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공손룡자(公孫龍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중·후기의 인물인 공손룡이 지었다. 현재 6장이 남아 있으며, 그 중 1장인 〈적부(跡府)〉는 뒤에 덧붙여진 것 같다. 공손룡은 혜시(惠施)와 더불어서 ‘명가(名家)’ 학파를 대표하는 사상가이다. 혜시의 저서는 남아 있지 않는 반면, 공손룡은 이 책이 남아 있다. 이 책은 공손룡의 사상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으나, 난해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손에 꼽을 정도이다.
2. 저자
(1) 성명:공손룡(公孫龍)(대략 BC. 320~250)
(2) 자(字)·별호(別號):자는 자병(子秉)이라는 설이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3) 출생지역:전국시대 중·후기의 조(趙)나라
(4) 주요활동과 생애
공손룡(公孫龍)은 전국시대 중·후기의 조(趙)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평원군(平原君)의 문객이 되었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천하(天下)〉편,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 인용된 유향의 주석, 《열자(列子)》 〈중니(仲尼)〉 편 등에 공손룡에 대한 언급이 잠깐씩 나온다. 이 언급 가운데 중요한 것은 공손룡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는 비판이다. “같고 다름을 합치고, 딱딱한과 하얀을 분리시킨다.[合同異 離堅白] 그렇지 않음을 그렇다 하고, 불가한 것을 가하다고 한다.[然不然 可不可]”
(5) 주요저작
현재 남아 있는 저작은 『공손룡자』 뿐이다. 이 책의 진위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는 대체로 공손룡의 작품으로 인정한다. 《장자》 〈천하〉 편에는 논증가(辯者)들의 명제들이 21개 나온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공손룡의 사상을 담은 것으로 추론된다.
3. 서지사항
《공손룡자》는 서한(西漢) 시대의 《한서(漢書)》 〈예문지〉에는 14편이라 했고, 당(唐)나라 때 지은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도가(道家)의 책에 《수백론(守白論)》 3권으로 분류했다. 북송(北宋) 시대에 이르러서 8편이 유실되고 6편만 남았다. 이것이 명나라 때의 《도장(道藏)》(도교의 대장경)에 들어가 보존되었다.
송대(宋代)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진위를 의심했다. 위진(魏晉) 시대의 사람이 조각난 자료들을 모아서 편찬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책의 내용이 역사서에 기록된 공손룡의 사상과 거의 같기 때문에, 원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공손룡 사상의 거의 전부를 포괄하기 때문에 유실된 분량도 적다고 볼 수 있다.
1장 〈적부(跡府)(흔적의 창고)〉는 공손룡과 공천(孔穿)의 대화를 수록하고 있다. 뒷사람이 덧붙인 것 같다. 나머지 5장은 공손룡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백마론〉·〈통변론〉·〈견백론〉은 공손룡과 상대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지물론〉과 〈명실론〉은 짧은 논문이다. 그러나 〈지물론〉 역시 내용상 대화체라 할 수 있다.
《공손룡자》에 대한 전통 시대의 주석은 북송 시대의 사희심(謝希深)의 것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는 공손룡의 사상을 거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주석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나라 때 고증학자들도 이 책의 난해성 때문에 별로 도전하지 않았다. 진풍(陳澧)의 《공손룡자주(公孫龍子注)》가 있다. 현대에 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도전했으나, 아직 정확하게 그 의미와 논리, 철학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4. 내용
명가(名家)는 이름·말을 다루는 학파이다. 그래서 논리학파, 궤변론자로 일컬어진다. 이 책은 극단적인 경험론을 주장한다. “하얀 말은 말이 아니다.[白馬非馬]” 같은 명제는 일반인이 보기에 궤변처럼 보이나, 공손룡의 철학 안에서는 논리적으로 증명된다. 궤변이 아니다.
〈견백론(堅白論)〉이 공손룡의 철학인 극단적 경험론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돌 자체’(실체)에는 ‘딱딱함(堅)’과 ‘하얌(白)’이라는 속성이 붙어 있다. ‘딱딱한’·‘하얀’이라는 속성은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다. 따라서 존재한다. 반면 ‘돌 자체’는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 ‘딱딱함’과 ‘하얌’을 붙잡는 ‘돌 자체’가 없기 때문에, 딱딱함과 하얌은 분리된다.[離堅白]. 공손룡은 경험론의 근본 주장인 “지각된 것만 존재한다.”(esse est percipi)에 철저하다. 속성은 지각되나, 실체는 지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모든 사물의 실체를 부정한다.
〈백마론(白馬論)〉은 “하얀 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공손룡을 대표하는 명제이며, 공손룡을 궤변론자로 낙인찍는 계기가 된다. 왜 하얀 말은 말이 아닌가? ‘하얀 말’이란 색깔이라는 속성이다. 반면 ‘말’은 말의 모양과 형체라는 속성이다. 색깔과 모양은 다르다. 말의 하얀 색은 말의 모양과는 다르다. 이는 〈견백론〉에서 말한 ‘지각됨=존재함’의 논의의 연장선이다. 지각된 속성들은 서로 다르다.
〈통변론(通變論)〉은 《공손룡자》에서 가장 길면서, 또한 가장 난해하다. 좌우, 짐승, 색깔에 대한 문답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지각됨=존재함’이라는 원칙에 따라 실체를 부정하고 속성만 존재한다고 한다. 실체 없는 속성들의 분류 방법으로 〈통변론〉을 모색한다. 좌우를 포괄하는 방법으로 짐승과 색깔의 분류를 하려 한다. 그의 논증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요약하자면, 그는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의 기초를 놓으려 한다. 음양은 예컨대 ‘하늘-땅, 남자-여자, 파리-모기, 도깨비-귀신’과 같이 분야를 넘나들며 분류하는 체계이다. 왜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가? 공손룡은 실체를 부정하고, 속성만 인정한다. 따라서 모든 분야의 속성들은 일률적으로 음양이나 오행과 같은 도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것이 공손룡 나름의 ‘변화에 통달[通變]’하는 방법이다.
〈지물론(指物論)〉은 ‘가리킴’과 ‘사물’을 논한다. 사물은 지각 대상이다. 사물을 지각하면 내 마음에 그 사물을 ‘가리킴’, 즉 인식 내용이 생긴다. 그는 사물의 실체를 부정하고 속성만 인정한다. 이 때문에 사물의 속성들을 내 마음의 ‘인식 내용(指, 가리킴)’으로 환원시킨다. 이 역시 철저한 경험론이다.
〈명실론(名實論)〉은 이름[名]과 지시 대상[實]을 논한다. 이름의 지시 대상은 하늘과 땅 사이의 물질적 사물로, 특정한 자리(시공간)에 있는 것이다. 즉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개체이다. 그는 공자가 말한 ‘임금다움[君君]’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그것은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다. 오직 지각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특정한 개체로서 임금이다. 따라서 ‘임금’이라는 말이 지칭하는 것은 특정 개체이지, ‘임금다움’ 같은 것은 아니다. 이는 유명론(唯名論)이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에 담긴 공손룡의 사상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중국 역사상 가장 순수하고 논리적인 학문 이론이었다. 둘째, 중국 역사상 거의 유일한 경험론 이론이다. 중국인은 좁은 실리주의에 빠져 순수 학문을 배척했으며, 화엄이나 성리학과 같은 형이상학에 몰두했다. 따라서 공손룡의 사상을 멸시했다.
이렇게 멸시한 시초에는 장자가 있다.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의 회의주의(懷疑主義)·상대주의(相對主義)의 기반이 되는 것이 공손룡의 철저한 경험론이다. 〈소요유(逍遙遊)〉의 붕새[鵬]가 날아감은 혜시의 사상이 기반이 된다. 그러나 그는 혜시와 공손룡을 “사람의 입은 이겼으나, 마음은 잡지 못한 궤변”으로 낙인찍고 조롱했다.
사람들은 논리와 깊이로 무장한 혜시와 공손룡의 명제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을 쉽사리 틀린 것, 거짓으로 단정한다. 그래서 역사 내내 공손룡은 궤변론자로 비난받았다. 이는 물론 《공손룡자》가 너무 어렵게 서술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가 사상은 이런 비난과 조롱 속에서 무시되고 묻혀졌다. 그 결과 중국의 학술은 순수 학문으로 발전하지 못 하고, 서양의 근대 과학에 압도되었다.
공손룡의 사상은 난해한데다가, 궤변으로 조롱을 당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다.
6. 참고사항
(1) 명언
• “하얀 말은 말이 아니다.[白馬非馬]” 〈백마론〉
• “(돌멩이의) 딱딱함과 하얀은 분리다.[離堅白]” 〈견백론〉
• “불빛은 보지 못 한다. 눈도 보지 못 한다. 정신도 보지 못 한다. 〈따라서 사람은 보지 못 한다.〉[火不見……目不見……神不見)” 〈견백론〉
• “사물은 가리켜짐 아닌 것이 없다.[物莫非指]” 〈지물론〉
(2) 색인어:공손룡(公孫龍), 명가(名家), 혜시(惠施), 백마비마(白馬非馬), 경험론(經驗論).
(3) 참고문헌
• 《혜시와 공손룡의 명가 철학》 (손영식, UUP, 2005)
• 〈《공손룡자》 〈지물론〉 해석-지(指)와 속성 보편주의〉(손영식, 《철학논집》, 2011)
• 〈《공손룡자》 〈명실론〉 연구-속성 지각과 개별자 지시〉(손영식, 《철학논집》, 2012)
• 〈《공손룡자》 〈견백론〉 연구-실체의 부정과 속성 보편주의〉(손영식, 《동방학》, 2015)
• 〈《공손룡자》 〈백마론〉 연구-실체와 속성, 존재와 인식〉(손영식, 《철학논집》, 2015)
【손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