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는 《제경세시기승(帝京歲時紀勝)》과 함께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대 연경 지역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대표적인 문헌이다. 연경은 북경으로 3,000여 년의 건성사(建城史)와 850여 년의 건도사(建都史)를 지녔으며, 몽고족․한족․만주족이 지배했던 원명청 삼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도성이다. 청대는 고대를 총결산하고 근대, 현대를 잇는 분기점으로 역사적 의의가 깊다. 또한, 한족과 소수민족의 습속이 혼재하고 사상에 있어서도 유불도 삼교의 통합을 이룬다.
본고는 1981년 간행된 북경고적출판사(北京古籍出版社)의 반영폐(潘榮陛), 부찰돈숭(富察敦崇) 저 《帝京歲時紀勝, 燕京歲時記》를 저본으로 삼아 필자가 번역한 《연경세시기》(지식을만드는지식, 2017)를 참고하였다. 양서(兩書)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대 연경 지역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대표적인 문헌이다. 중국 최초의 세시기인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가 중국 후대는 물론 우리 조선 시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영향을 미쳤음을 미루어 볼 때 《연경세시기》해제 작업은 향후 한중 양국의 세시풍속 비교 연구 발전에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연경세시기》는 청대 북경의 세시풍속을 음력 정월부터 12월까지 기록하였다. 주요 내용은 풍속(風俗)․유람(遊覽)․물산(物産)․기예(技藝)로 총 145조이다. 세시 활동은 해를 마감하고 시작하는 12월(23조)과 정월(21조)에 집중된다. 인용 문헌은 다음 역대전적 32여 권이며 그 중 《일하구문고(日下舊聞考)》가 33여 조로 가장 많다.
남조 양(梁) 종름(宗懍)《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2), 수 두대경(杜台卿)《옥촉보전(玉燭寶典)》(1), 동방삭(東方朔)의 점서(占書)(1), 명 유동(劉侗)․우혁정(于奕正)《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8), 《예부칙례(禮部則例)》(1), 명 주국정(朱國楨)《용당소품(湧幢小品)》(1), 청 두광정(竇光鼐)․주균(朱筠) 등《일하구문고》(33),《논어(論語)》(1), 청 오장원(吳長元)《신원지략(宸垣識略)》(5), 명 육계굉(陸啓宏)《북경세화기(北京歲華記)》(2), 청 왕사정(王士禎)《거이록(居易錄)》(1), 만명(晩明)《여씨변림(余氏辨林)》(1), 명 빙응경(馮應京)《월령광의(月令廣義)》(1), 원 중엽~명초 웅몽상(熊梦祥)《석진지(析津志)》(3), 《세시백문(歲時百聞)》(1), 고시(2), 양 오균(吳均)《속제해기(續齊諧記)》(1),《후한예의지(後漢禮儀志)》(1), 명 심방(沈榜)《완서잡기(宛署雜記)》(1), 동한 응소(應邵)《풍속통(風俗通)》(1), 육전(陸佃)《비아(埤雅)》(1), 북송 석도성(释道诚) 집(辑)《석씨요람(釋氏要覽)》(《불학비요(佛學備要)》)(1), 명말~청초 조길사(趙吉士)《기원기소기(寄園寄所寄)》(2),《시경(詩經)》(1), 명 이후(李诩)《계암만필(戒菴漫筆)》(《계암노인만필(戒庵老人漫笔)》)(1), 《한서(漢書)》(1), 송 정대창(程大昌)《연번로(演繁露)》(1), 청 위곤(魏坤)《의청각잡초(倚晴閣雜抄)》(1), 청 왕급(汪汲)《사물원회(事物原會)》(1), 원명 손국칙(孫國敕)《연도유람지(燕都遊覽志)》(1), 청 왕호(汪灏) 등《광군방보(廣群芳譜)》(1), 《경사희극(京師戱劇)》(1)이다.
《연경세시기》에 나타난 세시풍속 제 양상은 전통절일(18조), 종교절일(36조), 월내잡사(30여 조)로 분류한다. 이 중 종교절일이 우세하며 묘우(廟宇)를 중심으로 도교적 성격이 강하다. 일자는 대부분 양수(陽數) 중복, 삭망일(朔望日)과 기수일(奇數日)로 한 해의 상반기에 치중되며 신화․전설 및 역사․인물고사, 속언(俗諺) 등을 배경으로 한다.
서술 체재는 세시에 따라 기술하되, 날짜가 정해진 것은 명확하게 밝히고 선인들의 기록을 인용하는 한편 오류를 바로잡고 작자의 견문도 보태어 창의성이 돋보인다. 《일하구문고》의 대요로 특히 청대 상업경제의 발달을 반영하듯 달마다 활동하는 묘시(廟市)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다. 묘시는 불교 사찰을 비롯하여 특히 도교 도관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열린다. 제례(祭禮) 거행 일자는 주로 정월과 숭배신의 탄신일이나 기일(忌日)에 집중된다. 목적은 신을 경배하여 기복피사(祈福避邪)․치병(治病)․구자(求子) 등을 기원한다. 묘우를 중심으로 묘시가 형성되어 다양한 일용품․기호품․기념품을 구매하고 연희․잡기․놀이를 즐기는 한편 유람한다. 기타 월내잡사는 후반기인 10월 이후 풍성함을 보인다. 계층별로는 대부분 관민이 함께 거행하며 절기와 관련이 깊다. 사상별로는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유불도가 융합되었고, 내용별로는 진경벽사(進慶辟邪)․경축이 근간을 이룬다.
2. 저자
(1) 성명:부찰돈숭(富察敦崇)(1855~1926).
(2) 자(字), 호(號) : 원명(原名)은 종걸(宗杰). 자는 예신(禮臣), 준신(俊臣), 위인(伟人), 묵경(默卿). 호는 철사도인(铁狮道人), 철석(铁石), 예창(藝窗), 오수(聱叟)이다.
(3) 출생지역:출생지는 연경(북경) 철사자 호동(铁狮子胡同)(북경의 가장 오래된 뒷골목으로 지금의 장자충로(张自忠路))으로 북경인이며 만주족.
(4) 주요활동과 생애
부찰돈숭은 만주 귀족의 후예로 함풍(咸豐) 5년(1855) 7월 북경 출생이다. 부찰(富察)이라는 성은 궁두극(宫斗剧)(궁정사극)《여의전(如懿传)》과 《연희공략(延禧攻略)》안에 황후 ‘사제부찰씨(沙济富察氏)’가 가족에 속한다. 만주 팔기(八旗) 중의 하나인 양황기(镶黄旗)며 대성(大姓)으로 명문가이다. 저자는 대대로 돈혜백(敦惠伯)의 지위를 세습해온 승간당공(承簡堂公)의 둘째 아들로 만주 세가(世家)인 태부대학사(太傅大學士) 마문목공(馬文穆公)의 먼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났으나 족인(族人)으로 회피당하여 시험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후 관례에 따라 관직을 받아 동삼성(東三省)(요녕(遼寧)․길림(吉林)․흑룡강(黑龍江)) 도원(都員), 병부주사(兵部主事), 봉천순방영무처제조(奉天巡防营务处提调) 등을 역임했다. 퇴청 후에는 서사(書史)를 읽으며 마음을 달래어 청조의 옛 역사 제도의 전고(典故)에 관하여 그 본원(本源)을 깊게 탐구했다. 일찍이 육군부낭중(陸軍部郞中)․광서사은부지부(廣西思恩府知府) 등을 거쳐 선통(宣統) 2년(1910) 조정의 명을 받들어 북경․찰합이(察哈爾)․하북(河北)․호북(湖北)․강소(江蘇)․절강(浙江) 등지의 군대․학교․공장 등을 조사하는 사무를 보았다. 이듬해 7월 병가를 얻어 북경으로 돌아와 무창사기(武昌事起) 혁명을 피해 두문불출했다. 그의 졸년(卒年)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1926년 북경 서직문(西直门) 밖 고량교(高粱桥) 아래 투신자살했다고 전한다.
그는 평생 문사를 좋아하여 풍부한 저술을 남겼다. 특히 《사은태수연보(思恩太守年谱)》(《부찰돈숭예신연보(富察敦崇禮臣年谱)》)는 6권 약 18만 자로 민국 4년(1915)에서 7년(1918) 손으로 썼고 아직 세상에 간인(刊印)되지 않았다. 내용은 개인 연보와 자신의 가보(家譜)를 수록하는 한편 만청(晚清) 역사와 관련 깊은 풍부한 개인적 견문을 기록하여 학술적 가치가 높다. 그 외 당대(當代) 명문 호족(豪族) 생활과 그들의 가계를 상세히 묘사하였다.
(5) 주요저작:《연경세시기》, 《융유황태후대사기(隆裕皇太后大事記)》, 《남행시초(南行詩草)》, 《자등관시초(紫藤馆诗草)》, 《예창쇄기(藝窗琐记)》, 《화호집문초(畵虎集文钞)》, 《(경자(庚子))도문기변삼십수절구(都门纪变三十首絕句)》, 《황실견문록(皇室见闻錄)》, 《부찰유문록(富察遗闻錄)》, 《사은태수연보》.
3. 서지사항
본 《연경세시기》 해제는 1981년 간행된 북경고적출판사(北京古籍出版社)의 반영폐(潘榮陛), 부찰돈숭(富察敦崇) 저 《제경세시기승(帝京歲時紀勝),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를 저본(底本)으로 삼았다. 《제경세시기승》은 건륭(乾隆) 23년(1758) 간인되었으며, 장강재(張江裁) 편(編)의 〈북평사적총서본(北平史蹟叢書本)〉을 바탕으로 배인(排印)(조판 인쇄)하고 아울러 〈원각본(原刻本)(조본(祖本))〉을 참조 대조했다. 초간본 《연경세시기일권(燕京歲時記一卷)》은 광서(光緖) 32년(1906) 간인되었고, 역시 〈원각본〉을 근거로 배인했다. 본서는 양서(兩書)의 합본으로 1961년 북경출판사 출판을 근거로 다시 새롭게 배인 출판했다.
《연경세시기》는 1930년대 영문․일문으로 번역되어 외국에 소개되었다. 그 중《Annual Customs and Festivals in Peking》의 작자 복덕(卜德)(Derk Bodde, 1909~2003)은 1931년 합불연경학사(哈佛燕京学社)(Harvard-Yenching Institute)의 지원을 받아 6년간 북경 연수를 하면서 《연경세시기》를 번역하고 출판했다. 한국에서는 2006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번역 출판한 《중국대세시기Ⅱ》에 수록되었고, 2017년 상기숙 역저 《연경세시기》가 출판사 지식을 만드는지식에서 발표된다.
4. 내용
중국 청대에 강남 일대 세시풍속을 다룬 전적으로 《청가록(清嘉錄)》을 든다면 북경 일대는 《연경세시기》라 할 것이다. 1900년 완성된 《연경세시기》는 과거로부터 만청에 이르기까지 북경의 세시풍속을 다루었고 1906년 간행 이후 급속도로 유행한다. 원단(元旦)부터 제석(除夕)까지의 세시풍속을 날짜별로 기술하였고 사계절의 풍취와 풍속 및 북경의 물산과 기예 등을 기존의 세시기를 본받아 선인들의 다양한 기록에 자신의 견문을 보태서 유람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그러므로 《연경세시기》는 저자의 창의성이 돋보이며 중국 세시풍속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저작 동기는 발문(跋文)에 의하면, “…… 광서(光緖) 26년(1900) 경자(庚子) 3월 16일 돈숭 스스로 적다. 다시, 이 기록은 모두 사실을 따라 쓴 것이어서 자잘한 일들이 많아 번잡스럽고 거칠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주요 뜻을 살펴보면 풍속․유람․물산․기예 네 부분 아닌 것이 없을뿐더러 또한 《일하구문고》의 대요이다.”라고 했다.
《일하구문고》의 전서(全書) 명칭은 《흠정일하구문고(欽定日下舊聞考)》로 160권이며, 《일하구문(日下舊聞)》의 체례(體例)와 편차(編次) 목록을 연용(沿用)하였다. 《일하구문고》는 건륭 39년(1774) 두광정․주균 등이 《일하구문》을 근거로 증보․고증하여 지었다. 건륭 50년(1785)에서 52년(1787) 판각 출판한 가장 완정(完整)한 내용으로 북경의 역사․지리․성방(城防)․궁전․명승(名勝) 등의 자료를 선집(選輯)했다. 《일하구문》은 주이존(朱彝尊)에 의해 강희(康熙) 26년(1687) 편성되었으며 1,600여 종의 다양한 고적(古籍) 중에서 역대 북경에 대한 기재와 자료를 내용에 따라 모두 13문(門)으로 분류했다. 성토(星土)․세기(世紀)․형승(形勝)․궁실(宮室)․성시(城市)․교동(郊垌)․경기(京畿)․교치(僑治)․변장(邊障)․호판(戶版)․풍속․물산․잡철(雜綴)로 모두 42권이다.
《일하구문고》는 18문으로 성토․세기․형승․국조궁실(國朝宮室)․궁실․경성총기(京城總記)․황성(皇城)․성시․관서(官署)․국조화유(國朝花囿)․교동․경기부편(京畿附編)․호판․풍속․물산․변장․존의(存疑)․잡철이다. 2,000여 종의 고적을 참고 열람했으며 대량의 북경사지(北京史志), 특히 청대 순․강․옹․건(順)․康․翁․乾 4조(朝)의 중앙기관인 순천부(順天府)․궁실․화유(花囿)․사묘(寺廟)․원림(園林)․산수․궁적(古迹) 제 방면의 건물 위치와 연혁 및 원시 자료 등을 보존 역사와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에서도 매우 높은 평가를 하였다.
서술 체재는 음력 정월부터 12월까지 총 145조를 다루고 있으며 연중행사는 여타 세시기처럼 해를 마감하고 시작하는 12월(23조: 납팔죽(臘八粥), 대백채(大白菜), 옹화궁오죽(雍和宮熬粥), 포록상(麅鹿賞), 봉인(封印), 봉대(封臺), 방년학(放年學), 제조(祭竈), 춘련(春聯), 문신(門神), 화아붕자(畵兒棚子), 제석(除夕), 선세(跴歲), 연반(年飯), 당화(唐花), 장향(藏香), 요전수(搖錢樹), 압세전(壓歲錢), 홍표아(紅票兒), 괘천(掛千), 천지탁(天地桌), 사세(辭歲), 영희신(迎喜神))과 정월(21조: 원단(元旦), 팔보하포(八寶荷包), 제재신(祭財神), 파오(破五), 인일(人日), 순성(順星), 타춘(打春), 등절(燈節), 연구(筵九), 개인(開印), 타귀(打鬼), 전창(塡倉), 대종사(大鐘寺), 백운관(白雲觀), 조노공관아(曹老公觀兒), 창전아(廠甸兒), 동서묘(東西廟), 토지묘(土地廟), 화아시(花兒市), 소약왕묘(小藥王廟)․북약왕묘(北藥王廟), 사모자(耍耗子)․사후아(耍猴兒)․사구리자(耍苟利子)․포한선(跑旱船))에 집중되어 있다. 이어 질병과 독물(毒物)이 창궐하는 5월(20조: 단양(端陽), 웅황주(雄黃酒), 천사부(天師符), 창포(菖蒲)․애자(艾子), 채사계호(綵絲繫虎), 전채위호로(剪綵爲葫盧), 사갈(賜葛), 성황출순(城隍出巡), 과회(過會), 도성황묘(都城隍廟), 남정(南頂), 십리하(十里河), 요대(瑤台), 마도우(磨刀雨), 분룡병(分龍兵), 악월(惡月), 석류(石榴)․협죽도(夾竹桃), 오월선아(五月先兒), 첨과(甛瓜), 염지갑(染指甲))이 뒤를 잇는다.
즉 12월(23조)→ 정월(21조)→ 5월(20조)→ 10월(13조: 시월일(十月一), 첨화(添火), 앙산와(仰山窪), 매헌서(賣憲書), 풍쟁(風箏)․건아(毛+建)兒․유리나팔(琉璃喇叭)․포포등(口)+布 口+布燈․태평고(太平鼓)․공종(空鐘), 주마등(走馬燈), 척구(踢球), 곡곡아(蛐蛐兒)․괄괄아(聒聒兒)․유호로(油壺廬), 율자․백서․중과․남당․살제마․부용고․빙당호로․온박(栗子)․白薯․中果․南糖․薩齊瑪․芙蓉糕․冰糖壺盧․溫朴, 수오타․내오타(水烏他)․奶烏他, 적포아․투고낭․해당목과․구박(赤包兒)․鬥姑娘․海棠木瓜․漚朴, 오동․교취․축정홍․노서아․연교아(梧桐)․交嘴․祝頂紅․老西兒․燕巧兒, 동순․은어(冬筍)․銀魚)→ 6월(12조: 유월육(六月六), 세상(洗象), 제마왕(祭馬王), 제관제(祭關帝), 사빙(賜冰), 환갈사(換葛紗), 중정(中頂), 십찰해(十刹海), 소청낭(掃晴娘), 빙호아(冰胡兒), 산매탕(酸梅湯), 서과(西瓜))→ 4월(11조: 사연두(捨緣豆), 만수사(萬壽寺), 서정(西頂), 묘봉산(妙峯山), 아계산(위(髟)+아래(丫))髻山, 북정(北頂) 동정부(東頂附), 유전고(榆錢糕), 황리(黃鸝), 노순(蘆筍)․앵도(櫻桃), 양초면(凉炒麪), 매괴화(玫瑰花)․작약화(芍藥花))→ 7월(11조: 주침(丢針), 작전교(鵲塡橋), 중원(中元), 하엽등․호자등․연화등(荷葉燈)․蒿子燈․蓮花燈, 법선(法船), 우란회(盂蘭會), 방하등(放河燈), 강남성황묘(江南城隍廟), 금종아(金鐘兒), 능각․계두(菱角)․雞頭, 조아․포도(棗兒)․葡萄)→ 3월(8조: 삼월삼일(三月三日), 반도궁(蟠桃宮), 동악묘(東嶽廟), 담자사(潭柘寺), 계대(戒台), 천태산(天台山), 환계(換季), 황화어․대두어(黃花魚)․大頭魚), 11월(8조: 번괘자(翻褂子), 월당두(月當頭), 동지(冬至),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 타상(拖牀), 유빙혜(溜冰鞋), 타빙(打冰), 사초(賜貂))→ 8월(7조: 중추(中秋), 월광마아(月光馬兒), 구절우(九節藕), 연판서과(蓮瓣西瓜), 월병(月餠), 토아야탄자(兎兒爺攤子), 조군묘(竈君廟))→ 9월(6조: 구월구(九月九), 조어대(釣魚臺), 화고(花糕), 구화산자(九花山子), 조해․양향주․압아광․시자․산리홍(糟蟹)․良鄕酒․鴨兒廣․柿子․山裏紅, 재신묘(財神廟))→ 2월(5조: 태양고(太陽糕), 용대두(龍臺頭), 춘분(春分), 청명(淸明), 매소유계․소압자(賣小油雞)․小鴨子) 순이다.
《연경세시기》에 나타난 세시풍속의 공통점은 절일 행사는 관민․빈부귀천이 함께 거행하기도 하나 일부 민간의 질박한 풍물보다 청조를 칭송하는 등 귀족적 성격이 짙다. 특히 청대 상업경제의 발달을 반영한 묘시 활동이 불교 사찰과 도교 묘우를 중심으로 활발하다. 절기와 관련 깊으며 절식(節食)은 제철 음식으로 먼저 제사에 올리고 몸을 보양하는 한편 역질(疫疾)을 물리친다. 유희 역시 자연환경인 절기를 반영한다. 《연경세시기》에서 다룬 풍속․민간신앙․제사․제수품․의복․장식품․기호품․절식․명승고적․잡기․유희․폭죽․장난감․벌레․새․화훼(花卉), 사람의 관심사 등은 모두 해당 절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민속학의 보고(寶庫)로서 예인(藝人)이 짐승을 훈련시켜 꾸미는 공연, 아동의 놀이 장난감, 민간에서 벌레나 새를 기르는 풍기(風氣) 및 경사 부녀자들의 다양한 습속 등을 통해 당시 민간풍속을 생생히 이해할 수 있다. 세시 행사는 주로 부녀자와 아이들이 주체가 되며 추구하는 바는 진경벽사․초복제액(招福除厄)․무병장수로 빈부귀천 모두 기복하고 액막이에 목적을 둔다. 그러나 변화발전 과정에서 점차 지역적 민족적 유대감을 형성하며 오락적 축제의 성격이 강조되는 한편 숭배신의 공능 또한 단일에서 만능으로 확대된다.
《연경세시기》의 절일은 성격에 따라 전통․종교․월내 잡사로 나누는데 이들은 상호 습합되어 중복되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전통절일(19조)의 주요 내용은 송구영신, 제사(종묘․사당), 절식, 유희․잡기, 점복․금기, 액막이, 귀녕(歸寧) 등이다. 숭배신 대부분은 조상혼을 비롯하여 신화․전설 및 역사적 인물로 전고를 지니고 있으며 무병장수, 초복피사(招福避邪), 풍작 등을 기원한다. 종교절일(22조)은 불교와 도교로 분류한다. 불교절일의 주요 내용은 사마(邪魔) 퇴치, 인연 맺기, 조상제 등이다. 숭배신은 부처로 축귀(逐鬼), 무병장수, 망령 천도를 기원하고 집안의 흥망성쇠를 점복한다. 도교절일의 주요 내용은 제사, 절식, 유희․잡기, 축귀, 초복피사, 액막이 등이다. 숭배신 대부분은 조상혼을 비롯하여 신화․전설 및 역사적 인물로 전고를 지니고 있으며 부귀복덕, 액막이 등을 기원한다. 묘시는 정월부터 9월에 치중되며 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을 중심으로 열린다. 특히 도교적 성격이 강하며 신을 경배하여 기복피사․치병․구자하는 한편 다양한 일용품․기호품을 구매하고 연희․잡기를 즐기며 유람한다. 월내잡사(18조) 역시 관민을 중심으로 거행하며 절기와 관련 깊다. 주요 내용은 개인․봉인, 봉대, 유희․잡기, 장난감, 환계, 마도우, 분룡병, 복식․장식, 세상(洗象), 기우(祈雨)․기청(祈晴), 절식․식품, 기호품, 철새, 당화, 장향 등 다양하다. 신화․전설과 역사고사 및 속언을 배경으로 한다.
5. 가치와 영향
중국 세시기의 기원은 《시경(詩經)․국풍(國風)》, 《예기(禮記)․월령(月令)》등에서 보이는 상고 중국민속과 관련지을 수 있다. 후한 최식(崔寔)의 《사민월령(四民月令)》이나 오나라 주처(周處)의 《양선풍토기(陽羨風土記)》는 중국인의 생활을 단편적으로 담고 있어 완정(完整)한 세시기라 볼 수 없다. 처음에는 호족이나 국가의 백성에 대한 수시의식(隨時儀式)에서 비롯되었고, 수대에는 상층(上層)과 백성이 합성되는 양식을 거쳐 두공첨(杜公瞻) 주(注) 《형초세시기》(605~617년간) 등에서 세시기의 모태를 완성한다. 정월부터 납월(臘月)까지 윤월(閏月)을 포함하여 당시 양자강(揚子江) 중류 지방의 풍속과 연중행사를 기술하는 형태로 후대 세시기는 물론 조선세시기 체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연경세시기》는 과거로부터 만청에 이르기까지 북경지역의 세시풍속을 다루고 있어 역사적 의의 및 학술적 가치가 높다. 북경은 전국시대 연나라의 수도였기에 연경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고금 이래 북경은 다방 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원대(元代)(1271~1368) 1267년 대도(大都)라는 명칭으로 건설되어 행정수도가 되었다. 명(明)(1368~1644) 제1·2대 황제 재위 기간 남경(南京)을 수도로 삼았으며, 전대의 수도였던 대도는 북평(北平)으로 개명한다. 그러나 명 제3대 황제는 북평을 다시 수도로 삼고 북경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그 후 북경은 국민당 정부가 남경을 다시 수도로 삼았던 짧은 기간(1928~1949, 제2차 세계대전 중 중경(重慶)으로 천도)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수도로서 지위를 지켜온다.
《연경세시기》는 원단부터 제석까지의 세시풍속을 날짜별로 기술하였는데 사계절의 풍취와 풍속 및 북경의 물산과 기예 등을 기존의 세시기를 본받아 선인들의 다양한 기록에 자신의 견문을 보태서 유람에 도움이 되도록 저술하였다. 그러므로 《연경세시기》는 중국 세시풍속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저작 동기는 발문(跋文)에 의하면, “세시에 따라 유람하여 기록하였는데 전례에 속하지 않는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처의 볼거리는 대부분 기일이 정해져 있어 또한 세시와 서로 일치하였다. 그 볼거리에서 정해진 기일이 없는 것은 대개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구별하였다. 광서 26년 경자(1900) 3월 16일 돈숭 스스로 적다. 다시, 이 기록은 모두 사실을 따라 쓴 것이어서 자잘한 일들이 많아 번잡스럽고 거칠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주요 뜻을 살펴보면 풍속․유람․물산․기예 네 부분 아닌 것이 없을뿐더러 또한 《일하구문고》의 대요이다.”라고 밝혔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백운관(白雲觀)은 부성문(阜城門) 밖 서남쪽 5리에 있으며 그 터는 아주 오래되었는데 금․원나라 이래부터 있어왔다. 관내에 있는 ‘만고장춘(萬古長春)’ 4자는 구장춘(邱長春)이 쓴 것이라고 전해진다. 매해 정월에 이르면 초하루부터 묘를 19일까지 개방한다. 유람객의 왕래가 잇달아 끊이지 않고 수레와 말이 내닫는데 19일에 이르러 가장 성하여 이를 “신선을 만난다.”라고 일컫는다. 전해오길 18일 밤 안에 반드시 하강한 신선이나 진인이 있어 혹은 유람객이나 혹은 거지로 변하는데 인연이 있어 그를 만나는 자는 병을 물리치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황색 관을 쓴 도사가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복도 아래 결가부좌하여 신선이나 진인(眞人)을 한 번 만나길 기대한다. 결국 만났는지 만나지 못했는지 알 수 없다. 관내에 노인당 한 곳이 있어 도사 중 나이 든 자가 거주하며 비록 신선이 되지는 못했어도 항시 100세가 넘는 자가 있었으니 수양을 닦으면 장수할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관 뒤에는 정자와 동산 지역이 있는데 이는 근년에 세운 것으로 전에는 없었다[白雲觀在阜城門外西南五六里, 其基最古, 自金元以來卽有之. 觀內萬古長春四字, 尙傳爲邱長春所書. 每至正月, 自初一日起, 開廟十九日. 遊人絡繹, 車馬奔騰, 至十九日爲尤盛, 謂之會神仙. 相傳十八日夜內必有仙眞下降, 或幻遊人, 或化乞丐, 有緣遇之者, 得以却病延年. 故黃冠羽士, 三五成羣, 趺坐廊下, 以冀一遇. 究不知其遇不遇也. 觀內老人堂一所, 皆道士之年老者居之, 雖非神仙而年過百齡者時所恒有, 亦修養之明徵也. 觀後有亭園一區, 乃近年所構, 其先無之]〈정월(正月) 백운관(白雲觀)〉.
• 동악묘(東嶽廟)는 조양문(朝陽門) 밖 2리 쯤 있으며 초하루와 보름 외에 매년 3월이면 15일부터 시작하여 모두 묘우를 반 개월 연다. 남녀들이 운집하고 28일에 이르면 가장 성대한데 세속에서 이를 탐진회(撢塵會)라 한다. 실제는 바로 동악대제(東嶽大帝) 탄신일이다. 묘우에는 72사(司)가 있고 사마다 각기 신위(神位)가 있다. 전해오길 “속보사(速報司)의 신인 악무목(岳武穆)이 가장 기이함을 보여준다.”라고 한다. 무릇 억울한 죄를 뒤집어써 한을 품고 속마음이 밝지 못한 자가 이곳에 와서 거짓 없는 마음을 맹세하면 그 보답이 가장 빠르다. 섬돌 앞에 진회(秦檜)의 무릎 꿇은 상이 있어 보는 자마다 침을 뱉어 이미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뒤 전각엔 재동제군(梓潼帝君)이 있으며 역시 기이함을 나타내 과거보는 해엔 기도가 이어진다. 신좌(神座) 우측에는 동으로 만든 나귀가 한 필 있어 흔히 사람의 질병을 낫게 할 수 있다. 귓병이 있는 자가 나귀의 귀를 비비고, 눈병이 있는 자가 나귀의 눈을 닦고, 발병이 있는 자가 나귀의 발을 쓰다듬는다. 전각 동쪽엔 갑옷과 투구를 갖춘 여러 개의 상이 땅 안에 반신(半身)이 매몰되어 있는데 세속에서 전하길 ‘양가(楊家)의 장수들’이라 운운하지만 도대체 어떤 신인지 알 수가 없다. 묘우 안에 도교비(道敎碑)는 바로 원나라 한림원 승지 조맹부(趙孟頫)가 쓴바 자획은 비록 틀림없으나 풍채는 이미 상실되었으니 세속의 석공이 작업했으리라 생각된다[東嶽廟在朝陽門外二里許. 除朔望外, 每至三月, 自十五日起, 皆開廟半月. 士女雲集, 至二十八日爲尤盛, 俗謂之撢塵會. 其實乃東嶽大帝誕辰也. 廟有七十二司, 司各有神主之. 相傳速報司之神爲岳武穆, 最著靈異. 凡負屈含寃心迹不明者, 率於此處設誓盟心, 其報最速. 階前有秦檜跪像, 見者莫不唾之, 已不辨面目矣. 後閣有梓潼帝君, 亦著靈異, 科擧之年, 祈禱相屬. 神座右有銅騾一匹, 頗能愈人疾病. 病耳者則摩其耳, 病目者則拭其目, 病足者則撫其足. 閣東有甲冑之像數, 半身沒於地中, 俗傳爲楊家將云云, 究不知其爲何神也. 廟中道敎碑乃元翰林院承旨趙孟頫所書, 字畵雖眞, 丰神已失, 想爲俗工鑿治矣]〈삼월(三月) 동악묘(東嶽廟)〉.
• 경사에서 단양(端陽)을 오월절(五月節)이라 한다. 초닷새를 5월 단오(單五)라고 하는데 대개 ‘단(端)’ 자의 음이 변한 것이다. 매년 단양 이전 관사와 고관대작의 저택에서는 모두 종자(粽子)를 서로 선물하고 같이 앵두․오디․발제(荸薺)․복숭아․살구 및 오독병(五毒餠)․매괴병(玫瑰餠) 등을 곁들인다. 부처에게 공양하거나 조상에게 제사지낼 때도 그대로 따라 종자 및 앵두․오디를 정규의 공물(供物)로 삼는데 또한 시절 음식을 올리는 뜻이다. 《속제해기(續齊諧記)》를 고찰하건대, 굴원(屈原)이 5월 초닷새에 멱라강(汩羅江)에 투신하여 죽자 초나라 사람들이 이를 애도하여 이날에 이르면 대나무 통에 쌀을 저장하여 물에 던져 제사지냈다. 연엽(楝葉)으로 대나무 통 위를 막고 이를 비단실로 휘감아 교룡(蛟龍)이 훔쳐가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곧 종자의 기원이다[京師謂端陽爲五月節. 初五日爲五月單五, 蓋端字之轉音也. 每屆端陽以前, 府第朱門皆以粽子相餽貽, 並副以櫻桃․桑椹․荸薺․桃․杏及五毒餠․玫瑰餠等物. 其供佛祀先者, 仍以粽子及櫻桃․桑椹爲正供, 亦薦其時食之義. 按《續齊諧記》: 屈原以五月初五日沒投汩羅江, 楚人哀之, 至此日, 以竹筒子貯米, 投水以祭之, 以塞楝葉其上, 以綵絲纏之, 不爲蛟龍所竊. 是卽粽子之原起也]〈오월(五月) 단양(端陽)〉.
• 10월 초하루는 바로 도성 사람들이 성묘하는 철로 세속에서 이를 송한의(送寒衣)라고 일컫는다. 《북경세화기(北京歲華記)》를 고찰하건대, 10월 초하루 성묘하는데 마치 중원제(中元祭)와 같이 두니골타(豆泥骨朶)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두니골타는 바로 원나라 사람들 언어로 지금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에서 10월 초하루 종이가게에서 오색종이를 오려 길이가 한 자쯤 되는 남녀 옷을 만드는데 한의(寒衣)라고 한다. 소지(疏紙)에 그 성과 항렬을 기록하여 마치 집에서 편지를 부치는 것처럼 집집마다 완비(完備)했다가 밤에 제사를 지내고 문 앞에서 태우는데 송한의라고 한다. 지금은 곧 포복(包袱)이 이를 대신하는데 한의라는 이름은 있으나 한의의 실체는 없다. 포복이란 명강(冥鏹)을 종이함 속에 봉해두는 것으로 그 성명과 항렬을 적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十月初一日, 乃都人祭掃之候, 俗謂之送寒衣. 按《北京歲華記》: 十月朔上塚, 如中元祭, 用豆泥骨朶. 豆泥骨朶乃元人語, 今不知爲何物矣. 又《帝京景物略》: 十月朔, 紙坊剪紙五色作男女衣, 長尺有咫, 曰寒衣. 有疏印識其姓字行輩, 如寄家書然, 家家修具, 夜奠而焚之其門, 曰送寒衣. 今則以包袱代之, 有寒衣之名, 無寒衣之實矣. 包袱者, 以冥鏹封於紙函中, 題其姓名行輩, 如前所云]〈시월(十月) 시월일(十月一)〉.
• 23일은 조신(竈神)에게 제사지내는데 옛날엔 황양(黃羊)을 사용했고 근래 궁중에서 이를 여전히 쓴다고 들었으나 민간에서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민간에선 조왕(竈王)을 제사지낼 때 남당(南糖)․관동당(關東糖)․당병(糖餠) 및 청수(淸水)와 초두(草豆)를 쓸 따름이다. 당(糖)이란 신에게 제사 드리기 때문이고 청수와 초두는 신마(神馬)에게 제사 드리기 때문이다. 제사를 마친 후 신상(神像)을 들어내려 천장(千張)․원보(元寶) 등 전부를 태운다. 제석에 이르러 신을 맞이할 때 다시 공양을 행한다. 이날 폭죽을 매우 많이 터뜨려 세속에서 이를 소년하(小年下)라고 일컫는다. 삼가 《일하구문고》를 고찰하건대, 경사에서 조왕을 제사하는 것은 여전히 옛 풍속을 그대로 따라 하니 부녀자가 제사를 주관할 수 없다. 제삿날은 23일이나 오직 남성객호(南省客戶)에서는 24일 지내는데 유동(劉侗)이 말한 바와 같다[二十三日祭竈, 古用黃羊, 近聞內廷尙用之, 民間不見用也. 民間祭竈惟用南糖․關東糖․糖餠及淸水草豆而已. 糖者所以祀神也, 淸水草豆者所以祀神馬也. 祭畢之後, 將神像揭下, 與千張․元寶等一倂焚之. 至除夕接神時, 再行供奉. 是日鞭炮極多, 俗謂之小年下. 謹按《日下舊聞考》: 京師祀竈仍沿舊俗, 禁婦女主祭. 其祀期用二十三日, 惟南省客戶用二十四日, 如劉侗所稱也]〈십이월(十二月) 제조(祭竈)〉.
(2) 색인어: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 청대(淸代), 북경(北京), 부찰돈숭(富察敦崇), 세시풍속(歲時風俗), 절일(節日), 절기(節氣), 묘시(廟市), 도교(道敎)
(3) 참고문헌
•《帝京歲時紀勝․燕京歲時記》(潘榮陛․富察敦崇, 北京出版社)
•《帝京歲時紀勝․燕京歲時記》(潘榮陛․富察敦崇, 北京古籍出版社)
• 中國全史《中國淸代習俗史》(李路陽․畏冬, 人民出版社)
•《荊楚歲時記》(淸文淵閣 欽定四庫全書本)
•《中國古歲時記の硏究》(守屋美都雄, 帝國書院)
• 《中國節》(李露露, 福建人民出版社)
• 《중국대세시기》Ⅰ․Ⅱ(국립민속박물관)
• 《荊楚歲時記》(尙基淑 역저, 지식을 만드는 지식)
• 《帝京歲時紀勝》(상기숙 역저, 지식을 만드는 지식)
• 《燕京歲時記》(상기숙 역저, 지식을 만드는 지식)
•〈《紅樓夢》에 나타난 중국세시풍속〉(상기숙, 《중국소설논총》제Ⅷ집)
•〈중국 淸代의 세시풍속 고찰〉(상기숙, 《중국소설논총》제17집)
•〈중국 세시풍속을 통해 본 民間信仰 諸 樣相〉(상기숙, 《동방학》제18집)
•〈《帝京歲時紀勝》에 나타난 중국 세시풍속 고찰〉(상기숙, 《온지논총》제26집)
•〈《燕京歲時記》에 나타난 청대 세시풍속 고찰〉(상기숙, 《동방학》제22집)
•〈晩淸文人富察敦崇生平事迹考〉(王廣瑞․陳軍, 吉林省 社會科學院)
•〈중국 민속문헌을 통해본 명대 세시풍속 연구〉(상기숙, 《동방학》제34집)
•〈중국 민속문헌을 통해본 청대 북경 세시풍속 연구〉(상기숙, 《중국학논총》제52집)
•〈중국 민속문헌을 통해본 唐代 세시풍속 연구〉(상기숙, 《동방학》제38집)
•〈중국 민속문헌을 통해본 송대 세시풍속 연구〉(상기숙, 《동방학》제40집)
•《中國民俗辭典》(香港商務印書館․湖北辭書出版社)
•《歲時紀時辭典》(湖南出版社)
•《中國風俗大辭典》(中國和平出版社)
•《中國民間信仰風俗辭典》(中國文聯出版公司)
•《中國大百科全書》宗敎(中國大百科全書出版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