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구장산술(九章算術)》은 선진(先秦)시대의 수학적 지식을 집대성한 산학서(算學書)이다. 저자는 미상이며, 산가지[算籌]를 계산도구로 사용하는 주산서(籌算書)이다. 현전하는 《구장산술》은 삼국시대(三國時代) 위(魏)나라의 유휘(劉徽) 등이 주(注)를 덧붙인 주석본으로 전9장에 걸쳐 246문을 수록하였다. 당대(唐代)에 확립된 ‘십부산경(十部算經)’의 수권(首卷)이다. 명대(明代)에 이르면 실질적으로 실전하나, 청대(淸代)에 대진(戴震)에 의해 영락대전에서 집록한 대진교감본(戴震校勘本)과 남송(南宋)의 포한지(鮑澣之) 간본(刊本)(잔본(殘本), 청대 재발견)의 두 계통을 중심으로 복원되었다.
2. 저자:미상(未詳)
3. 서지사항
서명은 《주례(周禮)》의 ‘구수(九數)’(지관사도(地官司徒) 보씨(保氏))에서 유래한다. 후한(後漢) 정현(鄭玄)의 주(注)에 인용된 정중(鄭衆)의 설에 따르면 주(周)의 제도 육예(六藝)의 하나인 구수는 ① 방전(方田), ② 속미(粟米), ③ 차분(差分), ④ 소광(少廣), ⑤ 상공(商功), ⑥ 균수(均輸), ⑦ 방정(方程), ⑧ 영부족(嬴不足), ⑨ 방요(旁要) 등 아홉 가지 계산법을 의미한다. 이를 현전하는 구장산술의 편목과 비교하면 방정과 영부족의 순서가 뒤바뀌었고, 마지막 방요가 한법(漢法) 삼술(三術)의 하나인 ‘구고(句股)’로 대체되었을 뿐으로, 적어도 후한대에는 육예 구수의 고법(古法)으로서 《구장산술》을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장산술》은 황제구장산술, 구장산경 등의 이명(異名)이 있다. 황제(黃帝) 혹은 주공(周公)의 저술이라 전하지만 “황제가 산술을 지었다.[黃帝作數]”, “주공(周公)이 제례(制禮)하여 구수(九數)가 있다.[周公制禮而有九數]”는 전승에 의거한 가탁에 지나지 않는다. 《구장산술》은 선진 이래의 중국 고대 산학을 집대성한 산서(算書)로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 등에 의하면 ‘구장(九章)’이라는 이름을 갖는 다양한 이본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현전하는 《구장산술》은 전한(前漢)의 장창(張蒼), 경수창(耿壽昌) 등에 의해 편찬된 본문에,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유휘(劉徽)가 가주(加注)하고(263년), 당(唐)나라의 이순풍(李淳風) 등이 주석(註釋)을 부가한 합본 형식으로, 적어도 당대(唐代)에는 여러 이본은 산일되고 현재의 모습과 유사한 구장산술만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의 산학교육제도 정비의 일환으로 《구장산술》이 《주비산경(周髀算經)》·《해도산경(海島算經)》·《손자산경(孫子算經)》·《오조산경(五曹算經)》·《장구건산경(張丘建算經)》·《하후양산경(夏侯陽算經)》·《철술(綴術)》·《집고산경(緝古算經)》·《오경산경(五經算經)》과 더불어 ‘십부산경(十部算經)’이란 이름의 산학 교과서로서 국가의 편찬을 거쳤기 때문이다.
‘십부산경’ 중 《철술》은 일찍이 실전되었고, 북송 원풍(元豊) 7년(1084)에 이를 대신하여 서악(徐岳)의 《수술기유(數術記遺)》를 포함시킨 ‘산경십서(算經十書)’가 중간(重刊)되었다. 남송 이후 명대에 이르면 《구장산술》은 실질적으로 실전되었다. 청대에 이르러 건가(乾嘉) 시대의 고증학자 대진(戴震)이 사고전서 편찬에 즈음하여 영락대전(永樂大全)에서 《구장산술》을 발견하고, 집록(輯錄)하여 교감(校勘)을 행한 후, 공계함(孔繼涵)이 《미파사총서(微波榭叢書)》본 ‘산경십서’에 이를 편입, 간행함으로써 복원되었다. 한편 남송본 잔본(전(前)5권, 1213 포한지각본)이 청대에 발견되었는데, 현재 상해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전하는 최고(最古)의 산학서 간본(刊本)의 하나이다.
전체 9권으로 각각 〈방전(方田)〉, 〈속미(粟米)〉, 〈쇠분(衰分)〉, 〈소광(少廣)〉, 〈상공(商功)〉, 〈균수(均輸)〉, 〈영부족(盈不足)〉, 〈방정(方程)〉, 〈구고(句股)〉로 구성되어 있다. 각 문제(問題)는 문제[問]와 풀이[答], 계산법[術]의 순서로 기술되어 있으며, 필요에 따라 계산의 원리가 유휘의 주석으로 부가되어 있다.
4. 내용
〈방전〉은 각종 평면 도형의 면적 계산을 다룬다. 〈속미〉는 곡물의 환산문제(교환율)를 다룬다. 〈쇠분〉의 ‘쇠(衰)’는 차(差)를 의미하며 등차급수와 같은 비례 문제를 다룬다. 〈소광〉은 면적과 체적계산 문제로, 방전과는 달리 면적(체적)이 주어지고 변의 길이를 구하는 개평방(開平方), 개립방(開立方) 문제, 즉 방정식의 해법을 구하는 계산 문제를 다룬다. 〈상공〉은 다양한 형태의 공사에 필요한 체적(體積) 계산 문제를 다룬다. 〈균수〉는 전조(田租)의 운반 문제를 다룬다. 〈영부족〉은 이중가정법의 해법 문제를 다룬다. 〈방정〉은 다원 일차방정식의 해법을 다룬다. 〈구고〉는 직각삼각형 문제(구고술(句股術))를 다룬다.
5. 가치와 영향
서양 고대수학이 유클리드 《원론Elementa》의 영향 하에 공리적·연역적(논증적) 성격을 중시하였음에 반해, 중국의 전통수학은 실용적이고 귀납적이며 알고리즘 중시의 문제해결적(problem-solving) 성격이 강하다. 《구장산술》은 이러한 중국적 수학 패러다임을 형성한 산학서이다. 기하학이나 수론에 있어서는 그리스 수학에 비해 뒤떨어지지만 적어도 대수적 계산법이나 산술에서 보자면 동시기의 그리스를 능가한다. 특히 고대 수학의 중요한 성취 중 하나인 원주율의 정밀한 계산에서 유휘가 내접 정다각형의 변수를 증가시킴으로써 무한등비급수의 합과 유사한 계산법을 창안하여 극한의 개념을 명확히 파악한 점은 중국 고대수학의 뛰어난 성취 중의 하나이다.
중국 전통의 산학은 크게 천문역법과 관련되어 발전한 역산학(曆算學)적 전통(추보(推步)의 학(學))과, 행정과 유관한 실용적 필요에 의해 발전된 계산법 중심의 산학적 전통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한당(漢唐)의 산학은 제도적으로 산주(算籌)를 계산도구로 사용하였는데 이 산가지를 가리켜 ‘산(算)’, ‘책(策)’, ‘주(籌)’, ‘주산(籌算)’ 등으로 불렀고, 산학이란 산가지로 계산을 행하는[布算] 학문을 의미했다. 《구장산술》은 중국 전통 실용수학서 중 가장 오래됐으며 가장 영향력이 큰 저작인 동시에 동아시아 산학 전통 혹은 그 패러다임을 형성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주산서이다. 참고로 한당송원(漢唐宋元)의 수학은 주산(籌算)이지만 주판이 등장한 이후 명대 산학은 주산(珠算)이 주류가 되었고, 명말 마테오 리치(利瑪竇)에 의해 한역(漢譯)된 《동문산지(同文算指)》 등 서양 수학이 중국에 전래된 이후 청대 수학은 기본적으로 종이에 붓으로 적어 계산하는 필산(筆算)의 형식을 취한다.
이 점에서 볼 때 동아시아 수학사에서 조선이 점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첫째, 계통적으로 한당의 수학서인 《구장산술》과 송원의 수학서인 《산학계몽(算學啓蒙)》·《양휘산법(楊輝算法)》 등 전적으로 주산(籌算)의 전통에만 입각해 있었다. 따라서 명대의 수학인 주산(珠算)과 청대의 수학인 필산(筆算)을 전적으로 무시하였다는 점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18세기 이후로는 송원 수학의 대표적 성취인 약호(略號) 대수학 ‘천원술(天元術)’을 조선 수학만의 중요한 지적 전통으로 자각하여, 이미 필산으로 변화한 청대의 수학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조선의 수학을 ‘동산(東算)’이라고 자칭한, 이른바 ‘동산의식’을 갖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조선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서명응·서호수·서유구 달성서씨(達城徐氏) 삼대가학을 제외하면 철저하게 주산(籌算)의 전통 하에 있었으며 중국을 통해 전래한 서양수학인 ‘차근방(借根方)’에 대해서도 《구장산술》의 ‘정부술(正負術)’을 원용하여 비판할 정도였다. 《구장산술》은 조선에서 《주비산경》과 더불어 중국의 역산학, 나아가 중화 문명의 상징적 존재였다. 한국인에 의한 저술로는 《구장술해(九章術解)》, 《구고술도해(句股術圖解)》 등이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생각컨대 주공이 제례하여 구수가 있으니 구수의 흐름이 즉 구장산경이다.[按周公制禮而有九數 九數之流 則九章是矣]” 〈구장산술주서(九章算術注序)〉
• “‘촉류이장지(觸類而長之)’하면 비록 아무리 험하고 먼 곳이라도 못 갈 곳이 없다.[觸類而長之 則雖幽遐詭伏 靡所不入]” 〈구장산술주서(九章算術注序)〉
• “산학은 육예의 하나이니 옛사람들은 유능한 인재를 빈흥하여 국자를 교습하였다.[且算在六藝 古者以賓興賢能 敎習國子]” 〈구장산술주서(九章算術注序)〉
(2)색인어:육예(六藝), 구수(九數), 구장(九章), 유휘(劉徽), 주산(籌算), 산주(算籌), 산경십서(算經十書), 대진(戴震).
(3)참고문헌
• 中國科學技術典籍通彙 數學卷(河南敎育出版社)
• 匯校九章算術(郭書春匯校, 遼寧敎育出版社)
• 劉徽註九章算術(川原秀城 譯, 《中國天文學·數學集》所收, 朝日出版社)
• The Nine Chapters on the Mathematical Art:Companion and Commentary(Shen Kangshen, John N. Crossley, Anthony W.-C. Lun, Oxford Press)
• Chinese Mathematics:A Concise History(Du Shiran, Oxford Science Publications)
• 조선수학사(가와하라 히데키, 예문서원)
【안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