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유향(劉向)이 전국시대(戰國時代)(B.C. 475~B.C. 222)의 수많은 제후국 전략가들의 정치, 군사, 외교 등 책략을 모아 집록한 자료를 《전국책(戰國策)》이라 한다. 당시 각 제후국의 사관(史官)이 정리한 것으로 이를 후대에 보정(補訂)하여 33편으로 정리하였다. 체제는 《국어(國語)》와 비슷하며, 《춘추(春秋)》 이후 진(秦)나라 말까지 245년 동안의 내용을 수록한 것이다.
2. 편자
(1)성명:유향(劉向)(B.C. 77~B.C. 6)
(2)자(字)·별호(別號):본명은 갱생(更生), 자(字)는 자정(子政).
(3)출생지역:전한 말기 패현(沛縣)
(4)주요활동과 생애
초원왕(楚元王) 유교(劉交)의 4세손이고, 유흠(劉歆)의 아버지이다.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을 공부했고, 음양휴구론(陰陽休咎論)으로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면서 여러 차례 외척이 권력을 잡는 일에 대해 경계했다. 한 선제(漢宣帝) 때 산기간대부급사중(散騎諫大夫給事中), 원제(元帝) 때 산기종정급사중(散騎宗正給事中)에 발탁되었다. 환관의 횡포를 막으려다 투옥되었다.
성제(成帝)가 즉위하자 임용되어 이름을 향(向)으로 바꾸었고, 광록대부(光祿大夫)를 거쳐 중루교위(中壘校尉)에 이르렀다. 외척의 횡포를 견제하고 천자(天子)의 감계(鑑戒)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상고(上古)로부터 진한(秦漢)에 이르는 부서재이(符瑞災異)의 기록을 집성하여 《홍범오행전론(洪範五行傳論)》 11편을 저술하였다.
궁중 도서의 교감에도 노력하여 해제서 《별록(別錄)》을 만들어 중국 목록학의 비조로 간주된다. 그의 아들 흠(歆)은 이 책을 이용하여 《칠략(七略)》을 저술하였으며,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거의 그대로 수록되어 전한다. 《한서》에 그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다.
(5)주요저작:《홍범오행전론(洪範五行傳論)》, 《설원(說苑)》, 《신서(新序)》, 《열녀전(烈女傳)》, 《별록(別錄)》, 《열선전(列仙傳)》
3. 서지사항
《전국책(戰國策)》의 작자는 아직 미상이며, 원래의 국책(國策), 국사(國事), 단장(短長), 사어(事語), 장서(長書), 수서(修書) 등의 명칭이 있었다. 서한(西漢) 말년 유향(劉向)이 황가장서(皇家藏書) 중에서 6종의 종횡가(縱橫家)를 기록한 사본(寫本)을 발견하여 복잡한 내용과 누락된 글자들을 국별(國別)로 편집하여 이를 ‘전국책(戰國策)’이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사가들이 이 시기를 ‘전국시대(戰國时代)’라고 부르게 되었다. 북송(北宋) 때에 《전국책》이 유실이 되어 다시 정리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현재의 《전국책》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국책》의 내용은 왕 중심 이야기가 아니라, 책사(策士), 모사(謀士), 설객(說客)들이 온갖 꾀를 다 부린 이야기가 중심으로 언론(言論)과 사술(詐術)이다. 특히 내용 가운데 ‘민(民)’의 지위를 제후의 위에 놓았다는 점이나, 제후가 인재를 중시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기본적으로 전국 시기 여러 제후국 사이의 격렬한 정치 투쟁과 종횡가(縱橫家)의 유세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으며, 모두 시대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문학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필이 유창하고 명확한 주제를 중심으로 한 인물의 언어와 행동을 통하여 생동감이 있다. 둘째, 책사의 언행에 대한 기술이 뛰어나고, 문장은 간결하고 생동적이며 특히 설리(說理)에 뛰어나다. 셋째, 《전국책》 가운데의 책사들의 유세와 변론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4. 내용
《전국책》의 초기 자료는 아주 미흡한 상태여서 북송의 증공(曾鞏)이 분실된 자료를 사대부가(士大夫家)에서 찾아 보정(補訂)하여 동주(東周), 서주(西周), 진(秦), 제(齊), 초(楚), 연(燕), 조(趙), 위(魏), 한(韓), 송(宋), 위(衛), 중산(中山)의 12개국 486장으로 정리하였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등 의 자료를 많이 이용하였기 때문에 《사기》의 내용과 동일한 것이 많다.
전국시대에는 이른바 칠웅(七雄)인 진(秦), 초(楚), 연(燕), 제(齊), 조(趙), 위(魏), 한(韓)을 중심으로 그 외에 작은 소제후국들이 많았다. 이들 국가들이 효율적인 통치, 군사, 외교를 통해 상대국에 승리하고 천하를 얻기 위해 노력한 심오한 이념과 책략들이 이 책에 들어 있다. 또한 섭정(聶政), 손빈(孫臏), 상앙(商鞅), 소진(蘇秦), 맹상군(孟嘗君), 맹자(孟子), 여불위(呂不韋), 형가(荊軻), 묵자(墨子), 자순(子順) 등 수많은 사상가와 당시에 유행한 존왕양이(尊王攘夷), 유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병가(兵家), 합종연횡(合從連橫)(종횡가(縱橫家), 합종가(合從家)), 원교근공(遠交近攻) 등 각종 사상과 전략이 등장한다.
초기 《전국책(戰國策)》의 내용이나 문장이 매우 난해하고 거칠고 누락된 부분이 많아 후에 여러 사람이 주를 달아 교주본(校注本)이 나왔다. 동한(東漢)의 고유(高誘), 남송의 요굉(姚宏)이 추가 주를 달아 《고씨주전국책(高氏注戰國策)》이 나왔다. 한편, 같은 시기 포표(鮑彪)가 고유(高誘)의 주를 없애고 스스로 주를 달아 《전국책주(戰國策注)》를 내놓았다. 후에 원대(元代) 오사도(吳師道)가 요굉본(姚宏本)과 포표본(鮑彪本)을 근거로 《전국책교주(戰國策校注)》를 내놓았다. 그러나 큰 주류는 요굉의 교주본(남송대, 33권, 원본에 가장 가까움)과 포표의 교주본(남송대, 10권, 1147년 완성)이 중심이다.
5. 가치와 영향
혹자는 권모술수가 너무 지나쳤다는 점에서 《전국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전국책》은 군웅들이 할거하던 전국시대를 반영한 것으로, 모든 제후국이 부국강병을 바라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권모술수는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동시에 서술상에서도 논점이 명확하고 그 방법도 주도면밀하며 논리적이다. 복잡한 역사 사건도 구성이 잘되어 있어 이야기의 전개가 매끄럽고 생동감 있게 설명되어 있다. 인물의 성격도 논증에 조리가 있어 쉽게 비교가 가능하다. 《사기(史記)》 이전에 있어 가장 예술성이 높은 역사 산문 저작으로, 후세의 《사기(史記)》, 《한서(漢書)》 등 전기문학(傳記文學) 및 사부(辭賦), 소설(小說), 희극(戱劇) 등에 모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1973년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 3호에서 다량의 백서(帛書)가 출토되었는데 이를 정리하여 《전국종횡가서(戰國縱橫家書)》라고 명명하였다. 모두 27장, 1만 1천여 자인데, 그 가운데 11장은 《전국책》이나 《사기》의 문체, 내용과 거의 비슷하지만, 그 외 약 60% 정도가 《전국책》이나 《사기》에 없는 내용이어서 전국사(戰國史)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6. 참고사항
(1)명언
• “《시경(詩經)》에 ‘1백 리를 가는 사람은 90리를 가서도 절반 왔다고 여기라.’라고 하였으니, 이는 마지막 마무리가 어려움을 말한 것입니다.[詩云 行百里者 半於九十 此言末路之難]” 〈진책(秦策)〉
• “깃털도 많이 실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쌓이면 수레바퀴의 굴대를 부러뜨리고, 사람들이 말이 많으면 쇠도 녹이는 법이다.[積羽沉舟 郡輕折軸 衆口鑠金]” 〈위책(魏策)〉
• “연(燕)나라는 동쪽으로 조선(朝鮮)과 요동(遼東)에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林胡)와 누번(樓煩)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이 있고, 남쪽으로는 호타(呼沱)와 역수(易水)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국토는 사방 2천여 리에 대갑(帶甲)은 수십만이며 병거 7백 승에 기마는 6천 필이 있으며 양식은 10년을 지탱할 만합니다.[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呼沱易水 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七百乘 騎六千疋 粟支十年]” 〈연책(燕策)〉
(2)색인어:유향(劉向) 전국책(戰國策) 전국종횡가서(戰國縱橫家書) 고씨주전국책(高氏注戰國策) 전국책주(戰國策注) 전국책교주(戰國策校注)
(3)참고문헌
• 新譯戰國策(溫興隆, 三民書局)
• 戰國策注釋(河建章, 中華書局)
• 戰國策詞典(王延棟, 南開大學出版社)
• 戰國策正解(橫田維孝, 河洛圖書出版社)
• 譯註 戰國策(임동석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서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