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왕부지(王夫之)는 명말청초(明末淸初) 거유(巨儒)이자 사상가이다. 본서는 전 30권으로 1687년에 완성되었는데, 중국의 대표적 사론서(史論書)이다. 엄격한 화이관(華夷觀)을 바탕으로 포폄을 가하여 청(淸) 중기까지는 금서(禁書)로 취급되다가 청말 반외세(反外勢)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저자
(1)성명:왕부지(王夫之)(1619~1692)
(2)자(字)·별호(別號):자는 이농(而農), 호는 강재(薑齋), 선산(船山), 별호는 매강옹(買薑翁), 일호도인(一瓠道人), 선산노농(船山老農), 선산유로(船山遺老), 선산선생(船山先生).
(3)출생지역:호남성(湖南省) 형양(衡陽)
(4)주요활동과 생애
왕부지는 황종희(黃宗羲), 고염무(顧炎武)와 함께 명말 삼유로(三遺老)의 한 사람이다. 명나라 말기 거인(擧人)이 되었지만, 명나라가 멸망한 후 반청(反淸)투쟁에 투신하여 형산(衡山)에서 거병하였으나 패하였다. 이후 명왕실의 일원인 계왕(桂王)의 행재소를 따라 다녔지만 신하간의 권력다툼에 실망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과 저술에 전념하였다. 노년에 선산(船山)에 은거하였으며, 74세에 병으로 죽었다.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지식인들은 청나라의 회유와 강압 속에서 반청(反淸) 이념을 견지하면서 명대(明代) 심학(心學)을 반성하고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반성으로 말미암아 많은 역사 연구가 이루어진다. 이리하여 고염무는 《일지록(日知錄)》을 써서 중국의 전장제도와 풍속을 고증하였으며, 황종희는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을 써서 중국사를 통관하고 앞으로 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왕부지는 본서와 《송서(宋書)》를 지어서 중국의 역사를 논평하였다.
(5)주요저작:《송론(宋論)》, 《황서(黃書)》, 《악몽(噩夢)》, 《소수문(搔首問)》, 《주역외전(周易外傳)》, 《사서훈의(四書訓義)》, 《시탁(詩鐸)》, 《석당영일서론(夕堂永日緖論)》 등. 청조(淸朝)에 의하여 금서(禁書)로 지목되어 알려지지 않다가 170년 뒤에 증국번(曾國藩)에 의하여 선산유서(船山遺書)》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3. 서지사항
‘독통감론(讀通鑑論)’이란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읽고 의미 있는 사건에 대해 논평한 것을 의미한다. 본서는 전 30권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권은 시대별로 황제들을 묶어 통시적 순서로 편찬하였다. 진서(秦書) 1권, 양한서(兩漢書) 8권, 삼국사(三國史) 1권 양진사(兩晉史) 4권, 남북조사(南北朝史) 4권, 수사(隋史) 1권, 당사(唐史) 8권, 오대사(五代史)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4. 내용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아닌 《자치통감》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건을 논한 순수한 사평서(史評書)이다. 본서의 내용구성은 권1은 진시황(秦始皇), 이세(二世), 권2는 한고조(漢高祖), 혜제(惠帝), 문제(文帝), 권3은 경제(景帝), 무제(武帝) 등 《자치통감》에 열거된 제왕세계(帝王世系)에 따라 통시적으로 서술하였다. 진시황에서 오대(五代)까지 다루고 있으며, 903건의 사평(史評)을 싣고 있다. 맨 끝에 4편의 서론(敍論)을 달고 있다.
왕부지는 화이(華夷)의 구분을 엄격히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화이관은 역사관에 영향을 주어 역사를 화이(華夷)의 대립과 그 발전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최종적으로 화하(華夏)의 승리를 통한 치세(治世)가 이루어지기를 바랐는데, 여기서 그의 진보적 역사관과 후왕주의(後王主義)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천하를 통일한 왕조가 반드시 정통(正統)을 계승한다고는 여기지 않았으며,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을 경우 촉한(蜀漢)의 유비(劉備)처럼 군주가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정통을 이을 수 있다고 보았다. 사마천(司馬遷)을 비롯한 기존의 역사가들이 기이한 것을 좋아하고 포폄이 엄중하지 못하여 후세에 큰 피해를 입어 지금 중화가 이렇게 되었다고 비판하였다. 왕부지는 《자치통감》은 객관적으로 역사를 서술하여 스스로 살필 수 있는 거울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감(鑑)”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속에 일개 개인뿐만이 아니라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는 모든 내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통(通)”이라 하였다. 왕부지는 《자치통감》을 읽으면서 역사적 사건을 엄정히 평가하여 이를 바탕으로 천하 경세의 지침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5. 가치와 영향
《독통감론》은 중국 사론서(史論書)의 대표적인 책으로 송대(宋代) 범조우(范祖禹)의 《당감(唐鑑)》보다 훨씬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청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기 속에서 왕부지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는데, 이는 왕부지의 시대와 당시 시대가 상황적으로 유사하였기 때문이다. 왕부지의 역사관을 대표하는 《독통감론》은 청말민초(淸末民初) 중국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어 중국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6. 참고사항
(1)명언
• “귀가 직접 듣는 것에 국한되면 천성적 총민(聰敏)을 빼앗기고, 눈이 직접 보는 것에 국한되면 천성적 지혜를 빼앗긴다.[耳限於所聞 則奪其天聰 目限於所見 則奪其天明]” 〈권9 헌제(獻帝)〉
• “친족과 붕당의 좋고 싫어함을 따른다면 자기가 비록 바르더라도 반드시 사악함에 빠질 것이다.[徇族朋黨好惡之私 已雖正而必陷於邪]” 〈권13 동진 원제(東晉元帝)〉
• “도리를 가지고 말하고 현능한 사람을 뽑아 임용하여 사직을 바로잡고 돕게 하는 자가 천하의 공(公)이다.[以道言之 選賢任能 以匡扶社稷者 天下之公也]” 〈권15 효무제(孝武帝)〉
(2)색인어:왕부지(王夫之), 사론(史論), 독통감론(讀通鑑論), 반산유서(船山遺書), 자치통감(資治通鑑)
(3)참고문헌
• 讀通鑑論標點本(中華書局)
• 船山全集(王夫之, 華聯出版社)
• 王夫之與讀通通鑑論(李季平, 山东教育出版社)
• 資治通鑑之通鑑-文白對照全譯讀通鑑論(伊力 主編, 中州古籍出版社)
【이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