었던 것인가?
일찍이 시험 삼아 논해보건대, 요홍姚泓 무제武帝 때는 천하가 장차 통합될 수 있는 시기였다.
요흥姚興이 죽자 후진後秦의 지역이 크게 어지럽거늘 무제武帝강남江南의 군사를 이끌고 길이 휘몰아 가서 후진後秦을 쳤는데, 군사가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도 관중關中이 평정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천하가 한 번 통합되는 시기였다.
유목지劉穆之가 죽자 관중關中이 조용하지 못했다.
앉은 자리가 미처 따스해질 겨를도 없고 군사가 미처 쉴 시간도 없이 바삐 달려가서 강남江南을 막고, 어린 자식과 잔약한 장수를 머물러두어 사방의 강한强悍노적虜敵을 막았으니 천하天下의 형세가 이미 떠나버렸다.
이는 천하의 형세에 순응하여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하의 형세 또한 따라서 떠난 것일 따름이다.
또한 손권孫權조조曹操의 사례에서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조曹操가 양자강을 지나가서 손권孫權을 치지 못한 것은 힘이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고, 손권孫權이 끝내 중국中國에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마 그의 뜻이 장차 북방北方이 크게 어지러워져서 그런 연후에 나라가 피폐해진 시기를 타서 군사를 일으켜 달려가 치려고 했던 것이지, 그 땅이 족히 중원中原에 대항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 아니었으리라.
아!
가령 무제武帝가 이미 관중關中에 들어간 뒤에, 그대로 거기서 살면서 그곳 인민人民진무鎭撫하며, 남쪽으로는 강회江淮의 물자를 실어오고 서쪽으로는 파한巴漢의 곡식을 실어들이며, 안으로 관중關中의 풍성함을 인하여 군사를 양성하고 말을 먹이며 사방에서 〈신복臣服하지 않는 사람들의〉 죄를 물었더라면, 이때에 천하天下를 잘 지휘하여 평정할 수 있었거늘, 어찌 강남江南의 일이 나의 마음에 걸렸겠는가?
그러니 그 일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 마음은 장차 나라를 취할 일에 두어 그 사람들이 남쪽에서 배반할까 염려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마음이 두렵고 불안하여 천하의 형세를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급히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에 정신을 팔지 말아야 한다.
급히 서두르면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에 정신을 팔면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한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천하의 형세를 취할 수 있었는데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임금의 자리를 옮겨와서 결국 잃은 것은 무제武帝의 죄이다.
무제武帝후진後秦으로 쳐들어간 하나의 실착을 논한 것은 확론確論이라 할 수 있겠다.
애석한 것은 무제武帝의 뜻이 구석九錫에 있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에 있지 않은 점이다.
대략 조조曹操왕실王室을 힘써 돕지 않고 끝내는 조비曹丕에게 주어 제업帝業을 칭하게 하였으니, 그 병통 또한 여기에 있었다.


역주
역주1 七代論 : 〈七代論〉은 소싯적에 지은 작품으로 보인다. 七代는 宋‧齊‧梁‧陳‧北齊‧北周‧隋를 가리킨다. 이 〈七代論〉을 《歷代名賢確論》에서는 蘇軾의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역주2 宋武 : 南朝의 宋나라를 건립한 武帝 劉裕(363~422)를 가리킨다. 劉裕는 字가 德輿, 小字가 寄奴인데, 元熙 2년(420)에 晉나라를 대신하여 帝라고 칭하였다.
역주3 : 司馬炎이 魏나라를 대신해서 세운 나라이다. 뒤에 나뉘어 西晉(265~ 316)과 東晉(317~410)이 되었다. 西晉은 도읍을 洛陽에 세우고, 東晉은 江南의 땅을 보유하여 도읍을 建康에 세웠다.
역주4 南北 : 南北朝를 가리킨다. 南朝는 宋, 齊, 梁, 陳으로 서로 이어지고, 北朝는 北魏, 東魏, 北齊, 西魏, 北周로 서로 이어졌다.
역주5 : 楊堅이 세운 나라(581~618)이다.
역주6 : 南朝의 하나이며 晉나라 말기에 劉裕가 晉나라를 대신해서 세운 나라(420~479)로, 建康에 도읍하였다. ‘劉宋’이라고도 칭한다.
역주7 : 南朝의 蕭道成이 宋나라를 폐하고 세운 나라(479~501)이다. 역사에서는 ‘南齊’라고 칭한다.
역주8 : 南朝의 蕭衍이 세운 나라(502~557)이다.
역주9 : 陳霸先이 梁나라를 대신해서 세운 나라(557~589)이다. 도읍을 建康에 세웠다.
역주10 : 南北朝時代에 宇文覺이 西魏를 폐하고 세운 나라(557~581)이다. 역사에서 ‘北周’라고 칭한다. 도읍을 長安에 세웠다.
역주11 : 北朝의 하나로 高洋이 東魏를 폐하고 세운 나라(550~557)이다. 역사에서 ‘北齊’라고 칭한다. 도읍을 鄴 땅에 세웠다.
역주12 後魏 : 北魏(386~534)를 이른다. 역사에서 ‘後魏’라고도 칭한다. 혹은 ‘元魏’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그 君主인 拓跋氏가 성을 元으로 고쳤기 때문에 그렇게 칭한 것이다. 그 뒤에 분열하여 東魏와 西魏가 되었다.
역주13 蓋其取之者……而不可以乘其倉卒也 : 七代의 신하가 그 임금에게 왕위를 취했거나 혹은 그 임금을 대신해서 왕위에 오른 경우는 나라를 세울 확고한 기반이 있었던 것이고, 모두 요행히 돌발적 사변이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역주14 倉卒 : 倉猝과 같으니, 곧 비상사변을 가리킨다.
역주15 姚泓……兵不勞而關中定 : 《宋書》 〈武帝本紀〉에 의하면, 晉 義熙 12년(416)에는 羌主 姚興이 죽고 그 아들 泓이 왕위에 오르자, 형제가 서로 살해하여 關中이 요란하므로 劉裕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북방을 토벌하였고, 義熙 13년에는 劉裕가 姚泓을 藍田에서 크게 깨뜨리고 長安에 쳐들어가서 姚泓을 잡아 建康의 저자에서 베어 죽였다고 한다.
關中은 지명인데, 동쪽으로는 函谷關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武關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散關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蕭關에 이른다. 일설에는 동으로 函谷關에서부터 서쪽으로 隴關에 이르는데, 函谷關과 隴關 사이를 關中이라 했다고 한다.
역주16 姚興 : 姚萇의 맏아들인데, 姚萇의 뒤를 이어 帝位에 올랐으나, 夏나라를 치다가 실패하자 王으로 강등되었다.
역주17 姚泓 : 後秦主 姚萇의 아들인데, 南朝 宋 武帝 劉裕에게 패하였다. ‘泓’이 저본에는 ‘弘’으로 되어 있는데, 《宋書》에 의하여 바꾸었다.
역주18 江南之兵 : 東晉의 王師를 가리킨다.
역주19 : 저본에는 ‘魏’로 되어 있는데, 《欒城集》에 의하여 ‘驅’로 바꾸었다.
역주20 劉穆之 : 南朝 宋의 莒 사람으로 武帝를 따라 建業을 평정한 다음, 안으로는 朝政을 총괄하고 밖으로는 軍旅를 담당하는 등 武帝를 크게 보필하였다.
역주21 孺子 : 여기서는 世子 劉義眞을 가리킨다.
역주22 孱將 : 못난 장수. 여기서는 朱石齡을 가리킨다.
역주23 : 저본에는 ‘敵’으로 되어 있는데, 《欒城集》에 의하여 ‘虜’로 바꾸었다.
역주24 奮而乘其弊 : 曹操의 魏나라가 피폐해진 시기를 타서 군사를 일으켜 달려가 친다는 뜻이다.
역주25 罪戻 : 罪過가 있는 사람. 곧 臣服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킨다.
역주26 無欲速……見小利則大事不成 : 이 말은 《論語》 〈子路〉에 보이는데, 대체로 ‘무슨 일이든 급히 서두르면 뒤죽박죽 순서가 없어서 도리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고, 작은 이익에 정신을 팔면 얻는 것은 적고 잃는 것은 많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역주27 移其君 : 임금을 대신하여 스스로 왕위에 섬을 가리킨다.
역주28 <주석명/> : 孫琮은 《山曉閣選宋大家蘇潁濱全集》에서 “篇 전체는 단지 宋 武帝가 형세를 잘 타서 천하를 통일하지 못한 것만을 논한 것이다. 그러나 그 통일하지 못한 까닭을 구명하면 다만 晉나라를 취하려는 마음을 갖고 기다리는 바가 있어 앉아서 關中을 잃게 된 데 있을 뿐이다. 일의 기회가 한 번 생김에 문득 큰 뜻을 보였다.
中幅에서는 형세에 불가함이 있음을 말하고, 또 취함에 기다림이 있음을 말하였다. 두 번에 걸쳐 한 말은 모두 일부러 疑陣을 펼친 것이니, 正論이 아니다. 姚泓의 1段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宋 武帝의 실착을 정면으로 논하였다.
下面에서는 孫權을 끌어서 증거를 댔다. 끝을 맺는 곳에서는 우회적으로 아쉬움을 표현하면서 宋 武帝의 心事에 입각하여 그 罪狀을 드러냈으니, 더욱 誅意法을 깊이 얻은 논리가 된다.[通篇 只是論宋武不能乘勢以混一天下 而究其不能混一之故 只在于心欲取晉 而有所待 以致坐失關中 事機一起 便見大意 中幅 說勢有不可 又說取之有待 兩番皆是故作疑陣 不是正論 至姚泓一段 方是正論宋武之失 下面引孫權以爲證 結處低徊唱嘆 就宋武心事而罪狀之 尤爲深得誅意之法]”라고 비평하였다.
역주29 九錫 : 아홉 가지 물품을 주는 일. 옛날 천자가 큰 공을 세운 제후에게 아홉 가지 물품을 주었으니, 곧 車馬, 衣服, 樂, 朱戶, 納陛, 虎賁, 弓矢, 斧鉞, 秬鬯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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