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오긍(吳兢)이 당(唐)나라 중종(中宗)에게 올린 책으로, 전 10권 4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주의 정치교과서로 정관(貞觀)의 치세로 칭송받던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이 그 신하들과 나눈 대화와 신하들의 주소(奏疏), 간언(諫言)을 담고 있다.
2. 저자
(1)성명:오긍(吳兢)(670~749)
(2)자(字)·별호(別號):미상
(3)출생지역:중국 변주(汴州)(개봉(開封)) 준의(浚儀)
(4)주요활동과 생애
오긍이 살았던 시기는 당(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에서 현종(玄宗) 시기에 해당한다. 특히 무주혁명(武周革命)으로 정권을 장악한 측천무후는 관롱집단(關隴集團)으로 구성된 조정의 귀족 세력이 제거하고, 과거(科擧) 관료와 자신의 측근들을 통한 정치를 행한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태종(太宗)의 정관(貞觀)의 치세를 그리워하였던 오긍은 이 책을 지어 측천의 뒤를 이은 중종(中宗)에게 바쳤다.
측천무후 시기 사관(史官)이 되어 국사(國史)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현종 때에도 30여 년간 관직 생활을 하였다. 《측천실록(則天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 《중종실록(中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는 기존의 양(梁), 진(陳), 제(齊), 수(隋)의 역사가 번잡하다고 여기고 양(梁), 제(齊), 주(周), 진(陳), 수(隋). 당(唐)의 역사를 짓기도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춘추(春秋)시대 진(晉)나라 사관으로 유명한 동호(董狐)와 《사통(史通)》의 저자 유지기(劉知幾)에 비견하였다. 또한 간관(諫官)으로도 유명하여 그가 한 간언의 일부가 《신구당서(新舊唐書)》 그의 열전에 남아있다.
(5)주요저작:미상
3. 서지사항
전 10권 40편으로 되어 있다. 40편의 주제 아래 그에 해당하는 내용을 편집한 것인데, 그 내용은 주로 당 태종과 위징(魏徵),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등 신료 45명과의 문답, 대신의 간쟁(諫爭)·주소(奏疏)·정책(政策) 등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태종의 정치 업적뿐만 아니라 만년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오긍은 《정관정요》를 두 차례에 걸쳐 지어서 첫 번째는 중종(中宗)에게 받쳤으며, 두 번째는 현종(玄宗)에게 받쳤는데, 이를 각기 초진본(初進本), 재진본(再進本)이라 한다. 후대 대표적 통행본은 원(元)나라 과직(戈直)의 《정관정요집론(貞觀政要集論)》으로, 당시 전해진 판본들이 서로 달라 이를 교감하고 주석을 달았으며, 또한 당시까지의 평론을 모았다.
일본에는 당(唐)나라 때 전해진 3종류의 초본(鈔本)(남가본(南家本), 관원본(菅原本) 등)이 전해지는데, 이를 보통 구본(舊本), 구초본(舊鈔本)이라 한다. 이는 과직의 본과는 편장(篇章) 등에 있어 차이가 있어 《정관정요》 연구에 많이 참고가 된다.
4. 내용
권1은 군주의 도리와 정치의 근본에 관한 것을, 권2는 어진 관리의 임용과 간언의 중요성을, 권3은 군신이 귀감으로 삼아야할 것과 관리의 임용‚ 봉건에 관한 내용을, 권4는 태자(太子)와 제왕(諸王)들이 경계해야 할 부분들을 논의하였다. 권5에서는 유교적 인의(仁義)‚ 충의(忠義)‚ 효우(孝友)‚ 성신(誠信) 및 공평함에 대한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6에서는 검약과 사양‚ 절제에 관한 것들을 언급하고 있다. 권7에서는 유학, 역사‚ 문학‚ 예학에 관한 것을 다루었으며, 권8에서는 치민(治民)과 관계있는 농사‚ 형법‚ 사면령‚ 부역‚ 세금 등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권9에서는 대외적인 문제에 속하는 정벌‚ 국경안정책 등을, 권10에서는 군주의 행행(行幸)이나 수렵 등에서의 문제‚ 그리고 재상(災祥) 등을 논하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후대 위정자의 정치교과서로 중국, 조선, 일본에 널리 유포되었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는 이 책에 대한 시와 글, 저서를 남겼으며,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도 이 책을 애독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시강(侍講)에 이 책을 읽었다. 윤포(尹誧)나 김인존(金仁存)은 이 책에 주석을 달기도 하였으며, 《고려사(高麗史)》나 《동국통감(東國通鑑)》에 실린 상소나 시강에 대한 기록에서 이 책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최승로(崔承老)도 오긍의 《정관정요》를 본받아 성종(成宗)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조선시대에도 이 책은 많이 읽었다. 세조(世祖) 때에는 《정관정요주해(貞觀政要註解)》를 편찬했으며, 역과(譯科) 몽학(蒙學)에서 전문서의 사자(寫字)에도 포함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등 여러 서적에서도 경연(經筵)의 교재로 사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 태종의 행적에 있어 《자치통감(資治通鑑)》과 《신구당서(新舊唐書)》의 역사보다 자세한 내용을 싣고 있는 부분이 많아 사료적으로도 가치를 가지고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창업은 쉬우나 수성은 어렵다.[創業易 守成難]” 〈군도편(君道篇)〉
• “온갖 죽을 고비에서 벗어나 한 목숨을 건져구나.[出萬死而遇一生]” 〈군도편(君道篇)〉
• “물이 넓으면 물고기가 노닌다.[水廣則魚游]” 〈인의편(仁義篇)〉
(2)색인어:오긍(吳兢), 정관(貞觀)의 치세,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 정치교과서
(3)참고문헌
• 貞觀政要集校(謝保成 集校, 中華書局)
• 貞觀政要集校(叶光大 等 譯註, 貴州人民出版社)
• 新譯貞觀政要(許道勳 譯注, 三民書局)
• 貞觀政要(吳兢(唐) 撰, 戈直(元) 集論, 宏業書局)
• 정관정요(현암사, 김원중)
• 貞觀政要の研究(原田種成, 吉川弘文館)
• 貞觀政要(原田種成, 新釋漢文大系, 明治書院)
• 貞觀政要集論(李忠九 외. 전통문화연구회)
【이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