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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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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두(李斗)는 청대(淸代) 건가(乾嘉) 연간 제생(諸生)이다. 1795년에 완성된 본서는 당시 최고의 상업도시 양주(揚州)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한 백과사전, 혹은 양주지역학의 집대성판이다.

2. 저자

(1) 성명:이두(李斗)(1749∼1817)
(2) 자(字)·별호(別號):자가 북유(北有), 호가 애당(艾塘), 애당(艾堂), 필명이 화방주인(畫舫主人)
(3) 출생지역:강소성(江蘇省) 양주부(揚州府) 의징현(儀徵縣)(현, 중국 강소성(江蘇省) 의징시(儀徵市))
(4) 주요활동과 생애
이두의 고조부는 산서성(山西省) 흔주(忻州)에서 양주로 이사하여 의징현(儀徵縣)의 관적(官籍)을 얻었다. 이두는 의징의 제생(諸生)으로 사환(仕宦)하지 못하고 양주에서 생활하였다. 시부(詩賦), 희곡, 음률(音律), 수학(數學), 건축 등에 뛰어나 황문양(黃文暘), 황승길(黃承吉), 초순(焦循), 완원(阮元) 등 양주학인(揚州學人)들과 교유하였고, 염관(鹽官), 염상(鹽商) 강춘(江春), 화가 정섭(鄭燮) 등과도 교제하였다. 질박(質朴)하고 임협적(任俠的) 성품으로 평민과도 교류하며 여행을 즐겨 광서(廣西), 복건(福建), 절강(浙江), 호남(湖南), 하남(河南), 북경(北京) 등을 유람하였다. 이는 본서의 바탕이 되었다.
청대의 최전성기 교통의 요지인 양주에는 각종 산업이 발달하였고 사회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직업군이 출현하였으며 사치 풍조도 유행하였다. 특히 휘주(徽州)의 염상들의 역할은 매우 컸다. 이에 양주에는 양주팔괴(揚州八怪)와 함께 양주학파(揚州學派)가 형성되어 경학, 소학(小學), 고학 등을 회통한 통학(通學)이 발전하였고, 학자·문인·서화가들이 몰려들었다.
(5) 주요 저작
시집 ≪영보당시집(永報堂詩集)≫, 악곡 ≪애당곡록(艾塘曲錄)≫·≪애당악부(艾塘樂府)≫, 전기희곡(傳奇戱曲) ≪기산기(奇酸記)≫·≪세성기(歲星記)≫가 있는데, 모두 ≪영보당집(永報堂集)≫에 들어있다.

3. 서지사항

수향(水鄕) 양주에는 원래 뱃놀이의 풍속이 있었다. 화방(畫舫)이란 나룻배에 기둥과 서까래를 세우고 지붕을 얹어 방을 만든 다음 그림이나 조각을 더하여 꾸민 놀잇배이다.
이두가 1764년부터 각종 자료를 수집·고찰하여 1795년(일설은 1797)에 출판한 것은 자연암장판(自然盦藏板)이고, 1872년 양회도전염운사(兩淮都轉鹽運使) 방준이(方濬頤)가 중인본(重印本)을 간행하였다. 1960년 중화서국본(中華書局本)은 자연암장판을 기본으로 약간의 오류를 바로잡아 널리 유통되었다. 2001년 산동우의출판사(山東友誼出版社)의 山東本은 簡字體로 자연암장판을 저본으로 하고 기타 판본을 참고하였으며 간결한 주석이 달려 있다.
본서는, ≪수경주(水經注)≫ 등을 모방하여 양주를 12개 구역으로 나누어 날줄로 삼고, 인물·기사(記事)를 씨줄로 삼았다. 내용은 초하(草河)·신성북(新城北)·성북(城北)·성남(城南)·성서(城西)·소진회(小秦淮)·홍교(虹橋)·교동(橋東)·교서(橋西)·강동(岡東)·강서(岡西)·촉강(蜀岡)으로 구성되어 있고, 말미에 공단영조(工段營造)와 방편(舫扁)을 붙였다. 모두 18권이다.

4. 내용

권1∼16은 위의 12개의 지역으로 대별(大別)하되, 초하와 홍교는 상하로, 신성북록은 상중하로 나누어져 있다. 그 내용은 건륭제(乾隆帝)의 남순(南巡), 사가법(史可法)·학경춘(郝景春) 등 유명 인물의 일화와 사적(事蹟), 양주의 수리·도로·교량·산천·지리, 양주팔경이나 정자와 누각의 명승, 영원(影園)·강원(江園)·조원(蓧園) 등의 원림(園林)과 별장들, 각종 사묘(寺廟)·도관(道觀)과 신앙활동, 어염(魚鹽)·염색·향료·화훼·출판·상업·다사(茶肆) 등 산업의 발전, 요리가·배우·기생·악공·무뢰배·산파·상인·재주꾼·의자(醫者)·화가 등의 다양한 직업군, 소일황(蕭日曂)과 유씨(兪氏) 등 효자·열부·열녀의 일화, 서원을 중심으로 이름난 스승과 제생(諸生)들의 다양한 학술, 염관(鹽官)·염상의 각종 시주회(詩酒會)나 수계(修禊)를 통한 관료·학자·문인·서화가의 교류, 목욕·놀잇배놀이·오락·희곡·연극·만한전석(滿漢全席) 등의 풍속과 문화, 인물과 설화(說話) 등이다. 그 밖에 권17은 풍경구〈工段〉의 건축 체제와 양식, 권18은 놀잇배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남송의 ≪청명상하도(淸名上下圖)≫를 연상시킨다.

5. 가치와 영향

본서는, 1800년 전후 청대 최고의 상업도시 양주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집대성한 자료적 가치가 높다. 또한 경제와 사회의 발전에 따라 관료·학자·문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과 문화상을 그려 중국적 사회문화사의 한 측면을 열었다. 그리고 고서(古書)와 당시 사회, 아속(雅俗), 역사와 소설 등을 회통하였다. 이는 통학(通學)의 학풍과 관련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사고(五洲衍文長箋散稿)≫ 〈경사편(經史編) 풍속(風俗)〉의 ‘연기[煙]놀이에 대한 변증설’에서는 ≪양주화방록≫ 권11에 나오는 담배장수 광자(匡子)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매화서원과 안정서원에는 사방에서 이르러 학업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 그러므로 문장에 능하고 육예에 통달한 사인(士人)이 두 서원에 모인 것은 지극히 융성하였다.[安定梅花兩書院, 四方來肆業者甚多. 故能文通藝之士, 萃于兩院者極盛.]” 〈권3 신성북록(新城北錄) 상〉
• “행암(行庵)은 주정(主政) 마왈관(馬曰館) 집안의 암자이다.……주정 마왈관은, 자가 추옥(秋玉), 호가 해곡(嶰谷), 기문(祁門) 출신의 제생(諸生)으로, 양주 신성(新城)의 동관가(東關街)에 살았다.……〈강희제가〉 남순(南巡)하였을 때 두 차례나 어서(御書)와 극식(克食)을 하사하였다.……사방의 사인이 지나다가 들리면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면서도 평생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동생 마왈로(馬曰璐)는……형과 명성이 나란하여 ‘양주의 이마(二馬)’로 불렸다.……건륭 38년 황제의 칙지를 받들어 유서(遺書)를 수집하였다.……그때 마왈관이 이미 죽었으므로 아들 마진백(馬振伯)이 삼가 장서를 올리니, 갖추어 채택된 것이 776종이었다.[行庵馬主政家庵也.……馬主政曰琯, 字秋玉號嶰谷, 祁門諸生, 居揚州新城東關街.……南巡時, 兩賜御書克食.……四方之士過之, 適館授餐, 終身無倦色.……弟曰璐……與兄齊名, 稱揚州二馬.……乾隆三十八年奉旨採訪遺書……其時主政已故, 子振伯恭進藏書, 可備採擇者七百七十六種.]” 〈권4 신성북록 중〉
• “광자(匡子)는 작은 배를 타고 호수를 돌아다니며 수연(水煙)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에게는 특별한 기예가 있었다. 담배 연기를 수십 차례 들이마시고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조금씩 실처럼 가늘게 내뿜는다. 새하얀 연기가 허공에 맴돌다가 다시 엉기어 상투 모양을 만든다. 이어 녹색으로 변하여 마치 먼 산처럼 아련해졌다가 바람이 불어오듯 하여 형세를 바꾸어 은은히 신선이나 닭과 개의 모습, 수염·눈썹과 의복, 가죽과 깃털 등을 만들지 않음이 없었다. 오랜 뒤에는 연기가 짙은 흑색으로 변하여 마치 산비를 만들어 금방 내릴 듯한 모습이다.……당시 사람들이 이를 ‘광연(匡煙)’이라고 부르자, 〈그는〉 마침내 자신의 배에 ‘연정(煙艇)’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匡子駕小艇遊湖上, 以買水煙爲生. 有奇技, 每自吸十數口不吐, 移時冉冉如線, 漸引漸出. 色純白, 盤旋空際, 復葺葺如髻. 色轉綠, 微如遠山, 風來勢變, 隱隱如神仙鷄犬狀, 鬚眉衣服, 皮革羽毛, 無不畢現. 久之色深墨, 作山雨欲來狀.……時人謂之匡煙, 遂自榜其船曰煙艇.]” 〈권11 홍교록(虹橋錄) 하〉
(2) 색인어:이두(李斗), 양주화방록(揚州畫舫錄), 양주(揚州), 염상(鹽商), 명승(名勝), 원림(園林), 풍속(風俗), 인물(人物).
(3) 참고문헌
• 양주화방록(홍상훈 이소영 옮김, 소명출판)
• 揚州圖經(焦循, 江蘇古籍出版社)
• 乾隆盛世―揚州文明的實錄(王偉康, 中國文聯出版社)
• 〈淸 中期 揚州學人의 實學思想과 日常文化 改變運動〉(李元錫, ≪역사와 담론≫ 제51집, 2008)

【이원석】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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