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중국 남명(南明)을 포함해 명대(明代)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로 서술한 책이다. 원(元)나라 세조(世祖) 1660년(순치(順治) 17)에 종성(鍾惺)이 명초(明初)부터 희종(熹宗) 천계(天啓) 연간(1621~1627)까지의 역사를 편찬하였는데, 후에 왕여남(王汝南)이 남명(南明)이 멸망한 이후 당왕(唐王) 융무제(隆武帝)와 복왕(福王) 홍광제(弘光帝)의 기록이 수록된 추류기(鄒流綺)의 《명계유문(明季遺文)》을 《속집(續集)》에 추가하여 1660년에 간행하였는데, 이것을 조선에서도 간행하였다. 본서는 전 12권 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명조(明朝)의 흥망치란(興亡治亂)의 원인을 관참함으로써 후대의 경계를 삼고자 하였다.
2. 편자
(1) 성명:종성(鍾惺)(1574~1624)
(2) 자(字)·별호(別號):자는 백경(伯敬). 호는 퇴곡(退谷).
(3) 출생지역 : 복주(複州) 경릉(竟陵)(현 중국 호북성(湖北省) 천문시(天門市))
(4) 주요활동과 생애
명나라 만력(萬曆) 38년(1610)에 진사(進士)가 되어 행인(行人)에 오르고, 남경(南京) 예부주사(禮部主事)를 지냈다. 진회(秦淮)의 수각(水閣)을 빌려 역사책을 읽고 마음에서 얻은 것을 기록해 《사회(史懷)》를 썼다. 그 후 관직은 복건제학첨사(福建提學僉事)까지 올랐다. 그는 동향의 친구 담원춘(譚元春)과 함께 경릉파(竟陵派)를 형성하여 그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는 담원춘과 함께 《고시귀(古詩歸)》와 《당시귀(唐詩歸)》를 편찬하면서 선별한 시인과 시에 비평을 달았다. 그는 이 일로 크게 명성을 얻어 경릉체(竟陵體)로 불렸다. 만년에는 선(禪)의 세계로 들어갔다.
경릉파의 문학은 공안파(公安派)와 기본적으로 일치하며, 전후칠자(前後七子)의 복고적인 경향을 반대하였다. 원굉도(袁宏道)를 중심으로 한 공안파(公安派)는 “오직 성령을 표현한다[獨抒性靈]”고 주장하여, 문학이 곧 모방이 아니라 창조임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성령’을 중시하므로 해박한 지식, 사상 등을 소홀히 여겼고, 오히려 천진, 자연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문학은 자신의 심정을 평명(平明)하게 읊었지만 너무 부박(浮薄)으로 흐르게 되었고, 경릉파는 그 폐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유심(幽深)·기취(奇趣)가 넘치는 시를 주창하였다. 따라서 종성의 시는 감정의 솔직한 표현을 중요시했는데, 표현 기교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현실성이 결여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5) 주요저작:종성이 저술한 책으로는 《사회(史懷)》, 《고시귀(古詩歸)》, 《당시귀(唐詩歸)》, 《시합고(詩合考)》, 《모시해(毛詩解)》, 《종평좌전(鍾評左傳)》, 《명원시귀(名媛施歸)》, 《송문귀(宋文歸)》, 《주문귀(周文歸)》, 《은수헌집(隱秀軒集)》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본서는 머리에 1660년(순치(順治) 17)에 왕여남(王汝南)이 쓴 서문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1660년에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서는 전 12권 5책으로 이루어졌는데, 각 권은 역대 황제의 역사가 통시적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내용은 연월일(年月日)에 따라 서술되어 있고, 대자(大字)의 본문(本文)에 소자(小字)의 주(註)가 쌍행(雙行)으로 달려 있다. 판심(版心)은 ‘명(明紀)’로 되어 있다.
4. 내용
왕여남은 서문(序文)에서 본서를 간행한 이유를 말하면서, 바로 앞선 왕조(王朝)의 성패화복(成敗禍福)이 심절(深切)하기 때문에 명사(明史)가 시급하다고 말하여 감계(鑑戒)의 의도를 분명히 밝혔다. 이어 그는 명(明)의 역사서로서는 진동완(陳東莞), 정단간(鄭端簡) 이하 여러 저술이 있었으나, 모두 번무(繁蕪)하고 오직 종성의 《편년(編年)》이 간요(簡要)하나 희종(熹宗)대로 끝나 있어 안타까이 여기던 중, 가장(家藏) 및 초야(草野)에서 수집한 기록, 추유기(鄒流綺)의 《명계유문(明季遺聞)》을 얻어 본서를 완성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본서는 모두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머리에는 왕여남의 서(序)에 이어 목록(目錄)이 붙어 있다. 권1은 태조(太祖), 권2는 태조(太祖)·혜종(惠宗), 권3은 성조(成祖)·인종(仁宗)·선종(宣宗), 권4는 영종(英宗)·대종(代宗)·영종(英宗), 권5는 헌종(憲宗)·효종(孝宗)·무종(武宗), 권6은 세종(世宗)·목종(穆宗), 권7은 신종(神宗)·광종(光宗), 권8은 희종(喜宗), 권9와 권10은 회종(懷宗), 권11은 난황제(赧皇帝), 권12는 융무제(隆武帝)·부노감도(附魯監國)가 수록되어 있다. 권8까지는 권두(卷頭)에 ‘독학신종성근정(督學臣鐘惺謹定)’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권9부터는 ‘초망신왕여남보정(草莽臣王汝南補定)’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본서는 간요(簡要)한 명사(明史)로서 초학용(初學用)이나 경연(經筵)에서 사용하기에 적절하였으므로 조선에서 여러 차례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는 무신자(戊申字)‚ 정유자(丁酉字), 임진자(壬辰字), 갑술자(甲戌字), 전도활자(傳陶活字) 등 6종의 금속활자본과 1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 소장되어 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영조(英祖) 3년(1725) 1월 11일에 본서를 인출한 기록이 보이고, 영조 4년(1728) 2월 22일에 《황명통기(皇明通紀)》와 본서를 순차적으로 현토(懸吐)하도록 명한 기록이 보인다. 또한 영조 4년 2월 24일과 3월 7일에 본서를 경연에서 진강한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에 본서에 대한 평가는 양분되어 있다. 먼저 이의현(李宜顯)은 〈도협총설(陶峽叢說)〉에서 왕여남의 《명기편년》은 진건(陳建)의 《황명통기(皇明通紀)》에 비하여 대체로 간략하나, 기록이 홍광(弘光) 을유년(乙酉年)(1645년)에 이르러 수말(首末)이 자못 완비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위백규(魏伯珪)(1727~1798)는 〈신편십구사략속집대명기서(新編十九史略續集大明紀序)〉에서 명사(明史)는 《황명통기》‧《황명기략(皇明紀略)》‧《명기편년》 등 크고 작은 몇 종의 책들이 세상에 유행하였으나, 그 문장은 모두 소설(小說) 체재를 띠고 있어 펼쳐보기만 할 뿐이지 읽고 외울 만하지 못하며, 오직 방언과 이두를 사용하여 순수한 역사 문체가 아니라고 혹평하였다. 또한 승정원일기에서도 명나라의 사기(史記) 중 조선에 전해진 것은 《소대전칙(昭代典則)》, 《명정통종(明政統宗)》, 《황명통기》, 《명기편년》, 《황명대정기(皇明大政記)》 등이 있으나 모두 난보(爛報)(조보(朝報))와 등차(謄箚)한 것에 불과하여, 어떤 일은 수년 동안에 흩어져 나와서 모을 수 없거나 미미한 일인데 중대한 항목에 잘못 끼어 있다고 비판하였다.
위와 같이 조선에서 본서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음에도 경연에서 본서를 진강하게 하거나 현토하도록 명한 배경에는, 청(淸)나라의 중국지배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대명의리론(對明義理論)이 형성된 것과 관련이 있다. 그 예로 강항(姜沆)(1567~1618)이 중국의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과 《통감절요(通鑑節要)》를 저본으로 하고 그 밖에 《사기(史記)》 등의 사서를 참고하여 중국 역대 왕조의 역사를 정리해 《강감대성(綱鑑大成)》을 편찬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명나라의 역사는 별도로 정리하여 특별히 본서를 《속편(續篇)》 권1~권11에 붙여놓았다. 그는 이곳에 남긴 글에서 명나라는 왜구의 침략으로 곤란을 겪는 우리 민족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쳐 만세에 잊지 못할 은혜를 베풀었다고 말하고, 명나라의 쇠망은 곧 인류의 쇠망이라고 평가함으로써 주희에 의해 시작된 정통사관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본서는 화이론적 세계관에 기초해 역사에서 정통(正統)에만 정당함을 부여하는 주희의 정통사관을 강화하는 데 활용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예부터 신령스런 마음이 없으면서 시를 짓는데 능했던 사람은 없었다.[從古未有無靈心而能爲詩者]” 〈여고해지관찰(與高孩之觀察)〉
• “시는 맑은 물건이다. 시는 깨끗한 물건이다. 시의 본체는 편안한 것으로 수고로우면 안 되고, 시의 바탕은 청정한 것으로 더러우면 안 된다. 시의 경계는 그윽한 것으로 잡스러우면 안 되고, 시의 노닒은 고귀하고 탁 트인 것으로 얽매이면 안 된다.[詩淸物也 其體好逸 勞則否 其地喜淨 穢則否 其境取幽 雜則否 其遊止貴曠 拘則否]” 〈간원당근시서(簡遠堂近詩序)〉
(2) 색인어:종성(鍾惺), 명기편년(明紀編年), 정통사관(正統史觀), 대명의리론(對明義理論).
(3) 참고문헌
• 명기편년(明紀編年)(戊申字本, 국립중앙도서관)
• 명기편년(明紀編年)(陶活字本, 국립중앙도서관)
• 명기편년(明紀編年)(丁酉字本, 서울대규장각)
• 명기편년(明紀編年)(壬辰字本, 서울대규장각)
• 〈17세기 후반 정통론의 강화와 《자치통감절요》의 보급(허태용, 《한국사학사학보》 2, 2000)
• 〈중국도서의 수입과 학문적 수용 -명초 건양의 서림학자 劉剡의 편찬서를 중심으로〉(정재철, 《동방한문학》 66, 2016)
【정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