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거업록(居業錄)》은 명(明)나라 중기의 대표적인 주자학자인 호거인(胡居仁)이 평소 강학(講學)하고 성찰한 내용을 조목 형식으로 기록한 어록(語錄)이다.2. 저자
(1) 성명:호거인(胡居仁)(1434~1484)3. 서지사항
현존 《거업록》은 호거인의 문인이자 사위인 여우(余祐)(1465~1528)가 호거인의 강론과 어록을 정리하고 편집한 것이다. 그 편찬년도는 미상이나 대체로 1504년 이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명대(明代)의 양렴(楊廉)이 이 책의 서문을 지었고, 양정용(楊廷用)이 발문(跋文)을 작성하여 책의 서두와 말미에 추가하여 편찬하였다. 현존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실린 판본은 여우의 편집본을 수록한 것이다. 이 밖에 《사고전서진본초집 四庫全書珍本初集》, 《정의당전서(正誼堂全書)》, 《총서집성초편 叢書集成初編》 등의 다른 판본들이 있다. 명(明)나라 학자들은 이 책을 설선(薛瑄)(1389~1464)의 《독서록(讀書錄)》과 나흠순(羅欽順)(1465~1547)의 《곤지기(困知記)》와 합본으로 간행하고 《삼선생어록(三先生語錄)》으로 불렀다.4. 내용
이 책은 자성록(自省錄)의 형식으로 저술된 것으로 분량은 8권, 총 1,199조목으로 구성되었다. 그의 문인이자 사위인 여우(余祐)가 쓴 〈거업록서(居業錄序)〉에 따르면 이 책의 제목인 ‘거업(居業)’은 《주역》 〈문언전(文言傳)〉의 “말을 닦아서 그 참됨을 세우는 것이 학업을 닦는 토대가 된다.[修辭立其誠 所以居業也]”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 세부 내용은 모두 12주제로 구분되는데, 도체(道體), 위학(爲學), 주경(主敬), 치지(致知), 역행(力行), 출처(出處), 치체(治體), 치법(治法), 교인(敎人), 경계(警戒), 변이단(辨異端), 권성현(勸聖賢)이다. 전체 내용은 주자학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체험하고 자각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이단을 비판하고 고금의 인물들을 평가하는 내용으로 종결된다. 그리고 사상적인 측면에서 보면 주희(朱熹)의 사상뿐만 아니라 북송(北宋)의 대표적인 유학자들인 정호(程顥), 정이(程頤), 소옹(邵雍) 등의 사상들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사고제요(四庫提要)》는 호거인의 이러한 학문적 경향을 주희(朱熹)와 육구연(陸九淵)의 학문을 절충한 결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 저서에서는 무엇보다도 주자학의 순정한 정통성을 선양하면서 불교를 철저하게 배척하고 있다.5. 가치와 영향
《거업록》이 널리 보급되게 된 계기는 장길(張吉)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을 편집한 목판본 《거업록요어(居業錄要語)》 4권을 간행하면서부터이다. 이 책에 실린 양정용(楊廷用)의 〈거업록발(居業錄跋)〉(1519)에 따르면, 이 책은 1507년에 간행되어 먼저 영남 지방에 보급되었고 이후 1519년 진백도(陳伯度)가 율수현(溧水縣)에 재직할 때 다시 판각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의 서두에는 1507년 장길의 서문인 〈거업록요어서(居業錄要語序)〉와 양렴(楊廉)의 서문인 〈호경재거업록서(胡敬齋居業錄序)〉에 대해 부기(付記)한 글이 함께 실려 있다. 그리고 말미에는 1519년 양정용이 지은 〈거업록발(居業錄跋)〉이 수록되어 있다. 이후 《사고전서(四庫全書)》에 《거업록》의 전체 내용이 정식으로 수록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조선에는 대체로 16세기 중기 전후로 이 책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조선 중기의 문인인 석주(石州) 권필(權韠)(1569-1612)이 《거업록》을 읽고 호거인의 삶을 높게 평가한 기록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후재(厚齋) 김간(金幹)(1646-1742)이 호거인을 설선과 함께 명(明)의 학자 가운데 가장 순정(純正)한 학문을 지닌 인물로 평가한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에 담긴 사상이 조선 중기의 성리학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6. 참고사항
(1) 명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