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관자(管子)》는 ‘관중(管仲)이 지은 책’이라는 뜻이나, 실제로는 전국(戰國) 시대에 제(齊)나라 직하(稷下) 학궁(學宮)에 모인 학자들의 저작을 전한(前漢) 시대에 현재의 모양으로 편찬된 것으로 여겨진다. 관중이 직접 짓지는 않았지만, 관중과 그의 경륜을 따르던 사람들의 저작이라 할 수 있다. 관중은 제나라의 영웅이라 살아생전에도 추종자가 많았으며, 전국 시대에도 관자 학파가 있었다. 여러 사람의 저작이라 24권 86편(76편 남음)의 방대한 내용이다.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다양한 사상과 많은 정책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법가(法家)를 주조로 하되, 유가(儒家)·도가(道家)·병가(兵家)·음양가(陰陽家) 등의 사상을 고루 담고 있다. 그래서 잡가(雜家)로 분류한다.
2. 저자
(1) 성명:관중(管仲)(BC. 723?~645)
(2) 자(字)·별호(別號):성은 관(管), 이름은 이오(夷吾), 자는 중(仲)이다. 제 환공(齊桓公)은 그를 높여서 ‘중부(仲父)’라 불렀다.
(3) 출생지역:
(4) 주요활동과 생애
관중은 제나라 희공(僖公)의 아들인 공자 규(糾)를 모셨다. 희공이 죽자 장자인 제아(諸兒)가 즉위해서 양공(襄公)이 되었다. 공자(公子) 규(糾)와 소백(小白)은 그 동생이었다. 양공 12년에 제나라에 내란이 일어나 양공이 피살되었다. 규와 소백은 서로 먼저 제나라에 가서 군주가 되려 했다. 규를 모셨던 관중을 소백에게 화살을 쏘아서 죽이려 했지만, 소백이 먼저 가서 즉위하니 환공(桓公)이다. 소백을 모셨던 절친 포숙아(鲍叔牙)의 강한 추천으로 관중은 환공의 재상이 되었다. 그는 부국강병을 이루어, 환공을 패자(覇者)로 만들었다. 패자는 천자를 대신해서 제후에게 호령했다. 제 환공은 춘추 5패 가운데 으뜸이었고, 이때가 제나라의 최전성기였다. 관중은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상이었다.
(5) 주요저작:
『관자』는 그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저작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나라의 직하(稷下)의 학궁(學宮)에 모인 학자들의 집합적 저작으로 추정된다. 제나라에는 이런 관중의 업적을 기려서 연구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사상을 담은 것이 《관자》이다.
3. 서지사항
한비자(韓非子)가 “당시 백성들이 다스림을 말하면서 상앙(商鞅)과 관자(管子)를 집에 가지고 있다.”(《한비자》 〈오두(五蠹)〉)고 한 것을 보면 이 시기에 이미 《관자》라는 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漢)나라 때에도 가의(賈誼), 상홍양(桑弘羊) 조조(曹操) 등 유명한 정치인들이 읽었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관자》의 〈목민(牧民)〉 〈경중(輕重)〉 등의 편을 읽었다고 한다.(《사기》 〈관안열전(管晏列傳)〉)
《한서》 〈예문지(藝文志)〉는 이 책을 도가로 분류하고,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와 청나라의 《사고전서(四庫全書)》는 법가에 넣었다. 도가로 분류한 이유는 《관자》 대부분의 편에 노자(老子)의 말이나 사상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전한(前漢)의 유향(劉向)은 당시 유포되었던 관자 문헌 564편을 모아서 중복을 삭제하고 86편으로 편집했다. 그리고 내용상 〈경언(經言)〉·〈외언(外言)〉·〈내언(內言)〉·〈단어(短語)〉·〈구언(區言)〉·〈잡편(雜篇)〉·〈관자해(管子解)〉·〈경중(輕重)〉의 여덟 부분으로 구분했다. 〈관자해〉는 〈경언〉의 해석이다. 경과 내, 외, 잡의 분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경중〉편은 전한 시대에 성립된 것이라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
86편 가운데 수나라까지 10편이 사라져서, 현재는 76편이 전해진다. 가장 오래된 목판본은 송(宋)나라 때의 양침(楊忱)의 판본이다.
문장이나 사상이 평이하고, 유가와 도가가 독존하던 분위기라 전통적으로 《관자》에 대한 주석은 드물었다. 청나라 말기의 대망(戴望)의 《관자교정(管子校正)》이 있다. 현대에 와서 중국에서는 곽말약(郭沫若) 등 많은 주석과 번역서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최근에서야 장승구 등에 의한 완역본이 나왔다.
4. 내용
《관자》의 중심 사상은 실용주의적 부국강병론이다. 《관자》는 국가와 사회를 ‘질서[治]와 부강함[富强]’이라는 두 측면으로 본다. 질서를 위해서 군주의 권력과 법이 중요하다. 부강함을 위해서 경제와 병법을 강조한다. 국가는 군자가 인격에 따라 다스리는 인치(人治)로 가서는 안 된다. 설정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공정한 법과 확실한 상벌 체계를 구축하여, 시스템으로 국가 조직을 이끌어가야 한다.
관자가 주장한 국가는 맹자(孟子)와 같은 유가적 이상주의자의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도 아니고, 한비자와 같은 냉혹한 현실주의자들의 절대 군주의 무자비한 통치도 아니다. 명분에 사로잡히지 않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방안을 모색한다. 《관자》는 중국적인 실리주의의 한 근원이 된다.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랑과 정책이 필요하다. 《관자》는 국가의 기초를 위해서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지만, 유가적 윤리 도덕도 인정한다. 공정한 통치를 위해서 군주와 관리는 비운 마음[虛心]의 고요함이 필요하다. 이는 도가의 심법(心法)이다. 또한 피할 수 없는 전쟁에 대비해서 병가(兵家)의 사상도 포함한다. 부유한 나라를 위해서는 경제를 다룬다.
이 결과 관자는 법가·도가·유가·병가·음양가·농가(農家) 등의 사상을 고루 담은 잡가(雜家)적 경향을 가진다. 잡가란 뒤섞었다는 말로, ‘종합’이라는 뜻이다.
백성들은 본성적으로 편안하고 부유한 삶을 바라고 가난과 위험, 죽음을 두려워한다. 국가는 민심을 사로잡아야 한다. 〈목민(牧民)〉편이 그 방법을 제시한다. ① 국가 체제와 흥망에 대해서는 〈승마(乘馬)〉·〈권수(權修)〉·〈입정(立政)〉·〈패언(覇言)〉 등이 있다. ② 훌륭한 정치를 위해서는 〈오보(五輔)〉·〈칠법(七法)〉·〈치국(治國)〉 등이 있다. ③ 법률에 대해서는 〈법금(法禁)〉·〈법법(法法)〉 등이 있다. ④ 군사에 대해서는 〈칠법(七法)〉·〈병법(兵法)〉 등이 있다. ⑤ 경제에 관해서 〈경중(輕重)〉 7편 및 〈치미(侈靡)〉 등이 있다. ⑥ 허정(虛靜)·무위(無爲)의 마음 수양과 도(道)에 대해서는 〈심술(心術)〉 상·하, 〈백심(白心)〉·〈내업(内業)〉 등이 있다. 《관자》는 국가 통치를 위한 종합 백과이다.
5. 가치와 영향
《관자》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국가 이론을 내세운다. 따라서 후세에 큰 영향이 있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별 반향이 없었다. 만약 제나라가 통일했다면, 《관자》 사상이 후세에 주류를 이루었을 것이다. 진나라가 법가 사상으로 통일하고, 한나라 이후 유가와 도가가 사상계를 주도하면서 《관자》는 지식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송나라 때 왕안석은 경제 제도 개혁을 중심으로 한 신법(新法)을 펼친다. 그는 개혁의 근거를 《주례(周禮)》에서 찾는다. 이처럼 중국에서 제도 개혁으로 가는 사람들이 《관자》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 《관자》가 방대하지만, 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내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국가 철학은 유교였다. 따라서 《관자》에 관심을 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실학자인 정약용의 저서인 《목민심서》의 ‘목민(牧民)’은 《관자》 첫 번째 편의 이름이다.
현대 중국에 와서, 등소평의 개혁 개방은 《관자》의 실용주의적 부국강병론과 맞아 떨어진다. “검정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모택동 치세에서 맹위를 떨친 이념 과잉에 대한 반발이다. 진시황의 법가적 강압 통치에 대한 대안이 한대(漢代)의 도가와 유가 철학이었다. 반면 현대 중국은 등소평의 실용주의가 대안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고 현재 중국에서 《관자》가 사상의 주류로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창고가 가득차면 예의범절을 알고, 옷과 음식이 넉넉하면 영광과 치욕을 안다.[倉廩實 則知禮節; 衣食足 則知榮辱.]” (1. 〈목민(牧民)〉)
•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만 한 것이 없고, 십 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만 한 것이 없고, 평생의 계획은 사람을 심는 것만 한 것이 없다.[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3. 〈권수(權修)〉)
• “하늘의 이치는 끝에 다다르면 되돌아오고, 왕성하면 쇠퇴한다.[天道之數, 至則反, 盛則衰.]” (15. 〈중령(重令)〉)
• “도는 멀리 있지 않지만 끝까지 다하기 어려우며, 사람과 더불어 함께 머물러 있지만, 터득하기 어렵다.[道不遠 而難極也. 與人並處 而難得也.]” (36. 〈심술(心術)〉 상)
• “몸에서 마음은 군주의 자리이다. 아홉 구멍(감각 기관)의 직분은 관직의 나뉨과 같다. 마음이 그 도에 처하면 아홉 구멍이 이치를 따르지만, 욕심이 (마음을) 가득 채우면, 눈이 색깔을 보지 못 하고, 귀가 소리를 듣지 못 한다. 말을 대신하여 달리지 말고, 말이 자신의 힘을 다하게 하라. 새를 대신하여 날지 말고, 새가 날개짓을 다하게 하라.[心之在體, 君之位也. 九竅之有職, 官之分也. 心處其道, 九竅循理; 嗜欲充益, 目不見色, 耳不聞聲. ··· 毋代馬走, 使盡其力; 毋代鳥飛, 使獘其羽翼.]” (36. 〈심술(心術)〉 상)
• “도는 한 사람이 써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 했다. 천하가 그것을 행해도 부족하다는 것을 듣지 못 했다. 이것을 도라고 한다. 작게 취하면 복을 작게 얻는다. 크게 취하면 복을 크게 얻는다. 그것을 다 행하면 천하가 복종하나, 조금도 취하지 않으면 백성이 배반한다.[道者, 一人用之, 不聞有餘. 天下行之, 不聞不足, 此謂道矣. 小取焉 則小得福, 大取焉 則大得福. 盡行之, 而天下服; 殊無取焉, 則民反其身, 不免於賊.]” (38. 〈백심(白心)〉)
(2) 색인어:관중(管仲), 법가, 도가, 잡가(雜家), 직하(稷下) 학파
(3) 참고문헌
• 관자(김필수·고대혁·장승구·신창호 譯, 소나무)
• 관자(신동준 譯, 인간사랑)
• 〈《관자(管子)》의 철학사상 연구〉(장승구, 《한국철학논집》, 2015)
• 〈《관자(管子)》의 경제사상에 대한 연구〉(조원일, 《동서철학연구》, 2017)
• 〈경세가 관중(管仲)과 텍스트 《관자》 사이〉(윤대식, 《정치사상연구》, 2016)
• 〈《관자(管子)》의 도론체계 연구에 대한 종합적 서술〉(양칭, 《동서사상》, 2010)
【손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