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남송(南宋)(1127-1279) 순우(淳祐) 7년(1247) 당시 해당 지역의 사법 업무를 담당하는 호남제점형옥(湖南提點刑獄) 자리를 맡고 있던 송자(宋慈)(1186-1249)는 여러 저서에 산재해 있는 또 구전되어 오던 검시(檢屍)(검험(檢驗)) 관련 지식을 정리하여 책으로 편찬해 지방관들이 실제 검시(검험)를 할 때 참고 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세원집록(洗冤集錄)이다. 이 책은 당시까지 축적된 검시(검험) 관련 지식을 정리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송대에는 사법 판결의 과정에서 검시(검험) 절차가 중요해지고, 또 그 업무가 오작(仵作)이나 항인(行人)이 주관하던 것에서 각 지역의 주현(州縣) 관원이 주관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송자는 세원집록 편찬을 통해 지방관의 시각으로 검시(검험) 현장에 필요한 관련 지식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체계화시켰다.
2. 저자
(1) 성명:송자(宋慈)(1186-1249)
(2) 자(字)·별호(別號):송자의 자는 혜보(惠父)
(3) 출생지역: 건녕부(建寧府) 건양현(建陽縣)(현 복건성(福建省) 남평(南平))
(4) 주요활동과 생애
송자는 건녕부(建寧府) 건양현(建陽縣)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의 아버지 송공(宋巩)은 광주절도추관(廣州節度推官)을 역임한 바 있다. 송자는 강서제점형옥(江西提點刑獄)이었던 섭재(葉宰)의 막료와 복건로초포사(福建路招捕使) 진화(陳韡)의 막료를 지내다가 이종(理宗) 가희(嘉熙) 원년(1237) 소무군(昭武軍) 통판(通判)을 역임하고, 가희(嘉熙) 4년(1240) 광동제점형옥(廣東提點刑獄)이 되었으며, 그 후 강서제점형옥(江西提點刑獄)이 되었다. 순우(淳祐) 5년(1245)을 전후로 광서제점형옥(廣西提點刑獄)을, 순우(淳祐) 7년(1247)에 호남제점형옥을 맡았다. 그 후 순우(淳祐) 8년(1248) 광주지주(廣州知州)와 광동경략안무사(廣東經略安撫使)를 역임하였다. 남송 여러 지역에서의 다양한 사환 경력, 특히 네 차례의 제점형옥 경력으로 보건대 그가 당시 사법 현장에 대해 남다른 이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송자는 유극장(劉克莊)과도 친분이 있었으며, 이 친분 관계는 유극장이 송자의 고향인 건양현(建陽縣)(지금의 福建省 南平) 지현을 역임했을 때 시작된 것이다. 당시의 친분으로 유극장은 송자가 죽었을 때 그의 묘지명을 써주었다.(劉克莊, 後村先生大全集 권 159 「宋經略墓誌銘」, 四部叢刊本.) 송자는 또한 명공서판청명집(名公書判淸名集)에 판례를 남긴 다양한 법관들 예를 들면, 호남의 호영(胡穎) 그리고 섭재 등과도 지속적인 교유를 했다. 이들 지방관들은 분명 각 지역에서의 사법 경험을 공유하며 명 판결을 내리는 묘안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송자는 검시(검험)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세원집록을 편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5) 주요저작: 『세원집록』이 있으며, 이 외에 『명공서판청명집』에 그가 쓴 몇 건의 판례가 수록되어 있다.
3. 서지사항
송자의 『세원집록』은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은 검시(검험) 관련 당시의 법률 규정과 총설에 해당하는 내용을, 권2는 초검과 복검 등 검시(검험)를 할 때 알아야 할 유의사항, 권3에서 권5는 다양한 죽음의 사인(死因) 대한 개별적인 검시(검험) 관련 지식, 그리고 권5의 말미에는 구급 의학 지식과 검시(검험) 결과 보고 문서인 ‘험장(驗狀)’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현전하는 세원집록의 판본으로는 북경대학도서관 소장의 원대(元代) 판각본인 송제형세원집록(宋提刑洗冤集錄)이 있으며, 통행본으로 송제형세원집록(宋提刑洗冤集錄)(叢書集成初編, 中華書局, 1985) 등이 있다. 이 외에 근래 高隨捷, 祝林森 등은 원간본(元刊本)을 저본으로 삼아 세원집록역주(洗冤集錄譯註)(上海古籍出版社, 2008)를 출판하였다.
4. 내용
송자가 『세원집록』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1.검시(검험) 관련 법률 규정과 2. 검시(검험)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 3. 직접적으로 검시(검험)에 필요한 지식 및 4. 사법 현장에서 필요한 구급 의학 지식 등으로 구성되었다. 『세원집록』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여러 내용이 모두 지방관의 입장에서 사법 현장의 실제 수요를 적극 반영하여 관련 지식을 구성하였다는 것이다.
검시(검험) 관련 당시 법률 규정의 내용은 검시(검험)의 행정 및 운영상의 정확성과 유연성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것들로 구성되었고, 또한 여기에는 검험관의 정확한 검시(검험) 결과의 도출과 이를 기반으로 한 사법 관원의 정확한 판결까지 염두 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아울러 송자는 현장의 경험을 중시하면서 현장 경험이 미천한 검시(검험) 관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검시(검험)에 필요한 지식들을 정리하였고, 이에 따라 액사(縊死), 익사(溺死), 구타 등 약 24개로 死因을 분류하였다. 또한 검시(검험) 관원들이 현장에서 자주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또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통해 대벽(大辟) 죄 사건을 줄이고자 현장의 수요에 따라 자주 검시(검험)하게 되는 죽음을 중심으로 응급 처치에 관한 지식을 싣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급 의학 지식의 수록은 이후 명 청대 검시(검험) 서적의 편찬에도 전승되어 검시(검험) 서적의 내용을 구성한다.
5. 가치와 영향
송자가 『세원집록』에 수록한 검시(검험) 지식은 그 이후 원, 명, 청대까지 지속적으로 전승되어 영향을 미친다. 원대 왕여(王與)의 『무원록(無冤錄)』, 명대 왕긍당(王肯堂)의 세원록(洗冤錄), 청대 반작찬(潘杓燦)의 미신편(未信編) 및 청 조정의 율례관이 교정 반포한 율례관교정세원록(律例館校正洗冤錄) 등의 발간을 통해 전승된 검시(검험) 지식의 계보를 보면, 그 시작은 어김없이 송자의 『세원집록』이다. 즉, 이들 저서들은 모두 송자의 『세원집록』을 기본으로 삼아 그 내용을 수정하고 보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13~14 세기 발간된 검시(검험) 관련 참고서는 그 이후 한반도에 전해져 조선 전ㆍ후기 현지에 맞게 정리ㆍ변용되기도 하였으며, 일본에도 전해져 일본어로 번역되어 실제 사법 현장에서 활용되기에 이른다.
송대 이후 원, 명, 청 시기 및 동아시아 전통 검시(검험) 저서들의 내용과 체계가 『세원집록』의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동아시아 전통 검시(검험) 지식의 체계화는 13세기 말 『세원집록』에서 이루어졌고 그 이후의 검시(검험) 지식은 이를 근거로 발전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세원집록』의 가치는 매우 크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옥사는 대벽(大辟) 보다 중한 것이 없고, 대벽은 처음의 정황보다 중한 것이 없으며, 처음의 정황을 알기 위해서는 검험 보다 중한 것이 없다.(獄事莫重於大辟, 大辟莫重于初情, 初情莫重於檢驗)”, 출처: 洗冤集錄序.
• “ [현장에] 임하여 심리하고 조사할 때는 절대 가볍고 쉬이 해서는 안 된다. 아주 작은 실수라도 그로 인해 잃는 건 막대할 수 있다.(臨時審察, 切勿輕易. 差之毫釐, 失之千里)”, 출처: 洗冤集錄 권4「疑難雜說上」.
(2) 색인어: 송대(宋代), 사대부(士大夫), 송자(宋慈), 세원집록(洗冤集錄), 검시(檢屍)(검험(檢驗)),
무원록(無冤錄)
(3) 참고문헌
洗冤錄校譯(楊奉琨譯, 群衆出版社).
洗冤集錄譯註(高隨捷, 祝林森 譯注, 上海古籍出版社).
신주무원록(왕여 저, 최치운 등 주석, 김호 옮김, 사계절).
The Washing Away of Wrongs: Forensic Medicine in Thirteenth-Century China
(Brian E. McKnight,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宋慈及其洗冤集錄」(諸葛計, 歷史硏究1979-4).
송대 사법 속의 검시 문화(최해별, 세창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