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계만영(桂萬榮)이 수령들이 재판에 참고하도록 송(宋)의 정극(鄭克)이 편찬한 《절옥귀감(折獄龜鑑)》을 바탕으로 사례를 종합하여 저술한 법률사례집이다.
2. 저자
(1) 성명:계만영(남송(南宋) 약 12~13세기로 추정)
(2) 자(字)·별호(別號):자는 몽협(夢協) 또는 석파(石坡)
(3) 출생지역:양절동로(兩浙東路) 경원부(慶元府) 자계현(慈溪縣)(현 절강성 영파시)
(4) 주요활동과 생애
계만영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1196년(남송(南宋) 영종(寧宗) 경원(慶元) 2)에 진사(進士)로 조산대부(朝散大夫)‚ 직보장각(直寶章閣)‚ 지상덕부(知常德府) 등의 관직을 역임한 것만 알려져 있다. 지방관 역임 당시 관대한 정치를 베풀어 널리 칭송되었으며, 고금(古今)의 재판(故事)들을 묶어 본서를 저술하였다. 교정자 전택(田澤)은 원대(元代) 사람으로 교정 당시 예주로총관부추관(澧州路總管府推官)인 점만 알려져 있다.
(5) 주요저작:미상
3. 서지사항
계만영이 1234년(송(宋) 이종(理宗) 단평(端平) 1년)에 출간하였으며, 전택은 1308년에 재간행하였는데, 이는 모두 전하지 않는다. 명(明)의 오눌(吳訥, 1372~1457)이 산정본(刪正本)을 편찬하였고, 이는 《학해유편(學海類編)》과 《총서집성초편(叢書集成初編)》에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계만영의 원본은 고려로 전해져 조선에서 간행되었는데, 여기에는 전택의 서문과 편집방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조선본’은 일본으로 넘어가서 에도시대에 하야시 라잔[林羅山]이 훈점(訓點)을 찍어 간행하였으며, 또 ‘《본조당음비사(本朝棠陰比事)》’라는 서명으로 유통되었다. 청대는 물론 민국시기에도 간행되었다. 영역(英譯)되어 서구학계에도 소개되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당음비사》는 계유자(癸酉字) 활자본으로 3권(卷) 1책(冊)(98장(張))이다. 책 크기는 33.9×21.9cm이며, 광곽(匡郭)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며, 반엽광곽(半葉匡郭)은 26.5×16.8cm, 10행 18자로 주(注)는 쌍행(雙行)이다. 판심(版心)은 상하세화문어미(上下細花紋魚尾)이다. 조선본 《당음비사》는 “전택 서문, 계만영 서문, 목록, 권상(24) 권중(24) 권하(24)”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사례의 상단에 정극(鄭克, 생몰년 미상, 1124[휘종(徽宗) 선화 6]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호남제형사간관(湖南提刑司幹官) 등 역임)의 분류를 표시하여, 원간본(元刊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4. 내용
서명의 ‘당음(棠陰)’은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소공(召公)이 섬서(陝西) 지역을 다스릴 때 팥배나무 아래에서 송사를 처리하여 백성을 잘 다스린 고사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훌륭한 판결을 의미하며, ‘비사(比事)’는 사건에 적용할 정확한 조문을 찾기 어렵거나 없을 때 유사한 사안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다.
정극은 오대(五代) 후진(後晉)의 화응(和凝)(898~955), 화몽(和㠓)(951~995) 부자가 편집한 《의옥집(疑獄集)》을 기초로 《절옥귀감》을 편집하였다. 계만영은 《절옥귀감》의 400여 건의 사례 중에서 72구(句) 144건의 사례를 추출하였다. 그는 암기와 활용의 편의를 위해서 “向相訪賊 錢推求奴[승상 상민중이 도적을 찾고, 추관 전약수가 노비를 구하다]”와 같이 4언절구(四言絶句)의 형식으로 표제를 붙였다. 상중하 3권 1책으로 1책 마다 24개의 절구가 수록되어 있다.
애매한 사건을 처리할 때에 참고할 수 있도록 수사방법, 증거의 조사 그리고 정황을 활용하는 것 등 다양하다. 사례는 《주례(周禮)》의 ‘오청(五聽)’ 등 경전과 《무원록(無寃錄)》 그리고 역대 사례를 집성하였다.
5. 가치와 영향
《당음비사》는 법조문에 대한 해설보다는 재판에서 사실규명의 방법과 판관의 공정하고 성실한 자세를 강조하여 실무에서 중시되었다. 조선에서는 1483년(성종 14) 시강관(侍講官) 성건(成健)(1439~1496)이 엄형(嚴刑)으로 자백을 받아 생기는 억울함을 막기 위해 《당음비사》를 간행하여 배포하였다. 1539년(중종 34)에도 대사헌 상진(尙震)(1493~1564)이 같은 이유로 간행을 건의하였다. 중종은 《당음비사》를 간행하여 옥사의 처리방법을 알게 하면 폐단이 줄어들 것이라고 승인하였다.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된 《당음비사》에 1540년(중종 35) 4월에 형조참판 이현보(李賢輔)(1467~1555)에게 하사한 내사기(內賜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때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대에 다양한 판본의 《당음비사》가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옥사를 담당하는 관리는 백성의 생명을 실제로 관장한다. 천심의 향배나 국운의 장단이 이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옥관은〉 다른 관직보다 더욱 삼가고 신중해야 한다.……특히 《주역(周易)》 중부괘(中孚卦)에 ‘옥사를 의논하면서도 사형을 관대하게 한다.[議獄緩死]’는 상(象)이 드러나서, 옛 군자는 역시 마음을 다해 한결같이 정성을 다하여 변하지 않으니 공정함이 여기에 있다.[凡典獄之官 實生民司命 天心向背 國祚修短係焉 比他職掌 尤當謹重……特著其‘議獄緩死’之象於中孚 而古之君子 亦盡心於一誠不可變者 公其有焉]” 〈자서(自序)〉
• “어려운 법조문과 엄한 형벌로 자잘하고 각박하게 적용하고자 애쓰는 것은 모두 법에 사사로움을 덧붙이고자 하는 까닭이다. ‘군자는 역모를 꾀하거나 속이지 않는다.’는 말은 말류(末流)가 반드시 이런 지경에 이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이다.[按深文峻法 務爲苛刻者 皆委曲生意而然也 君子不逆詐 蓋惡其末流決至於此爾]” 〈41. 곽궁명오 희량구망(郭躬明誤) 希亮救亡〉
• “다섯 가지 감각으로 재판을 다스려 민정을 구한다고 하였다: 첫째는 ‘말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가 하는 말을 살펴보는 것으로, 정직하지 않으면 말이 번잡스럽다.〉 둘째는 ‘얼굴색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 얼굴색을 살펴보는 것으로, 정직하지 않으면 얼굴을 붉힌다.〉 셋째는 ‘숨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가 숨 쉬는 것을 살펴보는 것으로, 정직하지 않으면 헐떡거린다.〉 넷째는 ‘듣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가 소리를 듣는 것을 살펴보는 것으로, 정직하지 않으면 분명하지 않다.〉 다섯째는 ‘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가 둘러보는 것을 살펴보는 것으로, 정직하지 않으면 보는 것이 흐릿하다.〉[以五聲聽獄訟 求民情. 一曰辭聽〈觀其出言 不直則煩〉, 二曰色聽〈觀其顔色 不直則赧然〉, 三曰 氣聽〈觀其氣息 不直則喘〉, 四曰耳聽〈觀其聽聆 不直則惑〉, 五曰目聽〈觀其眸子視 不直則眊然〉.]” 《주례주소(周禮注疏)》 〈추관사구(秋官司寇) 제5〉
(2) 색인어:당음비사(棠陰比事), 의옥집(疑獄集), 절옥귀감(折獄龜鑑), 무원록(無寃錄), 법률사례집(法律事例集), 송사소설(訟事小說)
(3) 참고문헌
• 당음비사(桂萬榮 저, 전택(田澤) 교정, 박소현, 박계화, 홍성화 역, 세창미디어)
• 절옥귀감(鄭克 저, 김지수 역, 전남대학교 출판부)
• 〈팥배나무 아래의 재판관 - 《棠陰比事》를 통해 본 유교적 정의〉(朴昭賢, 《중국문학》 80, 한국중국어문학회)
• 〈조선전기 중국법서의 수용과 활용〉(鄭肯植, 《서울대학교 법학》 50-4,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 〈진실의 수사학 《흠흠신서》와 공안소설의 관계를 중심으로〉(박소현, 《중국문학》 69, 중국문학회)
• 〈법률 속의 이야기, 이야기 속의 법률: 欽欽新書와 중국 판례〉(朴昭賢, 《대동문화연구》 77, 성균관대대동문화연구소)
• 〈Tang-Tin-Pi-Shih, Parallel Cases from Under the Pear-Tree: A 13th Century Manual of Jurisprudence and Detection〉(Robert Hans van Gulik,
Sinica Leidensia, V. 10, Hyperion Print)
【정긍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