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통력(大統曆)》이라는 역법의 명칭은 명 태조(明太祖)의 홍무(洪武) 원년(1368)에 태사원사(太史院使) 유기(劉基)가 원(元)의 《수시력(授時曆)》을 그대로 받아들여 만들어 올린 《무신대통력(戊申大統曆)》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명대 전반에 걸쳐 활용된 실제의 《대통력》 역법서는 홍무 17년(1384) 흠천감(欽天監) 누각박사(漏刻博士)이던 원통(元統)이 《수시력》의 일부를 수정하여 펴낸 《대통력법통궤(大統曆法通軌)》이다. 원통의 《대통력법통궤》는 세실(歲實), 곧 1년의 길이를 《수시력》과 동일하게 365.2425일로 취하면서도 100년마다 1만분의 1일을 줄이는 소장법(消長法)을 없애고, 갑자년인 홍무 17년을 역원(曆元)으로 삼은 것 외에는 차이가 없다고 할 정도로 《수시력》과 닮았다고 여겨지고 있다. 《대통력》은 명 말까지 260여 년 동안 사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 《대통력》 역서(曆書)가 처음 전해진 것은 고려 공민왕 19년(1370)이다.
2. 저자
(1) 성명:원통(元統(?~?))
(2) 자(字)・별호(別號):호는 포졸자(抱拙子)이다.
(3) 출생지:장안(長安(현 중국 서안(西安)))
(4) 주요활동과 저작
홍무 17년 흠천감 누각박사로서 《수시력》을 수정하여 《대통력법통궤》를 지었으며, 이듬해에 나온 《회회력법(回回曆法)》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흠천감정(欽天監正)이던 홍무 29년(1396)에는 《위도태양통경(緯度太陽通徑)》을 지어 중국 역법의 방식을 서역 역법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5) 주요저작:《대통력법통궤》, 《회회력법》, 《위도태양통경》 등.
3. 서지사항
원통이 펴낸 《대통력법통궤》는 《태양통궤(太陽通軌)》, 《태음통궤(太陰通軌)》, 《교식통궤(交食通軌)》, 《오성사여통궤(五星四餘通軌)》의 4권으로 이뤄졌으나, 현재 중국에는 잔초본(殘抄本)인 《교식통궤》, 《오성통궤》, 《사여통궤》만 중국국가도서관에 전해지고 있다. 한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대통역일통궤(大統曆日通軌)》, 《태양통궤》, 《태음통궤》, 《교식통궤》, 《오성통궤》, 《사여전도통궤(四餘纏度通軌)》의 6권으로 분책(分冊)된 세종 갑인자본(甲寅字本) 완질이 소장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대통력법통궤》는 조선에 들어온 후 일부 교정되었는데, 현존하는 양 판본을 비교해보면 조선에서의 교정은 술문의 자구(字句)에 국한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내용
《대통역일통궤》에서는 《대통력》에서 취한 기본 천문상수인 제율(諸律)부터 제시한 후, 매월 경삭(經朔), 태양 영축력(盈縮曆), 태음 지질력(遲疾曆) 등 이후의 계산에 필요한 값을 구하는 과정을 다뤘다. 《태양통궤》는 태양 운행의 적도도(赤道度)와 황도도(黃道度), 교궁시각(交宮時刻) 등을 구하는 법을 싣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음통궤》는 달의 운행 추산법을, 《교식통궤》는 일식과 월식의 추산 과정을, 《오성통궤》는 목・토・화・금・수 오성의 운행 추산법을, 《사여통궤》는 가상의 천체인 자기(紫氣)・월패(月孛)・나후(羅睺)・계도(計都)의 위치 추산법을 다루고 있다.
《대통력》이 《수시력》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수정본을 역사에 남기며 《수시력》의 틀을 부분적으로나마 벗어난 것도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원통의 《대통력법통궤》 이후에도 두어 차례의 수정이 있었다. 미처 한 세기가 지나기 전인 정통(正統)년간(1436∼1449)에 흠천감 하관정(夏官正) 유신(劉信)이 기존의 역법을 고쳐 《대통력법통경(大統曆法通徑)》을 편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융경(隆慶) 3년(1569)에 주상(周相) 등이 펴낸 《대명대통력법(大明大統曆法)》도 전해지고 있다. 명 말의 이 역법서는 원통과 유신의 역법서로부터 취사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명사(明史)》 〈역지(曆志)〉에 실린 대통력법 추보편을 들 수 있지만, 이것에는 청(淸)의 명사관(明史館)에서 수정한 내용이 들어 있어 완전한 명력(明曆)으로 여길 수 없다.
《대통력법통궤》는 외견상 《수시력경(授時曆經)》에 비해 술문과 편제에서 차이가 뚜렷하다. 대부분의 경우 통궤본의 술문이 《수시력경》에 비해 뚜렷한 만연체(蔓衍體)이다. 편제의 차이는 특히 교식 추보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수시력경》이 일식과 월식을 같은 조문에서 다루고 있는 데 비해 《교식통궤》에서는 책을 양분하여 전반부에 일식 추산에 필요한 내용만 싣고 후반부에는 월식 추보법을 실었다.
《대통력법통궤》가 내용에서 《수시력경》과 다른 점으로 세실소장법 폐지와 역원 변경이 대표적으로 거론되어왔으나, 세실소장은 100년에 1분이 바뀌는 데 불과하며, 또 홍무 갑자년을 새 역원으로 삼았지만, 《수시력》의 지원(至元) 신사(辛巳(1281)) 응수(應數)에 대응하는 홍무 갑자 응수를 구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둘 다 추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개변(改變)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월식시차(月食時差) 등의 산식에서 발견되는 변화가 실질적인 구별점이다.
최근에 나온 연구에서 월식시차 차이가 월식 식심시각 추보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수시력》의 방식을 따를 경우, 해가 지날수록 식심시각 추산치가 실제보다 점점 뒤처지는 후천(後天)의 경향을 가지는데, 《수시력경》의 월식시차와 구응수(舊應數)가 대입된 추보 결과가 《수시력》이 제정된 13세기 후반의 월식에 부합하는 데 비해, 《대통력법통궤》의 월식시차와 신응수(新應數)로 계산한 결과는 15세기 중반의 월식에 적합함이 드러났다.
《수시력》의 추보가 이전 역법에 비해 훨씬 정밀해졌지만 여러 구조적인 원인으로 인해 교식 예측에서는 실제와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여기에 후천 추세가 보태지면서 명 초에 이미 1각 가량 《수시력》의 월식 식심이 늦어졌다. 《수시력》 제정 때 왕순(王恂)과 곽수경(郭守敬)이 월식시차를 활용하여 당대의 월식에 《수시력》의 추보 결과를 맞추었듯이, 원통도 시차의 식을 바꾸고 신응수를 대입하여 오차를 줄이면서 후천 추세를 교정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대통력법통궤》가 조선에 들어온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세종 14년 전후로 추정된다.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의 편찬은 세종 24년(1442)에 시작되었는데, 이순지(李純之)와 김담(金淡)이 《수시력경》과 《대통력법통궤》의 다른 부분을 살피면서 정밀한 쪽을 따르되 중간에 여러 조항을 더하였다고 한다.
《칠정산내편》의 바깥으로 드러난 편장(篇章) 체계는 《수시력경》보다 《대통력법통궤》에 더 가깝다. 그러나 《칠정산내편》의 술문에서는 《대통력법통궤》의 만연체를 배제하고 《수시력경》을 바탕으로 간결하게 기술하였다. 그러면서도 항목 구분 등 세부 편제는 《수시력경》과 《대통력법통궤》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취하였다. 한편 산식(算式)이 다른 경우는 철저히 《대통력법통궤》를 따랐다. 역원을 《대통력법통궤》의 홍무 갑자년이 아닌 《수시력》의 지원 신사년(1281)으로 되돌렸고, 《대통력법통궤》에서 폐지했던 세실소장법까지 되살리면서도, 실제로 교식 예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산식에서는 철저히 《대통력법통궤》을 반영한 것이 《칠정산내편》이다. 영축력 등의 계산 방법에서 《원사(元史)》 〈수시력경(授時曆經)〉이 산식 위주인데 반해, 《칠정산내편》이 입성(立成) 위주인 것 역시 《대통력법통궤》의 영향을 더 크게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또 근년에 구한 중국 통궤의 법은 수시력에서 나온 것이지만 곳곳에 보태고 뺀 차이가 있다.[又近年所得中朝軌通之法 本於授時 而或有增損之異]” 《대통력법통궤》(세종 갑인자본) 발문(跋文)
• “수시력법과 통궤법을 따르되 동이를 살피면서 정밀한 쪽을 취하고 중간에 몇 개 조항을 더하여 책을 만들고 ‘칠정산내편’이라고 이름 지었다.[依授時通軌之法 叅別同異 酌取精密 間添數條 作爲一書命曰七政算內篇]” 《대통력법통궤》(세종 갑인자본) 발문
(2) 색인어:대통력(大統曆), 대통력법통궤(大統曆法通軌), 수시력(授時曆), 수시력경(授時曆經),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원통(元統), 왕순(王恂), 곽수경(郭守敬), 이순지(李純之), 김담(金淡)
(3) 참고문헌
• 大統曆法通軌(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七政算內篇(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元史 曆志(中國 河南敎育出版社)
• 明史 曆志(中國 河南敎育出版社)
• 大明大統曆法(日本內閣文庫)
• 麗末鮮初 本國曆 완성의 道程(한영호・이은희, 연세대학교 동방학지)
• 從交食算法的差異看大統曆的編成與使用(李亮・呂凌峰・石云里, 中國科技史雜志)
【한영호】