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전4권)는 헤이안(平安) 시대 일본 천태종(天台宗)의 제3세 좌주(座主)인 자각대사(慈覺大師) 엔닌(圓仁)이 일본 최후의 견당사(遣唐使)인 승화견당사(承和遣唐使)의 청익승(請益僧)으로서 당(唐)나라에서 구법활동을 수행한 사정을 일기체로 기록한 기행문이다.
2. 저자
(1) 성명:엔닌(圓仁(794∼864))
(2) 자(字)・별호(別號):엔닌의 속성(俗姓)은 임생씨(壬生氏)이고 시호(諡號)는 자각대사(慈覺大師)이다.
(3) 출생지역:하야국(下野國) 하도하군(下都賀郡) 임생정(壬生町(현 일본 도치기현(栃木縣)))
(4) 주요활동과 생애
연력(延曆) 13년(794)에 태어난 엔닌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9세 때 승려인 고우치(廣智)가 주석하고 있던 대자사(大慈寺)에 맡겨졌고, 15세 때 사이쪼(最澄)에게 사사하였다. 23세 때인 홍인(弘仁) 7년(816) 동대사(東大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비구가 되었다. 40세 때 시력이 약화되고 병이 들어 횡천(橫川)의 초암에 은거하였으나 현몽(現夢)에 의해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였다.
승화(承和) 2년(835) 제17차 견당사의 천태청익승(天台請益僧)으로 임명되어 승화 4년(837) 당나라로 출항하였다.
당나라 개성(開成) 3년(838) 7월 2일 양주(揚州) 해릉현(海陵縣)에 상륙한 후 구법순례하고, 무종(武宗)의 불교탄압인 회창폐불(會昌廢佛)을 피해 승화 14년(847)에 귀국하였다. 제형(齊衡) 원년(854) 연력사(延曆寺)의 주지가 되어 제3세 천태좌주(天台座主)가 되었다.
정관(貞觀) 5년(863) 10월 병상에 누워, 다음 해(864) 72세로 입적하였다. 정관 8년(866) 7월 자각대사(慈覺大師)라는 시호를 받았다.
(5) 주요저작:《입당구법순례행기》, 《입당신구성교목록(入唐新求聖敎目錄)》, 《금강정경소(金剛頂經疏)》, 《현양대계론(顯揚大戒論)》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입당구법순례행기》의 저본은 1291년 켄인(兼胤)이 필사한 고초본인 동사관지원본(東寺觀知院本)이다. 이 책은 1907년 처음으로 《속속군서류종(續續群書類從)》(제12집 종교부)에 활자본으로 수록되었다. 이어서 1914년에는 계통을 달리하는 진금사본(津金寺本)(1805)이 《사명여하(四明餘霞)》(제329호 부록)에 수록되었다. 1915년에는 동사관지원본을 저본으로 하고 진금사본을 참고로 수정・보완하여 《대일본불교전서(大日本佛敎全書)》의 유방전총서(遊方傳叢書)에 수록되었다. 그 후 1926년에는 동사관지원본이 영인되어 《동양문고논총(東洋文庫論叢)》(제7)에 수록되었고, 1939년에는 《국역일체경(國譯一體經)》(사전부(史傳部) 25, 1963 보정)에도 수록되었다.
그런데 《입당구법순례행기》 권2 말미의 개성 5년(840) 4월 28일부터 5월 16일까지의 내용은 권3 첫 부분에도 중복되어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거의 같지만 권2에 누락된 부분이 권3에는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4. 내용
《입당구법순례행기》(전4권) 권1은 승화 5년(838) 6월 13일부터 개성 4년(839) 4월 18일까지의 기록으로, 엔닌이 견당사선을 타고 일본 하카다(博多)를 출발하여 당나라에 도착한 뒤 양주(揚州)와 초주(楚州)를 거쳐 다시 귀국선을 타고 해주(海州)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였다. 권2는 개성 4년(839) 4월 19일부터 개성 5년(840) 5월 16일까지의 기록이다. 견당사 귀국선이 풍랑에 밀려 문등현(文登縣) 청녕향(淸寧鄕) 적산촌(赤山村)에 이르자 엔닌은 배에서 내려 재당신라인들의 사원인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에 머물며 견당사와 함께 귀국하지 않고 당나라에 남아 구법순례를 계속할 것을 결심한 후 재당신라인의 도움으로 오대산 순례에 나서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권3은 개성 5년(840) 5월 17일부터 회창 3년(843) 5월 26일까지의 기록이다. 오대산 순례를 마치고 장안(長安)에 이르러 자성사(資聖寺)에 머물며 구법순례를 계속하던 엔닌이 장안에 머문 지 2년 만에 무종의 대대적인 불교탄압인 회창폐불을 만나기까지의 사정을 기록하였다.
권4는 회창 3년(843) 6월 3일부터 회창 7년(대중(大中) 원년, 847) 12월 14일까지의 기록이다. 불교탄압은 더욱 심해져 회창 5년(845) 5월 13일 일본승인 엔닌도 강제로 환속되어 장안을 떠나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해주・밀주(密州)・내주(萊州)를 거쳐 산동반도의 등주(登州)에 이르러 재당신라인의 도움을 받아 귀국선을 찾아 다시 명주(明州)・초주(楚州)를 거쳐 다시 산동반도로 올라와 귀국하게 되었다. 엔닌을 태운 재당신라인의 배는 적산포를 출발하여 신라 서남해안을 거쳐 하카다에 도착하였고, 귀국한 엔닌은 승화 14년(847) 9월 19일 대재부(大宰府) 홍려관(鴻臚館)에 머물렀다.
5. 가치와 영향
엔닌은 구법순례 기간 자신의 견문을 통해 당시 당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실적 내용을 《입당구법순례행기》에 기록하였다. 특히 회창폐불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중국사와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입당구법순례행기》는 한국사와도 관계 깊은 역사적 자료이다. 권2와 권4에 재당신라인 및 신라방, 장보고의 해상활동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중심으로 당-신라-일본을 연결하는 교역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동아시아 해상교역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 귀국하는 항로나 항해 중 신라 남해안을 거치며 그 현황을 기록하는 등 신라사와 관련한 정보도 전하고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우리 세승려(엔닌・이쇼・이교)는 천태산으로 향하기 위하여 귀국의 뜻을 잊어버리고 적산원에 머물러 있다. 가는 길을 물을 때마다 남쪽으로 향하여 떠나는 것은 길이 너무 멀다고 한다.[三僧爲向天台 忘歸國之意 留在赤山院 每問行李 向南去道路絶遠]” 《입당구법순례행기》 권2 개성 4년 7월 23일• “적산법화원의 강경의식, 신라의 일일강의식, 신라의 송경의식[赤山院講經儀式 新羅一日講儀式 新羅誦經儀式]” 《입당구법순례행기》 권2 개성 4년 11월 22일
• “소주선에 타고 있던 당나라 사람 강장과 신라 사람 김자백・흠량휘・김진 등의 서신을 받았는데 이르기를 ‘5월 11일 소주의 송강구로부터 출발하여 일본국으로 갑니다. 21일을 지나 내주 관내의 노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일본국의 스님들이 지금 등주의 적산촌에 머물고 있으니 곧 그곳으로 가서 그들을 만나 배에 태우고자 합니다. ……지금 바로 노산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반드시 배를 타고 오십시오.’라고 하였다.[得蘇州船上唐人江長 新羅人金子白欽良暉金珍等書云 五月十一日 從蘇州松江口發 往日本國 過二十一日 到萊州界山+窂 山諸人商量 日本國僧人等 今在等州赤山 便擬往彼相取 ……今且在山+窂 山相待 事須廻棹來云云]” 《입당구법순례행기》 권4 회창 7년 6월 9일
(2) 색인어: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엔닌(圓仁), 승화견당사(承和遣唐使), 재당신라인(在唐新羅人),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장보고(張保皐), 회창폐불(會昌廢佛)
(3) 참고문헌
• 《입당구법순례행기》(신복룡, 정신세계사, 1991; 선인, 2007)
• 《중국 중세사회로의 여행》(E.O.라이샤워・조성을 역, 한울, 1991)
•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엔닌 지음・김문경 역주, 중심, 2001)
• 《일본인의 당나라 견문록》(E.O.라이샤워・서병국 역, 명문당, 2019)
• 〈《입당구법순례행기》 해제〉(이유진, 《동국사학》 48, 2010)
•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小野勝年, 法藏館, 1964∼1969)
• 《入唐求法巡禮行記》(足立喜六譯注・鹽入良道補注, 平凡社, 1970・1985)
• 《入唐求法巡禮行記》(深谷憲一譯, 中公文庫, 1990)
【이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