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명일통지 大明一統志》는 명(明)나라 이현(李賢), 팽시(彭時) 등이 천순(天順) 5년(1461) 편찬한 관찬지리지이다.
2. 저자
(1) 성명:이현(李賢)(1409~1467)
(2) 자(字)·별호(別號):자는 원덕(原德), 시호는 문달(文達)이며, 남양이(南陽李)로도 칭한다.
(3) 출생지역:정주(鄭州)(현 중국 하남성(河南省) 정주시(鄭州市))
(4) 주요활동과 생애
선덕(宣德) 8년(1433) 25세 때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여, 이부험봉주사(吏部驗封主事)에 임명되었고, 이후 고공(考功)·문선낭중(文選郎中) 등을 지냈다. 토목(土木)의 변을 피해 서울에 돌아와 경태(景泰) 2년(1451) 정본십책(正本十策)을 올려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郞)에 올랐으며, 호부시랑(戶部侍郞), 이부우시랑(吏部右侍郞)을 거쳤다. 영종(英宗)이 돌아온 후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올랐다. 천순(天順) 8년(1464) 헌종(憲宗) 즉위 후에는 소보·이부상서겸화개전대학사지경연사(少保吏部尙書兼華蓋殿大學士知經筵事)에 올랐다. 특진광록대부·좌주국·태사(特進光祿大夫左柱國太師)에 추증되었다. 강희(康熙) 61년(1722) 역대제왕묘에 종사(從祀)되었다.
(5) 주요저작:《감고록(鑑古錄)》, 《체험록(體驗錄)》, 《간서록(看書錄)》, 《천순일록(天順日錄)》, 《고양문집(古穰文集)》 등이 있다.
(1) 성명:팽시(彭時)(1416~1475)
(2) 자(字)·별호(別號):자는 순도(純道)·굉도(宏道), 호는 가재(可齋),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3) 출생지역:노릉(盧陵) 안복(安福)(현 중국 강서성(江西省) 길안시(吉安市) 안복현(安福縣))
(4) 주요활동과 생애
정통(正統) 13년(1448) 33세 때 진사과(進士科)에 장원급제하여, 한림원수찬(翰林院修撰)에 임명되었고, 이후 태상시소경겸시독(太常寺少卿兼侍讀)을 거쳤다. 헌종(憲宗) 때에는 병부상서(兵部尙書), 태자태보겸문연각대학사(太子太保兼文淵閣大學士)를 거쳐 내각수보(內閣首輔)를 맡았다. 이후 이부상서(吏部尙書), 소보(少保) 등을 역임하였으며, 성화(成化) 5년(1469) 이후에는 병으로 벼슬을 사양하였다. 특진광록대부·좌주국·태사(特進光祿大夫左柱國太師)에 추증되었다.
(5) 주요저작:《팽문헌공필기(彭文憲公筆記)》, 《팽문헌공문집(彭文憲公文集)》, 《가재잡기(可齋雜記)》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명나라 태조가 홍무(洪武) 3년(1370) 군현지리지인 《대명지(大明志)》를 편찬하였다고 하나 현전하지 않는다. 성조(成祖)가 영락(永樂) 16년(1418) 명나라 군현지를 편찬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대종(代宗)이 경태(景泰) 5년(1454) 천하지리지를 편찬하게 하여 2년 뒤 《환우통지(寰宇通志)》 109권을 완성하였으며, 영종(英宗)은 이를 증보하게 하여 천순 2년(1458) 완성하였으며, 서명을 《대명일통지》로 하게 하였다.
기본적으로 《대원일통지》의 체제를 따르고 있으며, 천순 5년(1461)의 초각본(初刻本), 홍치(弘治) 18년(1505)의 신독재각본(愼獨齋刻本), 가정(嘉靖) 38년(1559)의 귀인재각본(歸仁齋刻本), 만력(萬曆) 16년(1588)의 귀인재중각본(歸仁齋重刻本), 만력 중 만수당각본(萬壽堂刻本), 청나라 초기 직수당각본(織秀堂刻本), 이후 문연각사고전서본(文淵閣四庫全書本) 등이 있다.
4. 내용
이 책은 총 90권이며, 먼저 경사(京師)(지금의 북경)와 남경(南京)을 기술하고 이어서 13포정사사(布政使司) 즉 산서(山西), 산동(山東), 하남(河南), 섬서(陝西), 절강(浙江), 강서(江西), 호광(湖廣), 사천(四川), 복건(福建), 광동(廣東), 광서(廣西), 운남(雲南), 귀주(貴州) 등으로 구획하여 양경(兩京)(북경과 남경)과 13포정사를 강(綱)으로 삼고, 이에 속하는 149개 부(府)를 목(目)으로 삼았으며, 각 부주(府州)에는 건치(建置), 연혁(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풍속(風俗), 산천(山川) 토산(土産), 공서(公署), 학교(學校), 서원(書院), 궁실(宮室), 관량(關梁), 사관(寺觀), 사묘(祀廟), 능묘(陵墓), 고적(古迹), 명환(名宦), 유우(流寓), 인물(人物), 열녀(列女), 선석(仙釋) 등 38문(門)을 두어 약술하였으며, 끝의 두 권에는 조선, 일본, 베트남 등이 수록된 외이(外夷) 및 전국 총도(總圖)와 각 포정사사분도(布政使司分圖)를 첨부하였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은 《대원일통지》의 체제를 따르고 있으나 《대원일통지》는 일부만 남아 있어 온전히 남아 있는 대표적인 중국의 지리지라 할 수 있다. 총체적으로는 명대 역사와 사학사(史學史), 그리고 명대 역사지리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대명일통지》 초각본과 만수당본(萬壽堂本)에 보이는 천순(天順), 만력(萬曆) 연간 행정구획의 설치와 변화양상은 《명사(明史)》 〈지리지(地理志)〉의 명말 행정구획 양상의 이해에 기여하고 있다. 아울러 외이편에는 조선, 일본, 베트남 등의 정황이 담겨 있어 민족관계 및 국제관계 연구에도 중요하다.
이 책은 조선전기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전범이 되었으며, 상고시기 조선 지리 연구에 중요한 서적인 《요동지(遼東志)》도 이 책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을 밝힐 정도이다. 이 책 권5의 영평부(永平府), 권25의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 권89의 조선국조 기사는 조선시대 연구자들의 상고시기 역사지리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편 일본에서는 이 책의 일본판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이 책을 전하는 일은 대대로 이어받을 우리 자손들로 하여금 조상들이 창업한 공이 이와 같이 광대함을 알고, 조심스럽게 지켜 보존할 것을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천하의 선비들이 또한 이로 인해 고금의 연고와 사실을 고찰할 수 있게 하여 그 견문을 더하고 지식을 넓게 함으로써 느끼고 발현하고 흥기되는 바를 나아가 세상에 쓰게 함으로써 새롭게 빛나며 태평하고 조화로운 다스림에 기여하고 서로 더불어 우리나라 전체가 영원히 융성하게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是書之傳也 不獨使我子孫世世相承者 知祖宗開創之功廣大如是 思所以保守之惟謹 而凡天下之士 亦因得以考究古今故實 增其聞見 廣其知識 有所感發興起 出爲世用 以輔成維熙泰華之治 相與維持我國家一統之盛于無窮]” 〈어제대명일통지서(御製大明一統志序)〉
• 무릇 경서에 실린 것은 모두 망라했으며 자와 사에서 전하는 것은 당연히 수집할 것을 들어 마땅히 의심되고 시비를 가려야 하는 것을 바로 잡는데 참고하였으며, 입의(立義)를 하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증거가 있는 것으로 하였다.[凡經書所載 咸在網羅 至若子史所傳 擧當收采 宜加參考以正信疑是非 必有據依以立義] 〈진대명일통지표(進大明一統志表)〉
• 한나라부터 원나라때까지 지리를 기록한 사람이 수백 명이요 방여(方輿)가 기록된 책이 몇 천권이나 만약 허황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더라도 누락이 있거나 명확하지 않았다....(이 책은) 글은 비록 성글더라도 뜻은 갖추어져 있으며 실질로 징험할 수 있고 이름에 어긋나지 않아서 우주 수만리 밖의 사정을 방 밖에 나서지 않고도 알 수 있게 하였으므로 거의 수천 년간 내려온 일을 한 눈에 모두 볼 수 있다.[自炎漢下逮有胡元 志地理者數百家 紀方輿者累千卷 若非泛而弗切 則或略而未明 ...文須省而意則該 實足徵而名不爽 欲使宇宙數萬里之外 不出戶而可知 庶幾上下千百年之間 一擧目而畢見] 〈진대명일통지표(進大明一統志表)〉
(2) 색인어: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이현(李賢), 팽시(彭時), 역사지리(歷史地理), 조선전기(朝鮮前期), 지리지(地理志), 상고사(上古史)
(3) 참고문헌
• 大明一統志(李賢 等著, 方志遠 等 點校, 巴蜀書社)
• 讀《大明一統志》札記(傅貴九, 《史學史硏究》, 1993)
• 明代總志評述(王劍英, 《中國歷史地理論叢》, 1997)
• 明淸代 중국 지리서에 나타난 對朝鮮 역사지리인식 : 조선시기 역사지리 연구의 추이와 관련하여(박인호, 《복현사림》21, 1998)
• 試述《大明一統志》的刊本及其歷史貢獻(巴兆祥, 《中國地方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