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위원(魏源)은 아편전쟁 직후 임칙서(林則徐)의 부탁을 받아 이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3차례 증보되었으며, 60권본과 100권본이 주로 유통되었다. 위원은 해양에서 서양열강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는 해방론(海防論)을 주창하였는데, 이를 위해서 서양의 장기인 군함과 화기 제조술을 익히고 서양은 물론 전 세계의 정세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본서는 동양 근대화 초기에 서구세계에 대한 인문지리를 다룬 서적으로 중국, 한국, 일본의 근대화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 저자
(1)성명:위원(魏源)(1794~1857)
(2)자(字)·별호(別號):위원(魏源)의 원명은 원달(遠達)‚ 자는 묵심(黙深)‚ 묵생(黙生), 호는 한사(漢士)
(3)출생지역:중국 호남성(湖南省) 소양현(邵陽縣) 금담(金潭)
(4)주요활동과 생애
위원은 청(淸)나라 말기 왕조의 부패와 서구열강의 침입이라는 격동의 중국 근대 시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지배계층인 신사(紳士)로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해 과거시험에 전념한 보통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여러 명사(名士)들과 교유하고 관직 생활을 통해 점차 근대적 경세치용의 학문에 눈뜨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는 신강성 무슬림의 난, 아편전쟁, 태평천국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 지리와 역사에 큰 관심을 보였다.
위원은 어려서 독서를 즐겼으나 가세가 기울어 힘든 생활을 하였다. 15세에 현학생원(縣學生員)이 되었다. 이때 양명학(陽明學)과 사서(史書)를 좋아하였으며, 학문으로 이름나기 시작하였다. 21세에 북경의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가서 여러 학자들과 교류하게 되었는데, 특히 당시 경학대사(經學大師) 유봉록(劉逢祿)에게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배웠다. 이러한 금문학파(今文學派)의 영향은 후대 그의 양이(攘夷)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5세 대가집 규수와 혼인하고, 이후 직예제독(直隷提督) 양방(楊芳)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고금의 병법과 서북지리(西北地理)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32세에 강소포정사(江蘇布政使) 하장령(賀長齡)의 명의로 발간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의 편찬에 참여했는데, 이 글의 대부분이 위원의 글이라고 한다. 이때 도주(陶澍)의 휘하에서 해금(海禁)을 반대하고 해운(海運)에 대한 제안에 참여하였고 이후에도 해운을 주창하게 된다. 또한 당시 대학자인 포세신(包世臣)과 만나 산동성(山東省)의 빈곤한 경제상황을 논하기도 하였다. 그는 거듭 과거에 낙방하여 연납(捐納)을 통해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이후 내각중서(內閣中書)로 일하면서 황실 도서를 이용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성무기(聖武記)》 등을 저술하였다. 그의 경세사상(經世思想)은 이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37세에 임칙서(林則徐) 등과 함께 선남시사(宣南詩社)를 결성하였다. 이때 신강성(新疆省) 지역에서 무슬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양방이 토벌을 계획하였는데, 위원은 이때 신강성과 내몽골 지역의 지리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40년 아편전쟁이 일어나자 양절총독(兩浙總督) 유겸(裕謙)의 막하에서 참여하였으며, 임칙서가 취한 정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칙서는 전쟁에 책임지고 귀향갈 때 그를 만나 《사주지(四洲志)》를 주고 《해국도지》의 저술을 의뢰하였다. 위원은 과거에 합격해 지방의 지사직(知事職)을 맡다가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에 단결병(團結兵)을 조직하여 활약하기도 하였다.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정토교(淨土敎)에 전념하였다.
(5)주요저작:《공양고미(公羊古微)》, 《동자춘추발미(董子春秋發微)》, 《증자장구(曾子章句)》, 《춘추번로주(春秋繁露注)》, 《역용통의(易庸通義)》, 《효경집전(孝經集傳)》, 《자사자장구(子思子章句)》, 《소학고경(小學古經)》, 《시고미(詩古微)》, 《서고미(書古微)》, 《원사신편(元史新篇)》, 《몽아(蒙雅)》, 《고미당시문집(古微堂詩文集)》‚ 《성무기(聖武記)》‚ 《노자본의(老子本義)》 등
3. 서지사항
본서는 3단계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50권본(1842), 60권본(1847), 100권본(1852)으로 출판된 3가지 판본과 Y. J. Allen에 의해 증보된 120권본이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60권본이다. 50권본은 임칙서에게서 받은 《사주지》와 기존 자료 등을 바탕으로 저술된 것으로 보이며, 60권본에서 양포(洋砲) 부분이 증보되었다. 100권본에서는 전체적으로 내용을 증보하였고, 전쟁 자료와 외국 자료의 번역, 무기제조, 서양 화총(火銃), 세계 각국의 정세 등의 내용이 추가 되었다.
100권본의 편차를 살펴보면, 〈주해편(籌海編)〉에서는 해방론(海防論)을 다루었으며, 〈해국연혁각도(海國沿革各圖)〉에서는 세계전도와 각 대륙의 전도를 수록하였다. 〈동남양(東南洋)〉·〈서남양(西南洋)〉·〈소남양(小南洋)〉·〈대서양(大西洋)〉·〈북양(北洋)〉·〈외대서양(外大西梁)〉에서는 세계 각국을 오대양(五大洋)으로 구분하고 거기에 해당하는 나라를 다루었다. 〈국지총론(國地總論)〉과 〈주해총론(籌海總論)〉, 〈이정비채(夷情備采)〉가 있으며, 이슬람교와 천주교를 다룬 내용도 있다. 〈서양기예잡술(西洋器藝雜述)〉에서는 서양의 무기, 천문, 기예를 소개하였다.
4. 내용
〈주해편〉은 위원의 해방론을 다룬 부분인데, 의수(議守)‚ 의전(議戰)‚ 의관(議款) 등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의수는 해안과 변방 방어의 기본 원칙을‚ 의전은 서양 열강에 대한 대책을‚ 의관은 아편전쟁 이래 서양 열강과의 외교 사항을 정리하였다. 〈동남양〉에서는 동남아시아 지역과 남태평양의 군도(群島)와 오세아니아, 일본 등의 역사지리와 풍속을 다루었다. 〈서남양〉에서는 인도, 서아시아 국가를, 〈소남양〉에서는 이집트 등 아프리카를, 〈대서양〉에서는 서유럽을‚ 〈북양〉에서는 러시아를, 〈외대서양〉에서는 미국과 남미를 각기 서술하였다. 그 이하에서는 동서양의 종교‚ 역법(曆法)‚ 기년법(紀年法)을 표로 정리하였고‚ 〈국지총론〉에서는 서양인이 세계를 설명한 내용을 다루었으며‚ 〈주해총론〉에서는 당대 관료와 학자들이 변방과 해안의 방어에 관한 각종 대책과 장주(章奏)를 집록하였으며‚ 〈이정비채〉에서는 중국과 연관된 국제 상황을 정리하였다. 〈서양기예잡술〉에서는 서양의 전함과 병기 제조술, 전술, 측량술‚ 천문 이론‚ 각종 기예들을 소개하였다.
5. 가치와 영향
서양의 문물을 수용하여 그들에게 맞설 것을 주창한 그의 경세사상(經世思想)은 이후 중국 근대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그가 주장한 해방론과 근대적 조선소와 화기국(火器局)의 설립 등은 양무(洋務)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본서는 일본에 전해져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막부(幕府) 말기 전해진 이 책은 일본에서만 20여 종이 넘는 번역서가 출판되었으며, 일본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친 사쿠마 쇼잔(佐久間象山),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등이 이 책의 열렬한 독자였다.
한편 조선의 개화사상(開化思想)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오경석(吳慶錫)·박규수(朴珪壽)·유홍기(劉鴻基) 등 초기 개화사상가들이 소개한 이 책은 뒷날 개화파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개화파의 일원인 유길준(兪吉濬)의 저서인 《서유견문(西遊見聞)》 역시 본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최한기(崔漢綺) 〈지구전요(地球典要)〉, 구한말에 제작된 《여지전도(輿地全圖)》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6. 참고사항
(1)명언
• “이 책은 무엇 때문에 지었는가? ‘이적으로써 이적을 공격하기 위해 지은 것이니, 이적의 장기를 배워서 이로써 이적을 제어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是書何以作曰 爲以夷攻夷而作 爲師夷之長技 以制夷而作]” 〈서(序)〉
• “저들이 한 지방에만 얽매여 담장 밖에 하늘이 있고 몸 밖에 땅이 있는 줄을 모르는 것이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와 무너진 벽에 붙은 달팽이의 식견과 같으니 저절로 작은 소국이 될 뿐이다.[彼株守一隅 自劃封域 而不知墻外之有天 身外之有地 适如井蛙蝸國之識見 自小西部而已]” 〈권76〉
• “외양을 지키는 것은 해구를 지키는 것만 못하고, 해구를 지키는 것은 내하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守外洋不如守海口 守海口不如守内河]” 〈주해(籌海) 의수(義守)〉
(2)색인어:위원(魏源), 해국도지(海國圖志), 해방론(海防論), 아편전쟁(阿片戰爭), 임칙서(林則徐), 경세사상(經世思想), 양무(洋務)운동, 명치유신(明治維新), 개화사상(開化思想)
(3)참고문헌
• 魏源年譜(王家儉, 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
• 中國近代思想家魏源(王家儉, 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
• 魏源思想研究(楊愼之‧黄麗鏞 編, 湖南人民出版社)
• 魏源思想探析(李素平, 巴蜀書社)
• 魏源研究(李瑚, 朝華出版社)
• 魏源傳(李漢武, 湖南大學出版社)
• 海國圖志(李巨瀾, 中州古籍出版社)
• 近代日本語に影響を及ぼした《海國圖志》につきての言語研究(下河部行輝, 岡山大学文学部)
• 海国図志とその時代(北山康夫, 大阪學藝大學)
• 韓國開化史硏究(이광린, 일조각)
• 〈魏源과 海國圖志〉(최소자, 이화사학연구 20‧21)
【이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