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 개요
《송원학안(宋元學案)》은 모두 1백 권으로 되어 있으며, 91개 학파의 학맥과 인물이 수록되어 있다. 청초(淸初)의 학자인 황종희(黃宗羲)(1610~1695)가 편찬을 시작하여 17권을 마치고 죽자, 그의 아들 황백가(黃百家)가 8권을 보충하였다. 그 뒤 전조망(全祖望)(1705~1755)이 다시 보충하여 송원대(宋元代) 유학자들을 91개 학파로 분류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왕재재(王梓材)와 풍운호(馮雲濠)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 책은 본래 《송유학안(宋儒學安)》·《원유학안(元儒學安)》으로 만들어졌는데, 뒤에 하나로 합해 《송원학안》이라 명명한 것이다. 전조망은 황종희를 사숙한 절강성 은현(鄞県) 출신 학자로, 1736년 진사가 된 뒤 한림원서길사(翰林院庶吉士)를 지냈다. 그는 황종희의 손자 황천인(黃千人)을 통해 《송원학안》의 초고를 보게 되고, 황천인의 부탁으로 그 원고를 수정 보완하여 《송원학안》 1백 권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최종 교정은 청나라 선종(宣宗) 도광(道光) 18년(1838)에 왕재재와 풍운호 두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책을 완성한 후 전조망이 수록하지 않은 자료를 따로 편찬하여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를 편찬했는데 이 책도 학술적 가치가 크다. 《송원학안》은 중국에서의 송원대 유학에 대한 최초의 철학사적 저술로 평가되고 있다.
2. 저자
(1)성명:황종희(黃宗羲)(1610~1695), 전조망(全祖望)(1705~1755)
(2)자(字)·별호(別號):황종희의 자(字)는 태충(太沖), 호는 남뢰(南雷) 또는 이주선생(梨洲先生)이다. 전조망은 자가 소의(紹衣), 호는 사산(謝山)이다.
(3)출생지역:황종희는 절강성(浙江省) 여도(餘姚), 전조망은 절강성 은현(鄞県) 출신이다.
(4)주요활동과 생애
황종희는 명말청초(明末淸初)의 동란기를 살았던 학자이자 사상가이다. 명(明)나라 말기의 환관(宦官) 독재에 순국했던 동림파(東林派) 관료 황존소(黃尊素)의 아들로서 청년시절에 동림당을 계승한 신사(紳士) 지식층의 복사(復社) 운동에 참여해 부패관료와 투쟁했다. 명나라가 망한 뒤 항청(抗淸) 활동에 참가했으나 실패했다. 만년에는 은거하여 저술에 전념하였다. 강희제(康熙帝)의 회유책에 따른 한족(漢族) 명사에 대한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으나, 제자 만사동(萬斯同)과 아들을 명사관(明史館)에 보내 《명사(明史)》 편찬에는 협력했다. 스승 유종주(劉宗周)의 학통을 이은 양명우파(陽明右派)의 대학자로서 절동학파(浙東學派)의 중심인물이다. 황종희는 자신의 철학적 입장에 대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송원학안》을 저술하였다. 다만 그는 양명우파의 입장에 서서 양명학을 중심으로 《명유학안(明儒學案)》을 저술한 뒤 다시 양명학의 연원을 송・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던 것이다.
전조망은 건륭(乾隆) 원년(1736) 32세에 진사에 급제하여 한림원서길사(翰林院庶吉士)가 되었는데, 산관(散館)한 뒤 1737년 지현(知縣)으로 발령받았지만 취임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두 번 다시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나중에 유종주(劉宗周)가 세운 즙산(蕺山)과 광동(廣東)의 단계서원(端溪書院)에서 주강(主講)을 맡아 제사(諸士)의 교육에 힘을 쏟았다. 평생 황종희(黃宗羲)를 흠모하여 그의 미완의 저서 《송원학안》을 완성시켰다.
(5)주요저작:황종희는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 《명유학안(明儒學案)》, 《명사안(明史案)》, 《명문해(明文海)》 등이 있으며, 전조망은 《해기정집(鮭琦亭集)》, 《경사문답(經史問答)》, 《속역별록(續易別錄)》, 《공자제자성명표(孔子弟子姓名表)》, 《고금통사연표(古今通史年表)》, 《한서지리지계의(漢書地理志稽疑)》, 《병진공차징사소록(丙辰公車徴士小錄)》, 《속용기구시(續甬耆舊詩)》, 《천일각비목(天一閣碑目)》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전조망은 황종희의 원고를 수정·보완하고, 100권에 〈서록(序録)〉을 첨부하여 전체적인 골격을 완성시켰으나, 《송원학안》의 완성을 보지는 못하고 죽었다. 그 후 고본(稿本)은 제자인 여호(廬鎬)에게 넘겨졌다. 여호도 전조망고본(全祖望稿本)의 일부를 초사(抄寫)하는 한편 전서(全書)의 출판을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이후, 전씨고본(全氏稿本)과 여씨장고본(廬氏蔵稿本)은 여씨(廬氏)의 자손이 보존하고 있다가, 여씨소장(廬氏所蔵)의 전씨고본과 여씨장고본을 입수하여 황종희의 현손(玄孫)인 황장(黄璋)등이 출판한 것이 황씨교보본(黄氏校補本)이다.
《송원학안》은 《명유학안》만큼 유행하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전조망의 고향 사람인 왕재재와 풍운호가 다시 황씨교보본(黄氏校補本)과 여러 판본을 가지고 비교하여 교정(校訂)·증보(増補)하여 완성한 것이 현행본 《송원학안》의 원본이다.
왕재재 등이 이용한 판본은 황종희원본(黄宗羲原本), 전조망수보본(全祖望修補本), 이로각정씨간본(二老閣鄭氏刊本), 월선여씨소장저고본(月船廬氏所蔵底稿本), 저암장씨소장저교잔본(樗庵蔣氏所蔵底校殘本), 여요황씨교보본(余姚黄氏校補本)이다. 왕재재 등의 편집방침은 《송원학안》 서두의 〈교간송원학안조례(校刊宋元學案條例)〉에 기록되어 있는데, 황종희원본과 전조망고본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전조망의 교정상태도 더불어 주기(注記)하였다. 또 황씨간본(黄氏刊本)의 86권목(卷目)을 100권목으로 개정해서 전조망 〈서록〉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렸다. 이를 풍운호의 사재(私財)로 출판했지만, 아편전쟁으로 판본(版本)까지 소실(焼失)되고, 후에 하소기(何紹基)의 도움으로 왕재재의 재교정을 거쳐 다시 출판되었다. 이것이 하본(何本)으로, 현행본의 원본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판본도 화재로 소실되어 소량만이 시중에 유포되었다. 이후 하본(何本)을 저본으로 대표적인 용여림(龍汝霖)의 각본과 석인본(石印本)(상해문서루본(上海文瑞樓本)), 만유문고본(萬有文庫本)과 세계서국본(世界書局本)(《사조학안(四朝學案)》), 사부비요본(四部備要本), 국학기본총서본(國學基本叢書本) 등이 존재한다. 비교적 현재 많이 사용되는 중화서국본(中華書局本)은 용여림각본을 저본으로 나머지 판본으로 보정한 것이다. 또 《황종희전집(黄宗羲全集)》 제3~6책에도 수록되어 있다. 특히 왕재재과 풍운호는 전조망의 유지를 이어, 《송원학안(宋元學案)》에 누락된 사료를 망라해서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를 만들었다. 이것은 《사명총서(四明叢書)》 등에 수록되어져 있다.
4. 내용
《송원학안》은 《명유학안》이 각자의 사상적 문제와 학문의 종지(宗旨)를 중시한 것에 비해, 개개인의 사실(史實)과 고증(考證)을 중시하였다. 사상 분석보다는 자료수집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것은 황종희와 《송원학안》의 실질적인 편찬자인 전조망의 학문경향이 서로 다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송원학안》은 전편을 통해 송원의 학술사상을 계파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내용의 서술은 먼저 학파마다 표(表)를 만들어 스승·동료·제자의 관계를 열거하여 학술의 연원을 밝히고, 그 다음으로 생애·저작·사상의 순으로 기술했으며, 마지막으로 일화와 후대 사람의 평가를 덧붙였다.
학자 배열은 도통(道統)을 기준으로 했는데, 첫머리에 호원(胡瑗)·손복(孫復) 등을 두어 송대도통(宋代道統)의 연원으로 하고, 우익(羽翼)으로 범중엄(范仲淹)·구양수(歐陽脩) 등을 배치했다. 그리고 도통(道統)의 중심인물로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주희(朱熹)’를 골격으로 했다. 그 방류로서 활약 시기를 감안하여 사마광(司馬光), 정문제씨(程門諸氏), 주희(朱熹)의 교유자(交遊者), 주희의 후학을 열거하고, 최후에 원조(元朝)의 여러 유학자를 열거하였다. 그리고 어느 계열인지 정리하기 어려운 학자들은 〈제유학안(諸儒學案)〉에 정리하였다. 《송원학안》 권말에는 〈형공신학략(荊公新學略)〉, 〈소씨촉학략(蘇氏蜀學略)〉, 〈병산명도집설략(屏山鳴道集說略)〉이 활약 시기와 상관없이 수록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송원학안》은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잡다하기는 하지만 풍부한 자료를 포함하고 있어, 황종희의 또 다른 학술사(學術史)인 《명유학안》과 함께, 송대와 원대의 유학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왕재재와 풍운호는 이 책을 완성한 후 전조망이 수록하지 않은 자료를 따로 편찬하여 《송원학안보유》를 편찬했는데, 이 책도 학술적 가치가 크다.
조선 시대에 《송원학안》의 영향을 받아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이 만들어졌는데, 신라에서 조선 중기까지 유학자들의 스승과 친구 관계를 정리한 책으로 《명현록(名賢錄)》이라고도 한다. 박세채(朴世采), 이세환(李世瑍)의 합편으로 33권 16책은 박세채 편, 후집 4권 2책과 보유 2편 1책은 이세환 편으로 도합 37권 2편 19책이다. 권 1~3에 신라의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과 고려의 최충(崔冲), 정몽주(鄭夢周) 등 40인, 권 2~36에 조선 시대의 권근(權近), 정도전(鄭道傳) 이하 750인을 실었다. 이 책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양이 방대하여 한국 유가의 연원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6. 참고사항
(1)명언
• “인(仁)이라는 것은 혼연(渾然)히 만물과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니, 의(義)와 예(禮)와 지(智)와 신(信)도 모두 인(仁)인 것이다.[仁者渾然與物同體,義禮智信皆仁也]” 〈명도학안(明道學案) 상(上)〉
• “만물의 이치를 관찰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살피니 이치를 밝힐 수 있으면 어디를 가든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觀物理以察己 旣能燭理 則無往而不識]” 〈이천학안(伊川學案) 상(上)〉
• “천덕(天德)을 갖추고 난 뒤에야 천지의 도(道)를 한 마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다.[有天德 然後天地之道 可一言而盡]” 〈횡거학안(橫渠學案) 상(上)〉
(2)색인어:송원학안(宋元學案), 황종희(黃宗羲), 전조망(全祖望), 왕재재(王梓材), 풍운호(馮雲濠), 송유학안(宋儒學安), 원유학안(元儒學安),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
(3)참고문헌
• 宋元學案(黄宗羲(明) 撰, 全祖望(清) 補, 王梓材(清), 馮雲濠(清), 何紹基(清) 校, 世界書局)
• 增補 宋元學案(中華書局)
• 宋元學案補遺(王梓材(清), 馮雲濠(清) 編, 世界書局)
• 明儒學案(中華書局)
• 송원시대 학맥과 학자들(최석기 등, 보고사)
【서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