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역대신감(歷代臣鑑)》은 명대(明代)의 선덕제(宣德帝)가 춘추(春秋)시대부터 원대(元代)에 이르기까지 역대(歷代) 신료(臣僚)들의 행적을 선악(善惡)으로 분류하여 편찬한 감계류(鑑戒類) 서적이다. 편찬자인 주첨기(朱瞻基)는 천하를 통치함에 있어서 군주 못지않은 명신(名臣)의 중요성을 신료들의 행적을 통해 거울로 삼고자 이 책을 편찬하였다.
2. 편자
(1) 성명:명대 선덕제(宣德帝) 주첨기(朱瞻基)(1398~1435‚ 재위 1425~1435)
(2) 자(字)·별호(別號):묘호(廟號)는 선종(宣宗), 연호(年號)는 선덕(宣德)으로, 보통 선덕제(宣德帝)로 칭한다. 시호(諡號)는 헌천숭도영명신성흠천소무관인순효장황제(憲天崇道英明神聖欽天昭武寬仁純孝章皇帝)이다.
(3) 출생지역:북평(北平) 연왕부(燕王府)
(4) 주요 활동과 생애
인종(仁宗) 홍희제(洪熙帝)와 성효소황후(誠孝昭皇后)의 장자(長子)로‚ 1411년(영락(永樂) 9)에 황태손(皇太孫)으로 책봉되었고 1426년 홍희제의 붕어(崩御) 직후에 28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즉위 초에 과거제(科擧制)를 개정해 각지마다 인구 비례에 맞는 선발 정원을 정했고‚ 한왕(漢王) 주고후(朱高煦)의 반란을 친히 평정해 정국을 안정시켰다. 궁정 내에 서당을 설치해 홍무제(洪武帝)가 엄금한 환관(宦官) 교습(敎習)을 재개했다. 환관을 총애한 나머지 태감(太監)에게 주접(奏摺)의 비답(批答)을 대필시키기도 하여 명나라 후반 환관의 발호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밖에 양경(兩京)과 여러 성에 순무(巡撫)를 파견해 지방 행정을 통괄하고, 중앙에는 내각대학사(內閣大學士)를 두어 정사를 총재하게 한 것도 내치(內治)의 중요한 성과이다. 밖으로는 몽골의 오이라트(部)를 관하(寬河)에서 패배시키고 정화(鄭和)를 7차 원정에 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3. 서지사항
본서는 선덕제(宣德帝)가 쓴 서문에 의하면 1426년 4월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역대신감》을 간행한 것은 1435년 이후일 것으로 생각된다. 《세종실록》의 1435년 12월 13일 기사에 의하면, 《역대신감》을 어부(御府)에 수장해두고 아직까지 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명대 조정에서 판각한 내부각본(內府刻本)으로 37권(卷) 10책(冊)으로 구성되었다.
규장각에는 명대 내부각본과 조선에서 간행한 판본이 현전한다. 명간본은 37권 10책 완질본이나 권1의 제1장을 비롯하여 권25, 권26 등의 낙장(落張) 부분을 보사(補寫)하였다. 또한 인출 상태에 목리(木理)가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처음 판각한 시기보다는 후기에 인출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명간본의 사주쌍변(四周雙邊)과 10행(行) 20자(字)의 판식을 그대로 새겨 책판(冊板)을 제작하였기 때문에 두 판본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명간본은 상하대흑구(上下大黑口)와 흑어미(黑魚尾)인데 반해, 조선본은 상하내향(上下內向) 삼엽화문어미(三葉花紋魚尾)로 구별된다. 조선본은 10책이 아닌 8책과 6책으로 장책(粧冊)하였으나 모두 37권 완질본(完帙本)이다.
4. 내용
선덕제는 〈어제역대신감서(御製歷代臣鑑序)〉에서 군주를 보익(輔翼)하여 천하통치를 분담하는 명신(名臣)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신료들이 인의(仁義)를 숭상하고 백성을 자식처럼 여긴다면 ‘요순우탕문무(堯舜禹湯文武)’의 시대와 같은 성세(盛世)가 도래할 것으로 전제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고대의 고요(皐陶)‚ 백익(伯益)‚ 이윤(伊尹)과 부열(傅說) 등과 같은 현신(賢臣)들이 드물어져 통치가 점점 혼탁해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에 성세(盛世)의 명신과 현신들의 사적을 정리해 모범을 삼고자 하며, 아울러 천하 통치를 문란하게 한 악신(惡臣)과 혼신(昏臣)들의 행적도 수록해 경계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선가위법(善可爲法)’이란 제목 아래 권1에서 권29까지 구성하고, ‘악가위계(惡可爲戒)’라는 제목에는 권30에서 권37까지 이루어져 있다. 먼저 춘추시대부터 원대(元代)까지 역대 신료들의 사적에서 귀감이 될 만한 현신(賢臣)과 양신(良臣)을 ‘선가위법’에 수록하였다. 다음으로 경계해야 할 악신(惡臣)의 행적을 ‘악가위계’에 수록하였다. ‘선가위법’에 수록된 인물을 보면 권1의 열국(列國)시대 정(鄭)나라의 자산(産)과 제(齊)나라의 안평중(晏平仲)부터 권29의 원(元)나라 장양호(張養浩)와 여궐(余闕)까지이다. ‘악가위계’에는 권30의 한(漢)나라 전분(田蚡)부터 권37의 원나라 패라첩목아(孛羅帖木兒)까지 수록하였다.
5. 가치와 영향
1426년에 본서를 편찬한 선덕제는 《역대신감(歷代臣鑑)》을 신하들에게 반사하여, 때때로 열람하고 성찰하여 자신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라고 하였다. 《역대신감(歷代臣鑑)》은 선덕제의 아들인 경태제(景泰帝)가 1453년에 편찬한 《역대군감(歷代君鑑)》과 함께 상호 보완적인 제왕학 교재로 활용되었다.
조선은 다른 이의 선을 본받고 악은 경계하는 감계류(鑑戒類)의 서책으로 《역대군감(歷代君鑑)》과 《역대신감(歷代臣鑑)》을 수용하여 함께 간행하였다. 《역대신감》은 조선의 감계류 서책의 편찬에 영향을 주었는데, 예를 들면 1479년에 성종은 《내신훈(內臣訓)》의 체재를 《역대신감》을 따라 선악으로 분류하게 하였다. 또한 1772년에 왕세손이던 정조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이상일(李商逸)과 대교(對校)하여 《해동신감(海東臣鑑)》을 편찬하였다. 《해동신감》은 설총(薛聰)에서부터 윤계(尹棨)까지 191인의 언행과 사적을 요약하여 수록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경공(景公)이 〈안평중(晏平仲)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시장 근처에 살고 있으니 귀한 것과 천한 것을 알겠군요.’ 하였다. 이 시기에 경공은 형벌을 가혹하게 시행하고 있었다. 〈시장에는〉 월형(刖刑)을 당한 사람이 신는 용(踊)을 파는 자가 있었다. 안평중이 대답하기를 ‘신발은 〈구하는 사람들이 드물어〉 천하고 용은 〈구하는 사람들이 많아〉 귀합니다.’ 하였다. 경공은 깜짝 놀라 이를 위해 형벌을 가볍게 하였다. [公曰 子近市 識貴賤乎 於是景公繁於刑 有鬻踊者 對曰屨賤踊貴 景公愀然爲之省刑]” 〈권1 열국(列國) 안평중(晏平仲)〉
(2) 색인어:역대신감(歷代臣鑑), 선덕제(宣德帝), 제왕학(帝王學), 감계(鑑戒), 경연(經筵), 선가위법(善可爲法), 악가위계(惡可爲戒)
(3) 참고문헌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조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