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조우(顧祖禹)가 1678년 완성한 130권에 이르는 역사지리서로 중국 3대 지리서로 꼽힌다. 중국 역대 군사, 정치, 경제지리, 자연지리를 망라하여 고증학적 방법과 실사구시(實事求是) 이념을 기초로 편찬하였다.
2. 저자
(1)성명:고조우(顧祖禹)(1631~1692)
(2)자(字)·별호(別號):자는 경범(景範), 단오(端五)‚ 호는 완계(宛溪), 별호는 상숙인(常熟人).
(3)출생지역:중국 강소성(江蘇省) 무석(無錫)
(4)주요활동과 생애
명말청초(明末淸初) 시기, 이민족이라고 멸시하던 만주족(滿洲族)에 의해 명나라가 멸망하자 지배계층인 신사(紳士)들은 이를 수치로 여기며 반청복명(反淸復明)의 이념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현실과 타협하고 청나라의 통치에 복종하였다. 고조우는 바로 명말청초를 살다간 인물이다.
그의 고조(高祖)인 고대동(顧大棟)은 명대(明代) 국경선을 돌아다니고 《구변도설(九邊圖說)》을 지었다. 조부(祖父) 고대장(顧大章)은 일찍 죽었으며, 부친인 고유겸(顧柔謙)은 명나라가 멸망하자 상숙(常熟) 우산(虞山)에서 은거하며 애통해하다가 병들어 죽었다.
그의 나이 14세에 명(明)나라가 청(淸)나라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그는 상숙 우산에 숨어 살던 아버지의 곁에서 살았는데, 1674년에 삼번(三藩)의 난(亂)이 발생하자 복건(福建)으로 가서 경정충(耿精忠)의 막료가 되어 반청복명의 이상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삼번의 난이 실패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하면서 독서와 역사지리 관련 저술에만 몰두하였다. 1686년에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를 편찬하라는 칙명이 서건학(徐乾學)에게 내려지자, 그는 고조우의 명성을 흠모하여 초빙하였다. 고조우는 이에 응하여 《대통일통지》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 서건학이 조정에 추천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독사방여기요》 등의 저술에 매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5)주요저작:《여도요람(輿圖要覽)》, 《완계집(宛溪集)》 등.
3. 서지사항
《독사방여기요》는 그의 부친 고유겸의 유명에 의해 편찬된 것이라고 하나, 당시 강희제(康熙帝)의 총애를 받았던 서건학의 지원에 힘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건학이 《대청일통지》 편찬을 위해 강남에 설립했던 일통지국(一統志局)에는 당시 석학인 염약거(閻若璩), 황의(黃儀), 호위(胡渭) 등이 참여하였다. 고조우는 여기에 참여하여 이들과 함께 생활하였는데, 이때의 경험이 본서의 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서는 그의 나이 29세인 1659년부터 저술하기 시작하여 20년 만인 1678년에 완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21사(史)를 모두 독파하고 100여 종의 지방지(地方志)와 기타 지리지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여기에 자신의 경험을 첨가하여 중국 역사지리 연혁을 상술할 수 있었다.
《독사방여기요》는 전 130권으로, 본서의 앞부분은 위희(魏禧)와 팽사망(彭士望)의 서문, 웅개원(熊開元)과 오흥조(吳興祚)의 〈원서(原序)〉, 〈총서(總敍)〉 3편, 〈범례(凡例)〉로 이루어졌다. 본편의 권1~10까지는 〈역대주역형세(歷代州域形勢)〉, 권11~123까지는 명대(明代) 행정구역에 의거한 각 지역의 지리 서술, 권123~129까지는 하천에 대한 서술, 권130은 별자리인 분야(分野)에 대해 서술하였다.
4. 내용
〈총서〉 3편에는 저술 동기와 목적이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역사와 지리를 상호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학문으로 인식하였다. 역사학은 역사지리학에 방향성을 제공하고, 역사지리학은 역사학에 형상과 도적(圖籍)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역사 연혁(沿革)에 따른 지리의 변동뿐만 아니라 자연지리와 경제지리 등도 포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범례〉에서는 26개의 원칙을 제시하고 자신의 연구방법과 취지를 밝혔는데 특히 천하의 형세는 산천(山川)을 살펴야 하고, 이는 도읍(都邑) 형세와 관련 있다고 보았으며, 옛날과 지금의 상황을 살피지 않으면 도읍이 변화된 이유를 살필 수 없다고 주창하여 역사와 지리의 관계를 분명히 제시하였다.
<역대주역형세〉에서는 천하 지리의 대강(大綱)을 당우(唐虞)와 삼대(三代)부터 명대까지 통설하였다. 특히 각 왕조의 통치구역과 행정지리상의 변화를 통시대적으로 정리하였으며, 군사지리 방면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역대 관련 사실들을 기록하였다.
권10~123에서는 명대 행정구획에 의거하여 전국 성(省)‚ 부(府)‚ 주(州)‚ 현(縣)의 봉역(封域)과 행정통할(行政統轄)‚ 지리연혁(地理沿革)‚ 산천험요(山川險要)‚ 관애(關隘)‚ 성진(城鎭)‚ 향촌(鄕村)‚ 토산(土産) 등 세부 사항들을 서술하였다. 각 지역마다 앞부분에 소서(小序) 1편을 두어 해당 지역의 산천대세(山川大勢)와 고금정전(古今征戰) 등을 총괄하였다.
권124~129에서는 황하(黃河)‚ 회하(淮河)‚ 장강(長江) 등 주요 하천과 《상서(尙書)》 <우공(禹貢)> 중 산천과 유관한 기사들을 특별히 정리하여, 대산(大山)과 대천(大川)에 대한 종합적이고 탁월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또한 권130 <분야>에서는 역대 사서(史書)에 수록된 각지 성숙분야(星宿分野)의 요체만을 간추려 썼다.
본서의 특징 중 하나는 군사적 측면에서 지리(地利)를 중시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강남(江南)은 천하의 대세가 충돌하는 지역으로 이 지역을 잃으면 국세(國勢)를 잃는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백성의 생계와 직결된 염철(鹽鐵)‚ 마정(馬政)‚ 공부(貢賦)‚ 교통(交通)‚ 조운(漕運) 등의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주요 상공업(商工業) 도시들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여 중국 근세(近世) 상공업사 연구에도 요긴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역대 황도(皇都)의 입지 조건을 종합 분석한 후 이들이 정도(定都)될 수 있었던 것은 지리의 형세만이 아니라 교통, 식량공급‚ 인구밀도‚ 군사전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점들은 근현대의 역사지리학 출현 이전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독사방여기요》는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와 고염무(顧炎武)의 《천하군국리병서(天下郡國利病書)》와 함께 중국 3대 지리서로 손꼽힌다. 일부 내용에 오류는 있으나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정신에 입각해 국가와 민생에 중요한 군사‚ 정치‚ 경제지리, 자연지리를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독창적인 역사지리관을 정립하였다. 이 책은 지금 중국학을 연구하는 데 기본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6. 참고사항
(1)색인어:고조우(顧祖禹), 서건학(徐乾學),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역사지리학, 여도요람(輿圖要覽),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
(2)참고문헌
• 讀史方輿紀要(賀次君, 施和金 交點, 中華書局)
• 讀史方輿紀要索引(靑山定男, 東方文化學院)
【이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