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유교의 ‘경(經)’에 대해서는 시대와 학자들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지만, 사마천(司馬遷)은 공자(孔子)가 《시(詩)》・《서(書)》・《예(禮)》・《악(樂)》・《역(易)》・《춘추(春秋)》의 육경(六經)을 산정하고, 육예(六藝)로써 가르쳤다고 했다. 육경은 오경(《악》 제외) 혹은 칠경(七經()6경과 《논어》)으로도 정립된다. 그리고 유교가 국가이념으로 채택되고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급기야 칠경 가운데(7-2=5) 《예》는 《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의 삼례(三禮)로(+3), 《춘추》는 《좌전(左傳)》・ 《공양전(公羊傳)》・《곡량전(穀梁傳)》의 삼전(三傳)으로 나눠지고(+3), 여기에 《이아(爾雅)》와 《맹자》를 추가(+2)하여 ‘십삼경(十三經)’이 형성된다.
남송(南宋) 광종(光宗)(1190~1194) 연간에 십삼경에 대한 가장 정통한 주석을 선정하여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를 편찬했다. 당시 《논어》에서는 삼국시대(三國時代) 위(魏)나라의 하안(何晏)이 주注를 낸 《집해(集解)》와 하안의 주석을 부연・설명하여 소(疏)를 내었던 북송시대 형병(邢昺)의 《정의(正義)》를 선정・합본)하였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논어주소(論語注疏)》라고 말한다. 《논어주소》는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의 황간(黃侃)(488~545)의 《논어의소》와 함께, 한당시대 훈고학으로 특징짓는 고주를 대표하며, 남송시대 주희(朱熹)(1130~1200)의 신주(新注)(《논어집주(論語集註)》)와 함께 가장 중요한 양대 주석으로 인정되고 있다.
2. 저자
(1) 성명:하안(何晏)(?~249)과 형병(邢昺)(932~1010)
(2) 자(字)·별호(別號):하안의 자는 평숙(平叔)이고, 형병의 자는 숙명(叔明)이다.
(3) 출생지역:하안은 남양(南陽)군 완현(宛縣)(현 하남성(河南城) 남현(南陽)) 사람이며, 형병은 북송(北宋) 조주(曹州) 제음(濟陰)(현 산동(山東) 제음(濟陰)) 사람이다.
(4) 주요활동과 생애:하안은 후한(後漢) 영제(靈帝) 때 시중(侍中)을 지낸 하진(河進)(?~189)의 손자로, 어머니 윤씨(尹氏)가 조조(曹操)의 부인이 되었기에 궁정 안에서 자랐다. 젊어서부터 여러 경전에 정통하여 수재(秀才)로 인정받아 조조의 딸과 금향공주(金鄕公主)와 혼인하고, 정시(正始) 연간(240~249)에 조상(曹爽)이 권력을 잡자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다. 이때에 젊은 학도였던 왕필(王弼()226~249)과 주고받은 청담은 일세를 풍미했고, ‘정시(正始)의 음(音)’으로 일컬어져 청담의 모범이 되었다. 당시 임금이 특히 《논어》를 좋아하자, 여러 학자들의 훈설을 정리하여 《논어집해(論語集解)》를 편찬하였다.
형병은 북송(北宋) 태종(太宗)(976~984) 태평흥국(太平興國) 초에 연시(延試)에 급제하고, 국자감승(國子監丞)이 되었으며, 또한 국자박사(國子博士)가 되어 태종의 아들에게 유교 경전을 강론하여 명망을 얻었다. 진종(眞宗) 함평(咸平) 2년(999)에 한림시강학사(翰林侍講學士)가 설치되었을 때 수임(首任)이 되었다. 황명으로 여러 경전의 의소(義疏)를 교정했고, 진종에게 《효경》, 《예기》, 《논어》, 《춘추좌씨전》 등을 강의했다.
(5) 주요저작:하안이 편찬한 저서로는 《논어집해(論語集解)》 이외에 《주역강소(周易講疏)》, 《도덕론(道德論)》, 《도덕론(道德論)》 등이 있었지만 현전하지는 않는다. 형병의 저서로는 《논어정의(論語正義)》 이외에 《이아정의(爾雅正義)》, 《이아의소(爾雅義疏)》, 《효경정의(孝經正義)》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논어주소》는 《논어》에 대한 하안(何晏)의 주(注)(《논어집해(論語集解)》)와 그에 대한 형병(邢昺)의 소(疏)(《논어정의(正義)》)를 합본한 저작으로,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편찬의 일환으로 출간되었기에 본래 《논어주소경해(論語注疏經解)》라고 칭해졌다. 그런데 본래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논어집해(論語集解)》와 《논어정의(正義)》는 현재 원본은 전하지 않고, 오로지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의 일환으로 간행된 《논어주소》만 전해지고 있다.
4. 내용
《논어》에 대한 최고(最古)의 주석서로서 《논어주소》는 총20편 501장으로 편장을 나누었는데, 후대의 모든 주석서들은 모두 이것을 전범(典範)으로 하여 다소 수정(주자의 《논어집주》는 20편, 498장으로 구성되어 있음)하는 데에 그쳤다. 《논어주소》는 ① 경문(經文)의 대의(正義曰), ② 경문, ③ 《논어집해(論語集解)》의 주(注), ④ 경문에 대한 여러 소(疏)(馬曰……), ⑤ 《논어집해》의 주에 대한 형병 자신의 소(疏)(正義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경문에 대한 여러 소(疏)로 판단할 때, 《논어주소》는 어떤 특정한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공안국(孔安國), 포함(包咸), 마융(馬融), 정현(鄭玄), 왕숙(王肅), 주생렬(周生烈) 등)이 함께 이루어낸 한당시대(漢唐時代)의 집단지성의 문화적 작품의 총결이라고 할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한대(漢代)에서 청대(淸代)에 이르기까지 《논어》에 대한 주석은 1,100여 종이 되는데, 이 중 하안・황간・형병・주자를 4대 주석가라고 한다. 이 가운데 하안과 형병의 주소 및 한당대의 여러 지성들의 해설을 함께 제시한 《논어주소》는 다양한 《논어》 주석들 가운데 고주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신주(新注)를 대표하는 최정(最精)의 《논어》 주석서를 내었던 주자는 “한(漢)・위(魏)의 여러 유학자들은 음독(音讀)를 바로 잡고 훈고를 통하게 하였으며, 제도를 상고하고 명물(名物)을 변별하였으니, 그 공이 크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경전의 글자와 문구의 의미를 정확하게 풀이하는 데에 치중한 나머지, “문의(文義)를 해석하고, 나아가 경(經)의 뜻을 근본까지 추론하여 그 취지를 구하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데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옛것을 상고하는 것만으로 법도로 삼고 명변이 부족하여, 참위(讖緯)와 사설(邪說)을 함께 거두어들이는 것을 면하지 못하여, 배우고서 생각하지 않은 폐단이 있었다.”고 하겠다(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
6. 참고사항
(1) 명언
•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를 살피면, “‘논어(論語)’란 공자(孔子)께서 제자 및 당시 사람들에게 응답하신 것과 공자께 직접 들은 말들을 그 당시 제자들이 각자 기록한 것인데, 공자께서 돌아가시자 문인들이 모아서 편찬하였기에 붙여졌다.”……정현이 말했다. “중궁・자유・자하 등이 찬했다. 논(論)이란 윤(綸)・윤(輪)・이(理)・차(次)・찬(撰)이다. 이 책으로 세상일을 경륜(經綸)할 수 있기[經綸世務]에 윤(綸)(經綸世務)이라 하며, 〈그 작용이〉 원만하게 두루 통하여 무궁하기[圓轉無窮]에 윤(輪)(圓轉無窮)이라 하며, 온갖 이치를 온축하기[蘊含萬理]에 이(理)(蘊含萬理)라 하며, 편장에 순서가 있기에[編章有序] 차(次)(編章有序)라 하며, 서로 현인들이 모여 찬정[群賢集定]했기에 찬(撰)(群賢集定)이라 한다.……답술을 ‘어(語)’라 하는데, 이 책에 기록한 것은 모두 공자께서 제자 및 당시 사람들에게 응답한 말씀이므로 어(語)라고 했다.[案漢書藝文志云 論語者 孔子應答弟子時人 及弟子相與言而接聞於夫子之語也……鄭玄云 仲弓子游子夏等撰定 論者 綸也 輪也 理也 次也 撰也 以此書可以經綸世務 故曰綸也 圓轉無窮 故曰輪也 蘊含萬理 故曰理也 篇章有序 故曰次也 群賢集定 故曰撰也……答述曰語 以此書所載 皆仲尼應答弟子及時人之辭 故曰語]” 《논어주소(論語註疏)》 〈서해(序解)〉
(2) 색인어:하안(何晏), 형병(邢),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정의(論語正義), 논어주소(論語注疏)
(3) 참고문헌
• 論語注疏, 十三經注疏整理委員會, 北京大學出版社, 2000.
• 《역주논어주소》1~3, 정태현・이성민 공역, 전통문화연구회, 2014.
• 《삼대주석과 함께 읽는 논어》1~3, 임헌규, 모시는사람들, 2010.
【임헌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