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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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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은 중국의 전통적 서적 분류에서 유서(類書)에 속하는, 일종의 도설백과사전(圖說百科事典)으로 청대(淸代) 강희(康熙) 40년(1701), 강희제의 셋째 왕자인 윤지(胤祉)를 모시고 있었던 진몽뢰(陳夢雷)(1650~1741)에 의하여 편찬되기 시작하여, 옹정(雍正) 6년(1728) 장정석(蔣廷錫)(1669~1732)에 의하여 완성을 보게 되었다. 《고금도서집성》은 《고금도서휘편(古今圖書彙編)》이라고도 불리며, 완정한 형태로 현존하는 중국의 유서 중 가장 규모가 큰 유서로서 그 규모의 방대함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체제, 풍부한 삽화로 중국 백과사전의 역사에서 그 존재 의의가 크다.

2. 편자

(1) 성명:진몽뢰(陳夢雷)(1650~1741)
(2) 자(字)·별호(別號):진몽뢰의 자(字)는 측진(則震), 성재(省齋), 호(號)는 천일도인(天一道人), 송학노인(松鶴老人)이다
(3) 출생지역:청대(淸代) 민현(閩縣)(현재 복건성(福建省)의 복주시(福州市)) 사람이다.
(4) 주요활동과 생애
진몽뢰는 강희 9년(1670) 진사에 급제하여 서길사(庶吉士)가 되었고, 강희 11년 한림편수(翰林編修)가 되었다. 진몽뢰가 강희 12년 고향에 돌아갔을 때 경정충(耿精忠)의 반란을 만나 반란군을 따르도록 압박받았으나 병을 구실로 참여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이러한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고 경정충의 반란에 연루된 혐의로 강희 19년 옥에 갇히게 되었다. 다음 해에 참수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데 감형받아 강희 21년에 심양(瀋陽)의 상양보(尙陽堡)(현재 요녕성(遼寧省) 개원현(開原縣))로 유배 갔다. 강희 37년(1698) 강희제로부터 사면받아 경사(京師)에 돌아와서 강희 38년부터 셋째 왕자 윤지를 모시게 되었다. 이에 진몽뢰는 윤지를 위하여 《고금도서집성》의 편찬을 계획하게 되어 강희 40년(1701)부터 초사(抄寫)를 시작하였으나, 인쇄 작업을 거의 완료해갈 무렵인 강희 61년(1722) 강희제가 세상을 떴다. 이어서 옹정제(雍正帝)가 제위에 오르자 진몽뢰는 윤지의 죄에 연루되어 《고금도서집성》의 간행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옹정 원년(1723) 1월 다시 흑룡강(黑龍江)으로 유배 가게 되었다. 이때 진몽뢰는 이미 72세이었으며, 건륭(乾隆) 6년(1741) 유배지에서 91세로 세상을 떴다. 《고금도서집성》의 간행은 옹정제가 호부상서(戶部尙書) 장정석(蔣廷錫)에게 마무리 작업의 책임을 맡겼다.
(5) 주요저작:《송학산방시집(松鶴山房詩集)》, 《송학산방문집(松鶴山房文集)》, 《한지서당집초(閑止書堂集鈔)》, 《주역천술(周易淺述)》, 《성경통지(盛京通志)》, 《승덕현지(承德縣志)》, 《해성현지(海城縣志)》

3. 서지사항

진몽뢰는 《고금도서집성》의 간행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휘편(彙編)》이라고 불렀는데 강희제로부터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이라는 서명을 하사받아 서명을 변경하였기에 현재도 이 책을 《고금도서휘편(古今圖書彙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책의 서문 등에서는 《고금도서집성》이라는 서명에 대해서 특별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은데, 필자의 견해로는 ‘옛날부터 현재까지의 그림과 책(문자)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도서(圖書)’는 크게 ‘서적’, ‘그림과 문자’라는 두 종류 의미로 사용되어 왔지만 《고금도서집성》에는 약 6400매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기에 제목 안의 ‘도서(圖書)’는 《고금도서집성》이 도설백과사전이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예로서 이미 명말에 장횡(章潢)의 《도서편(圖書編)》이라는 도설백과사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금도서집성》은 강희 40년(1701)부터 본격적으로 초사(抄寫)를 시작하여 약 5, 6년에 걸쳐 원고를 완성하고, 교정을 거쳐 동활자(銅活字)를 사용하여 64부 인쇄하였는데, 강희 61년(1722) 강희제가 세상을 뜨고 옹정제가 제위에 오르자 진몽뢰는 모시고 있던 윤지의 죄에 연루되어 《고금도서집성》의 인쇄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다시 유배 가게 되었다. 이때 《고금도서집성》은 전체 약 1만 권 중 96% 정도를 이미 인쇄하고 4% 정도를 남겨둔 상태이었는데, 옹정제는 호부상서(戶部尙書) 장정석(蔣廷錫)에게 《고금도서집성》의 마무리 작업을 맡겼다. 완성된 《고금도서집성》에는 옹정제의 서문이 있는데, 편찬자인 진몽뢰의 이름은 없고 다만 교정자로서 장정석의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다. 즉 옹정제는 《고금도서집성》 편찬의 공을 강희제에게 돌리고 윤지와 진몽뢰의 공은 지워버리고자 하였는데, 오늘날 학계에서는 《고금도서집성》의 편찬자로서 진몽뢰가 인정받고 있다.
《고금도서집성》은 그 분류방법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약 1만 권, 약 1억 6천만 자의 방대한 규모에 약 6400매의 풍부한 삽화가 들어 있어 완질로 현존하는 중국의 유서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집대성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 분류체계는 종으로는 휘편(彙編), 전(典), 부(部)라고 하는 자료 내용에 의거한 종속적인 3단계를 두고, 횡으로는 3단계 중 맨 아래 단계의 부(部)에 자료의 성격 및 장르에 의거하여 휘고(彙考), 총론(總論), 도(圖), 표(表), 열전(列傳), 예문(藝文), 선구(選句), 기사(紀事), 잡록(雜錄), 외편(外編)을 두어서 종횡이 교차하는 분류방법을 취하고 있다. 《고금도서집성》의 체례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것은 그 범례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는데, 《고금도서집성》의 범례에서는 분류 방법과 그 개별적인 항목들에 대하여 하나씩 설명하고 있다.
《고금도서집성》의 판본은 다수 존재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옹정 4년(1726) 동활자로 64부 인쇄한 초판본이 있고, 광서(光緖) 14년(1888) 도서집성관(圖書集成館)이 인쇄한 편연자본(扁鉛字本), 광서 20년(1894) 상해동문서국(上海同文書局)의 석판(石版) 영인본, 1934년 중화서국(中華書局)의 오프셋인쇄 축인본(縮印本), 1986년 중화서국과 파촉서사(巴蜀書社)가 연합하여 인쇄한 축인(縮印) 영인본, 1998년 초성전자기술공사(超星電子技術公司)의 시디롬(cd-rom)본이 나왔으며, 대만에서는 1964년 문성서점본(文星書店本), 1977년 정문서국본(鼎文書局本) 등이 나왔다. 이상의 판본 중 널리 유전되어 사회적 영향력이 큰 것은 중화서국의 오프셋인쇄 축인본과 초성전자기술공사의 시디롬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활자 초판본은 64부라는 한정된 부수로 인하여 민간에 널리 유전되지는 못하였다. 현재는 대만(臺灣)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 도서관 등이 소장하고 있는 완질본과 각종 잔결본을 합하여 대략 24부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규장각에 완질본이 1부 소장되어 있다.

4. 내용

《고금도서집성》은 자료 내용에 의거하여 6휘편(彙編), 32전(典), 6109부(部)라는 종속적인 3단계의 분류법을 취하고 있는데, 범례에서 6휘편과 32전의 각 내용에 대하여 하나씩 설명함으로써 독자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6휘편과 32전의 각각의 표제는 다음과 같다.

• 역상휘편(曆象彙編)(544권):건상(乾象), 세공(歲功), 역법(曆法), 서징(庶徵)
• 방여휘편(方輿彙編)(2144권):곤여(坤輿), 직방(職方), 산천(山川), 변예(邊裔)
• 명륜휘편(明倫彙編)(2604권):황극(皇極), 궁위(宮闈), 관상(官常), 가범(家範), 교의(交誼), 씨족(氏族), 인사(人事), 규원(閨媛)
• 박물휘편(博物彙編)(1666권):예술(藝術), 신이(神異), 금충(禽蟲), 초목(草木)
• 이학휘편(理學彙編)(1220권):경적(經籍), 학행(學行), 문학(文學). 자학(字學)
• 경제휘편(經濟彙編)(1832권):선거(選擧), 전형(銓衡), 식화(食貨), 예의(禮儀), 악률(樂律), 융정(戎政), 상형(祥刑), 고공(考工)

《고금도서집성》은 범례에서 기존 유서의 체제를 따라서 천(天), 지(地), 인(人)의 순서를 따랐다는 것을 표방하고 있는데, 즉 역상휘편, 방여휘편, 명륜휘편이 각각 천, 지, 인에 해당된다. 역상(曆象)은 천문(天文), 시서(時序), 역법(曆法) 등에 관련된 것이고, 방여(方輿)는 주로 지리(地理)에, 명륜(明倫)은 봉건 윤리 사상과 인체 등에 관련된 것이다. 다음으로 박물(博物)은 동물, 식물, 기예(技藝), 신괴(神怪)한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학(理學)은 경학(經學) 등 학술에, 경제(經濟)는 주로 나라를 다스리는 제도에 관련된 것으로서, 전체적으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관찬(官撰)인 만큼 봉건 윤리, 나라를 다스리는 제도, 경학 등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고금도서집성》은 완정한 형태로 현존하는 중국의 유서(類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유서 발전사상 성숙기에 이루어졌기에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체제를 갖추었고, 또한 풍부한 삽화가 들어 있어 중국 유서의 역사에서 그 존재 의의가 크다. 즉 《고금도서집성》은 당시까지 축적된 지식과 문화를 집대성하여 나타내주고 있으며, 특히 자료 보존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고금도서집성》은 중국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중국을 대표하는 백과사전으로 인정받아 영국의 과학문명사가 조세프 니담도 그의 저작에서 매번 《고금도서집성》을 인용하고 이 책의 자료를 활용할 정도이다. 또한 《고금도서집성》은 조선시대 정조 초기에 1부가 수입되어 규장각(개유와(皆有窩))에 소장된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완질로서 남아 있는데, 이 책이 당시 널리 읽혀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에도 인용되고. 정약용 등이 활용한 기록도 남아 있어서, 당시 정조와 실학자를 중심으로 한 일부 지식인들에게 청나라의 문화 정리 성과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자연계의 모든 현상에서 천지(天地)보다 더 큰 것은 없으므로 휘편(彙編)의 처음에 역상(曆象)을 두고 이어서 방여(方輿)를 두었다. 건곤(乾坤)의 위치가 정해지면 그 사이에는 사람이 오니 명륜(明倫)을 그 다음에 두었다. 삼재(三才)가 이미 성립하면 만물이 번식하여 자라나니 그 다음에 박물(博物)을 두었다.[法象莫大乎天地 故彙編首曆象而繼方輿 乾坤定而成位 其間者人也 故明倫次之 三才旣立 庶類繁生 故次博物]“〈범례(凡例)〉
• “이 책에는 6개의 편(編)이 있고 32전(典), 6천여 부(部)가 있으며 1만 권으로 되어 있다. 1부가 수백이나 수십 권으로 된 것도 있으며 1권에 10여 부가 들어있는 것도 있다. 각각의 부에는 휘고(彙考), 총론(總論), 도(圖), 표(表), 열전(列傳), 예문(藝文), 선구(選句), 기사(紀事), 잡록(雜錄), 외편(外編)을 두었으나 해당 사항이 없을 때는 비워두었다.[是書爲編有六 爲典三十有二 爲部六千有餘 爲卷一萬 有一部而數百數十卷者 有一卷十餘部者 而每部中有彙考 有總論 有圖 有表 有列傳 有藝文 有選句 有紀事 有雜錄 有外編 無者闕之]” 〈범례(凡例)〉
• “옛사람들은 왼쪽에 지도를 두고 오른쪽에 역사서를 두었으니, 국가의 영토나 산천(山川)을 연구하는 데에는 지도가 필수적이다. 짐승들과 초목, 인간생활에 사용하는 기물들의 형태도 옛날 서적에 있는 것은 역시 수록하여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혹 하나의 물건에 전해오는 그림이 여럿 있어서 서로 다르면, 또한 나란히 함께 수록하여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古人左圖右史 如疆域山川 圖必不可缺也 卽禽獸草木器用之形體 往籍所有亦可存而備覽觀 或一物而諸家之圖所傳互異 亦竝列之以備參考]” 〈범례(凡例)〉
(2) 색인어: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진몽뢰(陳夢雷), 윤지(允祉), 蔣廷錫장정석, 도설백과사전, 삽화, 문자
(3) 참고문헌
• 《古今圖書集成》(陳夢雷, 臺北鼎文書局, 1977)
• 《古今圖書集成圖集》(《古今圖書集成圖集》編委會, 齊魯書社, 2006)
• 《《古今圖書集成》硏究》(裵芹, 圖書館出版社, 2001)
• 〈강희(康熙) 말년의 학술과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리우샹춘, 《韓國文化》 제57집, 2012)
• 〈《古今圖書集成》과 韓ㆍ中 醫學交流〉(安相佑, 《한국한의학연구원 논문집》 8(2), 2002)
• 〈정조시대 동아시아 인식의 새로운 경향〉(배우성, 《한국학보》 25권1호, 1999)
• 〈도설백과사전으로서의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청대 전기의 문자정책과 삽화〉(고인덕, 《외국학연구》 27, 2014)
※ 위 고인덕의 논문은 p350의 아래로부터 제5행의 “~결과적으로” 뒤에 다음과 같은 내용과 소제목이 들어가야 하는데 편집진의 실수로 누락되었다. 논문 참고 시 참조.
• 누락된 부분:“『고금도서집성』은 삽화에서 당시까지의 어느 유서보다 서학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다음 줄에 소제목 “2. 산천(山川) 삽화”가 삽입되어야 한다.

【고인덕】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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