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백약(李百藥)은 관리이자 시인이다. 모두 50권(卷)이며, 본기(本紀) 8권과 열전(列傳) 42권으로 구성된 북제(北齊)의 역사를 다룬 기전체(紀傳體) 사서이다. 《북사(北史)》와 《자치통감(資治通鑑)》 등 역사서의 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저자
(1) 성명:이백약(李百藥)(565-648)
(2) 자(字):중규(重規)
(3) 출생지역:정주(定州) 안평현(安平縣)
(4) 주요활동과 생애
수(隋) 내사령(内史令) 이덕림(李德林)의 아들이다.
이백약(李百藥)은 박학하였고 글을 좋아하였다. 처음에 수(隋)에 벼슬하여 태자사인(太子舍人)에 임명되어 태자(太子) 양용(楊勇)을 보좌하였다. 수 양제(隋煬帝)가 즉위한 후 계주사마(桂州司馬)로 좌천되고 다시 건안군승(建安郡丞)으로 옮겼다. 무덕년간(武德年間) 당(唐)에 귀순하였으나 경주(涇州)로 유배되었다. 628(정관(貞觀) 2)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임명되어 오례(五禮)와 율령(律令)의 편찬에 종사하였다. 예부상서(禮部尙書), 태자우서자(太子右庶子)를 역임하였다. 《북제서(北齐书)》편찬의 공으로 산기상시(散騎常侍), 태자우서자(太子左庶子)로 승진하였으며, 후에 종정경(宗正卿)에 임명되고 안평현공(安平縣公)에 봉해졌다.
(5) 주요저작:역사서로 《북제서(北齊書)》를 편찬하였다. 이밖에 《봉건론(封建論)》과 많은 시를 남겼다.
3. 서지사항
모두 50권(卷)이며, 본기(本紀) 8권과 열전(列傳) 42권으로 구성되었다. 이연수(李延壽)가 만든 《북사(北史)》가 유행한 이후 산일(散佚)되었고, 현 판본은 《북사(北史)》를 근거로 보충한 것이다. 북송시대(北宋時代)에 이미 잔결(殘缺)이 생겨 권4, 권13, 권16-25, 권41-45 등 모두 17권이 이백약의 원서(原書)이며 나머지는 후인들이 《북사(北史)》와 고준(高峻)의 소사(小史)에서 보충한 것이다. 기과 전에서 사신론(史臣論)과 찬(贊), 묘호(廟號)가 있는 부분은 대개 이백약의 원서이며 시호(諡號)로 쓴 부분은 《북사(北史)》에서 보충한 것이다. 50권 중에 1권에는 찬(贊)이 있고 논(論)이 없으며 5권에는 론이 있고 찬이 없다. 19권은 논과 찬이 모두 없다.
4. 내용
이백약의 아버지 이덕림(李德林)은 북제와 수(隋)에서 《제사(齊史)》 38권을 펴냈다. 당 정관(貞觀) 년간 이백약이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어 조서를 받들어 《제서(齊書)》를 펴냈는데, 이덕림의 옛 원고인 제사(齊史)를 바탕으로 수 왕소(王劭)의 《제지(齊志)》 등 다른 사서를 채록하여 보충하였다. 636년(정관 10년) 완성하였다. 《북제서(北齊書)》는 서술이 솔직하고 당시 구어(口語)를 다수 포함하였다. 원명(原名)은 《제서(齊書)》이지만, 소자현(蕭子顯)의 《남제서(南齊書)》와 구별하기 위해 북송(北宋) 때 ‘북(北)’자를 붙였다.
《북제서(北齊書)》는 북위(北魏)가 분열된 후 동위(東魏)와 북제(北齊)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북제(北齊)를 형식적으로 세운 인물은 고환(高歡)의 둘째 아들 고양(高洋)이었지만, 북제(北齊)를 실제로 세운 인물은 고환(高歡)이었다. 고환(高歡)은 북위(北魏) 효장제(孝莊帝)를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한 이주조(尒朱兆), 이주세융(尒朱世隆), 이주중원(尒朱仲遠) 등을 제거하고 북위(北魏)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고환(高歡)의 전횡에 저항한 북위(北魏) 효무제(孝武帝)가 장안(長安)에 웅거한 우문태(宇文泰)에게 도망가자 북위황실(北魏皇室) 일족인 원선견(元善見)을 황제(皇帝)로 옹립하니 이가 효정제(孝靜帝)이다. 이후 북위(北魏)는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되었다. 효정제(孝靜帝) 시기를 동위(東魏)라고 하는데, 고환(高歡)과 그의 첫째 아들 고징(高澄)은 비록 황제(皇帝)로 즉위하지 않았지만, 효정제(孝靜帝)를 허수아비로 전락시키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북제서(北齊書)》의 권1은 고환(高歡), 권2는 고징(高澄) 시기의 사건을 편년체로 기록하였다. 즉 고환(高歡)과 고징(高澄)은 황제(皇帝)는 아니었지만, 고양(高洋)(문선제(文宣帝))이 즉위한 후 아버지 고환(高歡)과 형 고징(高澄)을 황제(皇帝)로 추증했기 때문에 그들이 지배한 시기를 본기(本紀)로 기록하여 황제로 예우하였다.
당 이연수(李延壽)가 만든 《북사(北史)》가 유행한 이후 없어졌다. 현재 권1과 권2 신무제(神武帝), 권3 문양제(文襄帝), 권4 문선제(文宣帝), 권5 폐제(廢帝), 권6 효소제(孝昭帝), 권7 무성제(武成帝), 권8 후주(後主), 유주(幼主), 권9 황후전(皇后傳), 권10 고조11왕(高祖十一王), 권12 문선4왕(文宣四王), 권27 만사보(万俟普), 가주혼원(可朱渾元), 유풍(劉豐), 파락한상(破落韓常), 금조(金祚), 권28 원탄(元坦), 원빈(元斌), 원효우(元孝友), 원소업(元暉業), 원필(元弼), 원소(元韶), 권29 이혼(李渾), 이여(李璵), 정술조(鄭述祖), 권30 최섬(崔暹), 고덕정(高德政), 최앙(崔昂), 권31 왕흔(王欣), 권32 육법화(陸法和), 왕림(王臨), 권33 소명(蕭明), 소지(蕭祗), 소퇴(蕭退), 소방(蕭放), 권34 양음(楊愔), 권35 배양지(裴襄之), 황보화(皇甫和), 이구(李構), 장연지(張宴之), 육앙(陸卬), 왕송년(王松年), 유위(劉褘), 권36 형소(邢邵), 권37 위수(魏收), 권38 신술(辛術), 원문요(元文遙), 조언심(趙彦深), 권39 최계서(崔季舒), 조정(祖珽), 권40 위근(尉瑾), 풍자종(馮子琮), 혁련자열(赫連子悅), 당옹(唐邕), 백건(白建), 권46 순리전(循吏傳), 권47 혹리전(酷吏傳), 권48 외척전(外戚傳), 권49 방기전(方伎傳), 권50 은행전(恩倖傳)은 《북사(北史)》 등을 바탕으로 복원하였다.
《북제서(北齊書)》는 기전체(紀傳體) 사서(史書)라고 하지만 분야사를 다룬 지(志)가 없다. 당초(唐初)에 《수서(隋書)》를 편찬할 때 북제(北齊)시대의 제도를 다룬 지(志)를 《수서(隋書)》에 포함시켰는데, 이를 오대사지(五代史志)라고 한다. 오대사지(五代史志)의 모두(冒頭)의 기사에서 밝힌 것같이 북제(北齊)의 제도는 북위(北魏)의 제도를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5. 가치와 영향
《북제서(北齊書)》는 동위(東魏)와 북제(北齊)의 역사와 제도를 연구하는 기본적인 사료이다. 《북제서(北齊書)》의 내용과 체례(體例)는 《북사(北史)》, 《자치통감(資治通鑑)》 등 역사서의 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다.
6. 참고사항
(1) 명언
(2) 색인어:이백약(李百藥), 북제서(北齊書), 북사(北史)
(3) 참고문헌
• 北齊書標點本(中華書局)
• 北史標點本(中華書局)
• 資治通鑑標點本(中華書局)
• 趙翼, 卄二史箚記(王樹民 校證, 卄二史箚記校證, 中華書局,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