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귀곡자(鬼谷子)》는 전국시대 말기의 인물인 귀곡 선생이 지었다고 한다. 현재 내편 12장이 남아 있으며, 두 개의 장은 없어졌다. 그 뒤에 외편인 본경(本經) 음부(陰符) 7장과, 지추(持樞) 중경(中經)이 있다. 외편 이하는 뒤에 덧붙였을 것이다. 이 책을 종횡가(縱橫家)로 분류하지만, 합종연횡이라는 외교 정책과는 상관이 없다. 음양 이론에 근거해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2. 저자
(1) 성명:귀곡자(鬼谷子)
(2) 자(字)·별호(別號):성이 왕(王), 이름이 후(詡)라 하는데 신빙성이 없다.
(3) 출생지역:미상.
(4) 주요활동과 생애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소진장의열전(蘇秦張儀列傳)〉 첫머리에서 장의와 소진이 ‘귀곡(鬼谷) 선생(先生)’, 즉 ‘귀신 골짜기에 사는 선생’에게 배웠다고 한다. 《법언》, 《설원》, 《논형》 등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귀곡(鬼谷)’은 부풍군(扶風郡) 지양(池陽縣)(현 산서성(山西省) 경양현(涇陽縣))과 영천군(潁川郡) 양성현(陽城縣)(현 하남성(河南城) 기현(淇縣)) 두 곳에 해당되는데, 오늘날 기현의 운몽산(雲夢山)에는 귀곡자 관련 유물이 남아 있다. 이 역시 근거는 미약하다.
장의(張儀)는 전국시대 중기, 맹자(孟子)와 같은 시대 사람인 반면, 소진(蘇秦)은 전국 시대 말기 사람이다. 따라서 그 둘이 귀곡 선생에게서 배울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귀곡 선생’이라는 사람이 실존했는지가 의심스럽다.
‘귀곡자’는 일반적으로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의 이름 붙이기와 다르다. 보통은 ‘성씨+子’이고 ‘老子’가 예외적인데, 이 경우도 ‘늙은 선생’ 정도이다. ‘鬼谷子’는 ‘귀신 골짜기의 선생’이라는 말인데, 다분히 인위적으로 이름을 창작한 느낌이 든다.
(5) 주요저작
《귀곡자》 이외에 알려진 저작이 없다. ‘귀곡자’라는 인물이 생존했는지가 의심되는데, 그가 저작했다는 것은 더 의심스럽다. 따라서 현존 『귀곡자』는 후대의 인물이 창작한 것이다.
3. 서지사항
편명은 다음과 같다. 1편 〈패합(捭闔)(열고 닫음)〉, 2편 〈반응(反應)(반대로 응함)〉 3편 〈납건(內揵)(빗장을 지름)〉, 4편 〈저희(抵巇)(틈을 막음)〉 5편 〈비감(飛鉗)(날려주어 형틀 씌움)〉, 6편 〈오합(忤合)(거스름과 합치됨)〉, 7편 〈췌(揣)(측량함)〉 8편 〈마(摩)(문질러 어루만짐)〉, 9편 〈권(權)(저울질함)〉, 10편 〈모(謀)(모략)〉, 11편 〈결(決)(결단함)〉, 12편 〈부(符)(부합하는 말)〉, 없어진 2편은 〈전환(轉丸)(구슬을 굴림)〉, 〈거란(胠亂)(어지러움을 열다)〉이다.
이 뒤에 있는 외편 본경(本經) 음부(陰符) 7편은 동식물 7개를 본받아야 할 것으로 내걸고 정신 수양을 설명한다. 용, 거북, 뱀, 곰, 매, 맹수, 시초(蓍草)가 그것이다. 이는 내편과 내용도 글투도 상당히 다른 것으로, 뒤에 누군가 붙인 것 같다.
《귀곡자》라는 책은 전한(前漢) 말의 유향(劉向)의 《별록(別錄)》에도, 후한(後漢)의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도 나오지 않는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처음 나온다. 따라서 《귀곡자》는 위진 이후에 누군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귀곡 선생’에 가탁하여 지은 것이다. 이는 《장자(莊子)》에 ‘열자(列子)’라는 사람이 나오자, 위진(魏晉) 이후에 《열자》를 만든 것과 같다.
12편 〈부(符)〉는 《관자(管子)》 〈구수(九守)〉편과 몇 글자만 다르고, 《등석자(鄧析子)》 〈전사(轉辭)〉편과 비슷한 말이 나온다. 이 역시 《귀곡자》가 후대의 위작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4. 내용
이 책은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신하가 군주를, 힘이 약한 이가 강한 이, 혹은 대등한 이를 설득하는 방법이다. 그 방법은 주로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고 조종하는 것이다. 내편의 편명들이 다 그런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은 이해득실을 따지거나, 혹은 윤리 도덕과 대의명분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것을 일부 깔고 있으나, 주된 내용은 권모술수에 의한 상대의 조종이다.
사마천은 합종에 소진, 연횡에 장의를 든다. 장의는 형벌을 받다가 살아 나와서 “내 혓바닥은 온전하냐”고 물었다. 세치 혓바닥으로 7국의 군주를 가지고 놀았다. 귀곡자는 바로 이런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장의가 비록 협잡과 기만에 가까운 권모술수로 당시 제후들을 사로잡았지만, 거기에는 1국만 통일하여 살아남고, 나머지 6국은 비참하게 멸망해야 하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설득했다. 바로 그 생사존망의 상황을 꿰뚫고, 장의는 세치 혀로 군주들을 농락한 것이다. 형세가 장의를 만들어준 것이지, 세치 혀가 그의 명성을 만든 것이 아니다. 군주들이 존망의 위기 때문에 장의의 말을 따른 것이지, 술수 때문에 심리를 조종당한 것은 아니다.
사마천은 소진과 장의가 ‘귀신 골짜기[鬼谷]’의 선생에게 배웠다고 한다. ‘귀신 골짜기’라는 이미지가 또한 술수를 연상하게 한다. 요컨대 귀곡자는 사마천이 심은 “종횡가=세치 혓바닥으로 술수를 부려서 사람을 조종함”이라는 편견에 근거해서 지어진 것이다. 틀린 가정 위에 섰기 때문에 『귀곡자』는 가치가 있는 내용이 별로 없다.
본문의 내용은 대략 셋으로 나눌 수 있다.
〈패합(捭闔)〉은 입을 열고 닫음, 즉 말하고 침묵함이다. 〈반응(反應)〉은 상대에게 말을 던지고, 상대가 반대로 응함을 기다림이다. 〈납건(內揵)〉은 군주의 마음에 빗장(揵=楗)을 질러서 확실하게 함이다. 〈저희(抵巇)〉는 군주와 나 사이의 틈을 미연에 막음이다. 〈비감(飛鉗)〉은 상대를 칭찬하여 날려줌(飛, 추켜세워줌)으로써, 상대의 목에 칼(형틀)을 씌우는 것이다. 〈오합(忤合)〉은 처신을 함에 누구와 거스르고 누구와 합치됨을 논한다.
〈췌(揣)〉는 상대의 본심을 헤아려 측량함이다. 〈마(摩)〉는 상대의 마음을 문질러 어루만져서, 나의 뜻대로 하게 만듦이다. 〈최(揣)〉와 〈마(摩)〉가 사실상 〈귀곡자〉의 핵심 주제이다. 따라서 이들의 방법을 ‘췌마지술(揣摩之術)’이라 한다.
〈권(權)〉은 상대의 말과 형세를 저울질함이다. 〈모(謀)〉는 저울질한 결과 꾀를 내어 책략을 세움이다. 〈결(決)〉은 세운 책략을 결단하여 실행함이다. 이 셋이 한 부분이 된다.
5. 가치와 영향
귀곡 선생이라는 사람의 존재도 의심스럽고, 《귀곡자》라는 책은 후대에 귀곡 선생에 가탁해서 지은 책이다. 게다가 내용도 권모술수로 사람을 조종함이 대부분이라, 후대에 혹평을 받았다. 특히 유가에서 비난한 ‘술수학’의 대표로 꼽혔다.
《노자》는 윤리 도덕을 초월한 처세술을 제시한다. 그러나 현실의 힘의 관계를 냉철하게 통찰한 지혜가 있다. 그러나 《귀곡자》는 《노자》나 《한비자》 등에 나오는 처세술 등을 참고해서, 사마천이 말한 종횡가의 특징에 맞추어서 지었다. 새로 제시한 이론이 없다. 따라서 후대에 끼친 영향도 극히 제한적이다. 고전으로서 연구할 가치도 크지 않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설득함이란 〈설득 상대에게〉 근거함이다. 말을 꾸밈은 〈상대에게서 논증 근거를〉 임시로 빌림이다. 임시로 빌림은 보태고 더는 것이다. 응하여 상대하는 것은 나의 말을 날카롭게 함이다. 말을 날카롭게 함은 논증을 굴림이다.……힐난하여 말함은 상대의 논증을 반박함이다. 논증을 반박함이란 기회를 낚음이다.[說之者資之也 飾言者假之也 假之者益損也 應對者利辭也 利辭者輕論也……難言者却論也 却論者釣㡬也]” 〈9편 권(權)〉
• “그 몸이 〈설득 대상의〉 안에 있으나, 그 말이 바깥인 자는 소원해진다. 그 몸이 바깥에 있는데 그 말이 깊숙한 자는 위태로워진다. 상대가 바라지 않는 바를 그에게 강요함이 없어야 한다. 상대가 알지 못하는 바를 그에게 가르침이 없어야 한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배워서 순응한다. 그 사람이 미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벗어나서 피한다. 그러므로 속으로는 〈나의 주장으로〉 인도하고, 겉으로는 〈상대방의 주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제거할 것(주장)은 풀어놓아준다. 풀어놓아주는 것은 〈틈을〉 올라타려는 것이다.[其身内其言外者疎 其身外其言深者危 無以人之所不欲而强之於人 無以人之所不知而教之於人 人之有好也 學而順之 人之有惡也 避而諱之 故陰道而陽取之也 故去之者縱之 縱之者乘之]” 〈10편 모(謀)〉
• “반드시 그가 심히 기뻐할 때에 가서 그 욕망을 극대화시켜 준다. 그 욕망이 있으면 그 본심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그가 심히 두려워 할 때에 가서 그 미워함을 극대화시킨다. 그 미워함이 있으면 그 본심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감정과 욕망을 숨길 수 없으면 반드시 변화를 잃게 된다. [必以其甚喜之時, 往而極其欲也. 其有欲也, 不能隱其情. 必以其甚懼之時, 往而極其惡也. 其有惡也, 不能隱其情. 不能隱情欲 必失其變]” 〈7편 췌(揣)〉
→ 《四庫全書》本 《귀곡자》에는 ‘不能隱’이 없으나, 《四部叢刊初編》本 《귀곡자》에 의거하여 보충하였음.
• “〈상대가〉 자극받아 움직였으나 그 변화를 알 수 없으면 이에 잠시 그 사람을 내버려두고 그와 더불어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다시 그가 친한 바를 물어서 그가 편안해 하는 바를 알아낸다. 무릇 감정이 안에서 변한 것은 그 모습이 바깥에 드러나 보인다. 그러므로 항상 반드시 그 보이는 바로써 그 숨은 것(진심)을 알아낸다. 이것이 이른바 깊은 곳을 헤아려서, 진심을 찾아낸다는 것이다.[感動而不知其變者 乃且錯其人勿與語 而更問所親 知其所安 夫情變於内者 形見於外 故常必以其見者而知其隱者 此所謂測深揣情]” 〈7편 췌(揣)〉
(2) 색인어:귀곡자(鬼谷子), 귀곡선생(鬼谷先生), 종횡가(縱橫家), 도가(道家), 술수학(術數學)
(3) 참고문헌
• 귀곡자(김영식 譯, 지식을 만드는 지식)
• 귀곡자(신동준 譯, 인간사랑)
• 귀곡자(박찬철 공원국 譯, 위즈덤 하우스)
• 귀곡자(박용훈 譯, 학민사)
• 귀곡자(심의용 譯, 돌베개)
【손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