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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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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명실록(明實錄)》은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과 유사하게 중국 명조(明朝)(1368∼1644) 1대 황제 홍무제(洪武帝)(치세 1368∼1398)부터 천계제(天啓帝)(치세 1620∼1626)까지 모두 제13대 황제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이다.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의종(毅宗) 숭정제(崇禎帝)(치세 1627∼1644)의 실록은 《의종실록(毅宗實錄)》 혹은 《숭정실록(崇禎實錄)》이라고 불리는 것도 있지만, 정식의 실록이 아니고 덧붙여진 것이다. 또한 명나라의 역대 황제 가운데 건문제(建文帝)(치세 1399∼1402)의 기록은 홍무제의 실록인 《태조실록》의 후반부에 포함되어 있으며, 경태제(景泰帝)(치세 1450∼1456)의 기록은 정통제(正統帝)(치세 1436∼1449)이자 천순제(天順帝)(치세 1457∼1464)였던 영종 주기진(朱祁鎭)의 《영종실록(英宗實錄)》에 포함되어 있다.

2. 각 실록의 편수자 및 편수 시기



3. 서지사항

《명실록》의 공식 명칭은 《대명실록(大明實錄)》󰡕이고, 《황명실록(皇明實錄)》이라고도 불린다. 실록 류의 편년체 사료가 그러하듯, 《명실록》의 각 황제의 실록은 각 황제가 사망한 직후에 편찬되기에 각 실록 별로 편수자(編修者)와 편수 시기가 상이하다.
《명실록》은 명 일대의 비서(秘書)로, 처음은 정·부(正)·副 2본이 만들어지는 데 불과하였는데, 만력 연간 1부의 부본(副本)이 더 만들어지게 되었다. 청대가 되어 《명사(明史)》의 편찬이 시작되자 사관(史官)들이 실록의 사본을 만들어 민간에 흘러 들어가 매매되었다. 장기(長崎) 무역을 통하여 일본에도 몇 부의 사본이 전해진 듯하다. 이들 고사본(古寫本)은 현재 일본의 궁내청서릉부(宮內廳書陵府)·내각문고(內閣文庫)·국회도서관(國會圖書館)(이전의 우에노도서관(上野圖書館))에 수장되어 있고, 20세기가 되어 중국에서 구입한 사본이 동양문고(東洋文庫)에 있는데, 그다지 좋은 판본은 아니다.
또한 1987년 대만의 영인본을 기초로 하여 북경에서 그 영인본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영인본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고, 태조부터 무종까지는 서릉부본(書陵府本)이 비교적 좋고, 세종, 목종은 일본의 국회도서관본이 좋다. 신종 이하의 3조(朝)는 북평도서관본(北平圖書館本)을 필사한 동양문고본이 좋다.
그러나 그것에도 각각 불비(不備)한 점도 있어, 어느 것을 텍스트로 이용한다고 해도 다른 본과 비교하고 대조하여 볼 필요가 있다.

4. 내용

《명실록》는 명 일대(一代)의 각종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의 사안을 망라적으로 담고 있으나, 편년체 사서이기에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이에 20세기에 들어와 《명실록》의 내용과 주제별 내용을 따로 채록하여 출간된 것이 다수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내등호차랑(內藤虎次郞) 등이 1954년 무렵 《명실록》의 몽골과 만주 관련 내용을 모아 《명실록초(明實錄抄):몽고편(蒙古篇)》과 《명실록초:만주편(滿洲篇)》을 출간하였다. 또한 중국에서도 1990년대에 《명실록》의 내용을 다양한 주제별(궁정사료(宮廷史料), 종번귀척(宗藩貴戚), 군사사료(軍事史料), 인물전기(人物傳記), 문교과기(文敎科技), 섭외사료(涉外史料), 경제사료(經濟史料), 자연재이(自然災異), 복건대만(福建臺灣), 안휘사료(安徽史料), 북경사료(北京史料) 등)로 선별하여 《명실록류찬(明實錄類纂)》을 출간하였다.
《명실록》에 실린 조선(朝鮮) 관련 내용은 《명실록(明實錄):인국조선편(隣國朝鮮篇)》(王其榘 編, 中國社會科學院 中國邊彊史地硏究中心, 1983)과 《명실록조선자료집록(明實錄朝鮮資料輯錄)》 (劉菁華, 許淸玉, 胡顯慧 選編, 巴蜀書社, 2005)으로 각각 출간되어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였다.

5. 가치와 영향

《명실록》은 황제의 사적(事蹟)을 중심으로 편수되어 있는데, 반드시 황제 개인적 언행만이 아니라 그 치세에 일어난 중요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사건도 모두 서술하고 있다. 게다가 그 기술은 기거주(起居注)·시정기(時政記)·일력(日曆), 중앙과 지방 각 기관의 장소주독(章疏奏牘), 관보(官報), 전기(傳記), 선조의 유사(遺事) 자료 등의 근본 사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명대사 연구에 있어서는 가장 기본적인 사료이다.
《명실록》이 일반에 유포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양홍지(梁鴻志)에 의해 남경에서 영인된 강소국학도서관본(江蘇國學圖書館本)(비교적 새로운 사본)이 출현한 결과이다. 《명실록》은 원래 사본이기 때문에 등사(謄寫)할 때 많은 결함이 생겼다. 게다가 각 사본 사이에는 권수(卷首)의 상이를 비롯하여 일치하지 않는 점이 많이 보인다. 완전한 판본으로는 전후 대만의 중앙연구원(中央硏究院) 역사어언연구소(歷史語言硏究所)에서 황창건(黃彰健)의 엄중한 교정을 가하여 간행된 영인본을 들 수 있으며, 명대사 연구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정통(正統) 10년(1445) 2월 서쪽의 회회(回回) 무함마드 알리(馬哈麻 阿力)가 귀부(歸附)해오니, 명하여 두목으로 만들고 초(鈔), 포, 의복을 하사하여 남경(南京) 금의위(錦衣衛)로 보내 봉록을 받게 하며 또한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집과 그릇 등의 물건을 주게 하였다.[迤西回回馬哈麻阿力來歸 命爲頭目 賜鈔布襲衣 送南京錦衣衛 帶俸仍命有司給房屋器皿等物]” 《영종실록(英宗實錄)》 권126, 정통(正統) 10년 2월 갑인(甲寅)
• “투르판, 사마르칸트, 하미에서 온 여러 외국 사신들이 명분은 진공(進貢)이라고 사칭하면서 경사(京師)에서 상거래를 하는 데 있으니, 회동관에 3, 4년씩 머무는 이들도 있다. 이때에 이르러 예부에 조서(詔書)를 내리기를 ‘구례(舊例)를 더 엄하게 적용하여 여러 외국인들이 사사로이 회동관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고 〈정해진〉 기한에 따라 강제로 되돌려 보내라. 또한 〈외국인들과〉 사사로이 통교하고 교역하거나 이들을 유인하며 방임했던 자를 죄로 다스리고, 이전에 죄를 범했던 외국인이 조공하러 오는 경우 변경의 관리에게 다시는 〈이러한 자들을〉 수용하지 않도록 신칙(申飭)하라.’ 하였다.[土魯番 撒馬兒罕 哈密諸夷使 假進貢名 在京商販 有留會同館三四年者 至是 詔禮部 申嚴舊例 禁諸夷不許私出館外 勒期遣還 仍治諸私通交易乃誘引縱容者罪 其曾經犯罪夷人來貢者 勑邊吏勿復納]” 《세종실록(世宗實錄)》 권3, 정덕(正德)16년 6월 경자(庚子)
(2) 색인어:명조(明朝), 실록(實錄), 대명실록(大明實錄), 황명실록(皇明實錄), 강소국학도서관본(江蘇國學圖書館本)
(3) 참고문헌
• 명실록연구(明實錄硏究) (謝貴安, 湖北人民出版社)
• 1587, 만력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레이 황, 새물결)
• 중국사학사(고국항(高國抗), 풀빛)
• 明實錄:隣國朝鮮篇(王其榘 編, 中國社會科學院 中國邊彊史地硏究中心)
• 〈《명실록》의 간행(刊行)·수장(收藏)과 조선 유입〉(서인범, 동국사학 57)
• 〈试论《明实录》对刘珝的书写--兼谈《明实录》编写之失〉(蔡果利, 中国典籍与文化 2016-4)
• 〈談遷의 명실록 비판(批判)에 대한 고찰〉(김택중, 人文社會科學論叢 5)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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